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20. 알프레드 브루노의 '꿈'

정준극 2011. 8. 16. 09:54

꿈(Le Rêve) - The Dream

알프레드 브루노(Alfred Bruneau)의 4막 오페라. 에밀 졸라의 원작 소설

 

작곡가 알프레드 브루노(1857-1934)

 

프랑스의 위대한 자연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의 연작소설 Les Rougon-Macquart(루공 마까르 총서)는 모두 20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6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Le Rêve(꿈)이다. 참고로 말하면 어느 고급 창녀의 삶을 다룬 소설  Nana(나나: 1880)는 9번째 소설이며 어느 광산촌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폭로한 Germinal(제르미날: 1885)는 13번째 소설이다. Les Rougon-Macquart 에는 Hisoire naturelle et sociale d'une familie sous le Second Empire(프랑스 제2제국 당시 어느 가문의 사실적-사회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렇듯 이 총서는 루공 마까르라는 집안에 대한 이야기로서 대부분 작품이 이탈리아 베리스모 스타일이다. 즉, 프랑스적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들이다.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

 

16번째 소설인 Le Rêve 를 프랑스의 알프레드 브루노(Louis-Charles-Bonaventure-Alfred Bruneau: 1857-1934)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대본은 유명한 루이 가예(Louis Gallet: 1835-1898)이 썼다. 루이 가예는 구노, 생생, 비제, 마스네 등의 수많은 오페라 대본을 쓴 사람이다. 4막의 오페라 '꿈'은 1891년 6월 18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에서 초연되었다. 특별한 것은 브루노가 이 오페라를 에밀 졸라의 부인에게 헌정했다는 것이다. 브루노는 청년시절에 에밀 졸라와 친분을 맺어 평생을 친구로서 지냈다. 브루노는 당시 프랑스 학파의 기수라고 불릴 정도로 새로운 사조에 앞장 섰다. 그가 에밀 졸라의 작품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은 프랑스 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의 오페라는 각 주인공을 대표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와 같은 스타일이다. 그는 주인공들의 성격을 음악으로 묘사하는데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1막에서 주교의 노래인 Pendant une peste cruelle(잔혹한 역병의 기간중에)와 2막에서 그의 독백인 Seigneur, J'ai dit: Jamais(오 하나님, 나는 맹세하나이다)가 그러하다. 안젤리크가 주교에게 간청하는 내용도 귀중하다.

 

알프레드 브루노가 오페라 '꿈'을 헌정한 마담 에밀 졸라

 

'꿈'은 고아 안젤리크 마리(Angélique Marie)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는 안젤리크 마리가 1851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고아인 안젤리크는 보몽(Beaumont)이라는 대성당 마을에서 수예점을 경영하는 사람의 집에 양녀로 들어간다. 안젤리크는 이탈리아의 복자 자코뷔 드 보라진(Jacobus de Voragine: 보라기네의 야코부스: 1230-1298)이 쓴 Golden Legend(황금 전설: 라틴어로는 Legenda aurea)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황금 전설'은 성자들과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안젤리크는 특히 성 아네스(St Agnes)와 성 조르즈(St George)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안젤리크는 동정녀 순교자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의 시험을 받으나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때 핸섬한 왕자가 나타나 자기를 구해주며 그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안젤리크의 꿈과 행복은 펠리시앙 도트쾨르(Félicien d'Hautecœur)라는 청년을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실현된다. 펠리시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귀족 기사 가문의 후예이다. 하지만 몽시뇨르(Monseignuer)라는 귀족 타이틀을 가진 펠리시앙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을 크게 반대한다. 펠리시앙은 안젤리크에게 아버지의 승락을 받지 말고 멀리 떠나서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안젤리크는 이같은 제안을 거절하며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결혼은 살수 없다고 말한다. 몽시뇨르를 아름다운 안젤리크의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에 감동하여 결국 결혼을 승락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성당의 문 밖에 나온 안젤리크는 신랑인 펠리시앙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안젤리크는 이 세상에서의 지고한 사랑과 행복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서 자기의 꿈을 실현한 것이다. 이상이 소설 '꿈'의 줄거리이다.

 

안젤리크 마리의 꿈을 표현한 무대

 

이제 오페라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막이 오르면 간소한 프랑스 실내장식으로 된 자수점이다. 창문 밖으로는 꽃이 만발한 정원과 성 아네스 성당이 보인다. 안젤리크는 수를 놓던 것을 무릎에 놓아두고 '황금 전설'이라는 책을 읽는다. 안젤리크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성자들의 이야기가 마치 눈 앞에 어른거리는 실제의 일들처럼 생각한다. 그는 특히 화형에 처하여 순교한 성 마르셀린(St Marceline), 채찍으로 순교한 성 솔랑(St Solange), 용감하게 무서운 용을 죽인 성 조르즈(St George)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안젤리크의 양부모인 위베르(Hubert)와 위베르탱(Hubertine)은 그런 안젤리크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안젤리크의 신앙을 깊이 존경한다. 잠시후 자수점에 영광스럽게도 주교가 방문한다. 주교는 안젤리크의 수놓는 재능을 사랑하는 것 만큼 신앙심 깊고 어여쁜 안젤리크를 사랑한다. 안젤리크의 양부모는 주교에게 어떻게 하여 안젤리크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어느날 눈길에서 거의 죽어 있는 듯한 불쌍한 안젤리크를 데려와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딸로 삼았다는 것이다. 주교는 안젤리크에게 부탁한 성당에서 사용할 자수를 살펴보고 너무나 아름답게 잘 만든데 대하여 감탄한다. 주교는 그의 선조 중의 한 사람이 역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던 이야기를 해 준다. 그 사람은 다만 Si Dieux veut, je veux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로서 병자들을 치료했다고 하며 이 집에서도 그와 같은 놀라운 은총이 있었음을 치하한다.

