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76. 자크 오펜바흐의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

정준극 2011. 11. 6. 07:40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Geneviève de Brabant) - Genevieve of Brabant

Jacques Offenbach(자크 오펜바흐)의 3막 오페라 부프(Opéra bouffe) 또는 오페레타

 

자크 오펜바흐(1819-1880)

 

유럽에 사는 사람으로서 중세로부터의 전설인 '브라반트의 마리' 또는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를 모른다고 하면 말도 되지 않는다. 13세기에 바바리아 공작이며 라인 영주(팔라틴 백작)인 루이2세(루드비히2세: 1229-1294)의 부인인 마리(Marie: 1226-1256)에 대한 실제 스토리이다. 마리는 오늘날의 벨기에를 중심으로 있었던 브라반트 공국의 헨리2세의 딸이어서 '브라반트의 마리'라고 불렀다. 남편 루이2세는 아내인 마리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하여 1256년 1월 18일에 마리를 참수형에 처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음모였고 오해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루이2세는 깊이 후회하고 일생을 참회로서 산다. 오늘날 뮌헨 부근에 있는 휘르스텐펠트 수도원(Kloster Fürstenfeld)는 루이2세가 참회하는 심정으로 건설한 수도원이다. 브라반트의 마리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름이 마리에서 즈느비에브로 바뀌어졌다. 아마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즈느비에브에 대한 신앙에서 그렇게 변한것 같다. 아무튼 이후 '브라반트의 마리' 또는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라고 하면 '정절의 여인' '인종(忍從)의 여인'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자크 오펜바흐가 1859년에 오페레타(또는 오페라 부프)를 만들었다. 프랑스어 대본은 루이 아돌프 제므(Louis-Adolphe Jaime)와 에티엔느 트레푸(Étienne Victor Tréfeu)가 공동으로 완성했다.

 

오페레타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는 1859년 11월 19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부페 파리시엔느(Théâtre des Bouffes-Parisiens)에서 초연되었다. 비엔나에서는 '아름다운 마젤로네'(Die schöne Magellone)라는 제목으로 1861년에 처음 공연되었으며 베를린에서도 같은 해에 공연되었고 1869년에는 브뤼셀과 마드리드에서 공연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비엔나에서 제목을 '아름다운 마젤로네'라고 붙인 것은 독일어 나라에서는 16세기로부터 정절과 인종의 여인으로서 즈느비에브보다 마젤로네가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젤로네(마젤롱)에 대한 전설은 프랑스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펜바흐가 처음에 작곡했을 때에는 2막이었으나 나중에 극작가인 엑또르 조나탕 크레뮤(Hector-Jonathan Crémieux: 1828-1892)가 3막의 대본으로 수정하였다. 수정본은 1867년 12월 26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메뉘 플레지르(Théâtre des Menus-Plaisirs: 현재의 Théâtre Antoine-Simone Berriau)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엑또르 조나탕 크레뮤은 루도비크 알레비와 함께 오펜바흐를 위해서는 '지옥에 간 오르페오' '바가텔레' 등의 대본을 완성했으며 들리브를 위해서는 Les eaux d'Ems, 에르베를 위해서는 '작은 파우스트'(Le petit Faust)의 대본을 썼다.]

 

'브라반트의 마리'. 숲 속에서 아들과 사슴과 함께

                               

