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Apple(빅 애플): 뉴욕시(NYC)를 말한다. 빅 애플이라는 말을 1920년대에 뉴욕 모닝 텔레그라프의 스포츠 기자인 존 피츠 제랄드(John Fitz Gerald)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존 피츠 제랄드는 어떤 사연으로 뉴욕시를 빅 애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경마와 관련되어서라고 한다. 당시 많은 청년들의 꿈은 훌륭한 경마기수가 되어 돈도 벌고 유명해 지는 것이었다. 경마의 기수가 가장 큰 보상을 받는 것을 빅 애플이라고 불렀다. 즉, 뉴욕을 빅 애플이라고 부른 것은 뉴욕의 경마장에서 가장 큰 사과(빅 애플)를 차지할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에서 경마를 위해 말을 데리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으면 '빅 애플에 갑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욕에 가려면 말을 살 찌워서 가야 합니다. 그러자 존 피츠 제랄드 기자는 '비쩍 마른 말을 데기고 오면 사과의 살은 먹지 못하고 씨가 있는 속만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뉴욕 맨하튼의 54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는 '빅 애플 코너'(The Big Apple Corner)가 있다. 존 피츠 제랄드가 살던 집이 있었다. 에드 설리반 극장의 바로 앞이다. 빅 애플이라는 표현이 1920년대에 선을 보였지만 그후 수십년동안 잊혀져 있다가 1970년대에 루돌프 줄리아니(Rudolf Giuliani) 시장 시절에 뉴욕시의 회의-관광 유치 캠페인의 일환으로 '빅 애플 코너'를 신설하고 뉴욕시를 '빅 애플'이라고 광고하기 시작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뉴욕 메츠 야구팀이 홈 구장인 셰 스터디엄(현재는 시티 필드)에서 홈 런을 날라면 전광판에 Home Run Apple 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고 한다. '빅 애플'에 대한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뉴욕에 있는 어떤 유명한 사창굴의 주인이 이브(Eve)라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뱀의 꾀임에 빠져 사과를 먹었다는 얘기로부터 '빅 애플'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는 얘기이다.
뉴욕 맨하튼의 빅 애플 코너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Big 이라는 단어를 붙인 다른 도시들도 살펴보도록 하자. 그전에, 캔사스주의 맨하튼이라는 도시는 관광진흥을 위해 별명을 The Little Apple이라고 붙였다. 미네소타주의 미네아폴리스는 The Mini-Apple이라고 불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B.A.)와 관련하여서는 뮤지컬 에비타에 나오는 Eva, Beware of the City 라는 노래에서 Buenos Aires, Big Apple 이라는 가사를 넣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뉴욕, 즉 빅 애플에 비유하였다.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는 뉴욕이 빅 애플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자기들을 빅 플럼(Big Plum)이라고 불렀다.
데스크 탑의 빅 애플 사진
- The Big Peach: 조지아주 애틀란타
- The Big Easey: 루이지아나주 뉴올리언스
- The Big Guava: 플로리다주 탐파
- The Big Durian: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The Big Lime: 플로리다주 키 라고
- The Big Scrapple: 필라델피아(기름에 튀긴 요리의 일종)
- The Big Chip: 펜실베이니어주 루이스버그(감자 튀김을 말함)
- The Big D: 텍사스주 달라스
- The Bug Buritto: 캔자스주 오버랜드 파크(고기와 치즈를 토르틸라로 싸서 구운 요리)
- The Big onion: 시카고(지내 중심지역을 Loop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 시카고라는 말은 인디언말로 오니언 필드라고 함)
- The Big Tomato: 캘리포니아주 사크라멘토
- The Big Mango: 태국의 방콕. 카이로도 빅 망고라고 부름. 카이로와 뉴욕시는 자매도시임.
- The Big O: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 The Big Orange: 이스라엘 텔 아비브
- The Big Schnitzel: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이밖에도 Bi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도시들은 많다. 예를 들면 The Big Smoke(런던)이다. The Biggest Littel City(네바다주 르노)라는 표현도 있다.
