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악우회

음악사의 파라다이스 악우회 도서실

정준극 2010. 10. 18. 16:03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

Das Archiv der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음악사의 파라다이스

 

비엔나 악우회 건물. 1898년

 

세계에서 귀중한 음악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실을 꼽아보면 베를린, 런던, 비엔나, 워싱턴의 국립도서관이다. 그런데 비엔나에는 한 군데가 더 있다. 비엔나 음악연맹(Wiener Musikverein)의 건물에 들어 있는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이다.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은 음악역사의 파라다이스이다. 그리하여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은 세계 5대 음악자료실이 하나로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엔나 악우회’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악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810년대의 초창기부터였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오리지널 악보, 원고, 서적, 잡지, 서한, 초상화, 사진, 조각, 기념품, 레코드, 악기 등 무엇이든지 음악의 발전과 음악생활에 관련되는 것을 수집하였다.

 

처음 자료들을 수집할 1812년 경에는 오늘날 대단히 귀중하게 여기는 자료들을 비교적 적당한 값으로 살수 있었다. 비엔나는 유럽 음악의 중심지였다. 더구나 세기말에 귀족사회가 서서히 붕괴되면서 귀족들이 운영하던 오케스트라가 해체될 때에 수많은 귀중한 자료들을 손쉽게 구할수 있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거버(Ernst Ludwig Gerber)라는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비엔나 악우회’에 도서실(자료실)을 만드는데 헌신적으로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비엔나 악우회’는 음악자료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음악자료의 수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1827년에는 베토벤의 문서들이 경매에 나왔는데 이들을 ‘비엔나 악우회’가 모두 매입할수 있었다. ‘비엔나 악우회’가 음악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독지가들의 기여도 줄을 이었다. 루돌프 대공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베토벤 자료들을 모두 기증하였다.

 

비엔나 악우회 브람스 홀 앞에 있는 브람스의 흉상

 

1870년에는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로서 획기적인 해였다. 오늘날 음악사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의 오리지널 악보를 기증받았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다가 제목을 지어버린 악보였다. 또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 단조 K466번과 교향곡 G 단조 K 550번, 그리고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오리지널 악보도 기증을 받았다.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은 음악사의 보고가 되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전곡의 오리지널 악보도 보관되어 있다. 단, 제5번의 악보는 구하지 못했다. 브람스는 그가 간직하고 있던 모든 악보와 문서를 ‘비엔나 악우회’에 기증하였다. 훗날 오페라 ‘단톤의 죽음’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고트프리드 폰 아이넴도 그가 보관하고 있던 모든 자료를 기증하였다. ‘비엔나 악우회’의 연주회장 중에서 ‘브람스 홀’과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 홀’은 이들의 자료 기증을 감사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

 

저명한 인사들이 남긴 귀중한 자료는 한이 없다. 브루크너, 말러, 슈만, 멘델스존, 요한 슈트라우스, 요셉 란너, 프란츠 폰 주페, 휴고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막스 레거, 프란츠 슈미트, 안톤 베버, 알반 베르크 등등...이들과 관련한 문서자료들은 ‘비엔나 악우회 도서실’이 세계 제일이다. 자료들이 너무 많다보니 보관 장소가 문제였다. 그러던 차에 1913년 건물에 여유가 생겼다. 부설 아카데미가 슈타트파르크 뒤편의 로트링거슈트라쎄(Lothringerstrase)로 이전하게 되었다. 아래층에 쌓아 놓았던 자료들은 넓은 2층으로 옮겨졌다.

 

로트링거슈트라쎄에 있는 비엔나 콘서트하우스(비너 콘체르트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