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탄 던의 '차: 영혼의 거울'

차: 영혼의 거울(Tea: The Mirror of the Soul)

Tan Dun(탄 던)의 3막 오페라

 

탄 던(1957-)

 

중국 후난성(호남성)에서 문화혁명의 와중에 태어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가 19세 때에 바흐, 베토벤과 같은 서구음악을 접하고서는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여 작곡을 시작한 탄 던은 현재 뉴욕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작곡가이다. 중국은 인구가 하도 많아서 별별 특별한 사람도 많이 나오지만 탄 던도 그중의 하나이다. 참으로 뛰어난 작곡가이다. 간단히 말해서 동양적인 음악과 서양적을 음악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켜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는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의 음악을 맡아 오스카상을 받았다. 그는 '시황제'(The First Emperor) 등 여러편의 오페라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차(茶): 영혼의 거울'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오페라는 일본 토쿄의 산토리 홀(Suntory Hall)로부터 위탁을 받아 2002년 10월 22일 산토리 홀에서 세계 초연을 가진 오페라이다. 일본의 산토리 기업이 광대한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뜻한바 있어서 문화예술의 깃발부터 올린 것이 아닌가 싶은 작품이다. 유럽 초연은 이듬해인 2003년 1월 7일 네덜랜드 암스테르담의 헤트 무지크테아터(Het Muziektheater)에서 였다. 대본은 중국의 극작가인 수 잉(Xu Ying)이 탄 던과 협력하여 썼다. 베이징에서는 2008년 9월 천안문 광장에 있는 인민문화궁전에서 공연되었다.

 

고승 세이쿄가 지난날의 쓰라린 사랑이야기를 수도승들에게 얘기해 주고 있다.

               

'차: 영혼의 거울'은 차를 생과 사, 그리고 사랑으로 비유하여 당나라의 란(Lan)공주와 그의 오빠인 왕세자(이상하게도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리고 란공주를 사랑하는 일본의 세이쿄(Seikyo)왕자(또는 귀족 청년)의 삼각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세이쿄는 과거에 그가 수도승으로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함께 지냈던 수도승에 대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회상하며 이야기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이쿄는 내면의 금욕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잔혹한 운명을 초월한다. 그에게 있어서 다도는 그와 같은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며 절차이다. 그러나 다도는 이 오페라의 내용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열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에는 질투가 뒤따른다. 그리고 결국은 질투로 인하여 죽음에 이른다.

 

차의 현자 류우와 세이쿄 왕자

                          

신비스런 동양의 음악과 화려한 서구의 오케스트라를 접목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서정성과 남성들의 그리스 스타일의 합창, 또한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처럼 생긴 타악기가 끊임없이 연주되며 여기에 자연의 소리가 운치를 더해준다. 자연의 소리는 물, 종이, 돌의 소리이다. 사실상 이 오페라의 하일라이트는 오리지널 악기들을 스펙터클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는 6명으로 구성된 여성 앙상블이 등장한다. 이들이 오페라의 전체 스토리를 악기로서 리드한다. 이들은 마치 우산살 처럼 생긴 동선(銅線)으로 만든 악기, 물을 가득 담은 커다란 유리 대접, 끝이 구부러진 유리병과 같은 악기, 그리고 여기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연의 소리가 등장한다. 창호지는 찟거나 종이봉지처럼 만들어 터트려버려 소리를 낸다. 두꺼운 종이는 마치 현수막처럼 무대 천정에 걸어서 흔들어 소리를 내거나 북처럼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 커다란 유리대접에 물을 쏟아 붓는 소리도 사용한다. 돌은 서로 부디치거나 막대기로 때려서 소리를 낸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소리를 재생한 것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오페라로서 감동적인 아리아나 마음에 와 닿는 합창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음악과 대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듯 도전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멋대로라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 공연. 황제와 세이쿄와 란공주. 2008년 7월.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세이쿄(Seikyo: Bar)는 일본의 수도승으로 철학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일본의 왕자였다. 란(Lan: S)은 중국의 공주이다. 왕자(T)는 란공주의 오빠이다. 꼭두각시 수도승(S)은 '사랑'을 의미한다. 꼭두각시 원숭이왕(T)은 '분노'를 의미한다. 그림자(B)는 전통과 문화를 의미한다. 차의 현자인 루유(Luyu: MS)의 딸 루(Lu)는 차를 상징하며 정령의 메신저이다. 수도승 코러스는 베이스 바리톤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종교를 의미한다. 세명의 타악기 연주자는 자연을 의미하며 물, 종이, 도자기를 악기로 사용한다.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차의 현자 류우

