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릴리엔펠트(Lilienfeld) 수도원

정준극 2011. 1. 8. 11:46

릴리엔펠트(Lilienfeld) 수도원

Stift Lilienfeld

 

니더외스터라이히의 릴리엔펠트에 있는 릴리엔펠트 수도원과 교회

 

릴리엔펠트 수도원은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인 장크트 푈텐 남쪽 릴리엔펠트(Lilienfeld) 마을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이다. 주소는 릴리엔펠트의 리제 프로코프 슈트라쎄(Liese Prokop St) 10번지이다. 이 수도원은 1202년 레오폴드 6세가 설립하였다. 당시 레오폴드 6세는 오스트리아와 슈티리아의 군주로서 릴리엔펠트 수도원을 지은 것은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부속수도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관계로 릴리엔펠트 수도원의 역대 수도원장들은 합스부르크 왕실과 밀접한 유대를 맺으며 지냈고 그로 인하여 수도원의 재정도 부유했다. 매튜 콜봐이스(Matthew Kollweis: 1650-95) 수도원장은 뜻한바 있어서 수도원을 요새로 만들어 터키의 비엔나 침공에 대비하였다. 그는 수도원 내에 병영을 세우고 난민들을 위한 수용소도 마련하였다.

 

릴리엔펠트 수도원 도서실

 

17세기에 그때까지의 건물들은 확장되거나 대폭 보수되었다. 모두 바로크 양식으로 보수하였다. 18세기 초반에는 종탑을 세웠으며 이어 도서실을 마련하고 교회 내부의 단장도 마무리했다. 그러다가 요셉 2세 황제 때에 수도원 정리 사업으로 압박을 받았다. 도서실의 귀중한 장서들, 문서, 기타 성물들은 하일리겐크로이처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얼마후 요셉 2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동생인 레오폴드 1세가 황제에 오르자 수도원의 귀중한 자산들은 되돌아왔다. 1810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수도원의 대부분이 파손되었다. 새로 수도원장으로 임명된 요한 피르커(Johann Pyrker)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수도원의 재건에 힘썼다. 그는 나중에 베니스 감독이 되었으며 에거(Eger)의 대주교가 되었다. 1976년 교황 바오로6세가 릴리엔펠트 수도원 교회를 교황청 소속의 특별 교회(바실리카 미노르)로 임명하였다.

 

수도원교회 내부

 

1980년대부터 릴리엔펠트 수도원은 여름음악아카데미(Sommerakademie Lilienfeld)를 열어왔다. 7월에 2주동안 음악 학도들이 와서 마스터 클라스를 갖는 것이다. 2008년만 해도 세계 27개국에서 160명이 참가하였다. 레오폴드 6세는 수도원을 설립하고 나서 먹고 살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여 바덴과 굼폴드스키르헨 중간에 있는 넓은 땅을 기증하였다. 이 땅에 수도사들의 대단한 규모의 장원을 건설하였다. 릴리엔펠더호프라는 이름의 장원이다. 이 안에 고딕 교회, 장원 농가 등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릴리엔펠트 수도원은 2006년에 당국과 99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릴리엔펠트라는 말은 백합의 뜰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릴리엔펠트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