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또 하나의 '투란도트' 엔딩

정준극 2013. 8. 3. 05:36

또 하나의 '투란도트' 엔딩

 

작곡가 하오 웨이야

 

'투란도트'는 푸치니가 1924년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게 되었으며 3막 2장 이후의 미완성 부분을 푸치니의 제자인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가 완성했다는 얘기는 비단 '투란도트'를 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잘 아는 내용이다. '투란도트'가 1926년 4월 2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을 때 지휘를 맡은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 지휘를 하고나서 바통을 내려 놓고 관중석을 향하여 'Qui finisce l'opera, rimasta incompiuta per la norte del Maestro'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다시한번 덧붙인다. 이 말을 굳이 번역하면 '작곡자께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오페라는 미완성으로 남게 되어 여기에서 끝납니다.'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토스카니니는 '여기서 마에스트로께서 펜을 놓으셨습니다, 어쩌구...'라고 말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푸치니의 미완성 부분을 프랑코 알파노라는 사람이 완성해서 저 유명한 테너 아리아인 '네쑨 도르마'(Nnessun dorma)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하오 웨이야라는 작곡가가 푸치니의 미완성 파트를 따로 완성해서 중국판 '투란도트'를 만들어서 우선 중국에서 보란듯이 공연해서 화제가 되었다. 하기야 중국에서는 못 만드는 물건이 없다고 하니 '투란도트'의 마지막 부분도 새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투란도트'는 잘 아는대로 중국의 베이징(北京)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이다. 베이징의 궁전이 무대이다. 베이징의 황궁이라면 영어로는 Forbidden City 라고 하는 저 유명한 자금성(紫金城)일 것이다. '투란도트'의 원래 스토리는 페르시아의 것인데 어쨋든 오페라에서 무대는 베이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은 '투란도트'의 내용 중에 중국인을 비하하는 사항들이 나온다고 해서 이 오페라의 중국 공연을 상당기간 동안 사실상 꺼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투란도트 공주의 지나친 잔혹성, 공직자로서 핑팽퐁 세 장관의 지나치게 코미디언과 같은 행동, 황제의 무기력 등이다. 그러한 여파 때문인지 '투란도트'가 중국에서 처음 공연된 것은 라 스칼라로부터 거의 70년이 지난 1998년이었다. 세상은 많이 달라져서 그때 중국 당국은 역사적인 '투란도트'의 중국 첫 공연을 베이징의 자금성(Forbidden City)에서 공연토록 협조했다.

 

1998년의 자금성(지진쳉) 공연

 

자금성에서의 '투란도트' 공연은 오페라의 역사에서 몇가지 획기적인 기록들을 세웠다. 우선 중국의 대표적인 국보급 건물인 자금성을 무대로 삼았다는 것이 기록이다. 등장인원의 규모가 과거 세계각지에서의 공연에 비해서 대규모였다는 것도 기록이다. 합창단만 200명이 출연했고 오프닝을 알릴 때 옛날 황궁에서 사용하던 북을 재현하여 80명의 고수들이 치도록 한 것도 기록이다. 자금성의 공연은 야외공연이니만치 음향에 특별한 신경을 썼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술을 이용하여 세계 최고의 오페라 음향 전문가인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음향감독이 직접 진두하여 준비했다. 또한 관객들이 휴게시간을 유용하게 보낼수 있도록 자금성의 여러 곳에 간이 카페와 식당들을 마련한 것도 특별했다. 더구나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들이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자금성 내의 여러 별도 건물에서 화려한 딘너를 즐길수 있도록 한 것도 이채로웠다. 자금성의 '투란도트'는 모두 8회가 공연되었으며 지휘는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가 맡았지만 주요 역할은 3명이 번갈아 맡는 트리플 캐스트였다. 투란도트는 샤론 스위트(Sharon Sweet), 조반나 카솔라(Giovanna Casolla), 오드리 슈토틀러(Audrey Stottler)가 맡았으며 칼라프는 크리스티안 요한슨(Kristjan Johannsson), 세르게이 라린(Sergej Larin), 란도 바로톨리니(Lando Bartolini)가 맡았고 류는 바바라 헨드릭스(Barbara Hendricks), 바바라 프리톨리(Barbara Frittoli), 안젤라 마리아 블라시(Angela Maria Blasi)가 맡았다. 그중에서 나중에 DVD에 나온 성악가들은 조반나 카솔라, 세르게이 라린, 바바라 프리톨리였다.

