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스웨덴의 빅토리아

세기의 결혼식

정준극 2010. 7. 1. 16:17

세기의 결혼식 - 스웨덴 차기 왕위계승자 빅토리아 공주와 다니엘 공자

6월 19일 스톡홀름 교회에서

 

 행복한 커플. 빅토리아 공주와 웨스틀링 공자. 2010년 6월 19일 스톡홀름의 스토르키르칸 교회에서. 신부 빅토리아공주는 신부의 티아라를 쓰지 않고 스웨덴의 전통 왕관을 썼다.

 

[스토르키르칸의 경사]

스웨덴의 2010년 6월 19일 토요일은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다음번 왕위 계승자인 빅토리아공주가 다니엘 웨스틀링과 결혼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웨스틀링은 평민이다. 평범한 체육관 사범이었다. 소녀시절에 몸이 허약했던 빅토리아공주가 체육관에 드나들면서 사귀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평민인 다니엘 웨스틀링은 빅토리아공주의 부군이 되는 것과 동시에 프린스(공자)라는 타이틀을 받았으며 배스터외틀란드 공작(Duke of Västergötland)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출세가 순식간이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오던 스웨덴의 베르나도트 왕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제로부터 바야흐로 웨스틀링 왕가가 시작될수 있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이날 결혼식을 올린 신부 빅토리아 공주는 33세였고 신랑 웨스틀링 공자는 37세의 노총각이었다.  

 

스웨덴은 빅토리아공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인 6월 6일부터 결혼식이 거행되는 6월 19일까지를 ‘스톡홀름 사랑하기 2010년’(Love Stockholm 2010)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빅토리아공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여러 행사들이 개최되어 축제분위기가 대단히 고조되었다. 결혼식은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stan)에 있는 유서 깊은 스토르키르칸(Storkyrkan)에서 거행되었다. 감라스탄은 서울의 북촌 거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토르키르칸은 루터교회이다. 스토르는 크다는 뜻이고 키르칸은 교회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어로는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부른다. 종교개혁으로 루터교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로마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었던 모양이다. 스토르키르칸의 바로 옆에는 웅장한 스톡홀름 왕궁이 있다.

 

신랑신부 양가 부모와 함께 찰카닥. 왕족과 평민의 결혼

 

[유럽 왕실들의 잔치]

빅토리아공주의 결혼식은 1981년 런던의 성바울 대성당에서 거행된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결혼식 이후 유럽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대규모의 왕실결혼식이다. 그래서 실은 오래전부터 유럽의 왕족들 사이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유럽의 왕족들로서는 그러지 않아도 별로 할일이 없어서 무료하던 차에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이 열리게 되자 남자들은 너도나도 정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모습을 보였고 여자들은 화려한 드레스에 다이아몬드 티아라(왕관)를 쓰고 봉투 하나씩을 들고 참석하였다. 그리하여 6월 19일 토요일의 스톡홀름 스토르키르칸 교회는 ‘내 노라’하는 유럽왕족들의 동창회 모임과 같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나루히토황태자가 하객으로 참석하였다.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 이 결혼식에 어떤 훌륭한 왕족들이 참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미상불 심심치 않은 일이다. 벨기에 국왕과 왕비, 덴마크 국왕과 왕비, 일본 황태자, 요르단 국왕과 왕비, 리히텐슈타인 국왕과 왕비, 룩셈부르크 왕세자, 네덜란드 여왕, 노르웨이 국왕 및 왕비, 모나코 국왕 및 약혼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한 웨섹스경 부부 등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옛날 화려했던 왕가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예를 들면 자인-뷔트겐슈타인-베어레부르크(Sayn-Wittgenstein-Berleburg)의 공주와 왕자들이다. 대통령으로서 참석한 경우는 핀란드(타르야 할로넨), 아이슬란드(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손) 등이다.

 

스토르키르칸에서의 결혼식에는 유럽의 내노라 하는 왕족들이 대거 참석

 

[6월 19일은 특별한 날]

결혼식이 열린 스토르키르칸(Storkyrkan)의 원래 명칭은 성니콜라스교회이다. 성니콜라스는 산타클로스의 전설이 깃들여 있는 바로 그 양반을 말한다. 결혼식 날짜를 6월 19일로 잡은 것은 그날이 빅토리아 부모의 34주년 결혼기념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010년으로 결혼식을 잡은 것은 2010년이 현대스웨덴의 창시자라고 하는 장 밥티스트 줄르 베르나도트(Jean Baptiste Jules Bernadotte)가 스웨덴의 왕위에 오른지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와 웨스틀링의 약혼은 2009년 2월에 발표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일찍이 2002년 7월에 확인된바 있다. 빅토리아가 카롤리네 크로이거라는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웨스틀링과 키스하는 장면이 신문에 보도된 직후였다.

