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공동묘지 문화

칼렌버그 공동묘지(Kahlenberger Friedhof)

정준극 2010. 3. 12. 21:59

칼렌버그 공동묘지(Kahlenberger Friedhof)

 

샤를르 조셉 드 리뉴 공자와 가족들의 묘소

 

칼렌버그 공동묘지는 칼렌버그산의 남쪽에 있는 작은 공동묘지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비엔나 숲의 일각에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숲속의 공동묘지이다. 칼렌버그 공동묘지는 요셉스도르프(Josefsdorf)의 칼렌버그 슈트라쎄에 있으며 1783년 12월 21일 오픈되었다. 칼렌버그 공동묘지는 대체로 비더마이어 스타일의 묘비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유명인사로서는 나폴레옹 이후의 문제를 다루는 비엔나회의에 벨기에 사절단이었던 샤를르 조셉 드 리뉴(Charles Joseph de Ligne)와 그의 부인 및 손녀, 그리고 비엔나회의 시절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힌 카롤리네 트라운비저(Karoline Traunwieser)를 꼽을수 있다. 트라운비저는 21세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1815년에 별세했다. 이곳에는 또한 칼렌버그의 부활수도회에 속한 수도승들의 묘지가 있다.

 

카롤리네 트아운뷔저의 소박한 묘비

 

카롤리네 트라운뷔저

가장 아름다운 비엔나의 여인

 

칼렌버그 공동묘지에 영원한 안식처를 택한 Karoline Traunwieser(카롤리네 트라운뷔저: 1794-1815)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흠모의 대상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 것일까? 여러 사람들의 찬사를 살펴보면 잘 알수 있다. 당대의 동양학자이며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를 창설한 Josef Frh. v. Hammer Purgstall(요셉 프라이헤르 폰 함머 푸르그슈탈)은 “무도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저 쪽에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여인을 보았다. 나는 수많은 지역을 여행하였고 수많은 여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러나 나의 생전에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만나 본 일이 없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여인과 같았다.”라며 카롤리네를 처음 만났던 사항을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 카롤리네(로트헨)는 17세의 가수였다. 카롤리네는 나폴레옹군의 어떤 젊은 대령과 사랑에 빠졌었다. 그러나 그는 1812년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때에 전사하였다. 카롤리네는 그로부터 2년반 후인 1815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21세의 젊은 나이였다.

 

 

샤를르 드 리뉴 대공(왼쪽)과 로트헨의 모습이라고 추정되는 그림

 

카롤리네의 어머니는 성지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매매하는 골동품 상인이었다. 그리고 칼렌버그에 상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Obersievering(오베르지베링)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Karl de Ligne(칼 드 리뉴)대공도 카롤리네를 대단히 흠모하였다. 칼 드 리뉴 공자는 열국들이 모여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에 대하여 논의할 때에 벨기에 대표로서 비엔나회의에 참석하였다. 특히 그는 ‘회의는 춤춘다’(Die Kongress tanzt)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인물로서 기억되고 있다. 칼 드 리뉴는 카롤리네를 만나보고 그 아름다움을 크게 흠모하였다. 그는 카롤리네가 세상을 떠난 그 해 겨울에 역시 세상을 떠났으며 마지막 소원에 따라 카롤리네가 매장되어 있는 칼렌버그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칼 드 리뉴의 묘비에는 ‘아름다운 여인은 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를 흠모하는 드 리뉴는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적혀 있다.

 

칼렌버그 교구교회 사제들의 합동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