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파파 하이든

14편의 미사곡

정준극 2011. 8. 14. 06:50

14편의 미사곡

 

요제프 하이든

 

하이든은 14편의 미사곡을 남겼다. 모두 경건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일부, 정확히는 여섯 편은 에스터하지 사람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 공주의 명명일(name day)을 축하하여 작곡한 미사곡들이다. 교회음악, 특히 미사곡은 하이든의 생애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하이든은 어린 시절, 비엔나 슈테판성당의 소년합창단원으로서 미사에 참여하고 미사곡을 불렀다. 이로부터 하이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음악적 전통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하이든은 요즘 음악가들처럼 정규 대학에서 작곡이나 연주를 전공한 것이 아니며 해외유학을 간 일도 없다. 가톨릭 교회는 하이든의 음악적 재능을 훈련시켜준 곳이었다. 이탈리아어에 능숙했던 것은 다행히 그가 하숙하고 있던 집에 이탈리아의 시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울수가 있어서였다. 그가 직업음악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에스터하지 공자에게 봉사하고서부터였다. '교향곡의 아버지' 또는 '현악4중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은 약 40년이나 되는 에스터하지 봉사기간에 미사곡과 종교음악도 다수 작곡하였다. 그가 에스터하지와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비엔나에서 생애의 마지막을 보낼 때에 작곡한 작품도 실은 미사곡과 오라토리오였다. 불후의 명곡인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말년에 비엔나에서 완성한 것이다. 하이든은 참으로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가 작곡한 악보들을 보면, 특히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부면 악보의 첫 장에는 In Nomine Domine(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썼으며 마지막 장에는 Fine Laus Deo(주님을 찬양하며 마치도다)라고 썼다. 그의 미사곡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작곡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심의 표현이었다. 하이든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 하이든이기에 우리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슈테판성당. 하이든은 소년시절 이곳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하이든이 미사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슈테판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보켄(H 또는 Hob)은 모든 미사곡을 XXII(22)번에 넣고 다시 연대별로 분류하였다. 독일어 미사곡은 없고 모두 라틴어로 된 미사곡이다. 하이든의 14개 미사곡 중에서 12개는 완전한 형태의 것이지만 2개는 미완성이다. 하이든은 17세 때인 1749년에 첫번째 미사곡을 완성한 이래 1802년까지 미사곡 작곡을 계속하였다. 다만, 중간에 갭이 있다면 1783-1795년이었다. 영국에 가서 몇년 동안 살았던 것도 그 시기였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사곡은 하이든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손에서 놓지 않고 작곡했던 장르이다. 1782년 이전에 작곡한 여섯 개의 미사곡은 스타일에 있어서 다른 것들과 상당히 다르다. 두개의 짧은 미사곡인 Missae breves in F와 Sanctis Joannis de Deo(리틀 오르간 미사) 사이의 작품들은 비엔나 교회 트리오(Viennese church trio: 바이올린 2와 베이스 콘티누오 1)의 소박한 연주관례에 따른 작품들이다. 하지만 풍부한 오케스트라의 미사곡들도 있다. 예를 들면 Missa Cellensis in honorem B.M.V.(그로세 마리아첼러메세)이다. 반면에 1796년 이후에 작곡한 후기의 여섯 미사곡을은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Missa rorate coeli desuper는 하이든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호보켄 카탈로그는 31번(XXXI)까지 정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XXII이 미사곡이다.]


