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05. 이에인 벨의 '어느 창녀의 행로'

정준극 2011. 8. 5. 11:21

어느 창녀의 행로(A Harlot's Progress)

Iain Bell(이에인 벨)의 신작 오페라

2013년 비엔나에서 초연 예정

 

'어느 창녀의 행로'는 영국의 신예 작곡가인 이에인 벨(Iain Bell: 1980-)이 18세기 영국의 화가인 윌렴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가 그린 동명의 여섯장 그림을 바탕으로 오페라로 만는 것이다. 대본은 영국의 작가인 피터 아크로이드(Peter Ackroyd)가 맡았다. 오페라 '어느 창녀의 행로'는 2013년 비엔나의 유서 깊은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빈강변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몰 해커바웃(Moll Hackabout)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디아니 담라우(Diana Damrau)가 맡았다. 윌렴 호가스의 여섯 장으로 구성된 그림의 제목은 A Harlot's Progress 라고 부르기도 하며 The Harlot's Progress 라고도 부른다. 1731년에 그림과 판화로 제작되어 복사본은 남아 있지만 오리지널은 분실되었다. 그림 시리즈는 시골에서 런던에 올라온 몰(또는 메리)이 창녀가 되어 살다가 23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호가스의 작품은 존 번얀(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참고로하여 비유한 것이다.

 

독일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디아나 담라우. 2013년 테아터 안 데어 빈 초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윌렴 호가스는 은세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했다. 그 때부터 판화(주로 동판화)에 관심을 가졌다. 호가스는 '어느 창녀의 행로'를 주제로 그림과 판화를 만들어 팔았다. 모두 여섯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240 세트를 만들었다. 이 그림들이 인기를 끌자 해적판들이 돌기 시작했다. 호가스는 의회에 청원하여 해적판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도록 했다. 그후 호가스는 '난봉꾼의 행로'(A Rake's Progress)를 제작하였다. 역시 대인기를 끌었다. 오리지날 그림은 1755년에 당시 유명한 정치가인 윌렴 베크포드(William Beckford)의 저택에 보관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호가스의 그림과 판화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생략키로 하고 그림의 줄거리, 즉 오페라의 줄거리에 대하여 잠시 설명코자 한다.

창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들어온 몰을 주변 사람들이 환영하면서 여러 선물들을 주고 있다.

 

1. 몰이 런던에 도착하여 칩사이드(Cheapside)의 벨(Bell)여관에 머무르다

 

 

주인공인 몰 해커바웃이 런던에 도착한다. 몰은 한손에 가위를 들고 팔에는 바늘방석을 걸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바느질 일을 구한다는 표시이다. 그렇지 않으면 옷만드는 집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표시이다.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는 중년의 엘리자베스 니덤(Elizabeth Needham)이 몰을 유심히 보고 말을 붙인다. 엘리자베스 니덤은 런던에서도 악명높은 매음굴 주인이다. 길에서 무작정 상경한 여자들이 있으며 접촉하여 자기 집으로 끌고 오는 일을 한다. 니덤은 반반하게 생긴 몰을 자기 여관의 창녀로 확보할 생각이다. 이름난 난봉꾼인 프란시스 챠터리스(Francis Charteris) 대령과 그를 따라다니며 핌프 역할을 하는 존 굴레이(John Gourlay)가 한쪽에서 몰을 보고 관심을 갖는다. 챠터리스 대령과 핌프인 굴레이는 어느 허물어진 건물 앞에 서 있다. 허물어진 건물은 이들의 도덕적인 파탄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포주인 니덤이 시골에서 갓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어떤 젊은 아가씨에게 수작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도 모른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는 성직자로 보이는 어떤 사람은 마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에게 성경말씀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순진한 아가씨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직전에 있는 것을 모른채 한다. 마치 성직자가 타고 있는 말이 옆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무너트리고 있는데도 그런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순진한 시골처녀인 몰은 급기야 몰의 꼬임에 빠져 사창굴로 들어간다. 몰은 뭇 남자들의 섹스 만족을 위해 별별 짓을 다한다.

