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뮤직 페스티발

구스타브 말러 서거 100 주년 기념행사

정준극 2011. 4. 2. 07:56

2011년 5월 18일: 말러 서거 100주년 기념

세계 각지에서의 다채로운 행사

 

비엔나 9구 마리안넨가쎄 20번지 건물에 붙어 있는 '말러 서거 장소' 명판. 이 건물은 뢰브라는 이름의 요양소였다. 말러는 이 건물에서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가 설치했다.

 

2010-2011년은 말러를 위한 기간

2010년은 위대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구스타브 말러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지만 2011년은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가 된다. 그리하여 말러를 기념하는 행사가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전세계에서 활발하게 개최되어 말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2011년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서는 그가 태어난 칼리스테(Kaliste),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흘라바(Jihlava 또는 Iglau), 그가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비엔나, 그리고 그가 지휘활동을 했던 프라하, 류블리아나(슬로베니아),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뉴욕 등지에서 특별행사들이 연초부터 이미 진행되었고 연중 계속 계획되어 있다. 특히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서거한 5월 18일을 전후하여 집중되어 있다. 말러가 태어난 칼리스테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흘라바는 원래 보헤미아 지방으로서 말러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하여 있었으며 현재는 체코공화국에 속하여 있다. 그래서 말러를 추모하는 행사들은 체코공화국에서 다채롭게 열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말러가 공부했고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활동을 했으며 결혼하여 살았고 세상을 떠난 비엔나가 모든 행사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말러에 대한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놀랍도록 새로워지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행사들은 말러에 대한 보다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칼르스테에 있는 말러의 생가(기념관)

 

생가가 있는 칼리스테의 말러음악축제

구스타브 말러는 1860년 7월 7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하여 있던 칼리스테(독일어로는 Kalischt)에서 태어났으며 1911년 5월 18일 향년 51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가 태어난 칼리스테라는 마을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하여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보헤미아 지방이었으므로 오늘날에도 말러를 ‘보헤미아의 음악가’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칼리스테는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서쪽,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너무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학교조차 변변하지 못했다. 말러는 태어난지 몇 달후에 부모와 함께 인근의 이흘라바로 옮겨 살게 되었다. 말러는 이흘라바에서 고등학교(김나지움)까지 다녔다. 그러므로 이흘라바는 사실상 말러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칼리스테는 말러를 잊을수 없었다. 몇 년전 생가를 복원하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해마다 말러를 기념하는 음악축제를 열고 있다. 2011년 5월 21일에는 각국에서 참가하는 청소년 밴드들의 경연대회가 열린다. 이어 5월 18일, 말러의 서거일에는 칼리스테의 말러 생가에서 프라하심포니의 실내오케스트라가 특별연주회를 갖는다. 지휘는 유렉 디발(Jurek Dybal)로서 그는 비엔나교향악단의 멤버이다.

 

칼리스테에서의 국제청소년밴드페스티벌

 

이흘라바의 말러 2011 음악페스티벌

이흘라바는 ‘말러 이흘라바 2011 음악 페스티벌’(Mahler Jihlava 2011 Music Festival)을 열어 위대한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다. 페스티벌은 5월 15일부터 시작된다. 그 전날인 5월 14일에는 이흘라바의 시장과 페스티벌위원장이 비엔나를 방문하여 ‘구스타브 말러’라는 이름의 특별 개발된 장미 품종을 그린칭공동묘지에 있는 말러의 묘소에 심는 의식이 계획되어 있다. 새로운 장미 품종인 ‘구스타브 말러’는 이미 몇 년 전에 개발되어 칼리스테에 있는 말러의 생가에 심어진바 있다. 이흘라바의 주민을 대표한 시장은 이흘라바 인근의 비소치나(Vysocina) 고원에서 가져온 화강암 돌들을 말러의 묘지에 얹어 놓기도 한다. 이는 유태인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유태인들은 무덤에 작은 돌들을 가져다 얹어 놓아 추모의 정을 표현하는 관습이 있다. 이흘라바 페스티벌의 정식 오프닝은 5월 17일에 거행된다. 이흘라바 중앙광장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특별연주를 하는 것으로 ‘말러 2011 페스티벌’의 오프닝을 알린다. 이날 오후에는 이흘라바에 있는 말러가 살던 집에서 알프레드 롤러(Alfred Roller)의 특별전시회가 개막된다. 알프레드 롤러(1864-1935)는 비엔나에서 말러와 함께 예술 활동을 했던 화가이다. 그는 말러가 비엔나 궁정오페라극장(현재의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 이 오페라극장의 벽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완성한바 있다. 이어 이날 저녁에는 성십자가교회에서 갈라 콘서트가 열린다. 성십자가교회는 최근 아름답게 내부단장을 다시 하였다. 그러므로 갈라 콘서트의 참석자들은 성십자가교회의 아름다운 내부장식을 감상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갈라 콘서트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제10번의 아다지오, 그리고 베르디의 진혼곡이 연주된다. 말러는 교향곡 제10번의 아다지오 부분만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날 연주는 브르노교향악단과 브르노의 체코필하모닉합창단이 맡는다. 한편, 이흘라바에서는 매년 ‘1천인의 음악’(Music of Thousands)이라는 행사가 열려왔다. 세계 각국의 유명 음악인들이 참가하는 성대한 행사이다. 2011년에는 ‘1천인의 음악’ 행사와 ‘말러 2011 페스티벌’의 행사가 공동으로 개최된다.

