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부터의 추방(L'esule di Roma) - The Exile from Rome: The Proscribed Man(추방당한 자)
게타노 도니체티
게타노 도니체티
프리마 돈나를 위한 별도의 아리아를 위해 오리지널에도 없는 음악을 추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가하면 어떤 특정의 성악가를 염두에 두고 오페라를 작곡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벤자민 브리튼이 친구인 바리톤 피터 피어스를 위해 '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를 작곡한 것이다. 도니체티도 그런 면이 더러 있었다. '로마로부터의 추방'의 피날레 파트에 소프라노 아델라이데 토시(Adelaide Tosi)를 위한 아리아를 추가하였다. 대부분 멜로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로마로부터의 추방'은 해피엔딩이다. 그 해피엔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프리마 돈나를 위한 아리아를 추가하였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소프라노 아델라이데 토시에 대하여 좀 더 소개코자 한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토시는 1821년에 밀라노에서 오페라 성악가로 데뷔하였다. 어떤 역할을 맡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듬해인 1822년에는 라 스칼라에서 마이에르베르의 L'esule di Granata(그라나타로부터의 추방) 초연에서 주인공인 아체마(Azema)를 맡아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828년에는 벨리니의 '비안카와 페르난도'의 세계 초연에서 비안카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며 같은 해에 로시니의 Le siege de Corinthe(고린도 공성)에서 파미라(Pamira)를 맡아 놀라운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토시는 도니체티의 오페라에 자주 출연했다. 세계 초연에서 주역을 맡은 것만 해도 L'esule di Roma(로마로부터의 추방: 1828)에서 아르겔리아(Argelia), Il paria(파리아: 1829)에서 네알라(Neala), Il castello di Kenilworth(케닐워스 성: 1829)에서 엘리사베타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1836년에는 도니체티의 Betly(베틀리: La cappan svizzera)의 세계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기도 했다. 토시는 향년 59세로 나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도니체티와 토시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로마로부터의 추방' 음반. 카티아 리키아렐리가 아르젤리아 역을 맡은 것.
'로마로부터의 추방'는 오페라 세리아이지만 오페라의 장르에서 보면 이른바 영웅적 오페라(Heroic opera)에 속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멜로드라마 에로이코(Melodramma eroico)라고 부른다.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조국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본은 도메니코 지랄도니(Domenico Giraldoni)가 썼다. 루이지 마르치오니(Luigi Marchionni)의 Il proscritto ramono(로마로부터의 추방)을 바탕으로 대본을 썼다. '로마로부터의 추방'은 1828년 1월 1일 나폴리의 테아트로 산 카를로에서 초연되었다. 1828년도가 온 것을 기념하여서였다. 도니체티는 1827년에 나폴리의 극장 흥행가인 도메니코 바르바자로부터 앞으로 3년 동안 4편의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래서 테아트로 누오보를 위해서 Le convenienze ed inconvenienze teatrali 를 썼고 테아트로 산 카를로를 위해서는 L'esule di Roma를 썼다. 테아트로 누오보를 위한 오페라는 코믹한 내용이었지만 테아트로 산 카를로를 위한 오페라는 오페라 세리아였다. '로마로부터의 추방'은 나폴리에서 초연된 이후 마드리드, 비엔나, 런던, 그리고 이탈리아의 각자에서 환영을 받으며 공연되었다. 그러기를 1869년까지 계속되다가 그 이후에는 거의 공연되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로마로부터의 추방'이 다시 공연된 것은 1982년 7월 런던의 엘리자베스여왕홀에서였다.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었으며 카티아 리키아렐리(Katia Ricciarelli)가 아르겔리아 역을 맡은 것이었다. 그 후 이 오페라는 몇 군데가 수정되었다. 예를 들어 원형경기장의 장면이다. 셉티무스(Septimus)는 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 사자가 실은 그가 상처를 치료해준 사자였다. 그래서 사자가 은혜를 갚고자 오히려 셉티무스를 구해 준다는 내용은 삭제되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피날레 장면에서 프리마 돈나인 아르젤리아를 위한 아리아를 정식으로 추가한 것이다. 이는 도니체티가 원했던 사항으로 실제로 초연에서는 아리아가 추가되었으나 그 후의 공연에서는 추가되지 않았었다.
'로마로부터의 추방'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무레나(Murena: B)는 원로원 의원이다. 아르젤리아(Argelia: S)는 무레나의 딸이다. 에밀리아(Emilia: Silent)는 아르젤리아의 여동생이다. 세티미오(Settimio: T)는 호민관이다. 레온티나(Leontina: MS)는 아르겔리아의 친구이다. 푸블리오(Publio: Bar)는 로마군의 장군이다. '로마로부터의 추방'에는 여러 아름다운 아리아와 중창들이 나온다. 1막에서는 무레나의 첫번째 아리아인 Ahi! Che di calma un'ombra에 이어 푸블리우스와의 듀엣, 셉티무스와 아르젤리아의 듀엣이 있고 2막에서는 아르젤리아와 무레나의 듀엣, 그리고 무레나의 광란의 장면은 베이스가 부르는 광란의 장면이라는데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곡이다.
