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English Class/소브리케

Canuck(캐넉)

정준극 2010. 12. 2. 22:55

Canuck(캐넉): 캐넉이라는 단어는 캐나다, 또는 캐나다인을 말하는 속어이다. 캐나다인들은 캐넉이라는 말을 캐나다를 의미하는 애칭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무슨 심사인지 간혹 캐나다인을 경멸하는 뜻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그러하다. 캐넉이라는 말이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원적으로 보아 몇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는 Kanata 라는 말이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Kanata는 '마을'(Village) 또는 '정착'(Settlement)라는 의미이다. 현재의 Canada 라는 단어는 Kanata의 변형이다. 그 Kanata 라는 말에서 Kanuck, 즉 Canuck가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장은 캐나다에 가장 널리 분포하여 살고 있던 알곤퀸(Algonquian) 인디언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곤퀸어에서는 형용사나 동사에 uk 이라는 어미를 붙이면 명사가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Canada에 uk을 붙여 명사로 만든 것이 캐넉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Canada+UK 가 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로서 주로 영국출신의 캐나다인을 의미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밖에도 몇가지 설이 있지만 생략!

 

미국의 태프트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캐나다의 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겉으로는 반가운듯 손을 내밀고 있지만 캐나다의 잭 카눅은 시계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벌고 있는 정치풍자 만화.

 

밴쿠버 아이스하키팀의 이름은 밴쿠버 캐넉스(Vancouver Canucks)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기간중에는 Canuck가 공식적인 상징문구였다. Canuck은 캐나다가 유일하게 설계하고 제작한 제트전투기인 CF-100의 별명이다. 캐나다는 1950-58년에 약 700대의 Canuck 제트전투기를 생산하였다. 이들은 1981년까지 공군에 배치되었으나 이제는 구형이라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처음에 Canuck 이라는 말은 캐나다에 이민온 화란인들, 또는 프랑스인들을 일컫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캐나다인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캐나다국기럭비팀의 별명은 Canucks이다. 캘가리에는 Canucks 럭비클럽이 있다. 1970년대 캐나다의 월드컵 스키선수들을 Crazy Canucks라고 불렀다. Johnny Canuck는 1860년대에 캐나다에서 인기를 끌었던 정치풍자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Jack Canuck이라고도 불린 Johnny Canuck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캐나다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을 항거하는 주인공이었다. Johnny Canuck 은 2차 대전중의 캐나다 출신 전쟁영웅을 대표하는 인물로서도 표현되었다. Soviet Canuckistan(소비엣 캐너키스탄)이라는 말은 캐나다를 경멸하는 표현이다. 이 말은 2002년 팻 버캐넌(Pat Buchnan)이 TV 쇼에서 캐나다를 테러리스트의 천국이라고 비난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캐나다를 소련과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의 천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캐나다가 2차 대전중인 1942년에 발행한 45센트 우표에서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조니 캐넉의 영웅적인 활동을 표현하였다.

 

Chemical Ali(케미컬 알리): 사담 후세인이 이락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국방장관, 내무장관, 군사령관, 이락정보국장을 지냈으며 걸프전 당시 이락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였을 때 쿠웨이트총독까지 지낸 알리 하싼 알-마지드(1941-2010)를 말한다. 케미컬 알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이락 내의 저항세력들을 소탕할 때에 화학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사담 후쎄인의 친사촌인 알리 하싼 알-마지드는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락 북부의 쿠르드족 반란과 남쪽의 시아파 반체제 저항집단을 제거할 때에 화학무기까지 동원하여서 악명이 높았다. 그는 2003년 연합군의 이락 침공때에 체포되어 전범으로서, 또한 반인간적 범죄자 및 인종청소자로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2010년 1월 25일 교수형에 처하여졌다. 케미칼 알리라는 말은 악명높은 반인간적 범죄자를 말한다.

 

케미칼 알리. 사담 후세인의 사촌이었다.

 

Comical Ali(코미칼 알리): 사담 후쎄인 치하의 이락에는 케미칼 알리도 있었지만 코미칼 알리도 있었다. 코미칼 알리는 사담 후쎄인의 공보장관인 모하메드 사에드 알-샤하프(Mohammend Saeed al-Shahaf: 1940-)를 일컫는 말이다. 알-샤하프는 외교관이며 정치가였다. 그리고 2003년 연합군이 이락을 침공하였을 때에는 공보장관이었다. 그는 전쟁중 매일 기자회견을 하여 전황을 브리핑한 것으로 유명했다. 세계의 기자들은 물론, 일반인까지도 알-샤하프를 거의 매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담 후쎄인의 마우스피스였다. 그는 과장되면서도 당당한 언변에 거칠기까지한 언변으로 유명했다. 그러한 언변으로 그는 이락 군대가 패배를 모르는 무적의 존재이며 사담 후쎄인의 정부는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락 국민들에게 사담 후쎄인을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서방 취재진은 그러한 그를 매일 만나서 상황 브리핑을 받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는 인기인이었다. 알-샤하프의 기자회견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연합군이 바그다드에 진입하여 시가지를 누비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사담 후쎄인의 충성스론 군대가 연합군을 몰아내고 있다는 발표를 버젓이 한 것이었다. 그의 발표가 거짓이라는 것은 기자브리핑의 배경에 미군의 탱크가 바그다드 시가지를 누비고 있는 모습이 분명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면의 배경에 나오는 미군 탱크는 실제 상황이 아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거짓말 장이의 거짓말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이락전쟁 중에는 코미컬 알리의 모습을 매일 보아야 했다.