 

이흘라바에서의 말러 갈라 콘서트

 

프라하의 스프링 페스티벌은 말러 페스티벌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은 매년 체코공화국의 수도인 프라하에서는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행사이다. 1952년부터 시작한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은 매년 5월 12일, 체코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스메타나의 서거일을 기념하여 열린다. 2011년에도 5월 12일에 시작하여 6월 4일까지 계속된다.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은 관례적으로 5월 12일의 오프닝에서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Ma vlast)을 연주하며 마지막 날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한다. 그러나 2011년에는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마지막 날인 6월 4일에 말러의 교향곡 제8번을 거장 사이몬 래틀(Simon Rattle) 경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이 연주한다. 연주회장은 프라하 시립 스메타나 홀이다. 특히 2011년에는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의 후속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6월 20일에 미국 보스턴음악원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방문하여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한다. 체코공화국은 말러가 태어나고 청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 현재의 체코공화국이므로 말러를 체코의 음악가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체코공화국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프라하에는 ‘구스타브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있다.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의 프라하스프링페스티벌

 

슬로베니아의 말러사이클연주회

슬로베니아의 류블리아나는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말러 사이클 연주회’를 갖는다. 비엔나음악원을 졸업한 말러는 21세의 청년으로서 류블리아나(당시에는 Laibach라고 부름) 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말러는 류블리아나에서 오페라를 처음 지휘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였다. 말러는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을 류블리아나에서 보냈지만 그에게 있어서 류블리아나는 그가 젊은 패기에 넘쳐 있었던 추억의 장소였다. 류블리아나는 이미 지난 2월 18일에 말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슬로베니아 교향악단이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했다. 이날의 말러 연주회에는 슬로베니아 대통령인 다닐로 튀르크와 영부인이 참석하였다. 말러는 류블리아나에서의 지휘자 생활을 끝내고 다시 비엔나에 돌아와 카를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이어 올뮈츠, 카쎌, 프라하, 라이프치히, 부다페스트 등지에서 지휘활동을 하였다.

 

류블리아나의 말러 교향곡 연주회

 

