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과 민속음악(Folk Music)
[하이든은 원래 민속음악가?]
하이든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음악가들은 음악가정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하이든은 그렇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였고 베토벤의 아버지는 테너였다. 그러나 하이든의 아버지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마차바퀴를 만들거나 바퀴에 쇠를 입히는 일을 하는 대장장이 겸 목수였다. 하이든의 어머니는 귀족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여자였다. 하이든이 태어난 로라우라는 마을은 도시와는 거리가 먼 시골이었다. 당연히 음악교육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든의 식구들이 음악과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는 것은 아니다. 하이든이 아버지인 마티아스(Mathias)는 말하자면 민속음악가였다. 하이든이 나중에 남긴 기록을 보면 그의 아버지는 악보는 하나도 볼줄 몰랐지만 하프를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러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하프를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러 마을의 민속노래에 대하여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든의 식구들은 이웃사람들과 함께 자주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하이든도 그렇지만 동생 미하엘도 노래를 잘 불렀다. 하이든과 직접 인터뷰를 하여 '하이든 전기'를 쓴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그리징거(Georg August Griesinger)에 의하면 '하이든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아주 좋은 테너 음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든의 어머니인 안네 마리(Anne-Marie 또는 Anna Maria)는 남편이 하프를 연주하면 이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다. 어린 하이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이든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릴 때 부모님이 불렀던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고 자기의 작품에 사용하였다'라고 썼다.
크로아티아 민속무용
하이든은 여섯살이 채 안되었을 때 정식 음악교육을 받기 위해 인근의 하인스부르크 마을로 보내졌다. 먼 친척이 그곳에서 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합창단을 지휘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음악교육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이든은 그 나이에 벌써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느때 하이든은 '나는 다섯 살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다 기억한다'고 말했던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다시 말하여 위대한 하이든은 민속음악가로서 음악적 경력을 시작했다고 할수 있다. 하이든 학자들은 하이든이 어릴 때부터 민속음악에 접촉했던 것이 나중에 작곡가로서 활동할 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하이든은 그의 음악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파트에 민속음악을 적절히 사용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하이든은 어른이 된 후에도 민속음악을 수집하기 위해 시골마을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마치 1세기후에 헝가리의 벨라 바르토크, 또는영국의 본 윌렴스가 민속음악을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떤 민속음악을 즐겨 사용했는가?]
하이든은 여러 민족의 민속음악을 그의 작품에 도입하였다. 특히 오스트리아, 집시, 크로아티아의 민속음악을 즐겨 사용했다. 물론 어느 특정 지방의 민속음악을 사용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속음악이란 것은 시대에 따라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당시에도 국경이라는 것은 만들어졌다가 변경되었으며 이에 따라 어느 특정 민족들도 국가를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하이든의 초기 현악 5중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의 첫 악장에 나오는 멜로디는 크로아티아의 축배의 노래인 Mikaj na svetu 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다른 학자는 독일의 축배의 노래인 Es trieb ein Schaefer den Berg hinan 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노래이지만 세월에 따라 크로아티아의 민속음악일수도 있고 독일의 민속음악일수도 있다. 어쨋든 하이든의 작품에 인용된 민속음악들을 살펴보자.
(오스트리아 민속음악) '민속음악 Acht Sauschneider müssen sein에 따른 G 장조 카프리치오'라는 작품은 하이든이 오스트리아 민속음악을 직접 인용한 좋은 예이다. 하이든의 무곡 중 대부분도 오스트리아의 민속 모델을 사용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민속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젊은이들
(집시음악) 집시음악은 하이든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집시음악가들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민속음악가들이 아니라 민속적 배경을 가진 전문음악가들이다. 하이든의 파트론인 에스터하지 공자는 집시음악가들을 고용했다. 두가지 목적에서였다. 하나는 이들을 앞세워 이 여관에서 저 여관으로 다니며 병사들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집시음악가들은 모병춤을 추었다. 당시의 여관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마을회관이나 같은 역할이었다. 또 다른 목적은 궁전에서 파티가 있을 때에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하이든도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집시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하이든이 자기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 집시음악가들도 참가토록 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든이 집시 음악을 인용한 작품으로는 다음 세 작품이 대표적이다.
- 피아노 트리오 G 장조(Hob XV: 25)는 'Rondo in the Gypsies' Stile'로 끝나도록 되어 있다. 하이든이 그렇게 지정하였다.
- 현악4중주곡 제4번 작품번호 20에서 미뉴엣은 Alla zingarese(집시 스타일로)라는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이곡은 4분의 3박자로 작곡되었지만 4분의 2박자로 들린다.
- 키보드 협주곡 D 장조의 피날레는 Rondo all'ungherese(헝가리 스타일의 론도)라는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헝가리 스타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는 집시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민속음악) 하이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었지만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상당수 살았다. 그러므로 하이든이 어린 시절부터 크로아티아의 민속음악을 듣고 자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든은 정작 크로아티아를 한번도 가 본 일이 없다고 한다. 하이든의 작품에서 크로아티아의 민속음악이 살아 있는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교향곡 제104번(런던 교향곡)의 피날레의 오프닝 테마는 크로아티아의 전래노래인 Oj, Jelena, Jelena, jabuka zelena(오, 헬렌, 헬렌, 나의 풋 사과)를 인용한 것이다.
- 교향곡 제 103번(Drumroll: 팀파니 연타)의 피날레는 크로아티아 민속노래인 Divojčica potok gazi (개울을 건너는 어린 아가씨)에 기본을 둔 것이다.
- 현재 독일 국가로 사용되고 있는 멜로디는 하이든의 작곡으로 되어 있지만 뿌리를 보면 크로아티아 북부지역과 Međimurje 지역의 민속노래인 Stal se jesem 이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에 나오는 이 멜로디는 오스트리아의 애국적인 노래(Gott erhalte Franz den Kaiser)로도 사용되고 있다.
- 크로아티아에서 잘 알려진 노래인 Nikaj na svetu lepšega ni, nego gorica kad nam rodi...(이 세상에서 과일이 많이 열린 언덕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네...)는 하이든의 초기 작품인 G장조 카세이션(Cassation)에 나온다.
(하이든과 크로아티아)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의 음악가이지만 일부 학자들은 하이든의 원래 뿌리가 크로아티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동부에 살고 있던 크로아티아 소수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크로아티아 민속음악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그런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편, 독일의 음악학자들은 하이든이 독일 출신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특히 나치가 권력을 잡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그같은 주장이 제기되었다.
크로아티아 민속음악 연주
(다른 나라의 음악을 인용한 경우)
- 교향곡 제85번 La Reine 의 2악장은 옛 프랑스 민속노래인 La gentille et jeune Lisette 에서 가져온 것이다. 교향곡 85번은 파리 교향곡 시리즈의 하나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민속노래를 인용했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할 이유가 없다. 파리 시민들을 위해 작곡한 교향곡이기 때문이다.
- 하이든은 영국에서 비교적 오랜기간 머물렀다. 당연히 스코틀랜드 또는 웨일스의 민속음악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이든이 1791년부터 1804년까지의 기간에 작곡한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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