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91. 제이크 히기의 '모비 딕'

정준극 2011. 7. 18. 20:57

모비 딕(Moby-Dick) - 백경(白鯨) - The Whale(고래)

제이크 히기

 

제이크 히기

 

뉴욕 출신인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명작 '모비 딕'(Moby-Dick: 백경)을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플로리다 출신의 제이크 히기(Jake Heggie: 1961-)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노도가 치는 망망대해에서 괴물과도 같은 흰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에이하브 선장의 이야기를 한정된 공간인 무대 위의 오페라로 만들었으니 여러 제약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훌륭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대본은 제이크 히기와 콤비인 진 쉬어(Gene Scheer)가 맡았다. 진 쉬어는 히기를 위해 오페라 '세번의 12월'(Three Decembers)의 대본도 썼다. '모비 딕'은 2010년 4월 30일 텍사스주 달라스의 윈스피어 오페라 하우스(Winspear Opera House)에서 이 극장의 개관기념으로 초연되었다. 달라스에서의 오페라 '모비 딕'의 초연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산디에고 오페라, 남호주 주립오페라, 캘거리 오페라가 공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렇듯 여러 오페라단이 공동으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우도 매우 드믄 일이다.

 

허만 멜빌

 

허만 멜빌이 1851년에 발표한 '모비 딕'에 대하여는 그 내용을 알 만한 사람들이면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소설 '모비 딕'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 또는 선과 악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고를 논거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페라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그 줄거리만을 소개코자 한다. 다만, 사족으로서 첨언하자면, 이것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이라는 사람이 커피를 대단히 좋아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미국의 하워드 슐츠(Howard Schulz)라는 기업가가 스타벅의 이름을 따서 스타벅스(Starbucks) 커피점을 열어 오늘날 전세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이야기만은 추가코자 한다. 커피점 스타벅스가 '모비 딕'의 등장인물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런지 스타벅스의 로고에는 바다와 인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소설 '모비 딕'의 첫 머리에 나오는 문장인 Call me Ishmael(콜 미 이슈마엘)은 햄릿의 To be or not to be 와 마찬가지로 아주 유명한 구절이 되어 있다.

 

오페라 '모비 딕'이 초연된 달라스의 윈스페어 오페라 하우스

                                    

[제1막] 첫째 날. 포경선인 피쿼드(Pequod)호가 벌써 1주일 째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다. 갑판 아래쪽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잠들어 있지만 작살전문가인 퀴퀘그(Queequeg)만은 깨어서 기도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그린혼(Greenhorn)이 잠들어 있다. 그린혼은 고래잡이 배의 신참이다. 새벽이 오고 '모두 일어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뱃사람들이 돛을 올리고 있을 때에 항해사인 스타벅(Starbuck), 스터브(Stubb), 플라스크(Flask)가 에이헤브(에이하브) 선장에 대하여 얘기를 한다. 배가 난투켓(Nantucket)을 떠난 이후 아무도 에이헤브를 본 사람은 없다. 선원들은 고래를 잡아 부자가 되겠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에이헤브 선장이 선원들 앞에 나타난다. 그는 모비 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비 딕이라는 거대한 고래가 선장의 한 쪽 발을 가져갔다는 이야기이다. 에이헤브는 두블룬(Doubloon) 금화를 돛대 꼭대기에 못 박아 놓고 누구든지 제일 먼저 모비 딕을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한다. 에이헤브는 이번 출항의 진짜 목적은 모비 딕이라고 덧 붙인다. 그러면서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그 놈의 고래를 잡겠다고 소리친다. 에이헤브가 '모비 딕에게 죽음을'이라고 소리치자 선원들은 이상한 흥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항해사인 스타벅은 다르다. 스타벅은 에이헤브 선장에게 모비 딕을 잡기 위해 바다에 나온 것은 정말로 무리하고 어리석은 임무라고 대놓고 말한다.