라이프치히에선 국제말러페스티벌

당시 프라하에는 새로운 국립극장이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신독일극장’은 사양길에 접어 들기 시작했다. ‘신독일극장’의 부흥을 위해 말러가 초청되었다. 말러는 이곳에서 모차르트와 베버 등의 오페라를 지휘하여 ‘신독일극장’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았다. 마침 라이프치히에서 초청이 왔다. 말러는 1886년부터 1888년까지 약 2년 동안 라이프치히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첫 번째 임무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말러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링 사이클’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유태인을 혐오하던 바그너의 작품을 유태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말러가 훌륭하게 지휘하여 성공적인 공연이 되도록 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말러는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에 교향곡 제1번을 완성했으며 이어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의 작곡에 착수하였다. 라이프치히는 말러가 활동했던 것을 기념하여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맞는 2011년에 특별히 ‘라이프치히 국제 말러 페스티벌’(Internationales Mahler Festival Leipzig)을 주관한다. 2011년 5월 17일부터 5월 29일까지 순전히 말러의 작품만을 가지고 페스티발을 진행한다. 5월 17일과 18일에는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오케스트라, MDR 방송합창단, 베를린방송합창단 등이 교향곡 제2번을 리카르도 샤일리(Riccardo Chailly)의 지휘로 연주한다. 5월 19일에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드레스덴 오페라 합창단이 교향곡 제2번을 연주하며 5월 20일에는 MDR 교향악단이 교향곡 제10번을, 5월 21일에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이 교향곡 제7번을, 5월 22일에는 파비오 루이지(Fabio Luigi)가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가 ‘대지의 노래’와 ‘장례식’(Tetenfeier)을 연주한다. 솔리스트는 알토 안나 라르슨(Anna Larsson), 테너 로버트 딘 스미스(Robert Dean Smith)이다. 이어 5월 23일에는 알란 길버트(Alan Gilbert)가 지휘하는 뉴욕필이 교향곡 제5번을, 5월 24일에는 취리히의 톤할레(Tonhalle)오케스트라가 교향곡 제6번을, 5월 25일에는 말러실내악단이 교향곡 제4번과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5월 26일, 27일, 29일에는 게봔트하우스오케스트라 등이 리카르도 샤일리의 지휘로 교향곡 제8번을, 5월 28일에는 다니엘레 가티(Daniele Gatti)가 지휘하는 빈필이 교향곡 제9번이 연주된다. 이렇듯 라이프치히의 국제말러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여러 교향악단이 여러 거장들의 지휘로 연주되기 때문에 말러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감상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라이프치히의 말러가 살던 집. 이곳에서 교향곡 제1번을 완성했다.

 

비엔나와 국제 구스타브 말러협회의 활동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International Gustav Mahler Society)는 1955년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의 제안으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빈필의 사무실을 빌려서 업무를 보았으나 현재는 비엔나의 4구 뷔드너 귀어텔 6번지에 별도의 회관을 가지고 있다.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는 세계 각국에 지회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 네덜랜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에 지회가 있다.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는 말러자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말러와 관계되는 서적을 출판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업은 ‘황금말러상’을 제정하여 말러 음악의 이해증진을 위해 노력한 단체나 개인에게 증정하는 것이다. 첫 황금말러상은 1957년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카를 슈리히트(Carl Schuricht: 1880-1967)가 받았다. 이밖에 라파엘 쿠벨릭, 레오나드 번슈타인, 요셉 크립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지휘자, 크리스타 루드비히,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토마스 햄슨 등 성악가, 뉴욕필, 빈필 등 교향악단, 토블라흐구스타브말러협회 등 단체들이 지금까지 황금말러상을 받았다.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는 2011년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연초부터 학술세미나, 연주회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5월 24-28일간 비엔나에서 ‘말러의 서거 이후’에 대한 국제심포지움을 추진하고 있으며 말러의 서거일인 5월 18일에는 오스트리아의 남쪽 그라츠 부근의 토벨바드(Tobelbad)에서 연주회와 함께 말러추모행사를 갖는 것이다. 온천휴양지인 토벨바드는 말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10년 잠시 요양을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황금말러상을 받는 지휘자 겸 작곡가인 카를 슈리히트. 1957년.

 

오스트리아에는 말러가 비엔나를 벗어나서 지방의 한적한 곳에서 요양도 하며 작곡에 전념하던 곳이 두세곳이 있다. 그런데 말러는 아주 작은 오두막집에서 지냈다. 잘츠캄머구트의 아터제(Attersee) 인근, 슈타인바흐(Steinbach)에 있는 작곡가의 오두막집,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는 토블라흐(Toblach: Dobbiaco)의 오두막집이 그러하다. 토블라흐에서는 2011년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말러 음악주간’(Mahler Musik Woche)을 개최하고 토블라흐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갖는다. 말러의 생애와 작품을 되새겨보는 기념세미나, 연주회, 전시회 등은 비엔나에서 연중 수시로 개최되고 있다. 예를 들면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가 주관하는 국제음악페스티벌은 2011년을 ‘말러의 해’로 삼고 말러의 작품만을 중점 연주한다. 콘체르트하우스의 ‘말러의 해’ 행사는 5월 14일부터 시작하여 약 60회의 콘서트로 이루어진다. 빈필이 말러의 교향곡으로 오프닝 연주회를 가지며 샌프란시스코교향악단, 밤버그(Bamberg)교향악단 등이 페스티벌 기간 중에 역시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말러의 가곡 연주회에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혀가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베이스 플로리안 뵈슈(Florian Boesch)와 영국의 테너 이안 보스트릿지(Ian Bostridge)가 특별 출연한다. 이밖에도 베를린, 함부르크, 취리히, 런던, 뉴욕, 시카고,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말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학술행사와 연주회가 2011년 한해 동안 끊임없이 개최되고 있다.

