왕실 이야기/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의 국왕수업 철저

정준극 2010. 1. 16. 06:27

공주의 국왕수업 철저

 

빅토리아 공주

 

빅토리아 공주는 스톡홀름의 엔스킬다(Enskilda)고등학교(김나지에트)를 졸업하고 1996-97년에 프랑스의 앙제르(Angers)에 있는 가톨릭대학교(Université Catholique de l'Ouest)에 다녔다. 유창한 프랑스어는 이때 다져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스웨덴 의회(Riksdag)가 주관하는 특별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의회에 대한 사항을 숙지하였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등 여러 주제로 공부하였다. 예일을 졸업한 빅토리아는 1999년 워싱턴에 있는 스웨덴대사관의 인턴으로 일했으며 2000년에는 스톡홀름에 돌아와 스웨덴국방대학에서 국제평화유지를 위한 분쟁조정에 대하여 연구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EU에 관여했으며 이어 정부의 공무원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2002년에는 뉴욕의 UN본부에 가서 인턴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스웨덴국제개발협력국(SIDA)의 연구과제에 참여하여 훌륭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어 베를린과 파리에 있는 스웨덴무역위원회에서 근무했으며 2003년에는 농업과 삼림에 대한 인턴과정을 마쳤다. 그해에 빅토리아공주는 스웨덴육군국제센터(SWEDINT)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2004년에는 주로 스웨덴의 기업활동에 대하여 시간을 할애하였고 이와 함께 스웨덴국방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과정을 이수했다.

 

결혼식 후에 국왕부부와 빅토리아 공주 부부

 

빅토리아 공주의 국왕수업은 계속되었다. 2006년 빅토리아는 1년동안 스웨덴 외무성에서 주관하는 외교관과정을 이수하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스웨덴의 대외정책, 안보정책, 스웨덴과 세계 각국과의 관계 등에 대한 개인교습식의 교육을 받았다. 2007년에는 EU의 스웨덴상주대표부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2008년에는 다시 SWEDINT에 입대하여 단기보병과정을 거쳤다. 스웨덴이 분쟁국에 파견하는 UN평화군에 대한 훈련과정과 같은 것이었다. 2009년에는 명문 우프살라(Uppsala)대학교를 졸업하여 학사학위를 받았다. 학사학위 논문은 ‘국제관계와 분쟁해결’이었다. 논문심사교수들은 빅토리아의 논문을 ‘훌륭한 논문’이라고 평했다. 이제2010년에는 결혼을 하게 되고 자녀를 갖게 되어 아내로서 주부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빅토리아가 연마하였던 여러 분야는 미래에 국왕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려면 적어도 이만큼 준비된 실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명문 우프살라대학교.(구스타브박물관) 


1980년에 장자상속권 폐지

 

태어난후 왕세자가 되었으나 1980년 1월 1일자로 왕위계승법이 개정되어 누이인 빅토리아공주에게 왕위계승권 1위를 넘겨주어야 했던 칼 필립왕자.

 

1980년 1월 1일은 빅토리아의 운명이 바뀐 날이다. 그날로부터 스웨덴의 개정된 왕위계승법이 효력을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일찍이 1810년부터 시행하여온 장자상속권을 폐지하고 첫째 자녀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새로운 왕위계승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스타브16세 국왕의 첫 딸인 빅토리아공주가 다음번 왕위계승자로 확정되었다. 스웨덴은 유럽의 왕실 중에서도 장자상속권을 가장 먼저 적용한 국가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드디어 장자상속권을 폐지하는 지경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빅토리아는 차기 왕위계승자로 됨과 동시에 배스터요틀란드(Västergötland)공작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배스터요틀란드는 스웨덴의 역사적인 지방이다. 1980년 빅토리아가 왕위계승자로 확정되기 전에는 칼 필립왕자가 왕위계승자였다. 이제 칼 필립왕자는 왕위계승 2순위가 되었다. 만일 빅토리아가 자녀를 갖게 되면 그 아이가 2순위가 된다. 빅토리아가 왕위에 오르면 King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Queen이라고 부를 것인가? 왕위계승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첫째 자녀가 King이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King Victoria가 된다는 얘기다.

 

빅토리아는 1995년으로 18세 성년(Majority)이 되었다. 성년식은 1995년 7월 14일 스톡홀름 왕궁의 대접견실(Hall of State)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빅토리아는 성년선언을 발표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영문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참고가 될 것이다. 빅토리아는 성년식을 치룬 이후부터 왕위계승자(Heir apparent)로서 별도의 공식적인 활동을 갖게 되었다. 빅토리아는 2001년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친선을 도모하고 무역을 확대하였으며 문화와 예술분야의 협력을 증진하였다. 빅토리아는 아직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과 중국은 두 번씩이나 방문했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코소보와 같은 분쟁지역을 직접 방문하였다. 분쟁지역문제는 빅토리아의 주요 관심사항이다.하여튼 빅토리아는 세계의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견문을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방문한 국가들은 이집트, 중국, 브라질, 호주, 우간다. 에티오피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일본, 코소보, 룩셈부르크,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독일, 요르단, 라트비아, 말레이시아, 보츠와나, 브라질, 불가리아,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이다. 우리나라엔 언제?

 

빨간 옷을 입은 빅토리아공주

 

Crown Princess Victoria's Declaration of Majority

[크라운 프린세스 빅토리아의 성인 선언문]

 

Your Majesties: Daddy dear,

 

Coming of age entails a big change for anyone, bringing as it does personal responsibility for ones actions and future. For me as Crown Princess it entails sharing the King's duties to a greater extent and helping th King and Queen in the important work they are performing on behalf of our country.

I would like to thank my parents for all the support they are giving me in every aspect of my life. This is of great importance to me and will help me assume with confidence the responsibilities and obligations I have as heir to the Swedish Throne. I will always be loyal to King and Parliament, and I will closely observe the Constitution of Sweden.

 

Daddy dear - last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for the Order of the Seraphim which I received today. It means a lot to me and will serve as a reminder of my duties toward King and cou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