1. F 장조. Missa brevis. H. XXII/1. (1749) [Missa brevis는 짧은 미사곡이라는 의미이다.]. 미사 브레비스는 미사를 집행하는 시간이 짧아서 정규 미사곡을 연주할 필요가 없을 때, 미사곡을 연주할수 있는 인원이 부족할 때, 미사곡을 완성하지 못해서 미완성된 자체로 연주해야 할 때 등에 해당된다. 하이든의 첫번째 미사곡인 F 장조 미사 브레비스는 대단히 짧은 미사곡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미사곡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런데 이곡은 사실 하이든이 10대의 청소년으로서 아직도 비엔나의 슈테판성당(슈테판스돔)의 소년성가대원으로 있을 때에 작곡한 것이다. 그때 하이든은 17세였다. 물론 초보적인 작품이다. 구성도 바이올린 2, 콘티누오, 4부합창, 두명의 보이스 소프라노로 되어 있다. 하이든은 변성기가 되어 더 이상 소년합창단에서 노래부르기가 어렵게 되자 슈테판성당에서 나와야 했다. 하이든은 마리아첼교회로 순례를 가서 그곳 음악감독에게 미사 브레비스를 보여주었다. 마리아첼교회 성가대가 하이든의 미사 브레비스를 연주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얼마후에는 이 미사곡의 악보가 손으로 필사되어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이든이 자기의 소년시대 작품을 다시 만난 것은 한참 후인 1805년이었다. 비엔나 교외의 로사우(Rossau)에 있는 제르비테(Servite) 수도원에서 F장조 미사 브레비스의 악보를 찾았다면서 누가 보여주었기 때문에 재회할수 있었다. 그때 하이든은 이미 63세의 노년이었다. 건강이 악화되어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하이든은 수십년 전에 처음 만들었던 미사곡을 보고 감개가 무량해서 악보에 'di me Giuseppe Haydn mpri 1749'라는 글을 직접 썼다. '나에 의해서, 요제프 하이든, 내 손으로, 1749년'이라는 내용이다. 하이든은 반주부분을 수정하고 싶었지만 노년에 병세여서 이루지 못했다. 하이든은 특히 반주부분에 목관악기를 추가하고 싶어했다. 반주부분은 훗날 요제프 하이덴라이히(Joseph Heindenreich)라는 사람이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팀파니를 추가하는 반주부분을 완성했다. 연주시간은 12분에 불과하지만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Credo), 상투스(Sanctus), 베네딕투스(Benedictus), 아누스 데이(Agnus Dei)로 완벽하게 구성된 미사곡이다.

 

2. D 단조. Missa Sunt bona mixta malis. H. XXII/2 (1768?. 1770년 이전)

3. G 장조. Missa Rorate coeli desuper. H, XXII/3. (미확인 또는1750). Votivmesse zu Ehren der Gottesmutter in der Adventszeit(강림절에 즈음한 성모 봉헌 미사). 하이든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4. E 플랫장조. Grosse Orgelmesse(대 오르간 미사). Missa Cellensis in honorem Beatissimae Virginis Mariae. H. XXII/4. (1766-73). Cäcilienmesse 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성체칠리아를 위한 미사곡이 아니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B.V.M)를 위한 미사곡이다. 하이든이 에스터하지 궁전의 정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임명되고 나서 첫 작품이다.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하이든 하우스의 화재 때에 악보가 소실되었다고 믿어졌으나 나중에 안톤 브루크너가 부다페스트에서 발견했다.


5. C 장조. Cäcilienmesse(세실리아미사). Missa Cellensis in honorem Beatissimae Virginis Mariae(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위한 셀렌시스 미사). H. XXII/5. (1766). 1761년부터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터하지가에 봉사하기 시작한 하이든은 처음에 부음악감독의 직위에 임명되었다가 1766년에 정음악감독이던 그레고르 요제프 베르너(Gregor Joseph Werner)가 세상을 떠나자 곧이어 정음악감독에 임명되었다. 이 미사곡은 바로 그 시점에 작곡한 것이다. 오리지널 악보는 1970년경에 부다페스트에서 발견되었다. 그 오리지널 악보에 의하면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슈티리아에 있는 마리아첼(Mariazell) 순례교회의 순례자 미사를 위해 작곡했다고 되어 있다. 오리지널 악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사본 악보들을 통해서 이 미사곡을 '성세칠리아미사곡'(Missa Sanctae Caeciliae) 또는 독일어로 '체칠리엔메세'(Cäcilienmesse)라고 알려졌다.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아마도 비엔나의 음악인조합인 '장크트 체칠리아 모임'(St Cecilia's Congregation)이 성세칠리아 축일인 11월 22일에 연주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오리지널 악보는 1768년 아이덴슈타트에서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하이든은 기억을 되살려서 이 미사곡의 악보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오리지널의 음악을 좀 더 확대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오리지널 악보에는 키리에와 글로리아만이 있었으나 하이든이 나중에 다른 파트들도 추가했다는 주장이다. 하이든이 다시 적은 악보는 훗날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가 처음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미사곡을 브루크너 미사곡이라고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세실리아미사'의 구성은 일반 미사곡들과 마찬가디로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누스 데이로 되어 있다. 전체 곡은 15곡이다.


6. G 장조.  Missa Sancti Nicolai(성니콜라이 미사). H. XXII/6. (1772). 니콜라이미사(Nicolaimesse)라고도 부른다. 하이든이 말년인 1802년에 수정하였다. 수정버전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추가하였다.


