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오스트리아 유태인

비엔나의 유태인 유산

정준극 2010. 12. 18. 13:59

비엔나의 유태인 유산

 

비엔나의 크리스탈나하트에 거리에 끌려나와 청소를 하는 유태인들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비엔나에서 볼 만한 것이 많다. 잘 아는대로 비엔나의 유태인들은 수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온갖 박해를 다 받으며 지내가다 급기야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수많은 유태인들이 비참한 최후를 마지하였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비엔나의 유태인들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 더 좋을뻔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주로 동구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태인들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비엔나로 몰려왔다. 이제 비엔나에는 약 2만명의 유태인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유태인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엔나에서 유태인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지역은 2구 레오폴드슈타트이다. 처음에 게토로서 시작된 지역이다.

 

1구 도로테어가쎄에 있는 유태박물관의 전시실 일부

                        

비엔나의 유태인 역사를 찾아보려면 레오폴드슈타트의 유태인 밀집거주 지역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1구 인네레 슈타트에서도 가장 중심지역에 있는 Judenplatz(유덴플라츠)와 도로테어가쎄(Dorotheergasse)에 있는 유태 박물관(Judisches Museum)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세의 향취가 묻어 있는 유덴플라츠에는 독일의 계몽주의 작가이며 인본주의자인 고트프리드 에프라임 레씽(Gottfried Ephraim Lessing)의 기념상이 우뚝 세워져 있으며 유명한 쇼아(Shoa) 기념조형물, 그리고 또 하나의 유태 박물관이 있다. 유덴플라츠와 도로테어가쎄의 두 유태박물관을 모두 보고 싶으면 복합 티켓을 사면 유리하다. 유덴플라츠의 쇼아 기념조형물은 홀로코스트로 인한 유태인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쇼아기념물은 마치 두터운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토라와 탈무드 책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기념조형물의 하단 둘레에는 강제수용소에서 나치에 의해 희생된 6만명 오스트리아 유태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가 설계하여 2000년에 완성한 조형물이다. 유덴플라츠에서의 유태인에 대한 박해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아기념조형물의 오른쪽에는 일찍이 15세기에 자행된 유태인 박해를 기억하는 명판이 있다. 비엔나에서 유태인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박해는 1421년에 있었다. 유태인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비엔나에서 추방되거나 잡혀서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유태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사탄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어째서 유덴플라츠가 유태인 학살의 장소로 선정되었을까? 광장의 한쪽에 있는 유덴플라츠 박물관에 설명이 되어 있다. 중세에 이곳은 유태인 게토였다. 이곳에 유태 상인들이 시나고그를 짓고 학교와 다른 시설들을 지었다. 그러므로 유태인들을 잡아서 그 자리에서 처형하기에는 유덴플라츠가 제격이었다.

 

유덴플라츠의 쇼아(홀로코스트) 기념물

 

도로테어가쎄의 팔레 에스켈레스(Palais Eskeles)에 있는 유태박물관은 1896년 문을 열었다. 주로 유태인의 일상생활과 종교의식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런 종류의 박물관으로서는 아마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일 것이다. 전혀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 박물관은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문을 닫았으며 그후 1989년에 가서여 현대식으로 새단장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나치 시대에 문을 닫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자만 나치는 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귀중한 물건들을 무수히 가져갔다. 전시장은 4개 층에 걸쳐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을 새로 단장하여 오픈할 때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항도 전시함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강력했으나 그에 대한 것은 유덴플라츠의 박물관으로 넘기고 이곳에는 비엔나 유태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스토리를 중점으로 잡았다. 박물관 코너에는 서점이 하나 있다. 대리석을 깔아 놓은 현관이 아름답다. 그 옆에는 카페 타이텔바움(Cafe Teitelbaum)이 있다. 비엔나의 지식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다. 카페 타이텔바움은 비엔나의 전형적인 카페 분위기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유태박물관을 찾아오기 때문에 카페 타이텔바움도 국제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유덴플라츠의 레씽 기념상

 

슈베덴플라츠(Schwedenplatz)의 한쪽에 이른바 버뮤다 트라이앵글(버뮤다 삼각지대)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 있다. 비엔나에서도 나이트 클럽과 주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골목에 슈타트템펠(Stadttemple), 즉 시내회당이 있었다. 슈타트템펠은 1826년에 건설되었다.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인 시나고그이다. 요셉2세 황제가 공표한 법에 의하면 시나고그는 시내에 있어도 되지만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요셉2세 황제는 유태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유태교 회당을 짓는데 대하여 관대했지만 아무래도 순수 로마 가톨릭인 신성로마제국으로서 체면도 있으므로 유태교 회당을 짓되 밖에서 보이면 안된다는 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버뮤다 트라이앵글에 있는 유태교 시나고그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지었다. 그래서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당당하게 장엄한 모습이다. 슈타트템펠은 유명한 비더마이어 건축가인 요셉 코른호이젤(Josef Kornhausel)이 설계했다. 슈타트템펠은 1938년의 저 유명한 크리스탈나하트(Kristallnacht: 유태인 숙청의 밤)에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태인 시나고그이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무슨 건물인지 잘 보이지 않아서였다. 요셉2세의 선견지명?

 

자이텐슈테텐가쎄의 이스라엘 문화협외 건물에 있는 슈타트템펠 현관. 겉으로 보아서는 유태교 회당이 아니라 일반 사무실 건물처럼 보여서 1938년 11월의 크리스탈나하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