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St Georgenberg-Fiecht) 수도원

정준극 2011. 1. 10. 07:06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St Georgenberg-Fiecht) 수도원

Stift St Georgenberg-Fiecht - St Georgenberg-Fiecht Abbey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 수도원. 휘히트 마을에 있다.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 수도원은 티롤의 봄프(Vomp) 지방의 휘히트(Fiecht) 마을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1708년에 설립되었으며 휘히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게오르겐버그에 있었던 장크트 게오르겐버그 수도원을 모체로 삼고 있다. 오리지널 장소인 게오르겐버그에는 아직도 1138년에 설립된 옛 교회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게오르겐버그의 수도원은 그 자리에 어떤 은둔자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기도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사람은 10세기의 복자 라트홀트(Rathold)라는 사람으로서 인근 아이블링(Aibling) 출신의 귀족이었으나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오로지 기도와 고행에만 정진하기 위해 게오르겐버그 산중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는 것이다.

 

예전 수도원이었던 게오르겐버그 수도원

 

1097년에 헨리4세 황제는 복자 라트홀트의 신실한 기도생활 얘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암자를 확장하여 더 많은 수도승들이 거처할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그리고 1138년에는 베네딕트 수도회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 수도원은 점차 부흥되어 각처로부터 더욱 많은 수도승들이 집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티롤지방에도 우리나라의 호사다마라는 속담이 있는지 수도원에 자꾸 불이 났다. 가장 엄청난 피해를 준 화재는 1705년 10월 31일이었다. 모든 건물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래서 터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17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일단 수도원을 옮기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으나 자금이 여의치 않았다. 겨우 건물들을 완선한 것은 1750년으로서 거의 10년만의 일이었다. 교회 종탑은 그보다도 훨씬 후인 1781년에 완성되었다. 건축비가 별로 많지 않아서 건물의 외관은 평범한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은 간직하는 건물들이다.

 

1806년 프레스부르크 조약이 체결되자 티롤은 오스트리아에서 바바리아로 주소지를 옮겼다. 휘히트에 있는 수도원은 바바리아 정부의 핍박을 받았다. 공연히 못살게 굴었다. 그러다가 1816년 나폴레옹 이후 티롤이 다시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자 휘히트 수도원은 활개를 펴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1868년에 또 한번의 대화재가 발생했다. 건물이 불에 탄 것은 물론이지만 귀중한 그래픽 자료들이 거의 모두 소실되었다. 다만, 다행하게도 도서실은 멀쩡하여서 장서의 피해는 피하였다. 1941-45년간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 수도원은 당연히 나치의 압박을 받았다. 수도승들은 추방되었고 건물은 나치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나마 수도승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서 복구에 힘썼다.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1100년경부터였다. 그러다가 1310년에 그리스도의 성혈을 모시게 되자 수많은 순례자들이 너도나도 방문하기 시작했다. 가장 숭배를 받는 성물은 1415년경에 만들었다는 고틱 양식의 피에타와 성게오르게 성화, 그리고 당연히 성혈이다. 성게오르게와 성야고보에게 봉헌된 교회는 1705년의 대화재 이후에 그 자리에 재건된 것이지만 원래 옛 교회를 거의 그대로 복원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확장해야할 필요가 있어서 173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하였고 1866년에는 내부의 프레스코 등을 다시 만들거나 수선하였다. 작은 교회인 보리수교회(Lindenkirche)는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로 1230년경부터 석조로 존재하여 왔다. 원래 내부에 피에타를 봉안하였으나 나중에 현재의 큰 교회로 옮겼다.

 

장크트 게오르겐버그-휘히트 수도원의 아랫 마을인 슈탄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예수마음(Herz Jesu)교회가 있다.

 

예전의 장크트 게오르겐버그 수도원은 산중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도원까지 가려면 계곡의 험난한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당연히 다리가 설치되었다. 15세기에 만들어졌다가 1705년에 재건된 다리는 호에 브뤼케(Hohe Brucke)라고 부른다. 아랫 마을인 슈탄스(Stans)로부터 수도원으로 올라가자면 새로난 길도 있지만 대체로 예전부터 다녔던 늑대계곡(Wolfsklamm)을 거쳐서 올라간다.

 

옛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등산 길인 늑대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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