7. B 플랫 장조. Missa brevis Sancti Joannis de Deo(성요한 미사 브레비스). H. XXII/7. (1778 이전). 'Kleine Orgelmesse'(작은 오르간미사곡)이라고도 부른다. 아이젠슈타트의 의료봉사형제단(Barmherzige Bruder: Brothers Hospitallers)를 위해서 1775년에 작곡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형제단의 수호성인이 포르투갈 출신의 성자로서 박애주의자인 John of God(João de Deus: 1495-1500)이어서 성요한 미사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작은 오르간 미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베네딕투스 파트에서 오르간 솔로가 상당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아이젠슈타트의 병원채플에서 열렸던 이 미사곡의 초연에서 오르간을 직접 연주했다. '작은 오르간'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병원채플의 오르간이 페달도 없이 여섯 스톱으로만 되어 있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포르투갈의 성요안은 의료형제봉사단을 설립한 사람이다. 하이든은 여러 편의 짧은 미사(미사 브레비스)를 작곡했는데 성니콜라이 미사는 마지막으로 작곡한 미사 브레비스이다. 만일 미사 브레비스 로라테 코엘리 데수퍼(Missa brevis Rorate coeli desuper)도 하이든의 작품으로 확정된다면 하이든이 작곡한 미사 브레비스는 전부 다섯편이 된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합창, 현악기, 오르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나중에 수정할 때에는 트럼펫, 팀파니, 클라리넷이 추가되었다. 이 미사곡이 잘츠부르크에서 연주될 때에는 가사가 너무 압축되었다고 해서 연주할수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하이든이 글로리아 파트에 가사를 덧붙여서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하엘 하이든이 연장한 스코어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고 하이든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연주될 뿐이다. 한편,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헤츠버거는 베네딕투스 파트를 새로 작곡해서 붙이기도 했다.


8. C 장조. Missa Cellensis, Mariazellermess(셀렌니스 미사, 마리아첼미사). H. XXII/8. (1782). 이 미사곡의 풀 네임은 Missa Cellensis Fatta per il Signor Liebe de Kreutzner이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 미사곡을 안톤 리베 폰 크로이츠너(Anton Liebe von Kreutzner)라는 장교가 그의 귀족서훈을 기념해서 하이든에게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슈티리아의 순례교회인 마리아첼에게 헌전하였다. 그러므로 이 미사곡은 '마리아첼 미사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이든은 이미 1773년에 Missa Cellensis in honorem B.V. M.를 마리아첼교회에 헌정한바 있다.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후기 다른 미사곡들에 비하여 전통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글로리아, 크레도, 아누스 데이의 말미에 푸가를 넣은 것과 글로리아와 크레도 솔로 파사지를 넣었고 베네딕투스에는 솔로적인 아리아를 넣은 점도 이채롭다. 한편, 하이든은 이 미사곡에 여러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키리에의 도입부에 느린 템포의 교향적 음악을 넣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초기 미사곡들과 후기 미사곡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이든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경배하기 위해 두 편의 미사곡을 작곡했다.

 

