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73. 게타노 도니체티의 '파리시나'

정준극 2011. 10. 26. 22:29

파리시나(Parisina) - Parisina d'Este

Gaetano Donizetti(게타노 도니체티)의 3막 오페라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파리시나'도 소개

 

게타노 도니체티(1797-1848)

                      

바이런 경이 1816년에 발표한 파리시나(Parisina)라는 서사시는 너무나 감동을 주는 내용이어서 연극, 미술, 음악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그 감동이 표현되었지만 특히 오페라로 표현된 작품들이 있어서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게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가 작곡한 '파리시나'이다. 대본은 유명한 대본가인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썼다. 펠리체 로마니는 수많은 오페라의 대본을 썼으며 특히 도니체티와 콤비가 되어 많은 대본을 완성했다. 예를 들어 '사랑의 묘약' '이탈리아의 터키인' 등의 대본은 모두 펠리체 로마니가 쓴 것이다. 그러한 로마니가 바이런 경의 '파리시나'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고 이를 사용하여 도니체티가 우선 1833년에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이어 1878년에는 토마소 지리발디(Tomaso E. Giribaldi)가 역시 '파리시나'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이어 한참후인 1913년에는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역시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이 오페라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스토리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바이론경의 작품을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은 같다. 바이런의 작품과 도니체티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파리시나는 실제로 안드레아 말라테스타(Andrea Malatesta)의 딸인 파리시나 말라테스타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안드레아 말라테스타는 로마냐(Romagna) 지방의 영주였다. 또한 바이런의 시와 도니체티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아쪼(Azzo) 공작은 실제로 페레라 지망의 영주인 니콜로 3세(Niccolo III)를 말한다고 한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파리시나'의 음반 커버.

 

도니체티의 오페라 '파리시나'는 1833년 3월 17일 피렌체(플로렌스)의 테아트로 델라 페르골라(Teatro della Pergola)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 타이틀 롤인 파리시나는 유명한 소프라노 카롤리나 웅게르(Carolina Ungher)가 맡았고 그가 사랑하는 우고(Ugo)의 역할은 테너 길베르 뒤프레(Gilbert Duprez)가 맡았으며 아쪼 공작은 바리톤 도메니코 코쎌리(Domenico Cosselli)가 맡았다. 이밖에 파리시나의 충성스런 시녀인 이멜다(Imelda: MS), 아쪼 공작의 신하로서 우고의 수양아버지인 에르네스토(Ernesto: B)도 등장한다. 바이런의 '파리시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리시나는 15세기에 페레라의 영주인 니콜로의 두번째 부인으로 실은 니콜로의 아들인 우고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파리시나는 니콜로 공작과 어쩔수 없이 결혼하기 전에 우고와 약혼한바 있다. 자기의 부인인 파리시나가 아들인 우고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니콜로는 크게 분노하여 아들 우고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파리시나로 하여금 우고의 사형장면을 보도록 한다. 사랑하는 우고가 사형당하는 모습을 본 파리시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결국 실성하여 비참한 삶을 마친다. 어찌보면 쉴러의 대서사시 '돈 카를로'(Don Carlo)의 배경과 흡사하다. 우고는 니콜로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자라는 주장도 있다.

 

'파리시나'의 피날레 장면. 스칼라 극장.

 

[제1막] 아쪼 공작의 궁전에서 에르네스토를 비롯한 공작의 신하들과 귀족들이 공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 나타난 공작은 에르네스토에게 새로 결혼한 파리시나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분노한다. 공작의 첫번째 부인인 마틸데도 다른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바 있다. 공작이 자리를 뜨자 우고가 들어온다. 우고는 에르네스토가 어릴 때부터 데려다 길렀다. 우고는 공작궁에 자주 드나들며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공작의 포악함에 반항하다가 추방되었다. 그런 우고가 공작의 허락도 없이 공작궁을 찾아오자 에르네스토는 공작이 우고를 보고 분노할 것이 분명하므로 공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한 차에 에르네스토는 우고가 파리시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밝히자 너무나 놀라서 더욱 두려워 한다.

 

파리시나는 충성스런 하녀인 이멜다를 비롯하여 다른 시녀들과 함께 정원에서 쉬고 있다. 궁전에서는 축제가 준비되고 있다. 기사들이 도착하고 있다. 우고도 그 기사들 중의 하나이다. 마침내 모두 축제를 위해 자리를 뜨고 정원에는 마침내 파리시나와 우고만이 남는다. 파리시나는 우고에게 이곳에 오면 안된다고 하면서 어서 도피하라고 간청한다. 그때 뜻밖에 공작이 들어선다. 두 사람을 본 공작은 불같이 화를 내며 우고에게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지를 묻는다. 파리시나가 우고를 위해 변명하지만 그럴수록 공작의 분노는 오히려 겉잡을수 없이 커진다. 우고가 함께 온 기사들과 함께 포(Po)강으로 나가 보트를 타고 떠나려 하자 공작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고에게 축제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다. 에르네스토, 우고, 파리시나는 극도로 불안한 심정이다. 이들은 공작의 포악함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두렵다.

