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악우회

비엔나 합창아카데미 - Wiener Singakademie

정준극 2010. 10. 19. 10:39

[비엔나 합창아카데미]

Wiener Singakademie(비너 징아카데미)

 

비너 징아카데미 합창단

 

비엔나에는 세계적인 성인 합창단이 두 개가 있다. ‘비너 징페아라인’과 ‘비너 징아카데미’이다. 이름이 서로 비슷하여서 혼란을 줄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합창단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합창단은 1858년에 설립된 ‘비엔나합창훈련연구원’(Singübungsanstalt: 징위붕스안슈탈트)을 모체로 하고 있다. 두 단체는 한 지붕 아래에서 분가했기 때문에 뿌리가 같지만 같은 사람들이 지휘를 맡았던 경우도 많아서 성격도 비슷하다. 초기에 브람스가 관여했던 것이라든지 나중에 푸르트뱅글러나 칼 뵘이 두 합창단에 관여했던 것도 비슷한 성격을 가꾸는데 기여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두 합창단이 간혹 날을 잡아 도시락을 준비하고 친선축구경기를 갖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여러 지휘자들이 ‘비너 징아카데미’의 지휘를 맡으며 ‘비너 징아카데미’의 모습을 갈고 닦았다. 구스타브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의 공적은 잊을수 없다. 그중에서도 브루노 발터는 다년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다른 나라의 저명한 음악가들도 ‘비너 징아카데미’의 포디움에 올라서서 지휘봉을 잡았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드 그리그, 러시아의 안톤 루빈슈타인,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마스카니니 등이 ‘비너 징아카데미’를 지휘했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55년간 ‘비엔나 악우회’ 건물의 한쪽에서 생활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장소를 찾아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1913년 베토벤플라츠의 건너편 로트링거슈트라쎄에 비너 콘체르트 하우스(Wiener Konzert Haus)가 완성되자 이 건물로 옮겨갔다. 그로부터 ‘비너 징아카데미’는 ‘비너 콘체르트 하우스’의 파트너가 되어 끊임없는 연주활동을 했다. ‘비너 징아카데미’가 잠시 문을 닫았던 경우는 양대 세계대전 시기뿐이었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한스 길레스버거(Hans Gillesberger)의 지휘아래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서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이 시기에 외국순회공연을 가졌으며 레코드도 여러번 취입하였다. ‘비너 징아카데미’가 수준 높은 합창단으로 거듭난 데에는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파울 힌데미트, 칼 뵘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공로가 컸다. 한스 스바로브스키(Hans Svarowsky), 청년 로린 마젤(Lorin Maazel)도 ‘비너 징아카데미’의 발전에 한 몫을 하였다.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1983년에 아네스 그로쓰만(Agnes Grossmann)이 ‘비너 징아카데미’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여성이 ‘비너 징아카데미’를 이끌게 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도는 훌륭했다. 원래의 목적인 아카데믹한 면모가 되살아났다. 철저한 훈련을 통해서 음악을 완성한다는 초창기의 개념을 다시 살렸던 것이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비너 콘체르트 하우스 협회의 운영은 알렉산더 페레이라(Alexander Pereira)가 맡았다. 이때에 ‘비너 징아카데미’와 비너 콘체르트 하우스와의 파트너쉽이 대폭 증진되었다. 그후 허버트 뵈크(Herbert Böck)가 페레이라의 뒤를 이어 사무총장이 되었을 때 ‘비너 징아카데미’는 더욱 국제적인 단체가 되어 세계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너도나도 ‘비너 징아카데미’의 초청에 응할 정도가 되었다. 이 즈음에 조르주 프레트르, 예후디 메누힌, 클라우디오 아바도, 로저 노린턴경, 존 엘리오트 가르디너경, 사이몬 래틀경, 켄트 나가노 등이 ‘비너 징아카데미’의 지휘봉을 들었다.

 

여류지휘자 아네스 그로스만

                 

1998/99년 시즌에는 하인츠 페를레슈(Heinz Perlesch)가 합창단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젊은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이들의 음악적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젊은 음악도들을 훈련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이들을 무대에 데뷔시키는 일을 지원하였다. 이와 함께 레퍼토리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으로부터 브리튼의 ‘전쟁 진혼곡’, 베르디의 ‘진혼 미사곡’, 그리고 나아가서 스켈시의 콩스-옴-팍스(Konx Om Pax)에 이르기까지 도전하였다. 하인츠 페를레슈는 간혹 직접 지휘도 했다. 주로 아카펠라 곡을 지휘하여 합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여러 레코딩을 하였으며 그중에서 2008년에 ORF(오스트리방송국)이 주관하여 취입한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현재 ‘비너 징아카데미’는 남녀 합하여 100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에 ‘비너 징아카데미’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였다. ‘비너 징페어라인’도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였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바흐의 ‘마태수난곡’ 전곡을 공연하였다. 또한 2008년에 ‘비너 징페어라인’과 창립 150주년 기념 축구경기를 가졌다. 크리스티안 뮐바허(Christian Mühlbacher)는 ‘비너 징아카데미’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축하곡을 작곡했다.

 

비너 콘체르트 하우스. 비너 징아카데미의 본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