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오페라 일화(2)

정준극 2010. 10. 23. 03:36

오페라 일화(2)

 

[탄호이저]

어느날 루이지 아르디티(Luigi Arditi: 1822-1903)가 '탄호이저'의 스코어를 피아노로 치고 있었다. 편곡하여 사용할 테마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옆방에 있던 그의 딸 줄리에타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지금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그야 네 아빠지! 왜그러니?' '그래요? 난 피아노 조율하는 사람인줄 알았어요.'

 

루이지 아르디티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책임 맡은 코지마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공연함에 있어서 원래 연출되었던 대로의 전통을 엄격하게 준수하였다. 그래서 주역들이 조금이라도 오리지널 연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것 같으면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가며 고쳐주었다. 어느날, 코지마는 탄호이저에서 엘리자베트를 맡은 소프라노가 2막의 '노래의 전당' 장면에서 마치 환희에 넘쳐 있는 듯 두 손을 높이 들고 달려가는 장면을 스스로 고안하여 연출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코지마는 당장 그 소프라노를 만나서 경고를 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소프라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어서 혹시 잔소리를 했다가 안하겠다고 하면 큰일이어서 어찌할줄 모르고 속이 상해 있었다. 2막의 막이 오르고 소프라노가 등장하였다. 그는 과연 예상했던대로 두 손을 번쩍 높이 들고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자 했다. 하지만 두 손을 올릴수가 없었다. 코지마가 급히 사람을 시켜 미리 드레스의 허리 부분을 꿰매어 놓았기 때문에 팔을 올릴수가 없었다. 대단한 코지마였다.

 

코지마 바그너 

 

[일 트로바토레]

메이플슨 대령(Colonel Mapleson: 1830-1901)이라고 하면 19세기 후반에 세계의 오페라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오페라 기획가(Impresario)였다. 영국 출신의 메이플슨 대령은 오페라단을 조직하여 저 멀리 미국에까지 가서 몇년 씩이나 오페라를 공연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조금 자세한 내용은 [참고자료]로서 다시 설명키로 하겠고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기획한 '일 트로바토레'에 대한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서는 메조소프라노(또는 콘트랄토)가 맡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아주체나가 출연할수 없는 형편이 되면 오페라 공연을 취소해야만 한다. 그런데 19세기에는 간혹 주역급이 사정이 있어서 출연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빼고 공연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체나가 빠진 '일 트로바토레'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인데 1862년 영국에서는 실제로 아주체나가 빠진 '일 트로바토레'가 공연된바 있다. 그것도 당대의 흥행기획가인 메이플슨 대령의 오페라단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메이플슨 대령(제임스 헨리 메이플슨)

 

어느때 메이플슨 대령의 오페라단이 영국의 어떤 지방에서 '일 트로바토레'를 공연하게 되었다. 아주체나는 마드모우젤 보르샤르(Mlle. Borschardt)가 맡게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독감(la grippe)에 걸리는 바람에 도저히 무대에 설수가 없게 되었다. 메이플슨 대령은 생각다 못하여 대타(Comprimario)를 기용키로 했다. 대타로 선정된 어떤 소프라노는 싫다고 하면서 발버둥쳤지만 메이플슨 대령은 오페라단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타협안이 마련되었다. 그냥 무대에 나서기만 하고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더구나 1막에서는 아주체나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메이플슨 대령은 레오노라, 만리코, 루나백작의 세 사람에게 1막 마지막 부분의 트리오를 아주 과장되게 부르라고 당부했다. 그 감동의 여파로 2막의 어둑컴컴한 장면에 등장하는 아주체나에게는 덜 관심이 가도록 할 요량에서였다. 과연 레오노라, 만리코, 루나백작의 세 사람은 정말로 성의를 다하여 과장되게 트리오를 불렀다. 청중들은 모두 크게 감동하여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후에 메이플슨 대령이 무대 앞에 잠시 나가서 '아주체나는 오늘 밤에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Azucena will not sing tonight!)라고 아주 간단히 안내의 말씀을 전하고 들어갔다. 청중들은 솔직히 아주체나가 나와도 상관없고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저 집시들의 '대장간의 합창'만 들으면 그만이었다. 그리하여 '대장간의 합창'이 신나게 끝난후 마드모아젤 보르샤르의 대타인 소프라노가 음침한 모습으로 분장하고 등장하여 노래는 한마디도 부르지 않고 무대의 구석만 돌아다니다가 역할을 다하고 들어갔다. 물론 그 사이에 오케스트라는 신명을 다하여 연주했다. 청중들은 '야, 그 오케스트라 한번 기차네!'라면서 속으로 많은 찬사를 보냈다.