 

몰은 뜻밖에도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정식으로 일꺼리를 얻는 줄로 믿는다. 몰이 가져온 짐에는 My lofing cosen in Tems Stret in London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있는 네모난 짐이다. 시골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알수 있다. 원래는 My loving cousin in Thames Street in London 이라고 적어야 했다. 아마 런던에 살고 있는 사촌이 몰을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몰은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옷과 대조가 된다. 몰의 흰 옷은 순짐함을 의미한다. 몰의 짐 옆에 있는 죽은 거위도 역시 하얀 색이다. 어리석게도 속아넘어간 결과로 몰의 죽음을 예견하는 듯하다.

 

2. 창녀가 된 몰은 이제 어느 부자 상인의 전속 정부가 된다.

 

 

몰은 어느 부자 유태인 상인의 정부가 된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보면 집주인이 유태인인 것을 알수 있다. 자세히 보면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계명을 받고 있는 내용과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다. 몰은 좋은 옷과 비싼 구두를 신고 있다. 게다가 서인도제도에서 데려온 듯한 아이가 시중을 들고 있고 애완용으로 원숭이까지 있다. 한편에는 하녀가 대기하고 있다. 화장대 위에는 가면무도회에 갔다 온듯 가면이 놓여 있다. 그리고 작은 단지에 고급스런 화장품들도 들어 있다. 하녀에게 쉿이라고 손짓하는 남자는 몰의 두번째 정부이다. 원래 정부인 상인이 들어오자 황급히 자리를 뜨고 있다. 몰은 상인의 관심을 다른 데로 끌려고 일부러 발로 탁자를 차서 찻잔들이 떨어져 깨지도록 한다.

 

3. 몰은 전속 정부에서 일반 창녀가 된다.

 

 

몰은 부자 유태인 상인이 더 이상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하자 어쩔수 없이 니덤이 운영하는 매음굴로 돌아온다. 몰이 가지고 있는 가구라고는 커다란 침대가 전부이다. 탁자도 없어서 의자를 탁자처럼 사용하고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몰의 새로운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다. 벽에는 마녀들이 쓰는 모자와 빗자루가 걸려 있다. 몰이 마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는 매춘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악마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쪽 벽에는 몰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거지 오페라'에 등장하는 맥히스(Macheath)와 윌렴 사체베렐(William Sacheverell)이다. 그 위에는 성병을 치료하는 약들이 놓여 있다. 노상강도인 제임스 달턴(James Dalton)이 사용하던 가발 상자가 침대 위에 보관되어 있다. 달턴은 1730년 5월 11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달턴의 사용하던 물건이 있다는 것은 그와 몰이 한때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판사인 존 곤손(John Gonson)이 세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들어오고 있다. 몰을 체포하기 위해서이다. 몰은 한 손에 회중시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노상강도인 달턴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리라. 몰은 한 쪽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다. 하지만 존 곤슨은 몰의 아름다운 가슴에는 관심도 없는 듯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벽에 걸려 있는 마녀의 모자와 빗자루를 바라고보 있다. 아마 몰을 재판할 때에 마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인것 같다.

 

4. 몰은 브라이드웰 감옥소에서 밧줄 만드는 일을 한다.

 

 

몰은 브라이드웰(Bridewell) 감옥소에 들어간다. 몰은 교수형 받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밧줄을 만들기 위해 삼을 찧고 있다. 옆에서는 간수가 몰에게 어서 일을 하라고 다그치며 위협한다. 간수는 톰 존스에 나오는 못된 가정교사처럼 생겼다. 간수의 옆에 있는 여자는 간수의 마누라이다. 몰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서 훔치려고 하고 있다. 몰의 오른쪽에는 웬 남자 죄수가 있다. 아마 카드놀이를 하다가 붙잡혀 온것 같다. 바닥에 카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 남자는 개도 한마리 데리고 들어왔다. 감옥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왼쪽 벽에 걸려 있는 문구를 보면 알수 있다. Better to Work / than Stand thus 라고 적혀 있다. 그냥 서성거리는 것 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어떤 남자 한 사람은 손에 차꼬를 차고 있다.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다가 벌을 받는 모양이다.

