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hur NIkisch(아르투르 니키슈)
손이 아닌 눈으로 큐를 주는 지휘
헝가리 출신의 아르투르 니키슈(1855-1922)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였기 때문에 소개코자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헝가리인 아버지와 모라비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비엔나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주로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브루크너, 차이코브스키, 베토벤, 리스트의 뛰어난 해석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작곡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어 비엔나음악원에 다닐 때에 여러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휘자로서 자기의 음악세계를 완성키로 작정하였다. 1878년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긴 그는 라이프치히오페라의 부지휘자가 되었으며 1882년에는 정지휘자가 되었다. 1884년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의 초연을 지휘한 것은 그의 명성을 크게 높여준 것이었다.
1885년 7월, 니키슈는 성악가이며 배우인 아멜리 호이스너(Amelie Heussner: 1862-1938)와 결혼하였다. 호이스너는 카쎌(Kassel)궁정극장에서 구스타브 말러의 지휘 아래에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한바 있다. 니키슈와 호이스너의 아들인 미탸(Mija: 1899-1936)은 나중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니키슈는 1893년부터 2년 동안 조국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왕립오페라에서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그 이후에는 칼 라이네케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895년에는 베를린필의 정지휘자로 임명되었다. 니키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의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니키슈는 몇가지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그는 1912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미국공연을 가졌다. 유럽의 오케스트라로서 미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1913년에는 베를린필을 지휘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처음으로 레코딩했다. 그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영국에서도 처음으로 음반녹음을 하였다. 당시의 레코드를 들어보면 20세기초의 오케스트라 특성인 포르타멘토가 강조되었음을 인식할수 있다.
니키슈는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가 살았던 지역의 지명은 니키슈플라츠(니키슈광장)으로 변경되었다. 1971년 라이프치히 시당국은 젊은 지휘자들을 발굴하는 아르투르 니키슈 음악상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르투르 니키슈는 현대 지휘법의 창안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소절 하나하나, 간단한 박자 하나하나를 깊이 분석하였으며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하나로 이끌어내는 카리스마적 지휘로서 유명하였다. 니키슈의 지휘 스타일은 나중에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아드리안 불트경, 프릿츠 라이너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프릿츠 라이너는 ‘니키슈는 지휘할 때에 절대로 손을 흔들어서 사인을 보내지 말고 눈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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