수정본의 제2막에는 '두 병사의 쿠플레'(Couplets des deux hommes d'armes)라는 베이스와 바리톤의 코믹 듀엣이 나온다. 쿠플레는 오페라에서 두 주제 사이에 나오는 에피소드와 같은 노래를 말한다. . 젠다르메는 프랑스 군대에 속하여 있는 헌병을 말한다. 하지만 경찰처럼 일반인에 대한 업무도 처리한다. 두 명의 헌병이 부르는 힘차고 유쾌한 노래는 나중에 영국의 유명한 작사가인 H.B. 화니(Henry Brougham Farnie)가 '젠다르메의 듀엣'(Gendarmes' Duet)으로 가사를 고쳤다. 이 노래는 미국 해병대의 공식 노래인 '해병대 송가'(Marines' Hymn)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미군의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노래가 된 '해병대 송가'는 Semper Fidelis(영원한 충성)라는 표어와 함께 누구나 부르는 From the halls of Montezuma/ To the shores of Tripoli/ We fight our country's battles/ In the air, on land, and sea...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 곡이다. [참고사항: 몬테추마는 멕시코 시티 교외의 장소로서 이곳에서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의 클라이막스인 챠풀테펙 전투가 벌어졌었다. 트리폴리는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로서 미국이 1801-05년 오스만 터키와 치룬 전쟁의 장소이다.]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는 대단한 환영을 받아 2막이 3막으로 수정되었고 이어 1875년에는 5막으로 확대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테아트르 드 라 게트(Théâtre de la Gaîté)에서였다. 그후 상당기간 동안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08년 파리의 테아트르 데 바리에테(Théâtre des Variétés)에서였다. 유명한 즈느비에브 빅스(Geneviève Vix)가 타이틀 롤을 맡아 무려 58회 연속공연을 기록하였다. 뉴욕 초연은 1868년 10월 22일이었다. 그해에 화니의 수정본이 처음으로 이슬링턴의 필하모닉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다른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스토리로 들어가보자. 역시 오페라 부프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진솔하지 않고 엉뚱한 면이 많다. [제1막] 장소는 오늘날의 네덜란드에 있었던 쿠라사오(Curaçao) 공국이며 시기는 주후 730년경이다(내용 중에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있는데 1차 십자군 전쟁은 11세기이므로 이 오페레타의 시기를 8세기로 본 것은 차이가 있다). 아무튼 어느 저녁나절, 마을의 광장이다. 시장인 반 데어 프라우트(Van der Prout: T)가 쿠라사오의 영주인 시프로이드(Sifroid: T)공작 일행이 오랜 순례를 마치고 잠시 후 수도원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한다. 아름다운 즈느비에브(S)와 결혼한 공작은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를 알수 없는 저주를 받은바 있다. 공작은 백성들에게 누구든지 저주를 퇴치할수 있는 방안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큰 상을 주겠다며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젊은 제빵사인 드로간(Drogan: S)이 어떤 저주든지 물리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마법의 파이를 만들어서 우승을 차지한다. 드로간이 만든 파이는 처음에는 기가 막히게 맛이 있지만 나중에는 지독한 복통을 일으키는 것이다. 드로간은 실은 즈느비에브와 비밀스럽게 사랑하는 사이이다. 드로간은 공작에게 경연대회의 상으로 자기를 즈느비에브의 시종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마법의 파이를 맛보고서 매우 기분이 좋아진 공작은 즈느비에브를 남겨 놓고 푸파르산(Mount Poupart)에 순례를 떠났고 이제 순례를 마치고 성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즈느비에브의 침실이다. 드로간이 즈느비에브에게 자기를 시종으로 받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매일 밤 즈느비에브의 창문 아래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밝힌다. 드로간은 공작이 들어오는 기척이 있는 바람에 얼른 자리를 비킨다. 공작은 파이를 먹어서 아직도 기분이 좋아 있다. 그때 프랑스의 샤를르 마르텔(Charles Martel) 왕이 곧 도착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그런데 마침 공작은 파이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복통을 일으킨다. 공작은 복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 한잔을 마신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공작의 복통이 수그러진다. 공작의 자문관인 골로(Golo: Bar)와 궁정시인인 나르시스(Narcisse: T)는 쿠라사오 공국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이를 추진코자 한다. 골로와 나르시스는 공작에게 즈느비에브와 드로간이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샤를르 마르텔 왕이 이미 성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전해진다. 샤를르 마르텔 왕은 공작과 그의 휘하에 있는 기사들에게 8시 5분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 십자군으로서 팔레스타인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작은 즈느비에브를 저주한 후에 병사들과 함께 북부선 기차를 타고 떠난다.

 

[제2막] 즈느비에브는 충성스런 하녀인 브리기테(Brigitte: MS)의 도움으로 드로간과 함께 성을 빠져나와 도망하는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다. 즈느비에브와 드로간은 숲 속의 어떤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병사처럼 생긴 두 사람이 나타나자 즈느비에브와 드로간은 이들의 눈에 띠지 않게 위해 얼른 숨는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가스콘 사람이며 다른 한 사람은 플레미쉬 사람이다. 두 사람의 코믹한 대화는 가히 일품이다. 두 사람은 서로 얘기를 나누는 중에 두 사람이 모두 골로의 지시로 어떤 귀부인을 죽이기 위해 지금까지 숲 속을 뒤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시후 골로와 쿠라사오의 시장인 반 데어 프라우트가 나타난다. 이들은 두 병사에게 어서 즈느비에브라는 여인을 찾아서 죽이라고 재촉한다. 골로는 공작이 십자군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계곡에 살고 있는 은자를 찾아간다. 아마 왕위 문제로 자문을 받으려는 모양이다.