 

천안문광장 인근에 있는 국가대극원(NCPA)

 

그후 중국은 베이징에 대규모의 오페라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2001년부터 천안문광장 앞 넓은 부지에 2001년에 가히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할수 있는 국가대극원(국가대극원: National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건설을 시작하여 2007년에 완공했다. 소요경비는 약 32억 유안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여 거의 6천억원에 이른다. 거란(巨卵)이라는 별명의 국가대극원(꾸어쟈 따주유안)의 크기는 가로가 212m, 세로가 144m이며 높이는 46m에 이르고 총면적은 약 22만 평방미터나 된다. 총객석은 5,452석으로 그중에서 오페라극장이 2,416석, 콘서트홀이 2,017석, 연극 및 경극 공연장이 1,040석이다. 국가대극원은 오프닝 기념 공연 중의 하나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공연키로 했다. 세계의 오페라 중에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어느덧 서너편이 있지만 결국 '투란도트'만한 작품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다만, 투란도트를 공연하기는 하되 푸치니가 미완성으로 남긴 부분은 중국의 작곡가가 새롭게 완성한다는 조건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투란도트'의 미완성 부분은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공모를 통하여 그의 제자인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이탈리아의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가 푸치니의 미완성 파트를 완성한 것이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국가대극원에서의 투란도트 공연. 칼라프(다이 유치앙)와 투란도트(셴나).

                                                     

중국 국가대극원은 '투란도트가 중국에 대한 스토리이므로 푸치니의 미완성 파트를 완성하는 사명은 중국인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즉시 알파노 또는 베리오가 완성한 부분은 아예 없는 것으로 하고 새로 마지막 파트를 중국의 작곡가가 다시 완성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마침 이탈리아에서 작곡 공부를 하고 있는 중국의 젊은 작곡가가 후보에 올랐다. 36세의 하오 웨이야(Hao Weiya)였다. 하오 웨이야는 국가대극원으로부터 '투란도트'를 완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의 한달 이상이나 오리지널 '투란도트'의 스코어를 검토했다. 하오 웨이야는 6주에 걸쳐 18분에 해당하는 마지막 파트를 작곡했다. 그렇게하여 완성한 엔딩 파트는 이탈리아의 푸치니 재단에 속한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도움을 주어 마무리했다. 중국의 국가대극원이 의뢰하고 젊은 작곡가 하오 웨이야가 완성한 '투란도트'의 엔딩 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투란도트의 아리아 '첫 눈물'(The First Tear)를 만든 것이다. 알파노가 완성한 엔딩 파트에는 투란도트의 냉혹한 마음이 어름처럼 녹아내려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칼라프 왕자와의 결합을 다짐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투란도트의 완전하게 변한 마음을 표현하는 아리아가 없었다. 얼음처럼 냉혹하기만 한 투란도트 공주가 사랑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또한 하오 웨이야의 버전에는 두 명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룰린 공주와 유렌이다. 룰린 공주는 복수를 하는 사람을 상징하며 유렌은 중국의 천사들을 상징한다. 룰린 공주와 유렌은 이 오페라의 테마인 사랑과 의열한 영웅적 행동을 상징한다. 유렌은 어린이합창이 맡도록 했다. 감독인 첸 신이(Chen Xinyi)는 40명의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천사의 음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에게 어둠과 냉혹함 대신에 사랑과 희망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국가대극원에서의 중국 버전의 '투란도트' 무대

 

국가대극원 버전(또는 하오 웨이야 버전)의 '투란도트'는 2008년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국가대극원의 무대에 화려하게 올려졌다. 2008년은 푸치니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5월 21-24일에도 공연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에서는 타이틀 롤을 이탈리아의 소프라노인 안나 샤파진스카이아(Anna Shafajinskaia)가 맡았기 때문에 완전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는 할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정상급 성악가들인 다이 유치앙(Dai Yuqiang: 戴 玉强), 웨이 송, 순 시우웨이, 야오 홍(Yao Hong: 姚泓), 마 메이(Ma Mei: 馬梅), 베이스 장 지안루 (Zhang Jianlu: 張建魯)등이 출연했다. 2011년 8월 5일부터 7일까지 3회 공연을 가졌다.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는 중국의 정상급 소프라노인 순 시우웨이와 셴 나(Shen Na)가 맡았으며 칼라프는 테너 다이 유치앙, 류는 야오 홍과 마 메이가 맡았다. 테너 다이 유치앙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직접 사사한 유일한 아시아 출신의 테너이다. 소프라노 순 시우웨이(Sun Xiuwei: 孫秀藝)는 이탈리아의 베르디아나로서는 마지막 위대한 소프라노라고 하는 올란디 말라스피나에게 사사한 국제적인 성악가이다. 류(Liu)를 맡은 셴나(Shen Na: 沈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뉴욕 등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소프라노이다. 국가대극원은 이번의 '투란도트' 공연이 순전히 중국의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는 무대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중국 고대로부터의 상징적인 존재인 용, 구름, 석사자, 학 등을 배경에 배치했다.

 

 

 

Sop Shen Na(셴나), Sop Sun Xiuwei(순 시우웨이), Ten Dai Yuqiang(다이 유치앙),  Sop Song Yuanming(송유안밍), Sop Ma Mei(마 메이), Sop Yao Hong(야오 홍), Bass Wei Song(웨이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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