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25. 로시니의 '에르미오네'

정준극 2011. 6. 12. 07:10

에르미오네(Ermione)

조아키노 로시니

 

2008년 페사로 공연. 에르미오네가 자신의 비운을 한탄한다. 

 

에르미오네(Ermione)는 로시니가 작곡한 2막의 비극적 오페라(Azione tragica)이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Andrea Leone Tottola)가 장 라신(Jean Racine)의 희곡 안드로마크(Andromaque)를 바탕으로 하여 작성했다. 에르미오네는 1819년 3월 27일 나폴리의 산 카를로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어찌된 일인지 4월 19일 일곱번째 공연을 마친후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공연되지 않았다. 자취를 감추었던 에르미오네는 로시니가 세상을 떠난지 1백년도 훨씬 지난 후에야 다시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로시니는 오페라 '에르미오네'를 '작은 윌렴 텔'이라고까지 부르며 사랑하였다.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가 작곡한 Cadmus et Hermione는 에르미오네와 같은 내용이다.

 

에르미오네 DVD. 페사로의 로시니오페라페스트벌 실황

 

에르미오네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공연된 것은 1987년 8월 22일 페사로에서의 로시니오페라음악제(페사로 페스티벌)에서였다. 나폴리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진 때로부터 무려 168년만의 일이었다. 페사로음악제에서의 공연에서는 세계 정상의 성악가들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 매릴린 혼(Marilyn Horne), 크리스 메리트(Chris Merritt), 라크웰 블레이크(Rockwell Blake)가 출연하는 장관이었다. 그후 1991년에는 나폴리, 로마, 마드리드에서 에르미오네가 공연되었다. 1992년에는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콘서트 형식의 연주회가 있었으며 정식으로 무대공연이 있었던 것은 1995년 5월 글린드본(Glyndebourne)에서였다. 미국에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콘서트 형식의 연주회가 1992년 6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에서 열렸으며 무대공연은 같은해 9월에 오마하오페라극장에서였다.

 

안드로마카는 어린 아들 아스티아나테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피로왕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주요배역은 다음과 같다.

- 에르미오네(Ermione: Hermione: S): 헬렌과 메넬라우스(Menelaus)의 딸

- 안드로마카(Andromaca: Andromaque: Andromache: Cont): 헥토르의 미망인

- 피로(Pirro: Pyrrhus: T): 아킬레스의 아들, 에피레(에피루스)의 왕

- 오레스테(Oreste: Orestes: T): 아가메논의 아들

- 필라데(Pilade: Pylades: T): 오레스테의 친구

- 클레오네(Cleone: MS): 에르미오네의 친구

- 페니치오(Fenicio: B): 피로의 스승(가정교사)

- 아탈로(Attalo: T): 피로의 친구

- 아스티아나테(Astianatte: Astyanax: 묵음): 안드로마카의 아들

- 체피사(Cefisa: Cont): 안드로마카의 친구

 

1987년 페사로 공연. 에피레 궁전에서 피로왕이 안드로마카에게 청혼하는 장면

 

시기는 고대 그리스이며 배경은 에피레(Epire: Ipiros: Epirus)에 있는 피로(Pirro)의 궁전이다.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물리친 에피레의 왕 피로(아킬레스의 아들)는 많은 포로들을 데리고 개선한다. 포로들 중에는 헥토르의 부인인 안드로마카와 그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나테도 포함되어 있다. 안드로마카를 본 피로왕은 그의 아름다움과 정숙함에 마음이 끌려 비록 패전국의 포로이지만 안드로마카를 사랑하게 된다. 피로왕은 헬렌과 메넬라우스의 딸인 에르미오네와 결혼키로 약속되어 있었다. 안드로마카를 사랑하게 된 피로왕은 에르미오네와의 약속을 저버린다. 하지만 전사한 남편 헥토르를 잊지 못하는 안드로마카는 피로왕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리스왕 아가메논의 아들로서 에피레가 트로이와 전쟁을 벌일 때 지원차 파견되었던 오레스테는 피로왕이 에르미오네와의 결혼을 멀리하고 안드로마카에게 집착하자 피로왕을 만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실은 오레스테는 오래전부터 에르미오네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간의 정략에 의해 에르미오네가 에피레의 왕 피로와 결혼하게 되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었다.

 

피로왕이 에르미오네와의 약속을 저버리자 기가 막혀서 쓰러진 에르미오네

 

한편, 에르미오네는 질투로 인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참고 다시금 피로왕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에르미오네는 오레스테가 사랑한다고 하자 이를 거부한다. 에르미오네는 오레스테가 안드로마카를 죽이고 이어 후환을 없애기 위해 그의 아들 아스티아나테를 죽이자는 제안도 거절한다. 그런 에르미오네의 마음도 알아주지 않은채 피로왕은 궁전에서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가운데 안드로마카에게 정식으로 청혼한다. 이 자리에는 에르미오네도 참석하고 있었다. 안드로마카는 만일 피로왕의 청혼을 거절한다면 아들 아스티아나테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거짓이나마 피로왕의 청혼을 받아 들인다. 더 이상의 모욕을 참을수 없었던 에르미오네는 피로왕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오레스테에게 배신자 피로왕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잠시후 오레스테는 에르미오네에게 피묻은 단검을 보여준다. 피로왕을 죽인 것이다. 그제서야 에르미오네는 자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닫고 당황하여 정신을 잃는다. 얼마후 깨어난 에르미오네는 피로왕을 죽인 오레스테를 저주한다. 그리고 친구와 시종 몇 사람을 데리고 에피레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하여 배를 타고 이오니아 바다로 나간다.

 

에피레의 궁전에서 피로왕이 안드로마카와 결혼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