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더 알기

크리스마스 오페라

정준극 2011. 5. 20. 20:15

크리스마스 오페라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오페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는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의 단막 오페라인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들(Amahl and the Night Visitors)일 것이다. 벤자민 브리튼의 '어린 굴뚝 청소부'(The Little Sweep)도 심심찮게 공연되는 작품이다. 러시아는 나름대로 훌륭한 크리스마스 오페라들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차이코브스키의 '슬리퍼'(Cherevichki: The Slippers),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눈 아가씨'(Snegurochka: The Snow Maiden), 역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크리스마스 이브'(Noch' pered Rozhdestvom: Christmas Eve)가 있다. 영국의 리챠드 셰파드(Richard Shephard)는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3부작 오페라를 작곡했다. '선한 임금님 벤체슬라스'(Good King Wenceslas), '성 니콜라스'(St Nikolas), '목자의 연극'(The Shepherd's Play)이다. '선한 임금님 벤체슬라스'라는 제목의 오페라로는 영국의 티모시 크래머(Timothy Kraemer)가 작곡한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장 많이 공연되는 메노티의 오페라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들'의 한 장면. 밤에 찾아온 손님들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기 위해 가던 동방박사들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선한 임금님 벤체슬라스'는 10세기 보헤미아의 왕으로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즉 성스테판축일에 종자 한 사람과 함께 궁전을 나가서 가난한 농부들에게 자선을 베푼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섭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벤체슬라스 왕을 따라가고 있는 시종 소년은 온 몸이 훈훈하여져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눈 위에 찍힌 벤체슬라스 왕의 발자국만 따라가니까 기적적으로 몸이 훈훈하여 졌다는 것이다. 벤체슬라스 왕은 나중에 성자로 시성되었다. 1853년에 영국의 찬송가 작곡가인 존 메이슨 닐(John Mason Neale)이라는 사람이 벤체슬라스 왕에 대한 전설을 노래 가사로 만들어서 13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봄의 캐롤인 Tempus adest floridum(꽃 피는 시절이라네)에 곡을 붙였다. 그것이 오늘날 크리스마스 캐롤로 널리 알려진 Good King Wenceslas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캐롤을 '마리아는 아기를'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 개신교 찬송가에 수록하였다. 원래의 가사는 벤체슬라스 왕이 성스테판의 축일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의 찬송가(129장)에서는 벤체슬라스 왕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대신 '마리아는 아기를 구유에 뉘고/이 세상에 나신 주 강보 속에 싸여/천한 곳에 나신 주 우리 구주시라/자비하신 주께서 영광 중에 오셨네'라고 만들었다.

 

추운 겨울, 눈 길을 헤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는 벤체슬라스 왕과 시종 소년. 소년이 눈 위에 찍힌 벤체슬라스 왕의 발자욱만을 밟고 갔더니 전혀 추운 것을 모르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오페라의 내용 중에 크리스마스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는 푸치니의 '라 보엠'이 단연 먼저 생각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파리의 라틴 쿼터에 있는 카페 모뮈에 가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장면이 나오는 오페라가 없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또 하나의 오페라는 Silent Night(고요한 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페라이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예를 들어 '34번가의 기적'등) Silent Night는 좀 색다르다. 2005년도 영화이다. 오페라 '사일렌트 나이트'는 1차 대전중 서부전선 어느 진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 영국, 프랑스의 병사들은 총을 내려 놓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한다. 세 나라 병사들의 지휘관들은 만나서 하루 동안의 휴전을 약속한다. 세 나라의 병사들은 참호에서 나와 서로 술잔을 기울이거나 게임을 하며 잠시 전쟁의 포화를 잊는다. 그러나 사령부의 생각은 달랐다. 휴전이란 말도 안된다면서 지휘관들을 문책한다.

 

'라 보엠'에서 카페 모뮈의 장면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모습이다.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 있다.

 

이밖에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오페라 '긴 크리스마스 딘너'(The Long Christmas Dinner)도 크리스마스와 연관되는 작품이며 피체티의 '대성당에서의 살인'(Assassinio nelle cattedrale)에서는 주인공 토마스 베켓이 1170년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설교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허만과 플로이드과 합작한 오페라 '우털링 하이츠'(Wutherling Heights)도 크리스마스의 장면이 나오는 오페라이다. 또한 뮤지컬로서는 라 보엠의 스토리를 인용한 렌트(RENT)가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있다.

 

벤자민 브리튼의 '어린 굴뚝 청소부'의 한 장면. '오페라를 만듭시다'에 나오는 오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