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나이팅게일 엘피 마이어호퍼(Elfie Meyerhofer)
지난날 화려했던 오페라 성악가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활동을 조명해 보는 일은 보람있는 일이다. 한때는 무대에서 커다란 박수갈채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들이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진 그들을 기억하며 본 블로그에 게재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오페라-오페레타 성악가들을 기억하여서 이곳 극동지역 한국의 다움 블루그에서 기록으로 남겨 둠은 비록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닐지언정 보람있는 일이다. 1920-30년대에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소프라노 엘피 마이어호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엘피 마이어호퍼는 1930년대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와 폭스오퍼 등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프라노였다. 비엔나의 신문들은 예술계의 사람들은 엘피 마이아호프를 '비엔나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엘피 마이어호퍼는 1917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태어났다. 1917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한창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다. 마르부르크는 드라우(Drau)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엘피는 어렸을 때에 드라우 강변에 앉아 성악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마리부르크는 오늘날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Maribor)이다.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그저 틈만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연극 흉내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서 노래와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도록 했다. 어린 엘피는 학교나 교회에서 요정들이 나오는 연극을 할려치면 두말없이 요정 역할을 맡아했고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은 교회의 중요한 절기에 아직 나이가 어려서 몇 년 있다가 들어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가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엘피는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처음에는 취리히로 갔다가 이어 비엔나로 갔으녀 얼마 후에는 베를린으로 가서 베를린음악예술대학에 입학하였다. 한국인들이 자주 유학가는 대학이다. 1935년 베를린음악예술대학에 들어간 엘피는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등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엘피는 1930년대에 비엔나 슈타츠오퍼, 베를린 슈타츠오퍼, 뮌헨 유겐트테아터(Jugendtheater)에 출연하였다. 대표적인 역할은 '마술미리'의 파미나 공주, '라 보엠'의 미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박쥐'의 로잘린데 등이었다. 엘피의 음성은 맑고 투명하며 청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엔나에서 엘피를 '비엔나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부른 것도 이때였다. 아름다운 모습과 아름다운 음성을 지닌 엘피에 대하여 영화산업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첫 역할은 1938년 '황금 언덕의 여인'(Frauen fur Golden Hill)였다.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 영화인 '자허 호텔'(Hotel Sacher)으로서 엘피는 유고슬라비아 민요를 불렀다. 이후 엘피는 뮤지컬과 오페레타를 영화로 만든 것에 계속 출연하였다. 후베르트 마리슈카(Hubert Marischka)의 '무도회의 초대'(Wir bitten zum Tanz: 1941), 아르투르 마리아 라베날트(Arthur Maria Rabenalt)의 '나의 부인, 테레사'(Meine Frau Teresa: 1942) 등의 음악영화에 출연하였다. 전쟁이 한창 중인 1944년에는 '나이팅게일의 노래'(Das Lied der Nachtigal)에 출연하였다. 엘피 마이어호퍼를 그린 영화였다.
전쟁이 끝난후 엘피는 비엔나와 독일의 연합군 주둔군을 위해 오페라에 출연하고 콘서트에서 노래를 불렀다. 194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엘피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특별 초청하였다. 엘피는 잘츠부르크에서 마리아 체봐타리(Maria Cebotari)와 함께 '휘가로의 결혼'에 출연하여 케루비노를 맡았다. 놀라운 박수를 받았다. 엘피는 프랑스, 벨기에,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음반을 내놓았지만 조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취입하지 않았다. 엘피는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계속 영화에 출연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 영화는 '잃어버린 멜로디'(Verlorene Melodien: 1952)이었으며 독일에서의 마지막 영화는 '마담 퐁빠두'(Madame Pompadour: 1960)였다. 1974년에 엘피는 대대적인 세계 순회 연주회를 떠났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지에서 오페라와 오페레타에 성공적으로 출연하였다.엘피는 생전에 수많은 상과 메달을 받았다. 예를 들면 '요한 슈트라우스상'이었다. 엘피는 건축가인 토마스 라우터바흐(Thomas Lauterbach)라는 사람과 결혼하였다가 1959년에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하여서 이혼하였다. 엘피는 1992년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마리아 엔처스도르프(Maria Enzersdorf)에서 세상을 떠났다. 엘피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까지도 무대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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