 

인생 쓰레기인 남녀들

 

삼을 찧는 일을 하고 있는 여자는 어린 아이와 함께 있다. 아이는 아마 다운증후군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얼굴 모습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다운증후군에 걸려 있으면 납작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가 있고, 눈가에 덧살이 있으며 귀, 코, 입이 작다. 또한 키가 작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짧으며 지능이 낮다. 마지막으로 있는 여자는 아마 아프리카에서 온 것 같다. 그리고 임신중인 것으로 생각된다. 임신중인 여자 죄수는 처형이 연기되고 다른 곳으로의 이송도 금지 되어 있다. 오른쪽 벽에는 낙서가 그려져 있다. 존 곤손이 교수대에서 교수형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몰과 함께 들어온 하녀는 간수의 마누라가 몰의 옷을 훔치는 것을 보고 웃고 있다. 하녀는 몰이 신었던 구두를 신고 있다.

 

5. 몰이 성병으로 죽어가다

 

 

몰은 성병(임질)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두 사람의 의사가 치료방법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다. 검은 머리의 사람은 리챠드 로크(Richard Rock) 박사이고 하얀 머리의 사람은 진 미소빈(Jean Misaubin) 박사이다. 로크 박사는 환자로부터 피를 뽑아 내어 고치자는 주장이며 미소빈 박사는 뜸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 모두 엉터리 성병 치료로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왼쪽에 있는 여자는 아마 몰의 셋집 주인인듯하다. 집세를 받지 못했는지 몰의 물건들을 뒤져 값나가는 것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한편, 몰의 하녀는 의사들에게 다투지 말라고 소리치며 또한 집주인 여자에게 물건을 훔쳐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몰의 아들이 오른쪽 난로 옆에 앉아있다. 아마 엄마인 몰의 성병 때문에 감염되어 있는듯 보인다. 아이는 머리에서 이와 벼룩을 잡아내고 있다. 바닥에 있는 유월절 빵만이 이 아파트의 집세를 누구 내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오래전에 몰이 정부로서 지낸 유태인 상인이다. 유월절 빵은 파리 잡는 미끼로 사용되고 있다. 마루 바닥에는 마약이 포함되어 있는 진통제 등이 널려 있다. 몰은 마치 유령처럼 커다란 옷을 입고 있다. 죽음이 가까운 것을 의미하는 옷이다.

 

6. 몰의 영결식

 

 

마지막 그림은 몰의 빈소이다. 온갖 쓰레기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운데에 있는 관(피아노가 아님)의 뚜껑에는 '1731년 9월 2일 23세로 세상을 떠나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교구교회에서 목사도 와 있다. 목사는 옆에 있는 아가씨의 스커트 안으로 손을 집어 넣으면서 수작을 벌이고 있다. 몰의 아들은 관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놀고 있다. 너무 순진하여서 자기가 엄마의 시체 아래에서 팽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오른쪽 끝에 있는 아파트 집주인 여편네는 브랜디가 들어 있는 술병 옆에서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모두들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 여편네만이 몰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왜냐하면 몰의 시신을 넣은 상자는 여관에서 술탁자로 사용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조문하러 온 어떤 여자(아마도 창녀)는 몰의 시신에서 핸커치프를 슬쩍하려고 하고 있다. 또 다른 창녀는 옆에 있는 창녀에게 다친 손가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얼굴 매무새를 고치는 여자도 있다. 그 여자의 이마에 매독의 증세가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창녀가 분명하다. 가운데 벽에는 갈매기 표시와 수도꼭지 세개가 그려져 있는 문장이 걸려 있다. 목사가 들고 있는 술잔에서 술이 흘러나오는 것, 몰의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처참하게 된 몰. 원하지 않은 임신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