 

골로의 얘기를 엿들은 드로간은 은자의 석상모습으로 변장하여 나타난다. 드로간은 병사들에게 골로의 지시를 절대로 듣지 말라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드로간은 병사들에게 공작이 현재 샤를르 마르텔 왕과 함께 샤토 다스니에레(Château d'Asnières)에 있다고 말한다. 한편, 골로는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즈느비에브를 만나 결혼하자고 위협한다. 이제 드로간은 석상의 모습에서 진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병사들을 모두 돌려보낸다. 즈느비에브는 골로의 협박을 피하기 위해 죽은척 하기로 한다. 드로간은 즈느비에브의 머리칼을 한 묶음 잘라서 간직하고 공작을 만나러 급히 떠난다. 한편, 샤를르 마르텔 왕과 공작은 십자군 전쟁에의 참가를 마치고 샤토 다스니에레로 돌아온다. 이들은 무사히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것을 축하하기 위해 무도회를 베푼다. 공작은 가면무도회에서 이솔린(Isoline: S)이라는 마스크를 한 어떤 여인을 만나 함께 춤을 춘다. 이솔리네라는 여인은 공작에게 왜 그의 남편이 그를 떠났는지에 대하여 얘기한다. 드로간이 도착하여 공작에게 즈느비에브의 머리칼 묶음을 보여주며 즈느비에브가 죽었다고 전한다. 공작은 어서 속히 쿠라사오로 돌아가 골로를 만나 사정을 파악키로 한다. 이솔린은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편이 골로라고 밝힌다.

 

[제3막] 즈느비에브와 하녀 브리기테는 아직도 숲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의 유일한 친구는 어린 사슴뿐이다. 드로간이 사냥꾼 네명과 함께 돌아온다. 골로를 찾기 위해서이다. 공작과 샤를르 마르텔은 십자군 전쟁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 병사들에게 제지를 당한다. 그때 즈느비에브가 나타나 십자군에서 돌아오는 사람 중의 하나가 남편인 공작이라고 보증한다. 쿠라사오의 시장인 반 데어 프라우트가 등장하여 공작에게 사악한 골로가 3시 15분 전에 대관식을 가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모두 쿠라사오로 향한다. 골로가 예정된 시간에 대관식을 가지려고 할 때 드로간이 나타나 왕관의 주인은 공작이라고 하면서 공작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믿었던 공작이 살아 있자 모두들 놀라며 자기들의 배신을 후회한다. 골로는 체포되고 공작이 대관식을 갖는다. 이솔린은 남편인 골로에게 벌을 주겠다고 다짐한다. 모두들 행복하다.

 

이상과 같이 스토리를 요약하여 설명했지만 이것은 실로 전 3막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오펜바흐의 오페레타가 거의 모두 그런 것처럼 이 오페라도 포복절도의 장면으로 점철되어 있다. 앞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로서 시프로이드 공작, 그의 부인인 즈느비에브, 즈느비에브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인 드로간, 즈느비에브의 시녀인 브리기테, 시프로이드 공작이 십자군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것으로 믿고 쿠라사오의 왕관을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민 골로, 골로의 지시로 숲 속을 뒤지면서 즈느비에브를 잡아 죽이려던 두 명의 병사 등이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많은 인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젊은 아서왕, 돈키호테, 라울, 돈 후안, 알마비바 백작, 헤르큘레, 오텔로, 푸른 수염, 로미오, 흑기사(아이반호), 집시들, 랜슬롯, 질다, 마르타, 그레첸, 로자문데, 마담 아르미드, 브라다만테, 샬로테 등 소설이나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각각 특징있는 노래와 춤을 춘다.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에 대한 오페레타의 스토리는 대강 이상과 같지만 중세로부터의 전설의 내용은 어떠한지 알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에 대한 전설은 정숙한 부인이 과거에 자기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람으로부터 거짓 참소를 받아 명예를 더럽히고 비난을 받는 다는 이야기의 모델이다. 전설에 따르면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는 트레브(Treves)의 영주인 지그프리트(Sigfried)의 부인이라고 한다. 트레브는 독일 서남부 모젤 강안의 도시이다. 주전 16년에 도시로서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트레브는 독일에서 트리어(Trier)라고 부른다. 트리어 대성당은 역사적인 장소로서 유명하다. 영주의 집사(Majordomo)인 골로(Golo)는 즈느비에브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거짓으로 참소한다. 분노한 영주는 즈느비에브를 어린 아들과 함께 사형에 처하도록 하지만 사형집행인이 차마 이들의 목을 치지 못하고 살려준다. 즈느비에브는 어린 아들과 함께 아르덴느(Ardennes) 산맥의 숲속 동굴에서 6년을 지낸다. 아르덴느는 벨기에서 룩셈부르크와 프랑스까지 연결된 울창한 숲의 산맥이다. 즈느비에브와 아들은 어떤 암사슴 한마리가 매일 음식을 가져다 주어 살수 있었다. 골로의 반역을 알아챈 지그프리트는 아내 즈느비에브가 아들과 함께 살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숲 속으로 찾아 나선다. 마침 어떤 암사슴 한마리가 길을 인도하여 결국 즈느비에브와 아들을 만난다. 지그프리트는 즈느비에브를 다시 왕비로 삼아 그의 높은 정절과 인내로서 순종하는 미덕을 널리 알리고 칭송한다.