 

아주체나. 사실 노래는 하지 않고 손이나 이리저리 저으면서 다니면 누가 무어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3막에서도 아주체나는 크게 나설 일이 없었다. 백작의 병사들에게 체포될때 체포되지 않으려고 한차례 거세게 반발하면 되었고 그후 감방에서는 독약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지면 그만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주체나가 잠에서 깨어나 Sei vendicata, o madre!(어머니 복수를 했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이어 Egli era il tuo fretello(그는 네 동생이었다)라고 크게 외치면 되었다. 대타 소프라노는 그 정도는 소리칠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모진 하이 소프라노 소리로! 청중들은 대타 아주체나에 대하여도 박수를 보냈다. 나중에 메이플슨 대령은 비망록에서 '가만히 보니까 아주체나 역할이 별것 아니다'라고 썼다.

 

[아이다]

평소에 싫어하는 두 사람의 소프라노가 같은 무대에 서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공주는 메조소프라노가 맡기도 하지만 소프라노가 맡기도 한다. 한 사람은 수많은 시녀를 거느린 이집트의 공주, 다른 한 사람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잡혀온 노예. 그러므로 무대에서는 신분의 차이가 워낙 커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어느때 누구라고 얘기는 할수 없지만 서로 앙숙인 두 소프라노가 암네리스와 아이다를 맡아 무대에 서게 되었다. 아이다가 암네리스의 발 밑에 꿇어 엎드리는 장면이 되었는데 아이다가 자존심 때문인지 무릎을 꿇을 생각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암네리스가 다른 사람들에 들리면 안되니까 크게는 소리지르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아이다에게 무어라고 그랬더니 아이다가 이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주위에 있던 출연자들은 암네리스가 아이다에게 '부탁이야, 그냥 무릎을 꿇어요! 오페라잖아!'라고 말한줄 알았다. 나중에 무대 바로 아래의 오케스트라 피트에 있었던 사람이 증언하기를 암네리스가 아이다에게 '야, 이 망할 년아(Bitch), 어서 무릎 꿇지 못해! 그렇지 않으면 발로 손가락을 밟아 버릴꺼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이다는 이를 악물고 일단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페라가 끝나자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은 물론 아이다였고 암네리스는 한번 인사하고 들어가서 다시 나올 기회가 없었다. 이것이 소프라노의 세계인 모양이다.

 

암네리스 공주와 아이다(아마릴리 니짜)

 

[카르멘]

젊은 카잘스가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로 있을 때였다. 첼리스트들은 바로 뒤에 콘트라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심심하면 얘기도 나누면서 지낸다. 카르멘을 공연할 때였다. 콘트라베이스가 카잘스에게 물었다. '여보게, 카르멘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이에 대하여 카잘스는 골몰히 생각하다가 '3막의 전주곡이 아닐까? 적막한 중에 울리는 멜로디가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특히 플륫이 E 플랫 장조로 연주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콘트라베이스는 '아냐! 그건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럼 꽃노래?'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그럼 어떤 파트란 말이야?'라고 카잘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콘트라베이스는 마지막 부분에서 돈 호세가 카르멘을 칼로 찌른후 절규하는 장면, 즉 Vous pouvez m'arreter. C'est moi qui l'ai tuee!'라고 외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콘트라베이스는 '그 장면이 나오면 몇분후에 집에 갈수 있기 때문이지!'라고 덧붙였다.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돈 호세의 절규) 세 무아 퀼레 투에!


