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0구 브리기테나우

6. Rabbiner-Schneerson-Platz - Stromstrasse

정준극 2010. 9. 9. 08:34

6. Rabbiner-Schneerson-Platz(라비너 슈니어손 플라츠)에서 Stromstrasse(슈트롬슈트라쎄)까지

 

- Rabbiner-Schneerson-Platz(라비너 슈니어손 플라츠): Lubawitscher Rebbe(루바뷔처 레베)라고 불리는 유태교 지도자인 메나헴 멘델 슈니어손(1902-1994)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루바비츄(Lubawitsch)는 백러시아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서 18세기 후반에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과 성경의 지혜를 강조한 정통유태교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Chabad-Lubavitsch(샤바드 루바비츄)라고 부르며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다. 라비너 슈티어손은 샤바드 루바비츄를 이끄는 4대 랍비였다. 비엔나의 본부는 아우가르텐의 라우더 샤뱌드 캠퍼스 앞에 있는 유태교육센터에 있다.

 

간단히 레베(Rebbe)라고 불렸던 정통유태교의 랍비인 메나헴 멘델 슈니어손. 1994년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 Rafaelgasse(라파엘가쎄):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건축가인 라파엘 산티(Raffael Santi 또는 Raffael da Urbino: 1483-152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의 대표작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의 마돈나(성모)화이다. 그는 건축가로서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의 돔을 보나토 브라만테와 함께 완성하였다.

 

로마의 '천사의 성'에서 바라본 성베드로성당의 위대한 돔. 라파엘의 작품이다.

 

- Rauscherstrasse(라우셔슈트라쎄): 비엔나 대주교이며 추기경인 요셉 오트마르 폰 라우셔(1797-187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 합스부르크 왕실간의 협정(Konkordat)을 완성하였다. 브리기테나우의 Kardinal-Rauscher-Hof, 15구 루돌프스하임-휜프하우스의 Kardinal-Rauscher-Platz는 그의 이름을 따온 지명이다.


라우셔슈트라쎄와 보이에를레가쎄가 만나는 길


- Rebhanngasse(레브한가쎄): 건축가인 게오르그 레브한(1824-189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제국 내무성 도시계획국에서 공무원을 지냈으며 이어 폴리테크니크 인스티튜트에서 건축기계공학과 교향건축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비엔나교량건축학교를 설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주도로 아슈페른브뤼케가 설치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Rebhann von Aspernbruck라는 귀족 칭호를 받았다.

 

1875년대의 아슈페른브뤼케(교량). 게오르그 레브한의 작품이다. 지금은 옛모습이 사라지고 현대식 교량이 놓였다.

 

- Robert-Blum-Gasse(로베르트 블룸 가쎄): 독일의 정치가인 로베르트 블룸(1807-1848)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의 대표로 비엔나에 와서 혁명을 앞장서서 지지하였다. 비엔나의 혁명이 빈디슈-그래츠(Windisch-Grätz) 대공에 의해 진압되자 로베르트 블룸은 외교사절로서의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처형장소는 현재의 로베르트 블룸 가쎄 인근이었다.

 

 

오스트리아의 1848년 3월 혁명을 지지했다가 처형을 당한 로베르트 블룸과 혁명을 이끄는 블룸.

 

- Romanogasse(로마노가쎄): 건축가인 요한 로마노 폰 링게(Johann Romano von Ringe: 1818-188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제국의 궁정건축가였다. 팔레 메테르니히(1848), 팔레 페스테틱스(1859), 팔레 샤이(1864), 팔레 둠바(1866), 팔레 오펜하임(1868)등 비엔나의 여러 팔레(시내궁전)들을 건축하였다.

 

요한 로마노가 건축한 파르크링(Parkring)의 팔레 둠바

 

- Sachsenplatz(작센플라츠): 1866년 오스트리아-독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던 작센왕국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작센군은 쾨니히그래츠(Koniggrätz)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브리기테나우로 후퇴하였다.


