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The Passenger: Pasażerka: Die Passagierin)
미치슬라브 봐인버그(Mieczyslaw Weinberg)의 오페라
조피아 포스미츠(Zofia Posmycz)의 실화소설에 근거
미치슬라브 봐인버그
오페라 ‘승객’(The Passenger: Pasażerka: Die Passagierin)은 2010년 7월 21일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음악제(Bregenzer Festspiele)에서 초연된 이래 전세계에 짙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실상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 이곳에서 생존한 여인과 이곳에서 감독관으로 있었던 두 여인이 우연히 남미로 가는 여객선에서 만남으로서 두 사람의 내면적인 갈등과 인간 본연의 심성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미치슬라브 봐인버그(Mieczyslaw Weinberg: Moishei Vainberg: 1919-1996)가 맡았으며 대본은 알렉산더 메드베데프(Alexander Medvedev)가 맡았다. 대본은 폴란드의 여류극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조피아 포스미츠(Zofia Posmycz)가 1959년에 라디오 드라마로서 쓴 ‘캐빈 45호의 승객’(Passenger from Cabin Number 45: Pasazerka z kabiny 45)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폴란드의 거장 영화감독인 안드르예이 문크(Andrzej Munk)는 이 라디오 드라마를 기본으로 1963년에 영화 ‘승객’(The Passenger)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뭉크가 자동차 사고로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영화 '승객'은 문크의 사후에 동료들이 마지막 파트를 스틸 사진을 사용하고 내레이션으로 처리하여 완성했다. 조피아 포스미츠는 그가 쓴 라디오 드라마를 바탕으로 단편소설을 만들었다. 오페라의 대본은 폴란드어, 독일어, 이디쉬어로 되어 있지만 소설은 이미 16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원작자인 조피아 포스미츠. 그는 18살 때인 1942년에 폴란드 지하조직이 만든 플라이어를 가지고 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었다.
오페라 ‘승객’은 원래 1968년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초연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소련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여 무대공연은 연기되었다. 모스크바에서의 공연히 승인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2006년 12월 25일이었다. 다만, 그것도 콘서트 형식으로였다. ‘승객’이 무대작품으로서 초연을 가진 것은 서두에 지적하였듯이 2010년 7월 브레겐츠음악제에서였다. 유명한 오페라 감독인 데이빗 파운트니(David Pountney)가 연출을 맡았다. 원작자인 조피 포스미츠는 특별 초청을 받아 초연에 참석하였다. 브레겐츠 초연은 그야말로 다국적 공연이었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음악제, 영국국립오페라단(ENO),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 오페라단이 합작한 것이었다. 폴란드에서의 초연은 그해 10월 8일 폴란드국립오페라극장에서였다.
브레겐츠음악제가 열리는 브레겐츠 호수무대
조피아 포스미츠의 ‘승객’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강제수용소의 실상과 홀로코스트를 조명한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작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피아 모스미츠는 폴란드 라디오방송을 위한 드라마로서 대본을 썼다. 그 때의 타이틀이 The Passenger from Cabin 45였다.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1960년에는 폴란드 국영TV가 라디오 방송의 대본으로 TV 드라마를 만들어 ‘승객’이라는 타이틀로 방영하였다. 그러다가 기왕이면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1961년 조피아 포스미츠는 방송 드라마의 대본을 바탕으로 영화 각본을 만들었다. 영화감독인 안드르예이 문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영화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갑자기 문크 감독이 세상을 떠나는 지체되었다. 문크의 동료들이 그때까지 촬영한 필름을 편집하여 1963년 9월에 개봉하게 되었다. 조피아 포스미츠가 영화 각본에 기여한 바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피아 포스미츠는 소설 버전을 만들어 1962년에 출판하였다. 그러던중 1968년에 소련에서 오페라 대본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미치슬라브 봐인버그가 음악을 붙여 오페라를 완성한 것이다. 오페라의 무대는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층은 호화 여객선의 갑판이다. 여객선의 아래층은 강제수용소로 만들어 놓았다.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지만 수감자들은 진흙바닥을 맨발로 걸어가야 했다.
