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악우회

비엔나 악우회 합창단 - Wiener Singverein

정준극 2010. 10. 19. 10:38

[비엔나 악우회 합창단]

Wiener Singverein(비너 징페어라인)

 

비엔나 악우회의 황금 홀에서 비너 징페어라인 단원들

 

‘비엔나 악우회’건물에는 여러 관련단체들이 함께 입주하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단체는 합창단과 교향악단이다. 합창단은 ‘비너 징페어라인’(Wiener Singverein)이라고 부르며 교향악단은 ‘비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이다. 음악애호가로서 이 두 단체를 모른다면 말이 안된다.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연주단체이기 때문이다. ‘비엔나 악우회’와 연관된 또 하나의 합창단이 있다. ‘비너 징아카데미’(Wiener Singakademie)이다. ‘비너 징아카데미’는 원래 ‘비엔나 악우회’에서 비롯하였지만 지금은 ‘비너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haus)와 연계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세 연주 단체에 대하여 알아보자.

 

비너 징페어라인

 

‘비너 징페어라인’(비엔나 악우회 합창단)은 1858년 ‘비엔나 악우회’가 설립한 합창단이다. ‘비너 징페어라인’은 1858년에 창설되었다고 했지만 실은 훨씬 이전인 1812년에 이미 태동하였다. 그때 비엔나의 스페인승마학교 공연장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연회’(Alexander's Feast)를 공연할 때에 합창을 맡은 사람들이 공연이 끝난후 ‘합창훈련연구원’(Singübungsanstalt: Institute for Choir Exercise)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계속 모임을 가졌다. 당시 궁정지휘자인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이들을 지도하고 돌보아 주었다. ‘합창훈련연구원’ 사람들은 연습도 했지만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여러 공연을 했지만 1824년에 베토벤의 장엄미사와 교향곡 제9번의 초연에서 합창을 맡은 것은 대단한 실적이 아닐수 없다. 그로부터 몇 년후인 1858년 ‘합창훈련연구원’은 ‘비엔나 악우회’의 소속 단체로서 공식적으로 발족되었으며 이름도 ‘비너 징페아라인’(비엔나 합창연맹)이라고 고쳤다.

 

비너 징페어라인 멤버들이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리허설 때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농담 한마디에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화기애애.

 

‘비너 징페아라인’은 공식 발족이후 공신력을 얻어 오페라에 출연하는 경우도 훨씬 많아졌고 자체적으로 합창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이와 함께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이 ‘비너 징페아라인’의 연주로 초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너 징페아라인’은 슈베르트의 오페라 ‘공모자’(Die Verschworenen: 1861),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Ein deutsches Requiem), 브루크너의 ‘테 데움’(Te Deum), 말러의 교향곡 제8번 등을 초연했다. 특히 현대음악인 프란츠 슈미트의 오라토리오 ‘일곱 봉인의 책’(Das Buch mit sieben Siegeln)을 초연한 것은 ‘비너 징페아라인’의 대단한 도전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비너 징페아라인’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일반 대중의 앞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비너 징페아라인’은 일반 대중들 앞에서 바흐의 오라토리오 전곡을 처음으로 삭제함 없이 연주하여 놀라운 감격을 안겨주었다. 이로부터 ‘비너 징페아라인’은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단체가 되었다. ‘비너 징페아라인’는 수많은 연주회를 하면서 여러 위대한 지휘자들의 지도를 받았다. 예를 들면 브람스, 샬크, 푸르트뱅글러,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칼 뵘, 레오나드 번슈타인 등이다. 이처럼 ‘비너 징페아라인’은 세계적인 위대한 음악가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더욱 훌륭한 긍지와 높은 자부심을 갖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폰 카라얀은 1947년부터 1989년까지 악우회의 연주감독으로 있으면서 ‘비너 징페아라인’의 모습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폰 카라얀은 ‘비너 징페아라인’과 함께 250회 이상의 연주를 하면서 ‘비너 징페아라인’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빈 필과 베를린 필과 함께 연주하면서 수많은 음반, CD를 취입하여 ‘비너 징페아라인’을 세계에 알렸다.

 

비너 징페어라인의 연주

 

‘비너 징페아라인’의 지휘를 맡았던 유명 지휘자들의 면모는 허다했다. 그중 몇 명만 언급한다면, 다니엘 바렌보임, 버트랜드 드 빌리, 미하엘 보더, 안드레이 보레이코, 피에르 불레즈, 세미욘 비츠코프, 정명훈, 크리스토프 폰 도나니,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블리디미르 페도세예프, 아담 피셔, 라파엘 프뤼베크 드 부르고, 크리스티안 야르비, 마리쓰 얀손스, 톰 쿠프만, 화비오 루이지, 로린 마젤, 챨스 매커라스 경, 웨인 마샬, 주빈 메타, 이고르 메츠마허, 리타르도 무티, 세이지 오자와, 크리치츠토프 펜데레키, 조르주 프레트르, 시몬 래틀, 투간 소히브, 크리스티안 틸레만, 브루노 봐일, 프란츠 벨저 뫼스트 등이다.

 

‘비너 징페아라인’은 한창 때에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연주회를 가졌다. 호주, 일본, 미국에서 순회연주회를 가졌으며 이스라엘, 파리, 런던, 마드리드, 모스크바, 베를린, 아테네 등지에서 콘서트에 출연하였다. 그중에서도 카라얀 지휘로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1세를 모시고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연주한 것은 어느 연주보다도 기억에 남은 것이었다. 오늘날 ‘비너 징페아라인’이 이만한 명성을 얻을수 있었던 것은 과거 이 합창단을 지도하고 후원했던 수많은 인물들, 예를 들면 요한네스 브람스, 페르디난트 그로쓰만(Ferdinand Grossmann), 라인홀트 슈미트(Reinhold Schmidt), 헬무트 프로샤우어(Helmut Froschauer)등의 헌신적인 공로 때문이었다고 할수 있다. 1991년 이래 요한네스 프린츠(Johannes Prinz)가 합창단을 이끌게 되었다. ‘비너 징페아라인’은 그의 지도아래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 바로크로부터 고전시대, 낭만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정진하는 앙상블 제도를 도입하였다. 현재 ‘비너 징페아라인’의 단원은 2백30명 정도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합창단이다.

 

비엔나 악우회 건물 황금홀에서의 비엔나 징페아라인의 말러 교향곡 제8번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