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니콜(Anna Nicole)
Mark-Anthony Turnage(마크 안소니 터니지)의 2막 오페라
마크 안소니 터니지(1960-)
마약, 섹스, 탐욕, 그로테스크한 행위...오페라에서도 이런 주제가 가능할까? 결론은 '가능하다'이다. 일반적으로 오페라라고 하면 반짝이는 샨들리에 아래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며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들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오페라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밑바닥 생활을 훔쳐보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일 유명인사가 대상이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엿보는 내용이 섹스와 연결되어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내용은 말하자면 일부 관음증을 가진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오페라의 주인공들 중에서 상당수가 이른바 타락한 여인들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추어진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룰루, 비올레타, 마농...마치 불나방이처럼 환락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결국엔 비참한 삶을 마쳐야 하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모두 그런 연유에서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런 여인들의 행태는 다분히 저속한 사랑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본받을바가 되지 못한다. 사회의 도덕을 위해 곤란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라고 간주할수 있는 오페라가 2011년 2월, 전통과 명예를 존중하는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세상이 떠들석할만큼 에피소드가 많았던 미국의 모델 겸 배우인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나 니콜(공식적인 이름은 안나 니콜 스미스)이라고 하면 플레이보이 잡지의 가운데 페이지에 풍만한 가슴을 내보이며 매력적인 웃음을 짓는 여자, 노인을 섹스의 대상으로 삼는 노인성애자인 여자, 지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천박한 생활의 여자,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린 딸 하나를 두고 세상을 떠난 여자...그렇지만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이야기는 런던에서 서정적인 스테이지로 자리를 옮겼다.
오페라 '안나 니콜'의 한 장면
오페라 '안나 니콜'(Anna Nicole)은 영국의 클래식 작곡가인 마크 안소니 터니지(Mark-anthony Turnage: 1960-)의 2막 작품이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터니지에게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에 적합한 신화적인 주제, 영웅적인 주제의 오페라를 부탁하였다. 굳이 저 멀리 선조들의 영웅적인 신화를 주제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힌트였다. '안나 니콜 스미스'의 이야기는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안나 니콜 스미스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만일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영웅이라는 호칭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안나 니콜 스미스는 신화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만든 여신으로서 신화적인 존재였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보통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격화된 인물이다. 현대판 어메리컨 드림의 표본이었다.
영어 대본은 영국의 음악가, 작가, 코미디 배우인 리챠드 토마스(Richard Thomas: 1964-)가 완성했다. 오페라 '안나 니콜'은 플레이보이지 모델이며 배우이고 TV 호스트였던 안나 니콜 스미스의 특이한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안나 니콜'은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마크 안소니 터니지의 다섯번째 오페라이다. 그는 1988년에 '그리크'(Greek)로 오페라에 도전한 이래 1997년에 Twice through the Heart 와 '장님나라'(Country of the Blind)를 내놓았으며 2000년에는 '실버 태씨'(The Silver Tassie)를 내놓았고 2011년에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특이한 작품이라고 하는 Anna Nicole을 내놓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작곡가이다. 그는 아직도 한창인 나이에 오페라뿐만 아니라 발레곡, 오케스트라곡, 합창곡, 실내악곡, 성악곡, 기악협주곡 등 수많은 작품을 내놓아 현대의 작곡가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대본을 쓴 리챠드 토마스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오페라 Jerry Springer(제리 스프링저)는 그가 음악과 대본을 모두 맡은 뛰어난 작품이다.
리챠드 토마스(1964-)
오페라 '안나 니콜'은 2011년 2월 17일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안토니오 파파노(Antonio Pappano)가 지휘를 맡았고 타이틀 롤은 바그너 소프라노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Eve-Maria Westbroek)가 맡았다.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는 런던에서의 '안나 니콜' 초연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에 지글린데로 출연하였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인 안소니 토마시니(Anthony Tommasini)는 오페라 '안나 니콜'에 대하여 '기괴하며 지나치게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마음을 빼앗는 작품이다. 감동적이다. 엔터테인멘트 작품으로서 훌륭하다.'라고 말했다. 대본에 대하여는 '재치있고 문학적이며 통찰력이 있다'고 말했다. 타이틀 롤인 안나 니콜 스미스(Anna Nicole Smith: 1967-2007)가 누구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텍사스 출신의 웨이트레스였으나 플레이보이의 핀업 걸이 되어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여자이다. 이어 영화에도 출연하고 TV 토크쇼의 호스트도 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무려 62세 연상의 석유재벌 억만장자인 제임스 하워드 마샬(J. Howard Marshall: 1936-1995)과 결혼하여 2년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2007년, 39세의 나이에 무일푼의 신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약물중독이라고 한다.