 

정면에 보이는 평범한 건물이 결혼식이 열린 스토르키르칸 교회. 근위병이 지키고 있는 곳이 왕궁

 

[2천만 크로네의 결혼식]

결혼식 비용은 전부 얼마나 들었을까? 순수하게 결혼식 비용만 2천만 크로네가 들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31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결혼식장인 스토르키르칸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보수하는데 드는 비용이 별도로 약 1천2백만 크로네가 들었다. 정부가 보조했다. 결혼식 비용 31억원에서 반은 왕실에서 부담했고 반은 정부예산으로 집행했다. 정부예산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래서 일부 국민들은 호화결혼식에 대하여 ‘이래도 되느냐?’면서 비판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빅토리아의 결혼식을 지지했기 때문에 커다란 반대는 없었다.

 

6월의 신부 빅토리아공주

 

[스웨덴 국가기념일로 함께 경축]

매년 6월 6일은 우리나라에서는 현충일이지만 스웨덴에서는 국가기념일로서 경축하고 있다. 국가기념일(National Day)은 일찍이 1916년부터 기념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2005년부터였다. 6월 6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것은 1523년 근대스웨덴의 초석을 놓았다고 하는 구스타브 바사(Gustav Wasa)가 국왕으로 선출된 해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차기 왕위 계승자인 빅토리아의 결혼식을 전국민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6월 6일의 국가기념일로부터 6월 19일까지의 13일간을 ‘2010 스톡홀름 사랑’(Love Stockholm 2010) 기간으로 정하고 여러 축하행사를 펼쳤다. 음악회, 전시회, 음식마당, 연극 등 할수 있는 대로의 축하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스웨덴의 여러 기업들이 ‘2010 스톡홀름 사랑’ 기간을 후원하였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결혼식 전날인 6월 18일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서 갈라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다. 스웨덴의 인기 가수인 말레나 에른만(Malena Ernman), 헬렌 쇠홀름(Helen Sjöholm), 페터 외바크(Peter Jöback), 세계적인 밴드인 록세트(Roxette) 등이 출연하는 호화무대였다. 록세트는 히트 송인 The Look을 연주하였다.

 

  

축가를 부른 아네스 칼슨                                 갈라음악회에서 노래하는 헬렌 쇠홀름

 

[1천1백명의 하객]

결혼식은 오후 3시 반에 시작되었다. 1천 1백명의 하객들이 참석하였다. 교회가 크지 않아서 더 이상 하객들을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결혼식 진행중의 음악은 궁정 오르간주자 겸 스토르키르칸 오르간주자인 구스타프 쇠크비스트(Gustaf Sjökvist)가 맡았다. 그는 1976년 빅토리아공주의 부모가 바로 스토르키르칸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오르간을 연주했다. 빅토리아공주는 뒤에 끌리는 옷자락의 길이(이것을 영어로는 Train이라고 한다)가 5 m나 되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어머니인 실비아 왕비가 결혼식 때에 입었던 드레스였다. 결혼식의 첫 번째 음악은 왕립음악원이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헌정한 곡으로 카린 렌크비스트(Karin Rehnqvist)의 작품이다. 구스타부16세는 빅토리아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와서 복도의 중간쯤 해서 신랑인 웨스틀링의 빅토리아의 손에 넘겨주었다. 주례는 국왕 구스타브16세의 특별 요청에 의해서 우프살라 대주교인 안더스 웨이리드(Anders Wejryd)가 맡았다.

 

구스타브16세 국왕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이날의 신부 빅토리아공주

 

빅토리아공주와 웨스틀링이 부부가 되었다는 선포가 있은 후 스웨덴의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인 아네스 칼슨(Agnes Carsson)과 인기가수 뵤른 스키프스(Björn Skifs)가 When You Tell The World Your're Mine(그대가 나와 함께라고 세상에 말할 때)이라는 축가를 불렀다. 이날의 신랑신부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이다. 빅토리아공주와 웨스틀링은 교회 밖으로 걸어 나와서 입구에서 의장대의 검례(劍禮)를 받았다.