 

오페라 '모비 딕'의 환상적인 무대

                             

스타벅은 신참 그린혼에게 고래잡이가 얼마나 힘들고 무서운 것인지 얘기해 준다. 스타벅은 갑자기 이번 출항이 자기의 마지막 항해가 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 잡힌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다시는 볼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을 한다. 스타벅은 그린혼에 대한 고래잡이 교육을 퀴케그에게 마무리하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뜬다. 그때 스터브가 고래 떼를 보았다고 소리친다. 모든 선원들이 항구를 떠난후 처음으로 고래를 사냥하게 되어 들 떠있다. 하지만 에이헤브 선장은 그런 고래 떼는 무시하라고 지시한다. 스타벅이 선장의 지시를 받아 고래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그대로 항해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린혼에게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퀴퀘그와 함께 모비 딕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어느덧 하루의 해가 진다. 노을이 아름답다. 에이헤브 선장은 자기의 집착 때문에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조차 버려야 함을 한탄한다. 모두들 선장에게 동정심을 갖는다. 돛대 꼭대기에서 그린혼과 퀴퀘그가 넓은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스타벅은 에이헤브 선장의 광기어린 집착에 대하여 한탄하고 있다.

 

에이헤브 선장과 스타벅

                                                          

둘째날. 벌써 석달이 지났다. 포경선인 피쿼크호는 고래를 한 마리도 잡지 않았다.스터브가 어린 핍(Pip)에게 상어들이 배 주위를 맴돌고 있다면서 농담을 한다. 어떤 선원이 노래를 부르자 갑판에서는 곧바로 춤판이 벌어진다. 모두들  모처럼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긴장감은 더 없이 높다. 선원들은 조그만 일에도 참지 못하고 싸우기도 한다. 특히 인종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아진다. 갑자기 그린혼이 고래 떼를 보았다고 소리친다. 스타벅은 에이헤브 선장을 겨우 설득하여 선원들이 고래를 잡도록 허락을 받는다. 스타벅과 스터드가 작살을 잡는다. 그러나 플라스크가 탄 보트가 고래 꼬리에 맞아 침몰한다. 어린 핍도 바다에 빠진다. 다시는 핍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갑판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에이헤브 선장. 영화의 한 장면. 전설적인 배우 그레고리 펙.

                                                                          

드디어 커다란 고래를 한 마리 잡는다. 갑판에서는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고래 기름을 떼어내어 화로에 넣는 작업도 이루어진다. 플라스크는 에이헤브 선장에게 물에 빠져 실종된 핍을 찾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에이헤브는 오로지 모비 딕을 찾는 일에만 열중한다. 선원들은 고래를 해체하면서 바다에서 고생하고 있을 핍을 생각한다. 플라스크는 스타벅에게 고래 기름을 저장하는 통들이 새기 때문에 선장에게 말하여 근처 항구에 들어가 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이헤브는 스타벅의 보고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백경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이 선장에게 어서 항구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자 선장은 권총을 꺼내어 스타벅에게 더 이상 다른 소리를 하면 선장의 권한으로 처형하겠다고 말한다. 멀리서 그린혼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에 빠진 핍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선원들은 갑판에서 퀴퀘그가 어떻게 핍을 구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린혼은 스타벅에게 핍이 지금 정신을 잃고 미쳐 있는 상태이르모 무슨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고 간청한다. 그러나 스타벅도 선장의 명령 때문에 더 이상 어찌하지를 못한다. 그린혼은 배에서의 생활에 실망한다. 스타벅이 선장실로 들어가보니 선장이 잠들어 있다. 스타벅은 탁자 위에 있는 권총을 슬며시 잡는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만일 방아쇠를 당긴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다시 만날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에이헤브 선장이 잠에서 깨어나 소리를 지른다. 스타벅은 황급히 권총을 제 자리에 놓고 선장실을 떠난다.