 

[제2막] 파리시나의 방에서 이멜다를 비롯한 시녀들이 즐거운 축제와 연회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공작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고 있는 파리시나가 행복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고와 파리시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이멜다는 조금전 정원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공작이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없이 조용한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잠시후 파리시나가 들어온다. 무척 피곤한 모습이다. 파리시나는 곧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시녀들이 모두 나가자 공작이 파리시나의 방에 몰래 들어와 파리시나의 동정을 살피고자 숨어 있는다. 파리시나는 꿈에 우고가 옆에 있는 것으로 믿어서 어서 함께 멀리 도망가야 된다고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들은 공작은 파리시나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우고인 것을 확인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파리시나를 깨워 비난을 퍼붓는다. 겁에 질려 낙담한 파리시나는 마침내 우고를 사랑하고 있다고 밝힌다. 공작은 칼을 빼어 당장이라도 파리시나를 죽이려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칼을 넣는다.

 

궁전의 다른 방에서는 사람들이 연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고는 파리시나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지 무언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갑자기 병사들이 나타나 공작의 지시라고 하면서 우고를 데리고 간다. 공작은 우고에게 파리시나의 고백이 사실인지 묻는다. 우고가 사실이라고 말하자 공작은 병사들에게 우고를 당장 데리고 나가서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그때 황급히 들어온 에르네스토는 공작에게 우고가 실은 공작의 전부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공작의 전부인인 마틸데는 공작궁에서 추방되면서 어린 아들을 에르네스토에게 맡기고 떠났던 것이다. 공작은 우고가 과연 자기의 아들인 것을 확인하고 인정한다. 공작은 우고에게 내렸던 사형명령을 취소한다.

 

[제3막] 궁전교회에서 성가가 들린다. 파리시나가 사랑하는 우고를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이멜다가 들어와서 파리시나에게 편지 한장을 전한다. 우고가 어서 함께 멀리 떠나자고 말한 편지이다. 파리시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급기야는 사랑을 위해 우고를 따라 떠나기로 결심한다. 장송곡이 들린다. 그때 공작이 나타나 파리시나의 발길을 막으면서 병사들에게 우고의 시체를 보여주도록 한다. 파리시나는 우고의 죽음을 보고 공포로 어찌할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다.

 

*************************************************************************************************

마스카니의 '파리시나'

 

피에트로 마스카니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가 가브리엘레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의 대본으로 '파리시나'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1913년 12월 1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물론 바이런 경이 1816년에 발표한 '파리시나'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다. 마스카니는 1888년에 70여명의 라이벌을 물리치고 손초뇨(Sonzogno) 작곡경연대회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우승을 차지하여 일약 유명한 작곡가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마스카니는 이탈리아 전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892년도 코벤트 가든의 이탈리아 시즌에 참석하여 자기의 오페라들을 직접 지휘하였다. 1902년에는 북미를 방문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얼마후부터는 아마도 그의 작곡 능력이 쇠약해 졌는지 새로 오페라를 작곡해도 별다른 성공을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Le maschere(가면)이라는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7개 극장에서 동시에 공연되었지만 마스카니가 지휘한 로마에서의 초연만이 겨우 유지되었을 뿐이며 다른 곳에서의 공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마스카니는 과거의 성공을 만회하고자 유명한 대본가인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의 도움으로 바이런 경의 서사시 '파리시나'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했다. 당시 마스카니는 3부작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파리시나'는 제2부작으로 추진하였다. 제1부작은 '리미니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a Rimini)였으며 제3부작은 '시기스몬도'(Sigismondo)였다. 시기스몬도는 시작하지도 못했다. 마스카니는 이 세편의 스토리가 모두 놀랄만한 비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우선 오페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의 대본은 보석과 같이 찬란한 것이어서 그의 도움으로 오페라를 만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다눈치오의 대본을 받아 본 마스카니는 대사의 투명함과 명료함, 그리고 종이 울리는 것과 같은 가사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마음속에 불길이 치솟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눈치오의 대본에 매료했다. 그런데 그런 감동과 창조적인 노력이 불행하게도 방해를 받았으니 다름 아니라 마스카니의 부인이 마스카니가 안나 롤리(Anna Lolli)라는 여인과 밀회를 하고 있음을 알고 집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시나'는 마스카니가 다눈치오로부터 대본을 받은 때로부터 11개월 후에 겨우 완성되었다. [마스카니의 여인들, 특히 안나 롤리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오페라 잡기장> 중, '오페라에 영향을 준 여인들' 편에 잠시 소개하여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마스카니의 '파리시나' 음반 커버

