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유럽의 다른 국가

포르투갈의 마르코스 포르투갈(Marcos Portugal)

정준극 2011. 8. 4. 14:31

마르코스 포르투갈(Marcos Portugal)

 

마르코스 포르투갈

 

마르코스 포르투갈(Marcos Portugal: 1762-1830)은 포르투갈의 국민적 작곡가이다. 리스본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작곡하며 활동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처음에 리스본에 있는 가톨릭신학원(Patriarchal Seminary)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그는 이미 13세 때에 Misere를 작곡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1792녀부터 1800년까지 살면서 20여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첫 오페라는 I due gobbi 로서 1793년 플로렌스에서 초연되었다. 여러 편의 오페라 중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것은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다. 1799년 베니스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그보다 13년 전인 1786년에 비엔나에서 초연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그늘에 가려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마르코스 포르투갈의 '피가로의 결혼'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스토리의 진행이 같다.

 

'피가로의 결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똑 같은 제목과 내용의 오페라가 또 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마르코스 포르투갈은 1800년에 고국인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포르투갈은 국제사회에서 오페라 부프로서 명성을 떨친 그를 크게 환영했다. 마르코스 포르투갈은 리스본의 산 카를루스 국립극장(Teatro Nacional de São Carlos)의 극장장, 그리고 가톨릭신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리스본에 있으면서 계속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부파를 작곡했지만 리스본에서는 오페라 세리아를 작곡했다. 그리고 수많은 종교음악도 작곡했다. 그는 1811년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브라질로 갔다. 브라질에는 이미 포르투갈의 나중에 후안6세가 된 돈 호아우(D. João)가 있었다. 돈 호아우는 마르코스 포르투갈은 궁정작곡가로 임명하였다. 마르코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머물면서 최소한 1824년까지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1830년 세상을 떠났다.

 

2010년에 영국의 뱀튼 클라시컬 오페라 축제는 1799년에 마르코스 포르투갈이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을 근세에 와서는 처음으로 공연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마르코스 포르투갈은 모차르트보다 6년 후에 태어났고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지 13년 후에 같은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 당시 오페라극장에 전속되어 있던 작곡가들은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오페라들의 대본을 여러개 확보하고 있다가 필요시에는 그 대본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곡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코스 포르투갈의 '피가로의 결혼'도 그런 경우이다. 그는 또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인 Demofoonte(1794년 라 스칼라에서 초연)는 대표적이며 이밖에도 Serse, Alceste, Adrasto, Semiramide 등의 대본을 확보하고 있었다. 과거에 히트했던 오페라의 대본으로 새로운 음악의 오페라를 만들면 관중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