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더 알기

여성 작곡가의 '난파선약탈자들'(The Wreckers)

정준극 2011. 5. 18. 10:09

'난파선약탈자들'(The Wreckers)

여성 오페라 작곡가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영국의 에텔 메리 스마이스 여사(Dame Ethel Mary Smyth)의 작품

 

에텔 메리 스마이스 여사

 

17세기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고전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한 여성은 800 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오페라를 작곡한 여성 작곡가는 두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성은 영국의 에텔 메리 스마이스 여사(Dame Ethel Mary Smyth: 1858-1944)이다. 모두 6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난파선약탈자들'(The Wreckers)이다. '난파선약탈자들'은 3막의 오페라이다. 영국 작곡가에 의한 작품이지만 대본은 오리지널 대본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미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 자란 헨리 브루스터(Henry Brewster)가 프랑스어 대본을 완성했다. 영국보다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벨기에, 모나코 등에서 더 환영을 받을 작품으로 생각해서 프랑스어로 대본을 만들었다. 그러나 초연은 1906년 11월 11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다. 프랑스어 대본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초연을 가졌다. 악보 출판과 공연장소 섭외 작업이 지연되어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서 초연을 가지게 되었다.

 

'난파선약탈자들'은 콘월(Cornwall) 지방의 어느 외딴 해변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것이다. 폭풍이 불고 파도가 휘몰아치는 밤이면 근처를 항해하던 배들은 바위 투성이의 해변에 부딪혀 난파되기가 일쑤이다. 그러면 그런 사태를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난파선에 가서 물건들을 꺼내가져다 썼다. 좋게 말하면 합법적인 습득이고 나쁘게 말하면 약탈이다. 농사도 지을수 없는 척박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소득을 올릴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난파선에 실려 있던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실은 합법적인 습득이 아니라 약탈에 더욱 가깝다. 왜냐하면 그런 밤에 뱃길을 지켜주기 위해 횃불을 일부러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등대가 없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해변의 바위 절벽 위에서 횃불을 밝혀 뱃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러므로 폭풍이 이는 그런 밤에 횃불을 켜들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배반자가 되는 셈이다.

 

바로 문제의 그 마을에서 주민들이 난파선의 물건들을 차지하고 있는 장면의 그림

 

스마이스 여사는 '난파선약탈자들'를 1902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1906년에야 겨우 일단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마이스 여사는 이를 위해 몇 번이나 전설에나 나올법한 그 마을을 찾아가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옛날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헨리 브루스터의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을 완성했다. 그러나 스코어를 출판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스마이스 여사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여권신장 운동가였다. 훗날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에 앞장 서기도 했다. 1911년에는 런던에서 여성참정권을 반대하는 정치인의 집에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리고 가족들을 위협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두 달 동안 옥살이도 했다. 영국 여성참정권운동연맹(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의 노래도 작곡했다. The March of the Women(여성행진곡)이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옷차림도 남자와 같았다. 스코틀랜드의 트위드 옷을 입고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입에는 남성들이나 피는 시가를 물고 다녔다. 그런 특이한 모습의 그가 '난파선약탈자들'의 스코어를 출판하기 위해 유럽의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의 출판가들은 소심해서 그런지 또는 고집에 세서 그런지 스마이스 여사의 스코어를 출판하기를 꺼려 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 대본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선뜻 출판해 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낙관은 낙심으로 변했다. 천만다행으로 라이프치히의 어떤 출판사가 출판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라이프치히에서 초연을 갖게 된 것이다. 다만, 프랑스어 대본을 독일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독일어로 초연을 갖게 된 것이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초연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16차례나 커튼 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론의 평론들도 호의적이었다. 이에 힘입은 스마이스 여사는 합스부르크의 도시인 프라하에 가서 공연키로 작정했다. 그러나 프라하의 공연은 신통치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 밖으로 차가웠다. 실망한 스마이스 여사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났다. 마침 거장 토마스 비챰(Thomas Beecham)경이 스마이스 여사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오페라 '난파선약탈자들'은 토마스 비챰 경의 주선과 후원으로 1909년 6월 22일 런던의 여왕폐하극장(He Majesty's Theater)에서 공연될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이스 여사는 비챰 경의 리허설을 보고 상당히 못마땅히 생각했다. 우선 겨우 10일 밖에 리허설 기간이 없었다는 것도 흡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비챰 경은 스마이스 여사와 협의도 하지 않고 스코아의 일부분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참고 고맙다고 할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비챰 경은 '난파선약탈자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래서 이듬해인 1910년에는 코벤트 가든의 정기 시즌의 레퍼토리로 포함하기도 했다.

 

1907년에 당시 비엔나 궁정극장(현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인 구스타브 말러는 '난파선약탈자들'을 비엔나에서 공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마이스 여사로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스마이스 여사는 말러에 대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자이다. 음악적 본능이 충만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엔나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엔나의 사람들이 말러를 유태인이라고 하여 궁정극장에서 추방했기 때문이다. 스마이스 여사는 이를 못내 아쉬워 했다. 그후로 '난파선약탈자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공연되었다. 1939년이 마지막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후로는 전쟁 때문이었는지 모두 여유가 없어서 공연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에 콘월 홀에서 리바이벌 되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07년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 것이다. 미국 초연이었다.

