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9구 되블링

[참고자료] 프란츠 슈타인펠트(아들)

정준극 2010. 9. 6. 08:39

[참고자료] 프란츠 슈타인펠트(아들) (Franz Steinfeld, Jungere)

오스트리아 알프지 지방 풍경화의 대가

 

오스트리아의 풍경화가인 프란츠 슈타인펠트(Franz Steinfeld)는 1787년 3월 26일 비엔나 근교의 마리아 힐르프의 린덴가쎄(Lindengasse) 11번지에 있는  Zum braunen Adler(갈색 독수리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란츠 슈타인펠트는 조각가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기 때문에 프란츠 슈타인펠트 1세와 2세로 구분하며 어떤 경우에는 프란츠 슈타인펠트 아버지(Vater)와 아들(Jungere)로 구분한다. 아들 슈타인펠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조각가가 되는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비엔나미술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unste Wien)에서 화가 라우렌츠 얀샤(Laurenz Janscha), 마르틴 폰 몰리토르(Martin von Molitor), 알브레헤트 크리스토프 디에스(Albrecht Christoph Dies)로부터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슈타인펠트는 18세의 청년시절에 세상을 더 알기 위해 라인지역과 네덜란드를 배낭여행하였다. 슈타인펠트는 이 과정에서 야콥 반 루이스다엘(Jakob van Ruisdael)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 조각가 대신에 화가가 되려는 희망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28세 때인 1915년 미술가 집안의 딸인 도로테아 페르트바우어(Dorothea Fertbauer)와 결혼하였다. 도로테아의 오빠는 풍경화가인 레오폴드 페르트바우어였으며 외삼촌은 역사화가인 레오폴드 리브(Leopold Lieb)였다. 결혼직후 그는 안톤 빅토르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어 거의 20년을 봉사했다. 그후 비엔나미술아카데미의 조교로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풍경화반의 교수가 되었다(1845-50). 슈타인펠트는 아카데미에서 동료인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봘트뮐러와 함께 자연을 주제로 삼는 그림에 열중하였다. 그는 자연이 주는 빛과 색채야 말로 미술세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화실에서도 더욱 많은 자연광을 얻기 위해 창문을 크게 만들어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슈타인펠트는 알프스 지방을 여행하면 작품활동을 했다. 잘츠캄머구트는 그가 즐겨 찾았던 곳이었다. 그는 이어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며 보다 자연과 친숙해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1842년에 벨기에와 홀랜드를 여행할 때에는 역시 풍경화가인 요셉 단하우저(Josef Danhauser)와 함께 다녔다. 슈타인펠트는 보헤미아를 여행하던중 건강이 악화되어 1868년 11월 5일 보헤미아의 피세크(Pisek)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 하일리겐슈타트의 슈타인펠트가쎄는 그를 기리기 위해 붙인 거리이름이다. 슈타인펠트의 아들인 빌헬름 슈타인펠트(1816-1854)는 그의 아들이다. 슈타인펠트는 당대 풍경화의 1인자였다. 그는 동판화와 리토그라프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화가 중에서 알프스를 주제로 삼아 그림을 그린 선구자적 풍경화가였다. 대표작은 Blick auf den Hallstätter See(할슈타트호수 풍경)), Altausseer See mit Trisselwand, Landschaft mit Bäuerin(시골아가씨가 있는 풍경), Im Höllental(횔렌탈에서), Der Hallstätter See(할슈타트 호수), Dachstein mit Hallstätter See(할슈타트 호수의 지붕돌) 등이다.

 

잘츠캄머구트의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