플레이보이지 모델, 배우, TV 호스트 등을 지낸 안나 니콜 스미스(1967-2007)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오페라에는 섹스, 탐욕, 마약, 괴기한 행위 등이 점철되어 있으므로 예고 포스터에는 '과격한 언어, 먀악과 섹스에 대한 지나친 표현'이라는 경고를 적어 놓았다. 검열 당국도 대본을 자세히 검토하여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삭제토록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영국의 신문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려고 방탕과 허영, 비도덕과 불륜의 종말이 어떠니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의 신문들은 원래 그렇다. 이에 대하여 코벤트 가든의 오페라감독인 엘렌 파드모어(Elaine Padmore) 여사는 "오페라 '안나 니콜'이 젊은 여자의 벗은 모습을 내세워서 인기를 끌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안나 니콜 스미스의 스토리를 오페라로 만든 것은 시대에 뒤 떨어졌다는 얘기도 듣지만 우리는 새로운 각도, 새로운 차원에서 안나 니콜 스미스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페라 '안나 니콜'은 사실상 사람들이 현대 문화예술에 대하여 얼마나 신뢰성을 갖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즉, 피상적인, 표면적인 사항만 보고서 그 작품을 평가하면 곤란하다는 얘기이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자칫 저속하게 비칠 '안나 니콜'의 예술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정상의 인물들이 공연에 참여토록 했다. 마치 안나 니콜 스미스 자신이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가장 정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무대감독은 유명한 리챠드 존스(Richard Jones)가 맡았고 오케스트라 지휘는 거장 안토니오 파파노가 맡았으며 타이틀 롤은 바그너 소프라노로서 정상에 있는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가 맡게 되었다. 또한 이 시대 최고의 바리톤이라고 하는 제랄드 핀리(Gerald Finley)도 주역을 맡았다.
오페라 '안나 니콜'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
오페라 '안나 니콜'의 등장 인물은 다음과 같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안나 니콜(S), 그의 어머니인 버지(Virgie: MS), 아버지인 대디 호간(Daddy Hogan: B), 첫 남편인 빌리(Billy: Bar), 두번째 남편으로 억만장자인 제이 하워드 마샬(J. Howard Marshall: T), 안나 니콜의 숙모인 케이(Kay: MS), 안나 니콜의 사촌인 셸리(Shelly: MS), 안나 니콜의 변호사인 스턴(Stern: B-Bar), 안나 니콜의 아들인 영 다니엘(Young Daniel: Silent), 10대 소년으로 성장한 다니엘(Bar), TV 저널리스트인 래리 킹(Larry King: T), 예스 박사(Dr Yes: T), 멕시아의 시장(T), 멕시아의 부시장(Bar), 트럭운전자(T), 이밖에 Meat Rack 4중창단, 마샬의 가족들, 랩 댄서들, 무대위의 밴드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하워드 마샬과 랩 댄서들
안나 니콜의 생애는 섬뜩하리만치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안나 니콜은 텍사스의 해리슨 카운티의 어떤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마을이었다. 원래 이름은 빅키 린 호건(Vickie Lynn Hogan)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18세 때에 빌리 스미스라는 청년을 알게 되어 학교도 중퇴하고 결혼했다. 빅키 린 호건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 이름을 안나 니콜이라고 바꾸고 머리는 블론드로 염색하여 완전히 딴 사람 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남편의 성을 따서 공식적으로는 안나 니콜 스미스라고 불렀다. 안나 니콜은 웨이트레스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휴 헤프너의 플레이보이 잡지의 핀 업 걸이 되었다. 그후 안나는 이른바 티티 바(Titty bar: 여자들이 거의 누드로 춤도 추고 서브하는 바)의 랩 댄서(남자들의 무릎에까지 앉아서 춤을 추는 여자)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곳을 자주 드나들던 어떤 노인이 있었다. 석유기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하워드 마샬이었다. 안나 니콜에게 흠뻑 빠진 하워드 마샬은 안나 니콜과 결혼하였다. 안나 니콜이 26세였고 하워드 마샬은 89세였다. 여자는 음란함을 절제하기가 어려웠고 남자는 정신적으로 부족한 형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함께 산 적은 없다. 다만 쇼핑만 엄청나게 했다. 안나 니콜은 남편 하워드 마샬을 휠체어에 태우고 보석상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발리움과 같은 정신안정제를 줄곧 복용토록 했다. 안나 니콜의 관심은 오로지 쇼핑이었다. 집에서 하워드 마샬은 익히지 않은 생베이콘이나 먹어야 했으며 어떤 때는 비오는 날에 휠체어에 탄채 밖에 혼저 버려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 노인네는 결국 안나 니콜을 과부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안나는 장례식에서 등이 다 보이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팔에는 애완견을 안고 있었다. 이것은 곧 자기는 어느때나 자유로울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마샬의 가족들이 안나에게 재산을 상속할수 없다고 분쟁을 일으키자 안나 니콜은 소송을 걸어 대법원까지 가져갔다. 소송은 안나 니콜이 세상을 떠난지 몇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아직 계류중이다.
