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슈타츠오퍼의 전설 구타일-쇼더

정준극 2010. 10. 9. 10:41

슈타츠오퍼의 전설 마리 구타일-쇼더(Marie Gutheil-Schoder)

 

구타일-쇼더

 

20세기 초반 가장 중요한 독일 소프라노인 마리 구타일-쇼더는 구스타브 말러의 소개로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진출하여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낸 성악가이다. 1874년 봐이마르에서 여관집 주인의 딸로 태어난 구타일-쇼더는 열두살 때부터 콘서트의 솔리스트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봐이미르대공음악원(Gorssherzogliche Musikschule in Weimar)을 나온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관여하고 있는 오페라단의 멤버로 들어가 전문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타일-쇼더는 1891년 17세 때에 봐이마르 궁정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제1부인 역을 맡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봐이마르에서 단역만 맡았던 그는 데뷔하던 해의 가을에 바이로이트축제의 합창단원으로 참가하는 정도의 활동을 했지만 1895년 봐이마르에서 카르멘을 맡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에바

 

이어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긴 그는 바자쪼(Bajazzo)에서 네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산뚜짜,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에서 플루트 부인 역을 맡아 점차 성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베를린과 비엔나에서 객원출연하기도 했다. 1900년 구스타브 말러는 구타일-쇼더의 노래와 연기를 보고 '음악의 천재'라는 찬사를 보내고 비엔나 궁정오페라(슈타츠오퍼)에 소개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타일-쇼더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중요 성악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구타일-쇼더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1904년 비엔나에서 글룩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의 타이틀 롤, 1908년 달베르의 '아랫마을'(Tiefland)에서 마르타, 1909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서 타이틀 롤, 1910년 율리우스 비트너(Julius Bittner)의 '음악가'(Der Musikant)의 초연, 1911년 '장미의 기사'에서 옥타비안, 1914년 프란스 슈미트(Franz Schmidt)의 '노트르 담'의 초연에서 주연을 맡아 기염을 토했다. 이어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과 같은 독일의 대형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서 갈채를 받기 시작했다. 1916년에는 프라하의 독일오페라극장에서 맡은 이졸데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그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명예단원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살로메

 

구타일-쇼더는 아르놀드 쇤베르크의 작품에 대하여도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1908년에는 쇤베르크의 두번째 현악4중주곡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고 1924년에는 프라하의 도이치극장에서 모노드라마인 '기다림'(Erwartung)의 초연에 출연하였다. 이어 쇤베르크의 'Pierrot lunaire'의 베를린 공연과 코펜하겐 공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비엔나를 경탄케 만든 것은 1926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의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구타일-쇼더는 비엔나에서의 여러 역할 중에서도 카르멘, 파미나(마술 피리), 엘렉트라, 케루비노(피가로의 결혼), 돈나 엘비라(돈 조반니), 옥타비안(장미의 기사), 작곡가(낙소스의 아리아드네'로서 청중들을 열광시켰다. 이외에도 그는 데스피나(코지 판 투테), 비너스(탄호이저), 엘자(로엔그린), 살로메, 카타리나(괴츠의 Der Widerspenstigen Zahmung), 남작부인(로르칭의 Wildschutz), 말리엘라(볼프-페라리의 성모의 보석), 마농(마스네),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네번째 여인의 역할, 샤펜티어의 루이제,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에서 Page Urbain 등등 수많은 역할에서 빛나는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발레곡 '요셉의 전설'에서 보디발장군 부인역

 

구타일-쇼더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직접 오페라를 감독하기도 했다. 1926년 돈 조반니와 1930년 글룩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였다. 그는 1868년 지휘자인 구스타브 구타일과 결혼하였다가 1차 대전이 시작된 해인 1914년 이혼하였고 사진작가인 프란츠 제처(Franz Setzer)와 재혼하였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의 성인 구타일을 계속 유지하였다. 구타일-쇼더는 은퇴후에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서 대표적인 소프라노는 리제 스티븐스(Rise Stevens)이다. 구타일-쇼더는 독일 튀링겐 지방의 일메나우(Ilmenau)에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구타일-쇼더는 1902년 비엔나에서 하나의 음반을 내놓았다. 카르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 '하얀 옷의 부인'(La dame blanche), '호프만의 이야기'의 아리아들을 담은 것이다.

 

엘렉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