오페라의 배경은 로마이며 시기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하(주후 14-37)이므로 특별히 관계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시기에 속한다. [제1막] 궁전과 사원과 기념상들로 둘러싸인 광장이다. 개선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원로원 의원인 무레나의 집이 있다. 로마의 시민들이 로마를 침공한 적들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푸블리우스 장군을 열렬히 환영한다. 그러나 원로원 의원인 무레나는 환영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무레나는 딸 아르젤리아를 푸블리우스 장군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푸블리우스는 로마로 돌아와 아르젤리아와의 결혼을 재촉한다. 하지만 아르젤리아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찾을수가 없다. 무레나는 딸을 몰래 숨겨 놓았다는 의심을 받는다. 아르젤리아가 사라진 것은 젊은 호민관인 셉티무스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지 오래이다. 아버지 무레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아르젤리아를 늙은 푸블리우스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셉티무스는 무레나를 오랫동안 도와준 후원자의 아들이다. 그런 셉티무스를 무레나는 정치적인 이유로서 원로원에서 크게 비난하고 끝내는 로마로부터 추방하였다. 추방당한 셉티무스는 푸블리우스 장군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르젤리아와 푸블리우스의 결혼이 신속히 진행될 것으로 믿어 비밀리에 목숨을 걸고 로마로 돌아온 것이다.
셉티무스를 만난 아르젤리아는 기쁨으로 그에 대한 사랑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셉티무스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한다. 루치우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셉티무스를 체포했기 때문이다. 푸블리우스 장군을 만난 아르젤리아는 그가 셉티무스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도와줄것을 간청한다. 푸블리우스 장군은 고귀한 성품으로 셉티무스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무레나는 셉티무스가 추방명령을 어기고 로마로 돌아왔음을 밝히고 원로원에서 그에 대한 재판을 다시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면을 바뀌어 무레나의 저택이다. 셉티무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몰래 아르젤리아를 만나러 온다. 셉티무스는 아르젤리아에게 자기가 로마로부터 추방 당한 것은 음모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 음모를 밝혀주는 문서를 가져왔으니 간직하고 있으라고 전해준다. 문서에 의하면 실제로 셉티무스를 추방한 음모의 주동자는 다름 아닌 셉티무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된 아르젤리나 크게 놀란다. 그런 내용을 모르는 무레나는 원로원에서 의원들을 설득하여 셉티무스에게 사형을 내리도록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 자기의 행동을 한탄한다.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형시킨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무레나는 우연히 셉티무스가 남기고 간 문서를 본다. 사실을 알게 된 무레나의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무레나는 셉티무스에게 한가지 방도로서 셉티무스와 아르젤리아가 함께 몰래 도망가도록 주선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명예를 중히 여기는 셉티무스는 그같은 제안을 거절하며 죽음을 맞겠다고 말한다. 1막의 마지막은 무레나, 셉티무스, 아르젤리아의 장대한 트리오로 마무리된다. 도니체티의 작곡 스타일로서는 예외이다. 이렇듯 1막의 피날레를 장엄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나중에 벨리니가 노르마 1막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베르디가 에르나니 1막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것과 같다.
[제2막] 무레나는 이제 너무나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 된다. 2막의 시작과 함께 무레나의 '광란의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로 넘쳐 있다. 무레나의 아리아는 Entra nel cirfo!이며 이어 카바티나인 De stige il flutto 가 뒤따른다. 이같은 남성 주역의 '광란의 장면'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서 비토리오 알피에리(Vittorio Alfieri)의 '사울'(Saul: 1782), 빈센초 몬티(Vincenzo Monti)의 '아리스토데모'(Aristodemo: 1786), 그리고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cini)의 '사포'(Sappho: 1840)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셉티무스는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셉티무스의 아리아 S'io finora, Bell'idol mio 는 아름다운 멜로디이다. 이 아리아는 실제로 도니체티의 오리지널 악보에는 없는 것이지만 도니체티가 1828년 7월 12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공연에서 테너를 위해 특별히 추가한 곡이다. 그때 테너는 당대의 칼바리 베라르도 윈터(Calvari Berardo Winter)였다. 그러나 테너의 아리아를 추가한 악보는 불행하게도 분실되었다. 하지만 1828년 겨울에 테너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Giovanni Battista Rubini)를 위해 작곡한 아리아가 남아 있으며 또한 1840년에 베르가모에서 리바이벌 할 때에 테너 이그나치오 파시니(Ignazio Pasini)를 위해 작곡해 놓은 것은 다행하게도 남아 있다.
무레노는 셉티무스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탄핵하기로 결심한다. 무레노는 아르젤리아에게 셉티무스로부터 받은 문서를 달라고 하여 그것으로 셉티무스의 무죄를 주장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르젤리아는 아버지 무레노의 명예가 더렵혀 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눈물로서 무레노의 요청을 거절한다. 하지만 무레노의 결심을 굽힐수 없다. 무레노는 직접 황제를 찾아간다. 밖으로부터는 군중들이 셉티무스의 처형을 보기위해 기다리며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 부르는 셉티무스의 아리아가 Tardi, tardi il pie la volgi 이다. 이때 푸블리우스 장군이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한다. 황제가 셉티무스와 무레나를 모두 사면했다는 소식이다. 아르젤리나는 기쁨으로 마지막 카발레타를 부른다. Ogni tormento (모든 고통을 사라지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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