              

오페라 '차'는 고대의 이야기를 21세기로 끌어 올린 작품이다. [제1막] 일본의 교토(京都)이다. 사원의 다원에서 일본식 다도가 진행되고 있다. 고승인 세이쿄가 빈 차주전자를 높이 들어 올리고 빈 찻잔을 손으로 돌리며 빈 찻잔에서 차의 향기를 맡는다. 그 모든 것이 엄격한 의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승들이 세이쿄에게 어찌하여 무(無)에서 다향을 맡고 있느냐고 묻는다. 원래 왕자로 태어난 세이쿄는 10년전에 쓰라린 사랑의 상처를 입고 승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대는 10년전의 중국 장안(長安)이다. 궁전에서는 황제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름다운 란공주와 그의 오빠인 왕자가 아버지 황제를 위해 춤을 춘다. 그때 세이쿄가 들어서자 황제는 놀래서 그를 맞이한다. 두 사람은 즐거웠던 옛 추억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이어 세이쿄는 란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황제는 잠시 주저하더니 세이쿄에게 다시(茶詩) 한수를 읊어 달라고 요청한다. 옆에 있던 왕자는 세이쿄가 란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자 안된다면서 분노한다. 그러나 세이쿄가 시 한수를 훌륭하게 읊자 황제는 만족하여서 딸 란공주와의 결혼을 승락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공연

                   

중국의 다례(茶禮)가 진행되고 있다. 어떤 페르시아 사람이 도착하여 1천 마리의 말을 줄테니 한 권의 책을 달라고 요청한다. '다서'(茶書)라는 책이다. 지혜의 내용이 가득히 적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왕자는 소매에서 마지못해 그 책을 꺼내서 말 1천마리와 교환코자 한다. 세이쿄는 왕자가 가지고 있는 책이 세이쿄의 스승인 '차의 현자' 루유가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분노와 질투심에 휩싸인 왕자는 세이쿄에게 도전한다. 왕자는 만일 세이쿄가 진짜 '다서'를 보여준다면 자기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세이쿄도 만일 자기가 진서(眞書)를 보여주지 못하면 죽음으로서 사죄하겠다고 말한다.

 

여과기로 물을 내려 유리 대접에 떨어지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이다.

                            

[제2막] 세이쿄와 란공주는 진짜 '다서'를 찾기 위해 남쪽으로 떠난다. 진서는 산중에 은둔하고 있는 '차의 현자' 류우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란공주는 세이쿄에게 수천년 전에 차가 처음 개발되었던 전설에 대하여 자세하게 얘기해 준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가면서 사랑을 꽃 피운다. 두 사람의 사랑의 장면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이다. 란공주는 '차의 노래'를 부르며 세이쿄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사랑과 섹스를 비유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꼭두각시를 이용한 연출. 차를 상징한다.

                    

[제3막] 두 사람은 남쪽 산에 도착한다. 마침 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차의 현자' 류우의 딸인 루가 이들에게 차를 권한다. 루는 현자 류우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힌다. 루는 세이쿄와 란공주에게 진짜 다서를 내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다만, 두 사람이 다서에 적혀 있는 지혜의 말씀을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두 사람이 다서의 내용을 읽고 있을 때 왕자가 뛰쳐 들어와 그 책을 가로 챈다. 세이쿄와 왕자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두 사람의 결투를 말리려는 란공주는 오히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란공주의 몸은 흐르는 피에 젖어 있다. 란공주는 비어있는 찻잔을 들어 마치 향기로운 차를 마시듯 허무함을 마신다. 왕자가 세이쿄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을 바친다. 세이쿄는 왕자를 죽이는 대신 칼을 들어 자기의 머리칼을 자른다. 다시 일본의 다원(茶苑)이다. 수도승들이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다. 고승인 세이쿄는 빈 차주전자를 들어 올리고, 빈 찻잔을 손으로 돌리며, 빈차의 향기를 맡는다.

 

빈차의 다례를 행하고 있는 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