스토리는 독일을 떠나 브라질로 가는 호화 여객선에서 이틀 동안 일어난 일이다. 리자와 남편 발터 크레츄머(Walter Kretschmer)는 함부르크에서 탑승하여 리오데자네이로로 가는 길이었다. 남편 발터는 마침내 브라질 주재 서독 대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길이었다. 리자는 외교관의 부인이 되어 가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두 사람은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 희망에 부풀어 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정신없이 바쁘게만 지내다가 이제야 여유로운 생활을 할수 있게 되어 만족하고 있다. 발터는 브래들리라고 하는 미국 저널리스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브래들리는 전쟁때에 종군기자였다. 그는 1945년 다하우(Dachau) 강제수용소의 해방에 관여했다고 하며 독일의 비나치화에 관심이 깊다고 말한다. 브래들리는 전쟁이 끝난지 16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이 죄책감이나 후회의 감정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아서 유감이라고 말한다.
호화 여객선의 하갑판은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만들어 놓았다.
리자의 평온했던 마음은 갑자기 어떤 여자 승객을 보자 균형을 잃는다. 남편 발터가 무슨 일 때문에 안색이 창백하냐고 묻는다. 리자는 솔직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실은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여인을 이 배안에서 본 것 같아서 그런다고 대답한다. 발터는 아내 리자로부터 그가 SS요원으로 강제수용소에서 근무했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다. 발터는 그 얘기를 도무지 믿고 싶지 않다. [SS는 Schutzstaffel(슈츠슈타펠)의 약자로서 Schutz는 방어라는 뜻이며 Staffel은 성을 공격할 때에 쓰는 사다리와 같은 것을 말한다. SS는 처음에 히틀러의 보디가드 집단으로 조직되었으며 특별히 모자에 은제 해골 배지를 달았고 검은 넥타이를 맸다.] 발터는 만일 SS로 근무했던 리자의 과거가 알려지게 된다면 자기의 외교관 경력은 물론, 결혼생활까지도 종지부를 찍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내 리자에게 사실을 전부 얘기해 달라고 요구한다. 발터는 조금 전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브래들리와 논쟁을 벌인 일은 생각한다. 발터는 독일의 양심을 믿는다고 설명하고 독일인들은 전쟁중에 자행하였던 만행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까지 엄숙하게 설명한바 있다. 그런데 바로 자기의 아내가 전쟁 중에 강제수용소에서 SS의 간부로 있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발터는 자기 자신을 변명할 구실부터 찾아야 했다. 발터는 자기 손이 더렵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발터는 아내의 과거 때문에 자기의 인생을 모험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발터는 SS에 대하여 대단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SS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반 국방군에 자원했었다. 더구나 발터는 일선에 나가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 싫어서 후방에서 사무를 보는 업무를 맡았었다.
안드레이 문크 감독의 영화 '승객'의 포스터. 모자에 해골 배지를 달고 있으면 모두들 두려워하는 SS 였다. 주인공인 리자도 SS 대원이었다.
리자는 나치의 이상을 신봉하여서 SS에 들어가 수용소 감독관으로 일했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어떠한 범죄행위에도 직접 관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자는 수감자들을 구타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수감자들이 규칙을 따르지 않아 자기가 상사로부터 처벌을 받았을 경우에만 수감자들에게 벌을 가했을 뿐이라고 한다. 리자는 가스실로 보내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일도 단 한번만 했을 뿐이며 그것도 명령에 따라 어쩔수 없이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리자는 자기의 손에 피를 묻힌 일이 한번도 없음을 강조한다. 리자는 승객중에서 얼핏 보았던 여자를 다시 마주칠 것 같아 두려워한다. 리자는 그 여자 승객이 마르타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리자는 마르타의 목숨을 여러번 구해준 일이 있다. 하지만 리자가 아우슈비츠에서 철수 할 때에 그 폴란드 여인은 죽음의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 리자는 그 폴란드 여자가 ‘리자는 수용소에서 우리들에게 잘 대하여 주었어요’라고 보증해 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의 구타는 비일비재하였다.