[로렐라이]

파르마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극성으로 유명하지만 빗발치는 듯한 거센 비평으로도 유명하다. 어느때 파르마에서 카탈라니의 오페라 '로렐라이'가 공연되는 중에 안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가 고음 B 플랫에서 그만 삐걱하고 말았다. '나이팅게일의 노래'의 중간 부분이었다. 예에 의해서 청중들의 야유가 빗발쳤다. 노래를 계속할수 없었던 소프라노는 멍하니 무대에 서서 박수 및 야유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자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유니송으로 안나의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한치의 빈틈도 없는 정확한 피치로 노래를 불렀다. 파르마는 그 정도였다. 

 

알프레도 카탈라니  

 

[살람보]

어네스트 라이어(Ernest Reyer)의 '살람보'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동명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고대 카르타고 여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1900/91년 시즌에 메트는 살람보의 초연을 위해 많은 경비를 들여 제작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서는 프랑스 오페라가 유행이었기 때문에 메트의 총지배인인 모리스 그러(Maurice Grau)는 살람보가 대성공을 거둘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잘 모르는 오페라인데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가 관객들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었다. 모리스 그러는 '모르는 소리 말아요. 사람들이 나에게 뉴욕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말해주었어요'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정작 살람보가 공연되었을 때 객석은 텅텅 비었다.

 

마르세이유의 롱샹(Longchamp) 공원에 있는 어네스트 라이어 기념상

 

[엘렉트라]

토마스 비챰(Thomas Beecham) 경이 1910년 코벤트 가든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릭트라'의 영국 초연을 지휘할 때 신문들은 '엘렉트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보도하여서 첫날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음악평론을 쓰기도 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엘렉트라'에 대하여 별로 감동을 하지 못했다. 버나드 쇼는 다음날 신문에 '비챰 경은 엘렉트라를 참으로 훌륭하게 지휘하였다. 하지만 간혹 스코어를 여섯개의 드럼을 위한 협주곡 처럼 만들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조지 5세 국왕은 슈트라우스 음악의 진보적인 음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왕실근위대 군악대장은 어느날 아침 '엘렉트라'에 나오는 음악을 취주악으로 편곡하여 조지 5세 국왕의 침실 밖에서 연주했다. 잠시후 시종이 국왕의 뜻을 담은 메모를 가지고 나타났다. 군악대장은 국왕으로부터의 찬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메모에는 '국왕께서는 군악대가 방금 전에 연주한 곡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차후에는 이 곡이 결코 다시 연주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지휘자 토마스 비챰 경

 

[장미의 기사]

어느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되는 '장미의 기사'를 보러 갔다. 가장 비엔나적인 오페라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이 스트라빈스키를 알아보고 박수를 보내며 더러는 환호하기도 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정중하게 답례를 보내고 자리에 앉으면서 동행하였던 사람에게 '저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내가 앞으로 네시간 이상이나 신코페이션도 없는 음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당신도 견뎌 보시오라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며 너털 웃음을 웃었다.

 

'장미의 기사'의 한 장면 

 

[레이크스 프로그레스](난봉꾼의 역정]

스트라빈스키는 개그나 위트를 좋아하였다. 어느때 극작가이며 대본가인 로날드 던칸(Ronald Duncan)이 스트라빈스키를 만나 '레이크...'의 초연에 대한 신문평론들이 지나치게 신랄했던데 대하여 얘기를 나누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양복 저고리 안쪽의 주머니에서 수표 한장을 꺼내 보이면서 '여보게, 여기 상당한 금액이 적혀 있는 수표가 보이지? 극장 측이 초연때 지휘자인 나에게 사례비로 준것이라네! 이것이 내가 읽은 유일한 평론이라네!'라고 말하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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