Biggie Smalls(비기 스몰스): 미국의 힙-합 및 랩 가수인 크리스토퍼 월레이스(Christopher Wallace)를 말한다. 랩을 부르는 사람으로서 비기 스몰스를 모른다면 말이 안된다. 크리스토퍼 월레이스는 그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1972년 뉴욕 부르클린에서 태어나서 겨우 25년을 살다가 1997년 비명에 숨을 거두었다. 비기 스몰스라는 별명은 1975년 영화인 Let's Do It Again에 출연했을 때 얻은 것이다. 이밖에도 그는 Big Pappa, Frank While(1990년 영화인 King of New York에 출연하여서 얻은 별명), 그리고 그가 처음 데위할 때의 스테이지 네임인 Notorious B.I.G.(악명높은 BIG)로서 알려졌다. 그의 첫 데뷔 앨범은 1994년의 Ready to Die였다. 이로써 그는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비기 스몰스는 1997년 3월 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나가는 차에 탔던 미지의 사람이 쏘는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앨범은 미국에서만도 1천7백만장이 팔렸다. 비기 스몰스는 '느슨하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흐름'의 랩을 불러 인기를 끌었다.
미국 랩 계의 스타였던 비기 스몰스(크리스토퍼 월레이스)
The Big Stick(빅 스틱):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정책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한 손에 당근, 다른 손에는 채찍'을 뜻한다. 서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서 나온 격언을 인용한 것이다. 가라사대, "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이다. 즉, '말할 때는 부드럽게 하지만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어라'는 뜻이다. 오늘날 무릇 우리나라의 대북괴, 대중공 외교정책도 The Big Stick 이라는 기조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빅 스틱 정책을 가지고 니콰라가, 파나마, 쿠바와의 외교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국내적으로는 1902년의 석탄노조 파업에도 적용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스타일을 "the exercise of intelligent forethought and of decisive action sufficiently far in advance of any likely crisis". 라고 설명한바 있다. 번역은 각자가 해보시도록!
루즈벨트 대통령의 카리비안 제국에 대한 빅 스틱 정책을 풍자한 만화. 루즈벨트 대통령을 걸리버에 비유하였다.
The Bird(버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투수인 마크 휘드리치(Mark Fidrych)를 말한다. 1954년 매사추세츠 워체스터의 폴란드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로서만 활동했다. '버드'라는 별명은 그가 마이너 리그에 있을 때 코치가 붙여준 것으로 새처럼 날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루키 시절에 메이저 리스 투수로서는 가장 낮은 ERA(Earned Run Average)를 기록하여 열광을 받았다. 그는 야구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등 수많은 영예를 안았다. 그는 연습도중 팔에 통증을 느껴 결국 선수생활에서 은퇴하였다. 은퇴후 그는 매사추세츠의 노우스보로에 가서 농장과 함께 도로포장회사를 운영하였고 시간이 나는대로 장모의 식당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4월 13일 자기회사의 도로건설용 대형차에서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마크 휘드리치의 어록 중에서 몇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When you're a winner you're always happy, but if you're happy as a loser you'll always be a loser."
After allowing the Detroit Tigers Wives Club to cut his hair for charity: "It was like Samson and Goliath."
버드라는 별명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투수 마크 휘드리치
The Boss(보쓰): 미국의 팝 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을 말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1949년 뉴저지주의 롱 브랜치에서 태어났다. 가수이면서 작사자인 그는 기타, 피아노, 하모니카 연주에 능하였다. 그의 음악 장르는 하트랜드 록(Heartland rock), 폴크 록, 루츠 록(Roots rock), 아메리카나에 속한다. 이들이 각각 어떤 내용인지는 시간이 없어서 생략코자 한다. 초기에 그와 함께 활동했던 밴드는 E Street Band였다. 그후 Steel Mill, Miami Horns, The Sessions Band와 함께 활동하였다. 가장 성공을 거둔 스튜디오 앨범은 Bron to Run 과 Born in the U.S.A.(1984)였다. 미국인의 일상적인 삶의 투쟁을 노래한 것이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6천5백만장이 판매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보면 1억2천만장이 팔렸다. 그는 20회의 그래미상, 2회의 골든 글로우브상, 한번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보쓰라는 별명은 그의 보쓰적인 기질을 표현한 것이다. 2010년 현재 61세인 그는 아직도 연주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보쓰의 '본 투 런'(Born to Run) 음반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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