하워드 마샬을 휠체어에 태우고 보란듯이 끌고 다니면서 사치와 방탕을 즐긴 안나 니콜. 정신이 좀 어떻게 된 하워드 마샬은 그런 생활이 그래도 좋은듯 안나 니콜이 하자는대로 했다.
안나 니콜가 유명인사가 된 것은 순전히 철면피 기질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아무런 재주도 재능도 없으면서 무슨 일에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섰기 때문이다. 안나 니콜은 TV 시리즈인 Naked Gun(우리나라에서는 '총알을 탄 사나이'라고 번역)의 후편에 잠깐 나온바 있다. '가장 형편없는 배우'상을 받았다. 오 제이 심슨이 최악의 조역배우로 상을 받은 것과 같다. 안나 니콜은 표범가죽 무늬의 옷을 입고 누가 무슨 질문을 하면 '야옹'이라고 대답하기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나 니콜은 그런대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절제없이 먹어대기만 했고 더구나 엉터리 플라스틱 성형수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몸이 말이 아니게 되자 모델을 그만두지 않을수 없었다. 2002년부터는 운이 좋게도 TV 쇼에 출연할수 있었다. 안나 니콜의 새로운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더구나 전국적인 조소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안나 니콜의 백치적인 행동을 은근히 좋아했다. 안나 니콜은 2006년에 딸 대니린(Dannielynn)이 태어났다. 참으로 뜻밖에 안나 니콜은 제왕절개 수술로서 대니린을 낳는 장면을 TV 에 방송케 했다.
하워드 마샬과의 결혼식. 안나 니콜은 이미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
안나 니콜에게 딸이 태어나자 어중이 떠중이들이 아빠라고 주장하며 나섰다. 자자가보와 결혼한 프레데릭 폰 안할트 공자(Frederic Prinz von Anhalt)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리고는 하워드 마샬의 유산을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법원은 아가의 아버지가 파파라치 사진사인 래리 버크헤드(Larry Birkhead)라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딸 대니린이 태어난 다음날, 안나 니콜의 스므살 먹은 아들 다니엘이 약물과다로 죽었다. 안나 니콜이 아직 10대로서 비키라는 이름으로 있을 때 빌리 스미스와 결혼하여 생긴 아들이었다. 다니엘이 끔찍하게 죽은 배경에는 안나 니콜의 변호사이며 의도적인 애인이라는 변호사 하워드 스턴의 음모가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2007년, 안나 니콜이 39세가 되는 해의 어느날, 안나 니콜은 플로리다의 하드 락 호텔(Hard Rock Hotel)의 화려찬란한 방에서 죽었다. 마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메타돈이라는 약을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년후 개인 변호사인 스턴은 안나 니콜에게 마약을 공급했으며 약사자격증도 없으면서 약을 처방하여 주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하워드 마샬의 죽음
안나 니콜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거식증에 걸린 여자였다. 항상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먹어댔다. 일례로 보면 라스 베가스의 카지노 부페에서 음식을 보고 괴성을 지르면서 다가와 접시에다 음식을 가득담고 의자에 앉지도 않은채 먹기 시작했다. 샐러드는 먹지도 않고 주로 버거, 소시지, 와플, 불갈비, 가공 치즈, 휘핑 크림을 입에 쓸어넣었다. 그리고는 설사로 고생을 하거나 먹어댔기 때문에 찐 살을 빼기 위해 지방흡입술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항상 안고 다니는 애완용 푸들도 이름을 슈가 파이(설탕 파이)라고 붙였다. 먹을 것이 없는 비상사태가 오면 푸들이라도 먹어치우겠다는 속셈인 것 같다. 그런 안나 니콜인데 숫자에는 밝지 못했다. 비록 중퇴이지만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10진법에 대하여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날 법정에서 '제로만 보면 골치아프다'라고 말했다. $2,500 을 $25.00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워드 마샬과의 즐거운 한때
안나 니콜이 그나마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옷을 벗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먹고 돈 쓰는 것이 그의 직업이라면 노출은 그의 비즈니스였다. 안나 니콜의 그 큰 가슴은 카메라 앞에서 자주 노출되었다. 아마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그런 그를 게슴프레한 눈길로 바라보는 뭇 남자들에게 그는 '내 몸이 탐나나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관중들은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폈다. 마치 고대 바빌론에서 신전의 여사제가 제사를 지내러 온 남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성스럽다는 깃발아래 매춘을 한 것이나 다를바가 없는 행동이었다. 안나 니콜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반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서슴없이 받아 들인 정도였다.
