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친구 요제파 두셰크(Josepha Duschek)
소프라노 요제파 두셰크
요제파 두셰크(Josepha Duschek: 1754-1824)는 고전 시대의 뛰어난 소프라노였다. 그는 모차르트와 가깝게 지낸 친구사이였다. 모차르트는 요제파 두셰크를 위해 여러 곡의 아리아를 작곡했다. 요제파 두셰크는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공화국)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라하는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하여 있는 보헤미아왕국의 수도였다. 요제파 두셰크의 아버지는 부유한 약사였다. 어머니는 잘츠부르크 출신이었다. 아버지의 약국은 Zum weissen Einhorm(유니콘집)으로 오늘날 프라하 구시가지의 광장에 있었다. 20세기까지 그 지역은 약국으로 유명했다.
소녀시절에 요제파는 피아니스트 프란티세크 두세크(Frantisek Dusek: 독일어로는 Duschek)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요제파는 22세 때에 프란티세크 두셰크와 결혼하여 요제파 두셰크가 되었다. 프란티세크는 이미 피아노 교사 겸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들은 프라하 성문 밖의 조용한 곳에 있는 빌라 베르트람카(Villa Bertramka)를 매입하여 살았다. 이들은 빌라 베르트람카를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로 제공하였으며 간혹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당시 프라하의 저명한 예술가들은 대개 빌라 베르트람카를 방문한 일이 있다. 요제파 두셰크가 빌라 베르트람카를 매입하는 데에는 크리스티안 필립 클람-갈라스 백작이라는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 때 요제파의 연인이었고 충실한 후원자였다. 백작은 성악가로서 요제파의 경력과 활동을 위해 매년 9백 굴덴이라는 경비를 지급하였고 빌라 베르트람카를 살 때에도 많은 돈을 지워했다고 한다.
요제파 두셰크는 소프라노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요제파는 프라하, 비엔나, 잘츠부르크, 봐이마르,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바르샤뱌, 베를린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요제파와 남편 프란티세크는 베토벤과 친밀하게 지냈다. 1796년 베토벤이 프라하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요제파 두셰크를 위해 Ah! perfido! 라는 콘서트 아리아를 작곡했다. 그러나 요제파 두셰크는 베토벤의 아리아를 콘서트에서 부르지 못했다. 다른 연주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요세핀네 클라리(Josephine Clary)백작부인이 베토벤의 아리아를 불렀다. 베토벤은 그 곡을 백작부인에게 헌정하였다. 이 콘서트 아리아는 1808년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된 베토벤의 매머드급 'Akademie 콘서트'에도 등장한다. 당시 17세의 소프라노 요제피네 킬리츄기(Josephine Killitschgy)가 곡중 독창을 맡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요제파 두셰크는 1799년 남편 프란티세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공식생활로부터 떠났다. 그는 빌라 베르트람카를 팔고 프라하 시내의 아주 작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았다. 1824년 요제파 두셰크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재산이 아무것도 없어서 극심한 궁핍 속에 지내야 했다.
요제파와 프란티세크 두셰크 부부가 모차르트를 처음 만난 것은 1777년 잘츠부르크에서였다. 어머니가 잘츠부르크 출신인 요제파는 아직도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다가 모차르트를 만난 것이다. 이때 모차르트는 요제파를 위해 레시타티브와 아리아인 Ah, lo previdi(K 272)를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1786년 '피가로의 결혼'이 비엔나에서 성공을 거둔 직후에 궁전에서 열린 콘서트에 요제파와 함께 참석했다. 이것이 두번째 만남이었다. 이듬해에 '피가로의 결혼'은 프라하에서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여러 사람의 프라하 음악인들이 모차르트를 프라하로 초청했다. 요제파와 프란티세크 두셰크 부부도 모차르트를 초청하는데 앞장 섰었다. 그해 말에 모차르트는 다시 프라하를 찾았다. 다음 작품인 '돈 조반니'의 완성하고 공연하기 위해서였다. 이때에 모차르트는 두셰크 부부의 빌라 베르트람카에 머물렀다. 모차르트는 1791년 9월에 La Clemenza di Tito를 완성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에도 빌라 베르트람카에서 요제파 부부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프라하의 빌라 베르트람카.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완성한 집이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때문에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콘서트 아리아인 Bella mia fiamma, addio(K 528)을 작곡했다. 오리지널 악보에는 1787년 11월 3일이라고 되어 있지만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위해 프라하를 방문한 것은 1787년 1월이었기 때문에 시간적이 차이가 있다. 이 아리아를 작곡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모차르트의 아들인 칼 토마스(Karl Thomas)가 제공한 스토리이다.
' 베트란카(베르트람카)는 아버지가 프라하를 방문하였을 때 음악친구이신 두셰크 부부와 함께 지내던 곳입니다. 아버지는 이 빌라에 머물면서 '돈 후안'(돈 조반니)의 여러 곡을 작곡하셨습니다. 빌라 부근의 언덕에 정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날 두셰크 부인(요제파)가 아버지를 이곳 정자에 교묘하게 가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잉크와 펜과 오선지를 주고 전에 두셰크 부인에게 작곡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리아를 쓰지 않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모차르트는 두셰크 부인에게 Bella mia fiamma addio라는 제목으로 아리아를 작곡해 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모차르트는 두셰크 부인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속여서 정자로 데려와 문을 닫아 버린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아리아에 여러개의 어려운 파싸지(Passage)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셰크 부인에게 만일 악보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 같으면 당장 악보를 없애겠다고 은근히 위협했다고 합니다. 두셰크 부인은 악보를 처음 보고서 하나도 틀림없이 훌륭하게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Bella mia fiamma addio의 오리지널 악보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써 넣은 요제파 두셰크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 요제파 두셰크가 모차르트의 파싸지 테스트에 합격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지금도 소프라노들 사이에서는 Bella mia fiamma addio의 Quest' affano, questo passe e terribile per me 부분을 파소 테리블레(passo terribile)라고 하여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중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로 여기고 있다. 요제파 두셰크의 음성은 넓은 폭과 유연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요제파의 찬미자들은 그를 '보헤미아의 가브리엘리'(Bohemian Gabrielli)라고 불렀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카테리나 가브리엘리에 비유해서이다. The Grove Dictionary는 요제파의 음성을 '청아하고 음역이 넓으며 유연성이 넘친 음성'이라고 설명했다. 요제파는 화려하고 웅장한 아리아에 적합한 소프라노였다. 그런 아리아를 브라부라(Bravura) 아리아라고 부른다.
'돈 조반니'가 초연된 프라하의 에스테이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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