미사곡 9번부터 14번까지는 에스터하지 가족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즉, 에스터하지의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의 명명일(9월 12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마리아 헤르메네길트 공주는 하이든의 친구이기도 했다. 명명일은 주로 같은 이름의 성인의 축일을 자기의 축일로 정해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오피다의 성베르나르드 미사'는 성모명명축일인 9월 11일에 연주되었다고 하지만 9월 12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파우켄미사'는 1797년 12월 26일에 초연되었다. '불안한 시기의 미사'는 1798년 9월 23일에 초연되었다. '천지창조 미사'는 1801년 9월 13일에 초연되었다. 이 미사곡에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특히 글로리아에서 등장한다. '하모니 미사'는 1802년 9월 8일에 처음 연주되었다. 하이든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주요작품이다. 하이든은 '하모니미사'를 완성하고 나서 곧이어 병세가 악화되어 거동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더 이상 작곡할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젠슈타트의 버그키르헤 전경. 하이든의 후반기 미사들은 대부분이 이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9. C 장조. Missa in tempore belli(전쟁시기의 미사). H. XXII/9. (1796). '전쟁미사'(Mass in Time of War)이다. Paukenmesse(팀파티 미사곡: Kettledrum Mass)이라고도 부른다. 나폴레옹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오스트리아군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지은 곡이다. '팀파니 미사곡'이라고 불리는 것은 마지막 파트에서 팀파니의 연주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팀파니는 독일어로 파우켄(Pauken)이라고 하기 때문에 '파우켄메세'라고도 부른다.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전체 14개 미사곡 중에서 아마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 것이다. '전쟁시기의 미사'라는 타이틀은 하이든의 오리지널 악보에 하이든의 친필로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하이든이 이 미사곡을 작곡하던 1796년에는 오스트리아 전국에 전쟁동원령이 내려졌던 때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유럽은 4년이라는 기간동안 프랑스가 주도하는 전쟁에 휘말려야 했다. 오스트리아군은 북부 이탈리아와 동부 독일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패배했고 이어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것으로 여겨져서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이든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베네딕투스와 아누스 데이에 표현하였다. 이 미사곡은 179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비엔나 8구 요제프슈타트의 피아리스텐가쎄 43-45번지에 있는 피아리스텐키르헤(Piaristenkirche)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마리아 트로이(Maria Treu)교회라고도 불리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이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아이젠슈타트의 버그키르헤에서 비엔나 초연이 있은 다음 해인 1797년 월에 연주되었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함께 양대 종교음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하이든의 반전 감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전체 가사 중에는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하이든 자신도 이 미사곡이 반전 주장을 담은 것이라고 언급한 일도 없다. 다만, 음악 자체가 하이든의 음악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하이든이 당시의 불안감을 표현하지 않았겠느냐고 짐작할 뿐이다. 두려움과 불안감은 베네딕투스와 아누스 데이에서 특별히 인식할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 미사곡도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명랑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든이 이 곡을 작곡할 즈음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포고령을 내고 '오스트리아 국민이라면 적군이 자기들 본래의 국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어느누구도 평화를 말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작곡한 것이기 때문에 '전쟁시기의 미사'라는 타이틀이 더욱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전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아누스 데이에서 팀파니가 단조로 연주하는 것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때에 울리는 심연으로부터의 팀파니 소리는 어떤 운명적인 예감을 나타내주는 것처럼 들린다. 훗날 베토벤도 그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에서 '전쟁시기의 미사'에서의 팀파니 음향을 다시 들려주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팀파니의 운명적인 음향이 끝나면 트럼펫의 팡파레와 함께 마치 환희에 넘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이 나온다. 평화가 이미 온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10. B 플랫 장조. Missa sancti Bernardi von Offida(오피다의 성베르나르드 미사). H. XXII/10. (1796). 영국에서 귀국후 첫 미사곡이다. Heiligenmesse(하일리겐메세: 성미사)라고도 부른다.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카푸친 수도회의 성직자인 성베르나르드의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여 작곡한 것이다. 베르나르드는 사후 1백년만에 바티칸의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성자로 시성되었다. 이 미사곡을 하일리히겐메세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 미사곡의 상투스 파트에서 당시 유행하였던 오스트리아의 전통 멜로디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상투스는 독일어로 하일리히(Heilig)이다. 안톤 브루크너의 장엄미사곡 B 플랫 단조에서 쿠오니암(Quoniam)은 하이든의 이 미사곡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11. D 단조. Missa in Angustiis(불안한 시기의 미사). H. XXII/11. (1798). Nelson Mass(Nelsonmesse)라고도 부른다. 나폴레옹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하이든 연구의 대가인 미국의 로빈스 랜던은 '넬슨미사'를 하이든의 최대 걸작 중의 하나라고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이든은 에스터하지가를 위해 거의 해마다 한편씩의 미사곡을 작곡했는데 1797년에는 잠시 쉬었다. 요제프 2세는 1780년대에 여러 개혁을 추진하는 중, 교회와 수도원에 대한 개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도원을 줄이고 교회의 권한을 제한하는 와중이므로 미사곡 작곡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이든의 14개 미사곡 중에서 마지막 몇 작품은 하이든이 런던을 방문하고 나서 작곡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든이 런던 심포니로부터 얻은 경험이 반영되었다. 다시 말해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보다 화려해지고 웅장해 졌다. '넬슨미사'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한편,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적 정세는 불안하고 예측할수 없는 것이었다. 하이든의 파트론인 에스터하지의 니콜라우스 2세는 긴축재정을 하기 위해 에스터하지가에서 운영하던 펠트하모니(Feldharmonie), 즉 8중주의 목관악기 밴드를 해산하였다. 하이든이 '넬슨미사'를 완성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이든은 '넬슨미사'를 '어두운'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연주토록해야 했다. 즉, 목관이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어두운 음색의 연주를 해야 했다. 다만, 하이든은 현악기 이외에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만을 추가하여 반주를 하도록 했다. 오케스트라가 빈약했기 때문에 이를 '어두운'(dunkel)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훗날 편곡자들이 목관과 금관악기들을 적당히 추가하여 완벽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지만 처음에는 오케스트라가 빈약했었다.


