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오페라 일화(1)

정준극 2010. 10. 23. 03:16

[돈 조반니]

도니제티의 '루크레지아 보르지아'의 세계 초연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했고 이밖에도 여러 오페라의 초연에서 주인공의 이미지를 창조한 프랑스의 소프라노 마담 앙리에트 메릭-랄란드(Madame Heinriette Meric-Lalande: 1798-1867)는 그 드라마틱한 음성으로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로서도 유명했다. 어느때 프랑스의 낭트에서 돈나 안나를 맡아 공연하는 중에 상대역인 돈 오타비오는 전부터 잘 알던 테너여서 반가웠지만 알고보니 그는 노래를 부를 때 간혹 침을 뱉는 습관이 있어서 아주 곤혹스러웠다. 특히 의상실의 트렁크에 들어 있는 가운이 아니라 자기가 일부러 준비한 비싼 가운을 입고 있을 때 침을 뱉으면 혹시 침이 묻지 않을까하여 걱정이었다. 그래서 마스크 트리오를 부르는 중에 앙리에트 메릭-랄란드는 돈 오타비오의 귀에 대고 '보세요, 사랑하는 친구님, 혹시 당분간은 침을 뱉더라도 돈나 엘비라에게 뱉을수 없을까요?'라고 말했다. 돈나 엘비라는 라이벌이었다. 과연, 돈 오타비오는 부탁을 충실히 들어주었다. 성악가 중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어떤 테너는 목에 가래가 생기는지 자꾸 헛기침을 한다. 어떤 소프라노는 아리아를 부르기 전에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물병을 들고 있다가 남이 보던 말던 물을 마신다. 또 어떤 소프라노는 아리아를 부르기 전에 긴장되어서인지 머리가 가려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긁다가 가발을 벗겨낸 일이 있다. 무의식중에 행하는 이상한 습관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앙리에트 메릭-랄란드 

 

[휘델리오]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의 작곡가 페르디난도 파에르(Ferdinando Paer: 771-1839)는 1804년에 오페라 '레오노레'를 작곡하여 드레스덴에서 초연을 가졌다. 훗날 베토벤은 파에르가 '레오노레'에서 사용했던 대본을 '휘델리오'를 작곡할 때 사용하게 되었다. 어느날 파에르는 우연히 베토벤을 만나게 되었다. 파에르는 베토벤이 레오노레의 대본으로 휘델리오를 작곡한다는 얘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약간 우쭐해 있었다. '내가 사용했던 레오노레 대본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지? 내가 작곡한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베토벤은 파에르에게 '당신이 사용했다고 하는 대본을 보았소! 난 거기에 음악을 입힐 생각이오!'라고 말했다. 역시 독설에 있어서도 유명한 베토벤이었다.

 

페르디난도 파에르

 

[일 피라타](해적)

벨리니의 세번째 오페라인 '일 피라타'(Il Pirata: 해적)는 벨리니가 도니체티 스타일을 따라하는 작곡가가 아니고 비로소 벨리니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이라는데서 의미가 있다. 1827년 벨리니는 '일 피라타'의 라 스칼라 초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너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Giovanni Battista Rubini: 1794-1854)가 자기의 음악해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도니체티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려 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당시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 만한 벨칸토 테너를 찾아보기 힘드니 참고 견딜수 밖에 없었다. 벨리니의 오페라에 있어서는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도 필요했다. 사실상 '일 피라타'로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 벨리니의 명성이 어떻게 역사에 남느냐는 문제는 성악가들이 초연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연주해 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허설에서 보니 예상했던 대로 루비니는 벨리니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도와주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멋에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벨리니는 화를 참을수 없게 되었다. '이봐요, 당신이 도대체 사람이요? 당신은 정신을 반쯤 어디다 버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소. 당신은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혁명을 이룰수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뭐요! 열정을 보여주란 말이요. 이건 사랑의 듀엣이란 말이요. 도대체 당신은 사랑이나 해 보았소?' 라고 소리쳤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사랑을 해보기나 했느냐고 묻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루비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빈센쪼 벨리니

 

잠시후 마음을 진정시킨 벨리니는 루비니에게 다가가서 '여보시오, 친구여, 당신은 루비니가 되고 싶은가, 그렇지 않으면 괄티에로(Gualtiero)가 되고 싶은가? 낙심하여 분노와 격정에 휩싸여 있는 괄티에로 말이요! 그런데 당신은 그게 뭐요, 분노와 격정의 노래를 곱게만 부르고 있으니 말이요! 당신은 마치 금광과 같아요. 당신의 몸에서 귀중한 금이 나와야 한단 말이요.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가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단 말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비니는 계면쩍은 듯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요. 당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겠어요. 그런데 내 머리 속에서 괄티에로의 이미지가 만들어지 않으니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했다. 벨리니는 '이리 와 보시오. 진짜 문제는 당신이 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당신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음악과는 다르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것이요.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아무리 내 머리에서 새로운 음악이 나온다고 해도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수가 없소. 당신을 할수 있어요. 무엇보다 당신이 누구라는 것을 잊으시오. 그저 나의 격렬하고 찬란한 괄티에로만 생각하시오. 자, 다시한번 해 봅시다'...과연, 루비니는 당대의 루비니였다. 심기일전하여 괄티에로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였고 벨리니의 이름을 빛나게 해주었다.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 

 

[연대의 딸](La Fille du Regiment)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의 런던 공연은 엉망진창이었다. 오페라 부파가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공연이었다. 마치 레이스로 아름답게 만든 손수건을 종이 내프킨으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았다. 도니제티는 무척 낙담하여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마침 멘델스존이 나타나서 도니제티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올시다. 당신이 작곡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내가 했을 것이요'...이 말 한마디에 그때까지의 침울했던 도니제티의 마음은 가셔졌다고 한다.

 

펠릭스 멘델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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