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83. 게타노 도니체티의 '베르지의 가브리엘라'(

정준극 2011. 7. 14. 14:51

베르지의 가브리엘라(Gabriella di Vergy)

게타노 도니체티

 

게타노 도니체티

     

게타노 도니체티(1797-1848)의 2막 오페라 세리아인 '베르지의 가브리엘라'(Gabriella di Vergy)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오페라이다. 우선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를 주제로 하여서는 과거 여러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들었던 것인데 도니체티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다시 이 주제를 가지고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이미 작곡한 주제를 가지고는 다시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고 싶다면 스토리를 달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도니체티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오페라와 같는 줄거리의 오페라를 또 만들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작곡한 오페라들보다는 더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특히 도니체티의 스승인 요한 시몬 마이르도 같은 내용의 오페라를 작곡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스승의 작품보다는 자기의 작품이 더 낫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과거에 '베르지의 가브리엘라'에 대한 스토리를 오페라로 만든 것을 살펴보면, 일찍이 1809년에 독일출신으로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요한 시몬 마이르(Johann Simon Mayr: 1763-1845)가 '크레키의 라울'(Raul di Créqui)라는 타이틀로 1809년에 밀라노에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 있으며 이어 1811년에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모를라키(Francesco Morlacchi: 1784-1841)가 역시 '크레키의 라울'(Raoul de Créqui)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1816년에는 이탈리아의 미셀 카라파(Michele Carafa)가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라는 타이틀로 발표한 오페라가 있고 1817년에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코치아(Carlo Coccia: 1782-1873)가 '파옐'(Fayel)이라는 타이틀로 플로렌스에서 공연한 작품이 있다. 그리고 1828년에는 이탈리아의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 1795-1870)가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그런데 도니체티가 또 다시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브리엘라의 모습

   

두번째 특기사항은 도니체티의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는 그의 생전에 공연되지 못하였고 수정본이 그의 사후 21년만인 1869년에 나폴리에서 처음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도니체티는 처음에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를 1826년에 완성했으나 이 작품은 전혀 공연되지 못하였다. 도니체티는 1838년에 수정본을 만들었으나 역시 공연되지 못하고 있던 중, 10년후인 1848년에 도니체티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곡가로서 자기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사연이야 어쨋든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세번째로 특기사항은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는 초연 이후 묻혀 있다가 1백년도 더 지난 1978년에야 겨우 악보가 재발견되어 비로소 관심을 끈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978년 9월 9일 영국에서 기념공연이 있었다. 그 후로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생각컨대 스토리가 다분히 엽기적이기 때문인것 같다. 오리지널 스토리에 의하면, 자기의 연적을 죽이고 심장을 도려내어 항아리에 담아서 여자에게 보여주고 먹으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세상에 이런 엽기적인 끔찍한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원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Andrea Leone Tottola)가 대본은 프랑스의 도르몽 드 블로이(Dormont de Belloy)라는 작가가 1777년에 쓴 같은 타이틀의 비극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도르몽 드 블로이는 중세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인 '쿠시의 성주와 마담 파옐'(Le Châtelain de Coucy et la dame de Fayel)과 Le Roman de la chastelaine de Vergy(베르지의 열녀 이야기)를 토대로 '베르지의 가브리엘라'라는 희곡을 완성했다.

 

'베르지의 가브리엘라' 음반 커버

      

도니체티가 처음 작곡한 오리지널 버전은 공연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도니체티는 오리지널 버전에 나오는 음악의 몇 부분을 다른 오페라에 인용하였다. 1827년에 나폴리에서 초연된 Otto mesi in due ore(두 시간에 여덟달을), 1828년에 역시 나폴리에서 초연된 L'esule di Roma, 1829년에 역시 나폴리에서 초연된 Il paria, 그리고 1830년에 밀라노에서 초연된 Anna Bolena(안나 볼레나)에 사용하였다. 도니체티가 1838년에 수정한 버전도 역시 그의 생전에 공연되지 못하였다. 그는 수정본을 1832년에 밀라노에서 초연된 Ugo, conte di Parigi(파리지의 백작 우고), 1834년 플로렌스에서 초연된 Rosmonda d'Inghilterra(영국의 로스몬다), 1838년에 베니스에서 초연된 Maria di Rudenz(루덴츠의 마리아)의 음악 중에서 몇 부분을 가져와 완성하였다.

 

도니체티가 세상을 떠난 후 수정본이 초연된 것은 1869년 11월 29일 나폴리의 테아트로 산 카를로에서였다. 그때에는 타이틀을 간단히 Gabriella 라고만 했다. 그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잊혀져 있다가 1978년 오페라 라라(Opera Rara)가 악보를 발견하고 열심히 연습하여 그해 9월 9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처음 공연을 가졌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가브리엘라(Gabriella di Vergy: S)는 십자군 전쟁에 나간 라울(Raoul: T)과결혼을 약속했으나 베르망의 영주인 파옐(Fayel: Earl of Vermand: Bar)과 어쩔수 없이 결혼하게 된다. 알메이데(Almeide: S)는 파옐의 여동생이다. 아르만도(Armando: B)는 파옐의 친구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부르군디이며 시기는 중세이다. 가브리엘은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라울이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브리엘라는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국왕과 가까운 파옐 경과 결혼한다. 그러나 라울은 살아 있었다. 가브리엘이 라울의 생존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고향에 돌아와 가브리엘은 만난 라울은 약속을 저버리고 결혼한 가브리엘을 심히 비난한다. 한편, 라울은 국왕으로부터 파옐의 동생인 알메이데와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라울은 파옐과 결투를 벌이지만 라울이 죽임을 당한다. 파옐은 라울의 심장을 꺼내어 작은 항아리에 넣어 가브리엘에게 준다. 가브리엘은 미쳐서 결국 죽는다. 가브리엘이 죽으면서 파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작은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피가 거품이 되어 솟아나와 파옐의 얼굴을 덮어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라울의 혼령이 무덤에서 일어나 파옐이 라울의 심장을 도려 낼 때에 사용했던 칼로 파옐의 심장을 꺼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