 

이 전설의 주인공은 실제로 바바리아의 영주이며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령인 라인 팔라틴(Rheinland-Pfalz)의 군주인 루이(루드비히)2세의 부인인 '브라반트의 마리'라고 한다. 마리는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이기 때문에 브라반트의 마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바 있다. 마리는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아 남편인 루이2세로부터 재판을 받아 1256년 1월 28일 도나우뵈르트(Donauwoerth)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나중에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루이2세는 무고한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참회의 생활을 했다. 마리라는 이름이 즈느비에브로 바뀌어진 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즈느비에브에 대한 지나친 숭배 때문이라고 한다. 즈느비에브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7세기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인 르네 드 세리시어(René de Cerisiers: 1603-1662)가 1638년에 L'Innocence reconnue(밝혀진 무죄: 또는 Vie de Sainte Genevieve de Brabant: 브라반트의 성즈느비에브의 생애)라는 책을 발간한 후부터였다. 그후 즈느비에브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독일에서 연극의 주제로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경건왕 헨리2세와 브라반트의 마리(가운데)

 

즈느비에브는 스캔디나비아에서 제노베파(Genovefa)라고 부른다. 스캔디나비아에서도 중세로부터 제노베파에 대한 전설이 전해내려왔다. 제노베파에 대한 전설은 Ravengaard og Memering(라벤가르드와 메메링)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발간되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캔디나비아의 전설은 브룬스위크와 슐레스비히(Schleswig)의 영주인 헨리(하인리히)의 부인인 구닐드(Gunild)에 대한 것이다. 헨리 왕은 전쟁에 나가면서 부하인 라벤가르드에게 부인 구닐드를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다. 라벤가르드는 구닐드를 뜻대로 하지 못하자 오히려 구닐드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음해한다.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무죄를 인정받으려면 어떤 기사가 무고를 받은 여인을 위해 결투를 하여 승리해야 한다. 구닐드를 위해 메메링이라는 기독교 기사가 나타나 라벤가르드와 결투를 벌여 승리함으로서 구닐드의 무죄가 입증된다. 스콧틀랜드의 발라드인 Sir Aldingar(알딩가르 경)도 이와 비슷한 스토리이다. 군힐다(Gunhilda)는 덴마크 왕인 카누트(Canute)의 딸이다. 군힐다는 1036년 바바리아 군주인 헨리(하인리히) 공작과 결혼한다. 헨리는 나중에 헨리3세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런데 군힐다가 희생당한 정숙한 부인의 전설에 합당할만한 역사적인 사실의 주인공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마 군힐다라는 이름과 구닐드라는 전설상의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군힐다는 결혼 후에 구니군드(Gunigund)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헨리2세의 부인의 이름이 구니군드였으므로 혼돈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칼라마누스 사가(Karlamagnus-saga)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유명한 샬레마뉴 대제의 누이동생으로서 나중에 프랑스 카롤링거 왕조의 위고 왕과 결혼한 올리바(Oliva)에 대한 이야기이다. 올리바는 위고 왕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으로 판결을 받아 추방당하는 운명을 겪는다. 나중에 위고 왕은 올리바에 대한 비난이 음모였다는 것을 알고 올리바를 다시 불러 온다는 내용이다. 이밖에도 브라반트의 즈느비에브와 관련한 전설은 나라마다 내용을 달리하여 수없이 많이 있다. 소스야 어떻던지 내용은 정숙한 부인이 모함을 받아 곤경을 겪으나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 더욱 존귀하게 된다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아들과 함께 숲속에 은거하고 있는 마리. 아드리안 리히터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