 

그는 외교관을 지냈기 때문인지 영어에 능통하였다. 그의 영어 발표는 스무스하고 능란했다. 그리고 언제나 익살맞고 엉뚱한 표현이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일견 건방지기까지 했지만 노련했다. 그리고 고어체를 자주 사용하므로써 은근한 멋을 과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연합군을 표현할 때에 '짐승'(Animals), '흉악범'(Thugs), '비겁자'(Cowards), 범죄자(Criminals)라는 단어를 빠트린 일이 없었다. 그는 브리핑에 있어서 아랍어의 어휘도 적절히 구사하였다. 예를 들면 아랍어의 Ulug 이라는 단어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촌뜨기'라는 뜻이다. 기자들은 그 말이 미국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나 알아차려야 했다. 전쟁이 한창일때 그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 앞에서 '지금 바그다드 성문 밖에서 미군들이 전부 항복했으며 그중에서 수많은 군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뉘우치고 자살하였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지만 그는 천연덕스럽게 그런 얘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003년 6월 25일, 영국의 The Daily Mirror 지는 알-샤하프가 바그다드에서 연합군에게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연합군 당국은 그런 보도에 대하여 노 코멘트로서 일관하였다. 다음날 알-샤하프는 두바이에 있는 알-아라비야 뉴스에 직접 나와 자기가 미군에게 항복했으며 심문을 받은 후에 전범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석방되었다고 말했다. 알-샤하프는 그와 같은 TV 인터뷰를 위해 20만불 이상을 집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TV 인터뷰에서 그렇게 좋던 언변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회자의 이런 저런 질문에 그저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락 정부의 몰락에 대하여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역사가 대답해 줄것이다'라고만 말했다. 그후 그렇게 유명했던 알-샤하프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그는 현재 아랍 에미레이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사담 후쎄인의 치하에서 공보장관을 했던 것은 '직업이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알-샤하프는 Bagdad Bob(바그다드 밥), 또는 The Sheherazade of Bagdad(바그다드의 세헤라자드)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말을 잘해서였다.

 

코미컬 알리로 더 잘 알려진 알-샤하프 

 

Chocolate City(초콜릿 시티): 워싱턴 DC를 말한다. 워싱턴에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워싱턴의 밤에는 모두 흑인이고 백인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다. 그 백인은 화이트하우스에 사는 대통령 한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그 한사람의 백인마저도 없고 모두 초콜릿 색갈이다.

 

The City of Light(빛의 도시): 호주 서안의 인구 1백60만의 대도시인 퍼스(Perth)를 말한다. 퍼스는 호주 제4의 도시로서 웨스트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수도이다. 그렇지만 퍼스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대도시일 것이다. 서쪽에는 끝없이 펼처진 인도양이 있으며 동쪽에는 눌라보르(Nullabor) 사막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퍼스가 '빛의 도시'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쌓게 된것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 2월 20일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미국의 존 글렌이 머큐리 우주선인 Friendship VII을 타고 마침 퍼스의 상공을 비행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퍼스시의회는 전시민에게 그날 밤 모든 건물의 불을 밝히는 것은 물론 시민들은 모두 공터에 횃불을 들고 있으라고 요청하였다.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 지구에서 환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곳이 퍼스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존 글렌은 우주선을 타고 밤에 퍼스의 상공을 비행하면서 퍼스의 불빛을 보고 The lights show up very well. Thank everybody for turning them on, will you. (불빛이 아주 잘 보인다. 불을 켠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전세계는 갑자기 퍼스에 대하여 알게되었다. 그로부터 퍼스는 The City of Light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6년후 퍼스의 시민들은 다시한번 스위치를 켜고 횃불을 밝혔다. 존 글렌이 우주선 Discovery 호를 타고 다시 한번 밤 중에 퍼스의 상공을 비행하게 된 것이다. 존 글렌은 퍼스의 환한 불빛을 보고  OK guys, you can turn them off now. (자 여러분, 이젠 불을 꺼도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호주에 혹시 여행가는 분이 있다면 퍼스에도 가 보시기를 권한다.

 

퍼스의 야경

 

호주의 퍼스는 그 이름을 스코틀랜드의 퍼스에서 가져온 것 같다. 스코틀랜드의 퍼스는 퍼스-킨로쓰군의 중심도시이다.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의 소설 The Fair Maid of Perth(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는 퍼스를 배경으로한 낭만소설이다. 비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La jolie fille de Perth (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밖에도 퍼스라는 지명은 호주의 타스마니아,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국 인디아나주, 미국 뉴저지주, 미국 뉴저지주, 미국 노우스 다코다주에도 있다. 모두 스코틀랜드의 퍼스를 오리지널로 삼은 도시들이다.

 

The City of Love(사랑의 도시): 파리를 말한다.

The City of Bay(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말한다.

The City of Joy(기쁨의 도시): 캘커타(칼코타)를 말한다. The City of Palace(궁성의 도시)라고도 한다.

The City of Brotherly Love(형제애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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