 

졸라의 '꿈' 표지

   

주교가 그런 얘기를 할 때에 안젤리크의 귀에는 하늘에서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안젤리크는 감격적인 환상에 빠진다. 안젤리크의 얼굴은 마치 아침 햇빛 처럼 밝아진다. 그런 안젤리크의 모습을 보고 주교도 놀란다. 얼마후 주교가 떠나자 양어머니는 주교가 한때 결혼했었으며 그의 젊은 부인이 아들 하나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아들이 성직자가 되지 않겠다고 하여 주교로부터 버림을 받고 방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그 아들은 천사처럼 아름답고 왕처럼 부유하다는 말도 덧 붙인다. 안젤리크는 자기가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내용을 설명한다. 언젠가는 왕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겠다는 내용이다. 양어머니는 왕과 결혼하겠다는 소리에 놀라지만 안젤리크에게 왕은 언제나 필요할 때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안젤리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마침 창문 밖으로 어떤 멋진 젊은이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안젤리크는 그가 기다리던 왕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지만 아무도 없다.

 

다음 장면은 맑은 개울이 흐르는 들판이다. 사람들이 린넨을 빨래하고 말리고 있다. 안젤리크도 양부모와 함께 린넨 천을 세탁하고 풀 밭위에 말린다. 안젤리크는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 린넨에 라벤더 꽃을 뿌린다. 그리고 자기는 남아서 할 일이 있다고 하며 양부모를 먼저 집으로 보낸다. 사람들도 모두 집으로 간다. 백합의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조용한 들이다. 안젤리크는 하늘에서 울려퍼졌던 천사들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서 들에 남아 있다. 햇살이 성당의 스테인드 창문에 부딪힐 때에 햇빛을 뚫고 어떤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안젤리크는 처음에는 그가 성 조르즈인줄로 생각한다. 너무나 늠름하고 용감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사람인줄 알았던 그가 안젤리크에게 다가온다. 그 사람은 안젤리크에게 자기는 스테인드 글래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이름은 펠리시앙이라고 밝힌다. 안젤리크도 그에게 자기를 소개한다. 펠리시앙이 안젤리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안젤리크는 그에게 '어찌하여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펠리시앙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두 사람이 나중에 결혼하게 된 시작이다.

 

안젤리크는 펠리시앙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양부모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안젤리크의 양부모는 펠리시앙이라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 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양부모는 펠리시앙이 다이아몬드가 박힌 옷을 입고 있으며 손이 일꾼과는 달리 너무나 하얗기 때문에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묻는다. 펠리시앙은 내일이면 모든 것을 대답하겠다고 한다. 내일은 코르푸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축일이다. 다음날, 양부모가 성체 행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체를 운반하는 사람들 중에 주교의 옷을 입고 있는 펠리시앙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펠리시앙이 아니라 모두들 존경하는 주교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펠리시앙과 주교가 무척 닮았다. 펠리시앙은 주교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안젤리크는 '몬시뇨르의 아들이다'라고 기쁨에 소리치지만 안젤리크의 양부모는 펠리시앙이 주교의 아들인 것을 알고 어쩐 일인지 안젤리크를 깊은 슬픔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주교는 자기 아들과 안젤리크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자기 아들을 자기가 이미 경험했던 세상의 인간적인 굴레에서 구해야 한다고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안젤리크의 양부모가 주교에게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지만 주교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펠리시앙도 간절히 요청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안젤리크가 주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발 아래에 엎드리지만 주교의 대답은 '절대 안된다'라는 것이었다. 안젤리크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펠리시앙은 안젤리크의 마음의 상처가 이제 고쳐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가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가 누워서 나오지 않고 있어서 찾아간다. 펠리시앙은 창백한 안젤리크의 모습을 보고 그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펠리시앙은 저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안젤리크도 처음에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안젤리크의 귀에는 하늘로부터 운명에 순응 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절제하고 극기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안젤리크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펠리시앙의 제안을 거절한다. 펠리시앙은 아버지인 주교를 만나 옛 선조가 역병에 걸린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여 치료해준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상심으로 죽어가고 있는 안젤리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교의 마음은 완강하다. 펠리시앙이 주교의 발 아래 엎드려 다시 한번 간절히 소원하는데 주교와 펠리시앙의 귀에 하늘로부터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안젤리크에게 자주 들리던 그 소리이다. 주교는 그의 죽은 부인의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주교는 성유(聖油)를 가지고 위베르의 오두막집에 축성한다.

 

안젤리크의 영혼은 이미 그의 몸을 떠난 것 같다. 그러나 성유로 축성하는 순간에 그는 입을 열어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라고 중얼거린다. 주교의 선조들이 깊은 신앙심으로 말하던 내용이다. 주교는 감격하여 안젤리크의 이마에 입맞춘다. 그러자 안젤리크는 눈을 뜨고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을 보기 위해 살아나리라'라고 말한다. 다음날, 안젤리크와 펠리시앙은 대성당에 가서 혼인미사를 드린다. 결혼식이 끝나고 대성당에서 나올 때 안젤리크는 마치 너무 기쁘고 행복한 듯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안젤리크는 사랑하는 펠리시앙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