 

교회 앞에서 군인들의 검례를 받고 있는 신랑신부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버지인 국왕이 빅토리아공주를 신랑에게 인계하는 절차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훗날 빅토리아가 국왕이 되고 그의 자녀가 빅토리아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된다면 이는 현재의 베르나도트 왕가가 종식되고 새롭게 웨스틀링 왕가가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입장에서 현재의 국왕이 새로운 왕가를 창시할수도 있는 사람에게 베르나도트 왕가를 넘겨주는 듯한 제스추어를 쓴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왕실의 견해였다. 그러나 빅토리아공주는 아버지인 국왕이 자기의 손을 잡고 제단 앞까지 인도하여 줄것을 희망하였다. 그래서 타협안이 마련되었다. 신부입장을 할 때에 국왕이 교회의 복도 중간 쯤해서 신부 빅토리아공주를 신랑 웨스틀링의 손에 넘겨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하지만 어쨋든 수백년에 걸쳐 내려온 베르나도트 왕가의 마지막을 고하는 것 같아서 현재의 왕실 사람들은 섭섭한 마음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왕궁의 발코니에서 백성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구스타브16세 국왕이 먼저 손을 흔들어 백성들에게 화답하였다.

 

[캐리지 행렬]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는 왕실마차(캐리지)를 타고스톡홀름 시내를  7 km나 일주하였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스웨덴 국민들을 위한 배려였다. 이날 연도에는 약 50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하였다고 한다. 시골에서 새벽부터 올라온 사람들도 많았다. 스토르키르칸 교회를 출발한 캐리지 행렬은 오페라극장 쪽으로 건너간후 왕립공원을 지나 스톡홀름 콘서트 홀 앞을 거쳤고 이어 중심가인 비르예야를 거리를 지나 바사박물관까지 갔다. 이곳에서 신랑신부는 배를 타고 카스텔홀멘섬을 지나 다시 출발지인 스토르키르칸 옆의 왕궁까지 왔다. 스톡홀름의 시내지리를 대충 아는 사람들은 화려한 왕실 결혼 행차가 어떤 루트를 거쳐 갔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연도에는 20여 밴드가 자리 잡고 있어서 신랑신부의 행차가 지나갈 때에 연주를 하였다. 주로 왕립스웨덴 군악대였다. 신랑신부가 바사박물관 앞에서 탔던 배는 1976년 구스타브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결혼식 후에 탔던 바로 그 배였다. 신랑신부가 왕실선박을 타고 왕궁 앞에 도착할 즈음에는 하늘에서는 18대의 제트전투기가 화려한 공중 쇼를 벌였다. 이날의 모든 행사는 스베리예스 텔레비전(스웨덴 국영 TV)이 생중계하였다.

 

마차를 타고 스톡홀름 거리를 지나가는 행복한 신랑신부

 

[왕궁에서의 피로연]

피로연은 왕궁의 대연회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동안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던 왕궁의 대연회장은 이날 밤의 피로연을 위해 특별히 새롭게 단장하였다. 테이블마다 하얀색과 핑크색의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은제 촛대와 식기들이 놓여졌다. 약 6백명의 하객들이 초청되었다. 그중 메인테이블에는 98명의 좌석이 배정되었다. 가장 중심되는 메인테이블에는 신랑신부, 구스타브16세 국왕과 실비아 왕비, 신랑 웨스틀링의 부모, 빅토리아의 외삼촌 즉 왕비의 동생인 랄프 드 톨레도 솜머라트, 국왕의 삼촌인 칼 요한 베르나도테 백작부부, 덴마크의 마르그레테2세 여왕,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 노르웨이의 하랄드5세 국왕, 벨기에의 알버트2세 국왕과 파올라 왕비,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 스웨덴 대주교 안더스 웨이리드가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네 소박한 결혼식처럼 갈비탕과 홍어회와 삼겹살은 아닐 것이다.

 

스토르키르칸 교회에서의 결혼식. 네명의 주교들이 공동주례를 보았으며 대표는 우프살라 대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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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의 빅토리아 가족


빅토리아와 다니엘과 큰 딸 에스텔르, 아들 오스카


빅토리아-다니엘(에스텔르, 오스카),마델레이느-크리스(니콜라스, 레오노레), 칼 필립-소피아(알렉산더-가브리엘). 가브리엘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