춤추는 안나 니콜
로열오페라하우스(ROH)의 오페라감독인 엘렌 파드모어는 마크 안소니 터니지가 작곡한 '안나 니콜'이 저속한 오페라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극장에서 펴낸 소개책자를 보면 붉은 색의 불타는 듯한 글씨체로 '과격한 언어, 마약 남용과 섹스에 대한 내용'이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다. 그만큼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의 오페라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하기야 대본은 리챠드 토마스의 책임이다. 그는 이미 제리 스프린저(Jerry Springer)라는 오페라로서 저속한 언어가 자주 나오는 대본을 쓴바 있다. 그런 대본에 익숙치 않은 점잖은 음악애호가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오페라들을 보면 저속한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상당수 있으며 사람들은 그런 오페라를 걸작으로서 애호하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인 비올레타는 고급 창녀이며 푸치니의 마농 레스꼬 역시 고급 창녀와 다름없는 여자가 아니던가? 그리고 마스네의 타이스도 창녀였다. 안나 니콜이 기본적으로 이들과 다른 점은 없다. 안나 니콜이 허드슨의 클럽에서 무대위의 기둥을 잡고 다리를 꼬며 춤을 추는 것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스트립 춤을 추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음란하고 저속한 춤에 대하여 환호하는 뭇 남자들
오페라에서는 대체로 이들 음란하고 타락한 여인들이 나중에는 모두 구원을 받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올레타는 자기를 희생함으로서 동정과 함께 추앙을 받는 여인으로 승화한다. 타이스도 십자가의 아래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나 니콜은 그러하지 못했다. 무대에서 안나 니콜은 우아하거나 존경을 받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마지막을 장식했다. 안나 니콜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잘못은 예수에게 있다고 히스테리컬하게 부르짖었다. 곧이어 그는 자기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추한 사진을 3류 잡지사에 팔아 넘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안나 니콜은 아들의 장례식에서 뚜껑을 열어 놓은 아들의 관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몇달후 안나 니콜은 먹은 것을 잔뜩 토해 놓아서 악취가 나는 모습으로 죽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은 당장 인터넷에 올려져 수백만명이 보았다.
하워드 마샬과 안나 니콜
오늘날 디바(Diva)라는 호칭은 인기인으로서 행실이 나쁜 여자를 말할 때에 사용하는 것이 되었다. 안나 니콜도 금명간에 그런 호칭을 갖게 될 것이다. 오페라 '안나 니콜'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화란의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가 맡았다. 바그너, 푸치니, 베르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정상급 성악가이다.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는 작곡자인 터니지로부터 '안나 니콜'의 스코어를 받고 나서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안나 니콜이 상식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했는지 의아해 하며 안나 니콜의 역할을 그대로 소화할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였다.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는 안나 니콜이 살로메처럼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떤 에로틱한 강요에 의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자기를 스스로 파멸시키게 되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뢰크는 안나 니콜이 환상적인 삶을 살기도 했지만 죽음을 예견이나 한듯 비극적인 생애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그에 적합한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페라 '안나 니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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