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유럽의 다른 국가

솔레르, 마르틴 이

정준극 2010. 9. 30. 05:31

Martin y Soler (마르틴 이 솔레르)

발렌시아의 모차르트

 

 마르틴 이 솔레르

 

빈센테 마르틴 이 솔레르(Vicente Martin y Soler)는 1754년에 발렌시아에서 태어나 1806년 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오페라 및 발레음악 작곡가이다. 마르틴 이 솔레르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모차르트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는 모차르트와 함께 당대 오페라 부파의 천재로서 칭송을 받던 인물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발렌시아의 모차르트'(Valencian Mozart)라는 별명을 들었다.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볼로냐의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Martini)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그의 첫번째 오페라는 Il tutore burlat 로서 1775년에 완성했다. 실은 이 작품은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가 작곡한 La franscatana 라는 오페라를 참고로 한 것이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파이시엘로의 La franscatana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화부분을 추가하여 스페인의 차르추엘라 스타일로 편곡하였다. 그리고 제목도 La Madrilena로 바꾸고 마드리드의 차르추엘라 극장에서 1778년 초연하였다(차르추엘라는 스페인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말한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1777년 나폴리를 여행하였다. 한동안 나폴리에 머물렀던 그는 산 카를로 극장을 위해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 기간에 그는 유명한 안무가인 Carles le Picq(샤를르 르 피크)와 친분을 맺고 4편의 발레음악을 작곡했다. La Griselda(1779), I ratti sabini(1780), La bella Arsene(1781), Tamas Kouli-Kan(1781)이다. 당시 나폴리에는 아폴스톨로 제노(Apostolo Zeno)라는 뛰어난 대본가가 있었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1780년 제노와 협동하여 오페라 부파가 아닌 오페라 세리아 Andromaca를 작곡하여 갈채를 받았다. 이밖에도 그는 나폴리에 머물면서 두편의 메쪼카라테레(인형극 형태) 발레곡을 작곡했다. La sposa persiana(1778)와 Il barbiere di Sigvilia(1781)이다. Il barbiere di Sigvilia는 잘 아는대로 보마르셰의 희극으로 제2편 '휘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1786년에 작곡하였으며 제1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로시니가 한 참후인 1816년에 완성하여 초연하였다. 그러고보면 마르틴 이 솔레르가 비록 발레곡이지만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한 것은 보마르셰 작품의 음악화 사업의 선두라고 할수 있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나폴리에서 궁정대본가인 루이지 세리오(Luigi Serio)와 협동하여 Ifigenia(1779)와 Ipermestra(1780) 두편의 오페라 세리아를 작곡했다.

 

 메조카라테레의 등장인물. 크기는 1m가 넘지 않으며 몸통은 도자기로, 얼굴은 유리로 만들었다. 무대에 등장하면 무대 뒤에서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1785년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비엔나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오페라 대본의 귀재인 로렌조 다 폰테(Lorenzo Da Ponte)의 대본으로 세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다 폰테는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살리에리와도 협동하여 오페라 대본을 썼다. 마르틴 이 솔레르가 다 폰테의 대본으로 작곡한 세편의 코미디는 Una cosa rara(1786: Luis Velez de Guevara의 희곡이 La luna de la sierra를 기본으로 한 것임), Il brulbero di buon cuore(1786: 유명한 카를로 골도니의 희곡을 기본으로 한 것임), 그리고 L'arbore di Diana이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Una cosa rara의 도입부에 왈츠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요셉 란너가 랜들러를 변형하여 왈츠를 만든 시기보다 훨씬 앞선 왈츠의 시도였다. 또한 Una cosa rara에 나오는 멜로디는 1년 후인 1787년 모차르트가 그의 오페라 Don Giovanni의 제2막 연회장면에 나오는 음악으로 인용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비엔나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마르틴 이 솔레르는 1788년 생페터스부르크 궁정의 초청을 받아 또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러시아에서 세편의 러시아 대본에 의한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중에서 The Unfortunate Hero Kosmetovich라는 오페라의 대본은 캐서린대제가 직접 쓴 것으로 1789년 무대에 올려졌다. 나머지 두편은 Melomania(1790), Fedul and his Children(1791)이다. 1791년이면 모차르트가 진혼곡을 완성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난 해이다. 러시아에 7년동안 머물렀던 마르틴 이 솔레르는 1795년 시즌에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여러편의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작곡했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러시아어에는 능숙하였지만 영어는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런던에서 작곡한 이탈리아어 오페라는 La capricciosa cerretta(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기본으로하여 로렌조 다 폰테가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것임), L'isola del piacere, Le nozze de' contadini spagnuoli 이다. 그는 생페터스부르크를 떠난 것이 미안하여서 다시 돌아가 La festa del villaggio(1798)을 작곡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마지막 오페라였다. 하지만 마르틴 이 솔레르는 생페터스부르크 궁정에서 여러 편의 발레곡을 작곡하기는 했다. Didon anandonee(1792), Amour et Psyche(1793: 몰리에르의 희곡 Psyche를 기본으로 한 것임), Tancredi(1799), Le retour de Poliorcrete(1799) 등이다. 마르틴 이 솔레르는 아직도 러시아궁정작곡가로 있던 때인 1806년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