사실 마르타는 리자 때문에 수감자 중에서도 어느 정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리자는 마르타를 강제노동에서 빼내어 사무실 업무를 보게 해주었다. 식량도 더 구해 주었다. 심지어 같은 수용소에 잡혀 들어온 남자친구(약혼자)를 간혹 만날 수 있게 주선해 주었다. 그런 일을 묵인한 것은 리자로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리자는 마르타가 아플 때면 진료소에 보내주었다가 다시 돌아오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누구든지 진료소에 들어갔다가는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리자는 마르타가 사소한 규칙을 위반하더라도 눈 감아 주었다. 예를 들면 마르타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는 규칙에 어긋나지만 그것이 리자에게 귀중한 추억이 담긴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못 본체 하였다. 리자도 다른 SS와 마찬가지로 수감자들을 잘 이용하여 탈 없이 지내고자 하였다. 그럴 때면 마르타가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리자는 마르타에게 특별한 우정과 같은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르타도 자기를 그렇게 대하여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어느 때는 아무래도 마르타가 2중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리자는 마르타가 자기를 계속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수 없었다. 리자는 마르타의 마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자기를 경계하는 마음만이라도 깨트려 버려야겠다고 행각했다. 그래서 여자 수감자들에 대한 콘트롤을 느슨하게 해 주었다. 리자는 마르타가 자기에게 의지하는 정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조피아 포스미츠는 18세에 이곳에 끌려왔다. 처음에 이 문을 통과할 때에는 Arbeit Macht Frei(노동은 자유를 만든다)는 슬로간을 보고 자기는 노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걱정 없이 지낼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조피아 포스미츠는 3년동안 아우슈비츠와 다른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리고 천우신조로 살아 남았다.
어느때는 국제적십자사에서 감독관들이 수감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방문한다. 수감자들을 대표하여 마르타가 이들과 면담토록 된다. 하지만 마르타는 감독관들이 묻는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마르타는 이들이 수감자들의 상황을 하나도 변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페라에서의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수감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수감자들이 허기와 추위 속에서 진흙 바닥에 발이 빠지면서 가스실로 걸어가고 있다. 반듯한 제복을 입은 위병들과 맨발로 걸어야 하는 수감자들의 모습에서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한편, 리자는 강제수용소에서 근무를 잘 하였기 때문에 승진을 하였고 다른 수용소로 전보발령을 받는다. 리자는 마르타에게 자기가 데려갈수 있으므로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댓가로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당시 수용소의 상황을 악화되어 마르타와 함께 있는 여자 수감자들은 거의 모두 가스실로 들어가야 할 입장에 있다. 그런데도 마르타는 끝내 리자의 제안을 거절하며 다른 여자 수감자들과 함께 있겠다고 말한다.
리자와 마르타
리자와 발터는 갑판에서 잠깐 보았던 그 폴란드 여자가 분명히 마르타라고 확신한다. 살아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르타도 리자를 알아보았던지 한동안 리자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리자와 발터는 만일 마르타가 다가와서 아우슈비츠 얘기를 한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발터는 리자가 다음 정박지인 리스본에서 내려서 별도로 비행기를 타고 리오데자네이로에 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리스본에서 리자가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잠시 둘러보니 마르타도 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르타는 리자 옆을 지나면서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지나간다. 과거의 비밀을 남겨둔채 혼자 내린다. 브래들리가 발터에게 다가와서 못 다 한 얘기를 나누자고 한다. 하지만 발터는 이제 죄책감이나 후회에 대하여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승객'의 원작자인 조피아 포스미츠가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어떤 유태인 여자수감자가 그려준 자기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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