 

에이헤브 선장이 금화를 보여주며 누구든지 제일먼저 모비 딕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제2막] 그로부터 어느덧 1년이 지난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온다. 하지만 거친 바다를 헤치고 다녔던 선원들에게는 그것이 별다른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원들은 이럴 때일수록 노래를 부르며 침착코자 한다. 그린혼과 퀴퀘그는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사방을 감시한다. 두 사람은 각각 자기들의 고향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그린혼은 퀴퀘그가 태어난 나라의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의 모험에 대하여 글을 써서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린혼이 마스트에서 쓰러진다. 아마 현기증이 났던 모양이다. 선원들이 그를 끌어내려 쉬도록 한다. 하지만 에이헤브 선장은 그린혼에게 다시 마스트 꼭대기에 올라가라고 명령한다. 선장은 그린혼이 모비 딕을 제일 처음 발견하겠다고 말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얼마후 두 사람은 휴식을 위해 마스트에서 내려온다. 퀴퀘그는 그린혼에게 자기는 지금 죽어가고 있으므로 자기를 위해 관을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 핍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핍은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그린혼이 핍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에이헤브 선장이 스타벅을 권총으로 위협하며 명령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거대한 폭풍이 피쿼드호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벼락이 치더니 마스트가 불에 탄다. 성 엘모의 불(St Elmo's Fire)라는 것이다. 에이헤브 선장은 선원들에게 마스트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으라고 명령한다. 이어 선원들에게 하얀 불길은 하늘이 백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징표라고 말한다. 선원들은 선장의 말에 다시한번 힘을 얻어 폭풍을 헤쳐나간다. 스타벅의 실망은 크다. 다음날 아침이다. 배는 다행히도 풍랑을 헤쳐나갔다. 멀리서 레이첼호의 가디너(Gardiner) 선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가디너 선장은 에이헤브에게 폭풍으로 바다에 빠진 12살 짜리 아들을 함께 찾자고 간청한다. 그러나 에이헤브는 거절한다. 이 모습을 본 핍이 자기의 몸을 칼로 찌르고 흘러나온 피를 에이헤브의 옷에 묻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계속 항해를 명령한다. 가디너 선장의 배가 점점 멀어진다. 에이헤브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는 다시 결심을 한듯 마치 세례를 주듯 핍의 피를 작살에 묻히며 어서 모비 딕을 찾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한편, 갑판 아래에서는 그린혼이 퀴퀘그를 위해 마련한 관을 바라보며 자기도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에이헤브 선장 역의 카렌 아몬드(달라스 오페라)

                         

갑판에서 에이헤브 선장과 스타벅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에이헤브는 스타벅에게 40년 바다 생활에 대하여 설명한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바다에서 지냈다고 한다. 무엇때문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일순간 에이헤브는 스타벅의 눈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 스타벅은 그러한 에이헤브의 마음을 읽고 선원들을 난투켓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들과 아들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에이헤브는 스타벅의 눈을 다시 바라보고 모두 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지시한다. 선원들은 에이헤브에게 충성을 약속한다. 마침내 모비 딕을 발견한다. 에이헤브 선장의 배와 다른 배들이 합심하여 모비 딕을 뒤 쫓는다. 모비 딕은 가까이 다가온 두 척의 포경선을 파괴한다. 선원들은 모두 물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피퀘크호를 덮쳐서 배를 파괴한다. 피쿼크호의 선원들은 모두 바다에 빠진다. 오로지 에이헤브만이 작살을 들고 모비 딕에게 달려든다.에이헤브는 모비 딕의 등에 올라타고 고함을 지르면서 작살을 들어 정신없이 찌른다. 그리고 마침내 에이헤브도 바다 속으로 잠긴다.

 

에필로그. 그린혼은 바다에 떠 있는 퀴퀘그를 위해 만든 나무 관을 붙잡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린혼은 어디 있는지 종적을 찾을수 없는 친구들을 위해 낮은 소리로 기도하며 노래를 부른다. 가디너 선장이 멀리서부터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잃었던 아들을 찾은 모양이다. 그린혼은 자기만이 살이 있고 에이헤브를 비롯하여 피쿼크호의 선원들이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모비 딕'에서 에이헤브 선장역을 맡은 그레고리 펙의 모습. 한쪽 다리는 나무로 만든 의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