 

아터제의 슈타인바흐에 있는 말러의 작곡오두막집 재개관 기념식

 

비엔나에서의 말러 발자취

말러의 생애는 비엔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비엔나의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말러는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비엔나에서 말러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답사행사를 갖는다. 이들과 함께 비엔나에서의 말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말러는 15세에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기 위해 고향 이흘라바를 떠나 비엔나로 왔다. 말러는 비엔나음악원(현재의 비엔나음대의 전신)을 졸업했다. 말러는 1897년부터 1907년까지 10년간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을 맡아 했다. 말러는 슈타츠오퍼의 지휘자로 임명되고 나서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슈타츠오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슈타츠오퍼의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에 ‘말러의 방’이 있다. 로댕이 제작한 말러의 기념상이 전시되어 있다. 슈타츠오퍼 건너편 길은 말러를 기념하여 ‘말러슈트라쎄’(Mahlerstrasse)라고 이름을 붙였다. 슈타츠오퍼 옆건물에 있는 ‘슈타츠오퍼박물관’에는 말러를 기념하는 여러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시내에 있는 ‘음악의 집’(Haus der Musik)에는 ‘말러특별전시실’이 있다. 이밖에도 ‘음악의 집’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폰 베베른 등 비엔나 음악가들을 위한 별도의 전시실이 있다. ‘음악의 집’에 있는 말러특별전시실은 말러의 조카손자가 되는 페터 말러가 디자인했다. ‘음악의 집’ 안뜰에는 한스 쿠니츠버거가 제작한 말러 흉상이 놓여 있다. 비엔나에 있는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 사무실의 자료실에는 말러의 서신이나 악보등 그에 대한 자료가 잘 전시되어 있다. 또한 비엔나에 있는 ‘쇤베르크기념관’에도 말러에 대한 자료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슈타츠오퍼에 있는 로댕 제작의 말러 기념상

 

칼스플라츠에 있는 칼스키르헤(칼교회)는 말러가 1902년 3월 9일 알마 쉰들러와 결혼한 장소이다. 말러와 알마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찾아가 보아야 할 장소이다. 비엔나 북쪽의 그린칭공동묘지에는 말러의 묘소가 있다. 말러의 묘지 옆에는 어릴 때에 세상을 떠난 말러의 큰 딸 마리아의 묘지가 있다. 또한 말러의 묘지 부근에는 훗날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재혼한 알마의 묘지가 있다. 비엔나에서 말러가 살았던 집은 여러 개가 있으나 대부분 아직도 개인소유여서 별다른 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중에서 몇군데에는 기념 명판이 붙어 있어서 말러가 살았었다는 것을 기념하고 있다. 아우엔브루거가쎄 2번지는 말러가 1898년부터 1909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 집은 유명한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Otto Wagner)가 설계하였다. 말러가 1909년부터 세상을 떠난 1911년까지 근거로 삼고 지냈던 집은 19구 그린칭의 볼러가쎄 20번지에 있는 이른바 ‘칼-몰-하우스’(Carl-Moll-Haus)이다. 유명한 화가인 칼 몰의 두 번째 부인은 말러의 장모였다. 그래서 말러는 외국 여행을 가지 않고 비엔나에 있을 때에 칼 몰의 저택에서 지냈다. 9구 마안넨가쎄 20번지는 ‘뢰브(Loew)요양소’가 있던 건물이다. 이곳에서 말러가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이 건물의 정면에는 말러가 세상을 떠난 곳이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그린칭공동묘지에 있는 말러의 묘지

 

우리나라의 말러 기념행사

우리나라에서는 말러를 기념하는 행사가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2010-2011년에 ‘리멤버링 구스타브 말러’ 시리즈를 추진하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이미 2010년에 교향곡 제1번(거인)을 연주한바 있다. 서울시향도 말러 교향곡의 전곡 연주에 나섰다. 서울시향은 2010년에 교향곡 제1번, 2번, 3번, 10번을 연주했고 2011년에는 교향곡 제4번부터 9번까지를 마스터할 계획으로 있다. 서울시향의 대장정은 오는 12월 22일 ‘천인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제8번의 연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찍이 말러는 ‘교향곡은 이 세상과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중심 교향악단들이 말러의 교향곡 전편을 연주한다는 것은 말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귀중한 노력이다.

 

샌프란시스코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8번 '천인의 교향곡'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