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좀 더 알기/시작하면서

나사렛 예수

정준극 2010. 12. 11. 13:51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 BC 5년경-주후 30년경)

 

교회를 수십년 다녔고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람들 중에도 정작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저 '믿∼싸옵나이다'라고 소리치면 만사형통인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말이다. 무릇 기독교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물안 개구리 식의 시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목수 요셉과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누구인지 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건그렇고, 필자가 무슨 대단한 신학을 연구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필자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은 다만 한 줌의 모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견해와 여러 학자들의 이런 저런 주장들을 종합정리해 보았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필자의 글은 오로지 개인적은 견해이며 거창하게 교회나 종단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우선 호칭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리가 보통 예수 그리스도 또는 간단히 말해서 예수라고 부르는 분의 타이틀은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시에는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과 함께 어느 마을의 출신이냐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여 이름에 출신지를 밝히는 것이 관습이었다. 예를 들면 막달라 마리아, 아리마대 요셉, 가롯 유다 등이다. 막달라라는 마을 출신의 마리아, 아리마대 마을 출신의 요셉, 가롯(이스카리옷) 출신의 유다를 말한다. 그러기에 당시의 관습에 따라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고향인 나사렛이라는 마을은 그만큼 중요하다. 하기야 오늘날에도 나사렛교회라는 명칭을 여러곳에서 찾아볼수 있고 나사렛신학교라는 곳도 있으니 예수의 생애에서 나사렛이 중요하기는 중요했던 모양이다. 

 

나사렛 마을

 

나사렛 예수는 기독교의 중심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석가모니, 이슬람교의 마호멧처럼 기독교의 교주라고 할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된대로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 예수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었고 소원하였던 하나님과 인간간의 화해를 마련해 주었다고 믿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있다. 기독교의 유일한 신앙인 부활신앙이다.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수 있는 중요한 소스는 신약성경의 복음서이며 그중에서도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들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성경이다. 공관이라는 것은 견해를 같이 한다는 뜻이다. 4복음서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내용에 있어서 여러가지로 비슷한 점이 있어서 공관(共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말하는 신약성경이라고 함은 정경(Canonical)을 말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현재의 신약성경이 성경의 전부인줄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한자 한자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경의 일자일획도 고치거나 없앨수가 없다고 배웠다. 과연 그런가? 우선 같은 기독교라고 해도 개신교와 가톨릭의 성경의 구성이 서로 다르다. 가톨릭의 성경에는 개신교에 없는 내용이 여러 경전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할수 없는 노릇이다. 잘 아는 대로 성경에는 정경과 외경(경외서: Apocryphal)이 있다. 외경, 즉 경외서에 대하여도 언급하는 것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파악하는데 경외서도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이다. 그리고 상당수 신학자들은 꼭 복음서뿐만 아니라 신약의 다른 파트를 통해서도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이해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기본적으로 유태인인것을 전제로하여 예수를 랍비(스승)라고 말한다. 그리고 병든자를 고치는 분이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죄로서 유대 총독인 폰티우스 필레이트(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을 당하신 분이라고 결론 짓는다.

 

오늘날의 나사렛. 마리아가 살았다고 하는 집에 교회가 세워졌다.

 

신학자들 중에서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몇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떤 사항들일까? 예수의 연대기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정확히 언제 태어나시어 언제 세상을 떠나셨는지가 궁금증의 포인트이다. 우리는 보통 올해가 서기로 2010년이므로 예수께서 바로 2010년전에 태어나셨으며 33세 때인 AD 33년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확실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들여다 보기로 하자. 다음 궁금증은 과연 예수께서 전하신 가장 중심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산상수훈이라는 사람도 있고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계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부활과 재림이야말로 가장 예수께서 전하신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는 사람도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곧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시었다. 재림이다. 그 재림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한편, 예수의 사회적인 신분이 어떤 것인지,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종교적인 교육은 어떻게 받았는지, 그리고 예수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에 대하여 아직도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마리아교회. 마리아가 살았었다는 집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다.

 

좀 비판적인 신학자들은 예수가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며 하늘로부터의 계시를 즐겨 제시한 사람이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현자(또는 랍비)인가 하면 카리스마가 있는 병고치는 사람, 독립된 종교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학자는 예수께서 독자적이고도 카리스마적인 유태 회복운동의 기반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어떤 학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이라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현세상에서의 급격한 사회변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갈릴리 바다가 보이는 가버나움. 그리스 정교회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적을 행하였고 교회를 창설하였으며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믿는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상당수의 신학자들은 예수가 창세 이후로부터 오래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구세주)라고 내세우고 있다. 구약에 적혀 있는 메시아에 대한 여러 예언을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삼위일체의 성자(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어떤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성부, 성자, 성신이 따로따로이면서도 하나라는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성경에 삼위일체에 대한 그런 설명이 없다는 것도 삼위일체 이론을 거부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산 가우덴치오 교회에 있는 성삼위일체 그림. 성령이 비둘기로서 나타나 있다.

 

유태교는 예수가 그들이 오래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타나크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신(알라: 여호와)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몇몇 선지자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대부분 이슬람 교인들은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을 믿으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내용은 믿지 않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이사(Isa)라고 부르고 있다. 일부 이슬람과 바하이교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예수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분이라고는 믿지 않고 있다.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아람어(Aramic)를 말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오랜 역사를 지닌 히브리어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람어는 기원전 600년경에 중근동에서 사용되던 언어로서 나중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가 된 것이다. 유대에서도 아람어는 히브리어 대신에 유대인들의 언어가 되었다. 구약의 '다니엘서'와 '에즈라'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며 바빌론아 탈무드와 예루살렘 탈무드도 마찬가지이다. 아람어는 주전 350 년경부터 주후 650 년경까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었다가 그후 아랍어에 밀려났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활동하던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히브리어보다는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복음서의 성격]

예수님의 생애와 그 의미는 복음서마다 다르게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이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나타나 보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역사서가 아니라 신학서이다. 어떤 신학자는 4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생애를 모두 종합하면 새로운 제5의 복음서를 만들수 있다고 했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의 내용이 서로 중복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공생 사역의 내용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