에스터하지의 니콜라우스 2세. 하이든의 후기 여섯 미사곡은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 공주의 명명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하이든이 '넬슨미사'를 완성한 1798년은 하이든의 명성이 정상에 있을 때였지만 유럽의 정치정세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서 1년 동안에 네번이나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전해인 1797년에는 나폴레옹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와서 비엔나를 위협했었다. 이어 나폴레옹은 1798년 5월에 이집트를 침공하여 영국의 아시아 무역로를 차단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1798년 여름은 오스트리아로서 대단히 두려운 시기였다. 하이든이 11번째 미사곡을 완성하고서 제목을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Missa in Angustiis: Mass for troubled times)라고 붙인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였다.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그해 9월 15일에 처음 연주되었는데 그 때만해도 하이든과 청중들은 나폴레옹이 8월 1일의 나일 전투에서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Admiral Horatio Nelson)에게 크게 패배하였다는 소식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저런 연고로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넬슨경 미사'(Lord Nelson Mass)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넬슨경 미사'가 이 미사곡의 제목으로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넬슨경이 1800년에 비엔나를 방문해서 영국인 정부인 레이디 해밀튼과 함께 팔레 에스터하지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을 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넬슨 제독


어떤 사람들은 이 미사곡의 원래 제목인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하이든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하이든이 그런 제목을 붙였다고 내세우기도 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공식적으로 1799년 3월에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처음 연주되었지만 그로부터 하이든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하이든은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을 빈약한 오케스트라를 대상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 또는 '넬슨 미사곡'은 1798년 9우러 23일 아이젠슈타트의 교구교회(Dom St. Martin in Eisenstadt)에서 초연되었다. 원래는 예에 의해서 버그키르헤에서 연주되는 계획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장소가 변경되었다.


'넬슨미사'가 초연된 아이젠슈타트의 교구교회(성마르틴대성당)


12. B 플랫 장조. Theresienmesse(테레지아미사). H. XXII/12. (1799).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며 오스트리아 대공인 프란시스 2세의 황비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제목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 앙뚜아네트의 어머니인 저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시실리 왕국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말한다. 두 시실리 왕국(Regno delle Due Sicilie)은 나폴리 왕국과 시실리 왕국을 함께 부르는 명칭이다. 프란시스 2세 황제의 부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 자신이 소프라노여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가 1801년 5월에 비엔나의 궁전에서 사사롭게 연주되었을 때에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었다. 하이든이 원래 이 미사곡을 작곡했을 때에는 '테레지아미사'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에 다만 라틴어로 미사(Missa)라고만 적었다. 그러다가 훗날 이 미사곡을 마리아 테레지아 황비를 위해 작곡한 것을 알고 '테레지아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테레지아미사곡은 1799년 9월 8일 아이젠슈타트의 버그키르헤에서 초연되었다. '테레지아미사곡'은 '넬슨미사곡'이나 '전쟁미사곡' 만큼 자주 연주되고 있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작품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테레지엔미사곡은 나폴리와 시실리 왕국의 공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2세 황제의 부인이 된 마리아 테레지아(1772-1807)를 위한 미사곡이다.


13. B 플랫 장조. Schöpfungsmesse(천지창조미사). H. XXII/13. (1801). '천지창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이 미사곡의 글로리아 파트에서 Qui tollis peccata mundi라는 가사의 노래를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에서 아담과 이브의 마지막 듀엣의 음악을 가져다가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듀엣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부군인 프란시스 1세를 은근히 비유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프란시스 2세의 황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하이든에게 글로리아의 듀엣 대신에 특별히 자기만을 위한 새로운 듀엣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프란시스 2세의 황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에게 손자 며느리가 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4.  B 플랫 장조. Harmonienmesse(하모니미사). H. XXII/14. (1802). '목관악기밴드 미사곡'(Wind-band Mass)라고도 부른다.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 미사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독일어에서 목관 앙상블을 '하르모니'라고 부른다. 이 미사곡은 목관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 작품이어서 '하모니 미사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첫번째 곡인 키리에의 도입부는 하이든의 후기 성악작품 중에서 가장 놀랄만큼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것이다.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다른 미사곡들에 비해서 긴 편이지만 말이다. 아누스 데이 파트는 교향곡 98번의 아다지오를 연상케 하며 동시에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연상케 한다. '하모니 미사곡'은 2009년 5월에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성령강림 미사를 드리는 중에 연주되었다. 2009년은 마침 하이든 서거 200주년을 맞는 해였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는 4편이다.

1. Il Ritorno di Tobia(토비아의 귀환). 1775

2. Die Schopfung(천지창조). 1796-98

3. Die Jahreszeiten(사계). 1801

4. Die sieben letzte Worte unseres Erlosrs am Kreutze(십자가상의 칠언). 1786


가톨릭 교회에서는 많은 미사가 있다. 성만찬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는 해당되는 미사곡이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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