 

'난파선약탈자들'의 등장인물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프라노 1명, 메조소프라노 1명, 테너 1명, 바리톤 2명이다. 마을 사람들과 어부들은 합창단이 맡아서 한다. 파스코(Pascoe: Bar)는 마을의 목사님이다. 정식으로 목사님이 부임하지 않아서 평신도로서 설교를 맡아하고 있을 뿐이다. 티르자(Thirza: MS)는 목사님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다. 로렌스(Lawrence: Bar)는 등대지기이다. 마크(Mark: T)는 젊은 어부이다. 에이비스(Avis: S)는 로렌스의 딸이다.

 

등대지기 로렌스

 

제1막. 주일날 저녁이다. 마을 사람들은 예배당으로 가는 길에 주점에 들려서 한 잔씩 걸치고 있다. 평신도 목사인 파스코는 이 모습을 보고 안식일에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꾸짖는다. 파스코는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마을에 난파선을 보내주지 않고 계시다고 선언한다. 난파선이 들어오지 않으면 약탈할 물건이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더 곤란해 진다. 등대지기인 로렌스가 앞으로 나서서 한마디 거든다. 해변의 절벽에서 누구인지 횃불을 들고서 지나가는 배들에게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난파선이 생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면서 배반자는 마땅히 잡아서 족쳐야 한다고 흥분한다.

 

젊은 어부인 마크는 오래전부터 등대지기의 딸인 에이비스를 좋아하여 은근히 청혼까지 하였다. 그런데 요즘들어 마크의 태도가 달라졌다. 평신도 목사님의 젊은 부인인 티르자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 에이비스는 아무래도 마크의 태도가 이상해서 몰래 뒤를 쫓아가본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배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듣고 있는데 마크 만은 새로운 애인인 티르자의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에이비스가 속 상하고 질투심이 날 것은 분명했다. 이제 마크는 어떻게 해서든지 보상을 받아야 한다. 한편, 예배당에서 파스코는 마을 사람들에게 먹고 살려면 어쩔수 없으니 난파선 약탈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마을 사람들은 파스코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가자 파스코는 집에 있는 젊은 아내 티르자에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자 티르자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외딴 마을에서 살고 싶지 않으며 더구나 마을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행태를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잠시후 난파선이 하나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제발 물건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해변으로 달려간다. 마침 그때 에이비스가 나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배반자는 다름아닌 목사님인 파스코이며 그가 횃불을 들어 지나가는 배들에게 경고를 보낸 사람이라며 비난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마을 사람들은 파스코의 행동을 눈여겨 보자고 합의한다.

 

제2막. 절벽 아래의 외딴 해변이다. 마크가 난파선에서 흘러나온 물건들과 나무토막들을 건져내고 있다. 사실은 마크가 횃불을 들어 지나가는 배들에게 경고를 보낸 사람이다. 마크가 횃불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멀리서 타르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티르자는 지금 마을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려오고 있는데 만일 횃불을 밝히면 모두들 알아채고 마크를 잡아 둘것이라고 경고한다. 해변에 도착한 티르자는 마크에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크는 만일 자기가 붙잡히면 티르자도 위험에 빠질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는 티르지아게 파스코로부터 빠져나와 자기와 함께 멀리 도망가자고 간청한다. 티르자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다가 마크가 계속 간청하자 마음이 기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디어 횃불에 불을 붙여 높이 든다. 마치 승리를 획득한듯!

 

마크와 티르자가 함께 도망가려고 할 때 파스코가 도착한다. 파스코는 마크와 함께 떠나려는 여자가 다름 아닌 티르자인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고 해변에 쓰러진다. 파스코는 에이비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파스코의 주변에서 횃불을 발견하고 파스코가 틀림없이 배반자라고 믿는다.

 

제3막. 어떤 동굴이다. 당장 임시 법정이 마련된다. 등대지기인 로렌스가 검사의 역할을 맡는다. 왜냐하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스코는 즉결법정을 인정할수 없다고 하며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에이비스는 파스코가 젊은 부인인 마녀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며 아직도 젊은 부인인 티르자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파스코의 옆에 횃불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였다. 사람들은 파스코를 사형에 처하라고 소리친다. 그때 갑자기 마크가 나타나 횃불을 밝힌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라고 고백한다. 티르자도 나타나 자기도 횃불을 밝히는데 함께 했다고 증언한다. 마크와 티르자는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에이비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크를 구하기 위해 마크가 밤새 자기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였다. 판결이 불가피했다. 마크와 티르자는 쇠사슬에 묶여 동굴안에 놓인다. 바닷물이 밀려오면 동굴에 물이 들어차 이들을 숨지게 할 것이다. 파스코가 다시한번 티르자에게 잘못을 뉘우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간청한다. 그러나 티르자는 또 다시 그같은 간청을 거절한다. 마크와 함께 죽겠다는 것이다. 바닷물이 높아져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죽음을 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