작센플라츠의 어린이 놀이터와 운동시설


- Salzachstrasse(잘차흐슈트라쎄): 잘츠부르크에 있는 잘차흐(Salzach)강과 관련하여 붙인 이름이다. 비엔나의 거리이름에는 오스트리아의 강이름을 붙인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Innstrasse, Kampstrasse, Leithastrasse, Pielachgasse 등이다.

 

잘츠부르크를 흐르는 잘차흐 강

 

- Schongauergasse(숀가우어가쎄): 독일의 화가 겸 동판제작자인 마르틴 숀가우어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특히 알브레헤트 뒤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숀가우어는 판화의 인쇄술을 개선하여 보급에도 앞장섰다.


마르틴 숀가우어의 작품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Schottenaustrasse(쇼테나우슈트라쎄): 1구에 있는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가 한때 소유하고 있던 인근의 넓은 들판(Schotten-Au)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프라이융과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 및 교회)

 

- Spaungasse(슈파운가쎄): 문학사학자, 민속학자, 음악가인 안톤 폰 슈파운(1790-1849)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다방면에 대하여 조예가 깊었던 그는 특히 민요, 민속무용, 민속복장 등을 연구했다. 오스트리아 민속연구의 선구자였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민속학자인 안톤 리터 폰 슈파운

 

- Spielmanngasse(슈필만가쎄):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쓴 Der arme Spielmann(1848: 가난한 악사)의 주인공인 Spielmann(슈필만)이라는 인물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릴파르처는 작곡가인 페르디난트 카우어(1751-1831)를 슈필만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카우어는 무려 200편이 넘는 오페라와 징슈필(음악극)을 작곡했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미사곡, 진혼곡, 교향곡, 현악4중주곡, 협주곡 등을 작곡했다. 오페레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Das Donauweibchen(1798: 도나우 요정)이다. 카우어는 음악적으로 대단히 성공하고 명성을 얻었지만 말년에는 대단히 가난하게 살았다. 1830년에는 대홍수가 나서 그가 살고 있던 집을 휩쓸었다. 모든 것이 떠내려갔기 때문에 카우어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1년후 카우어는 길에서 구걸생활을 하다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15구 루돌프스하임-휜프하우스의 Kaudergasse(카우어가쎄)와 Kauerhof(카우어호프)도 카우어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가난한 악사'는 브리기테나우에서는 오래전부터 키르타그(교회의 날 축제)때에 공연되는 전통이 있었다.

 

중세의 키르타크(Kirtag). 교회 앞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시장이 열렸다. '가난한 악사'는 브리기테나우의 키르타그에서 자주 공연되었다.

 

- Staudingergasse(슈타우딩거가쎄): 동물조련사인 요제프 슈타우딩거(1811-188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레오폴드슈타트 의회의원을 지냈다.


슈타우딩거가쎄


- Streffleurgasse(슈트레플뢰르가쎄): 제국 전쟁성에서 고위직을 맡아 복무했던 발렌틴 폰 슈트레플뢰르(1808-1870) 장군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군사에 대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모아 Streffleurs Militärische Zeitschrift(슈트레플뢰르 군사 정기간행물)을 발간하였다.

 

슈트레플뢰르가 발간한 군사정기간행물 창간호

 

- Stromstrasse(슈트롬슈트라쎄): 도나우의 수리조절을 위해 만든 최초의 지류이다. 도나우에 대한 대대적인 수리조절 정책으로 도나우에 인공섬(도나우인젤)이 생겼는가하면 도나우의 흐름도 크게 변경되었다. 슈트롬슈트라쎄는 그 전에는 Feikerstrasse(화이커슈트라쎄)라고 불렀다. 에른스트 화이커는 1934년 나치의 Juliputsch(율리푸츄)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도나우 수리조절 공사로 도나우의 흐름이 크게 변경되었다. 사진은 도나우 수리조절 공사로 새로 생긴 도나우인젤(섬)이 시작되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