 

마스카니는 대본이 너무 좋아서 그랬는지 아무튼 대본에 손을 대지 않고서 작곡하고 싶은대로 작곡했다. 결과 무려 3시간 40분이나 걸리는 4막의 오페라가 완성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런 긴 오페라를 좋아할리가 없었다. 초연이 있은 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평론가인 조반니 포짜(Giovanni Pozza)는 대놓고 마스카니의 '파리시나'를 '훌륭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터무니없이 길다'면서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만일 길이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파리시나의 역할이 평가절하 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스카니의 후원자, 동료, 친지들은 과거 마스카니의 오페라에 대하여 찬사를 퍼부으면 부었지 단 한마디도 이렇다 저렇다 쓴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모두들 한결 같이 '컷, 컷, 컷'이라고 소리쳤다. 자기의 작곡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마스카니로서도 어쩔수 없었다. 그리하여 4막을 삭제하고 3막으로 끝나는 것으로 단축했다. 오늘날 '파리시나'는 거의 공연되고 있지 않지만 만일 공연된다면 이제는 4막까지 되살려서 공연하고 있다. 왜냐하면 4막에 베스트 음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고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파리시나.

 

마스카니의 '파리시나'의 등장인물은 도니체티에서의 등장인물과 약간 차이가 있다. 파리시나 말라테스타(S)와 우고 데스테(Ugo d'Este: T)는 같다. 도니체티에서 아쪼(Azzo)공작은 마스카니에서 니콜로 데스테(Nicolo d'Este: Bar)로 바뀌었고 파리시나의 충실한 시녀인 이멜다도 마스카니에서는 라 베르데(La Verde: MS)로 바뀌었으며 우고의 친구로서 알도브란디노 데이 랑고니(Aldobrandino dei Rangoni)가 새로 등장한다. 그리고 니콜로 데스테의 첫번째 부인은 도니체티에서 마틸데라는 이름만 등장하지만 마스카니에서는 스텔라 델라싸씨노(Stella dell'Assassino: MS)라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

 

[제1막] 니콜로 데스테 후작의 별장이다. 활쏘기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스텔라가 후작의 아들인 우고를 은밀히 만나려고 나타난다. 스텔라는 니콜로 후작의 첫번째 부인이며 우고는 그가 낳은 아들이다. 스텔라는 최근에 후작이 파리시나와 결혼하는 바람에 쫓겨나야 했다. 스텔라는 후작과 파리시나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 스텔라는 자기의 아들인 우고도 자기와 같은 생각인 것으로 믿어서 우고에게 함께 복수하자고 요청한다. [제2막] 로레토 수도원이다. 성당에서는 성스러운 합창이 들려오고 저 멀리 아드리아해로부터는 선원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파리시나는 성모에게 자기의 옷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바치고자 한다. 그때 우고의 동료인 알도브란디노가 들어와서 우고가 에스클라봉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한다. 잠시후 전쟁에서 승리한 우고가 들어온다. 파리시나가 우고를 성당의 성소로 안내하여 성모상 앞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우고는 자기의 검을 성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바친다. 전쟁에서 곧바로 성당을 찾아온 우고의 옷에는 피로 얼룩져 있다. 우고가 너무나 피곤하여 쓰러지려 하자 파리시나가 그를 품에 안아 부축한다. 그때 우고의 옷에 묻어 있는 피가 파리시나의 겉옷에 묻는다. 승리에 도취한 우고는 파리시나와 키스를 나눈다. 성당에서는 아직도 성스러운 합창이 울려퍼진다. [제3막] 벨피오레 후작궁이다. 파리시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책을 읽고서는 그 스토리를 자기와 우고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여 너무 걱정을 하다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된다. 책에서는 리미니의 프란체스카기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남편에게 발각된다. 그때 우고가 들어온다. 두 사람은 다시 감격적인 포옹을 한다. 하녀 라 베르다가 급히 뛰어 들어와 사냥을 나갔던 니콜로가 지금 돌아오고 있다고 전한다. 니콜로는 자기 부인인 파리시나와 아들인 우고가 벌거 벗은채 침대에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두 사람을 모두 처형하라고 명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