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로메오, 이집트 왕'(Tolomeo, re d'Egitto) - Ptolemy, King of Egypt
George Frideric Handel(조지 프리드릭 헨델)의 3막 오페라
조지 프리데릭 헨델. '톨로메오, 이집트 왕'을 작곡할 당시의 모습
우리가 보통 말하는 클레오파트라는 고대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로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말한다. 기원전 69년에 태어났다고 하며 기원전 3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클레오파트라라고 하면 우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또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를 생각하게 된다. 왕년의 영화로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이틀 롤을 맡은 '클레오파트라'는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말한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네명의 남편을 가졌던 경력이 있다. 첫째 남편은 톨레미 13세(Ptolemy XIII)로서 테오스 필로파투르라고 하는 사람이다. 두번째 남편은 역시 톨레미 왕조의 톨레미 14세였다. 따지고 보면 톨레미 13세와 톨레미 14세는 모두 클레오파트라의 남자 형제가 된다. 이집트의 왕조에서는 형제자매간에 결혼하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관례였다. 클레오파트라의 세번째 남편이 저 유명한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줄리오 세사레)이며 네번째 남편은 역시 로마의 마르크 안토니(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한편, 클레오파트라 7세는 줄리어스 시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케사리온(Caesarion)이라고 하는 톨레미 15세이며 또 하나는 그냥 케사르(Caesar)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마르크 안토니와의 사이에서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 알렉산더 헬리오스(Alexander Helios)와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Cleopatra Selene)는 쌍둥이이며 그 아래로 아들 톨레미 16세가 있다.
우리가 복잡하기 그지 없는 고대 이집트의 톨레미 왕조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서 누가 누구의 자녀이며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를 알려고 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헨델이 '톨레메오, 이집트 왕'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므로 이 오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략하나마 고대 이집트의 톨레미 왕조에 대하여 기초지식이나마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톨레미 왕조뿐만 아니라 다른 왕조에서도 그랬겠지만 사촌간에는 물론, 형제자매 간에도 결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오빠와 여동생이 결혼하는 일이 버젓이 시행되었다. 그래서 아마 요즘에도 젊은 부인들이 남편을 '오빠 ~'라고 부르는 것도 실은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하나 주목할 것은 서양에서는 아버지가 1세이며 아들은 2세이고 손자는 3세가 되어 비록 이름이 같더라고 가족관계를 클리어하게 알수 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아들을 둘이나 두었으면 큰 아들은 2세, 둘째 아들은 3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고대 이집트 왕가의 계보를 볼 때에 예를 들어 톨레미 15세의 아들이 톨레미 16세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톨레미 15세의 동생이 톨레미 16세인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재혼할 경우에는 시동생과 결혼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아는 클레오파트라도 남자 형제인 톨레미 13세와 결혼했다가 그가 죽자 다른 남자 형제인 톨레미 14세와 재혼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복잡하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덧 붙이자면 우리가 잘 아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는 톨레미 12세이며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5세라고 한다.
헨델의 오페라 '톨로메오, 이집트 왕'(Tolomeo, re d'Egitto: Ptolemy, King of Egypt)의 주인공들은 톨레미 9세(톨로메오 9세)의 치하에서 생긴 일을 다루고 있다. 톨레미 9세는 주전 161년에 태어나 주전 101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로는 주전 142년부터 101년까지 약 40년간을 지냈던 인물이다. 톨레미 9세의 어머니가 클레오파트라 3세이다.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 3세는 큰 아들 톨레미 9세와 함께 이집트를 통치하다가 작은 아들인 톨레미 10세(알렉산드로)를 더 총애하여서 큰 아들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작은 아들인 톨레미 10세를 왕좌에 앉힌후 함께 통치하였다. 그러므로 헨델의 오페라 '톨로메오, 이집트 왕'의 주역인 클레오파트라 3세는 짐작컨대 우리가 잘 아는 클레오파트라의 할머니 정도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 오페라에는 복수, 탐욕, 실연, 헌신, 그리고 마침내는 화해라는 것이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3세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설명키로 하고 우선 오페라의 배경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왕좌에서 쫓겨난 톨레메오(톨레미 9세). 카운터테너 플라비오 올리버(Flavioo Oliver)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헨델은 영국에서도 이탈리아의 바로크 오페라를 보급하기 위해 모두 13편의 바로크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런 헨델을 후원한 단체가 1719년에 창립한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이다. 헨델은 이 단체가 운영하는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맡아 열심히 작곡도 하고 지휘도 하였다. '톨로메오, 이집트 왕'은 헨델이 왕립음악원을 위해 작곡한 13편의 오페라 중에서 마지막 작품이다. 1728년 4월 30일 런던의 킹스 테아터(King's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대본가인 니콜로 프란체스코 하임(Niccolò Francesco Haym: 1678-1729)가 카를로 시기스몬도 카페체(Carlo Sigismondo Capace)의 희곡 '톨로메오와 알레산드로'(Tolomeo et Alessandro)를 바탕으로 썼다. 헨델은 오리지널 스코어를 수정하여 1730년 5월 19일에 공연하였다. 오늘날 간혹 공연되고 있는 '톨로메오, 이집트 왕'은 1730년도 수정본이다. 그후 이 오페라는 어느덧 동면에 들어갔으며 다시 깨어나서 공연된 것은 1938년 6월 19일 독일 중부의 괴팅겐(Göttingen)에서였다. 최근에 CD 레코딩 된 공연은 1996년 독일 할레(Halle)에서의 헨델 페스티벌에서였다. 그리고 현대적 연출의 공연은 2006년 잉글리쉬 투어링 오페라가 런던에서의 헨델 페스티벌에서였다. 미국 초연은 2010년 글리머글래스 오페라단(Glimmerglass Opera)에 의한 것이었으며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는 2010년 11월 Il complesso barocco 라는 타이틀 아래에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중에서 Non lo diro col labbro 는 아서 소머벨(Arthur Somervell: 1863-1937)이 대중음악인 Silent Worship에 사용하여 널리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는 1996년도 제인 오스텐(Jane Austen)의 영화 '엠마'(Emma)에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톨로메오(톨레미)9세(알토 카스트라토 또는 카운터테너)는 이집트의 파라오였으나 왕좌에서 쫓겨나 키프러스로 유배된 인물이다. 셀레우체(Seleuce: S)는 톨레미(톨로메오) 9세의 부인이다. 아라스페(Araspe: B)는 키프러스의 왕이며 엘리사(Elisa: S)는 아라스페 왕의 여동생이다. 여기에 톨레미(톨로메오) 9세의 동생인 알레산드로(Alessandro: 알토 카스트라토 또는 카운터테너)가 등장한다. 사실상의 주인공인 클레오파트라 3세는 등장하지 않는다.
톨로메오 역의 카운터테너 크리스토퍼 아인슬리(Christopher Ainslie)와 엘리사. 2007년 런던 헨델페스티벌. 현대적 연출.
[제1막] 앞에서도 잠시 설명했지만 기원전 2세기의 이집트는 톨레미(톨로메오) 9세가 그의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 3세와 함께 통치하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3세는 작은 아들인 알레산드로(톨레미 10세)를 더욱 총애하여서 결국 큰 아들인 톨레미(톨로메오) 9세를 왕좌에서 쫓아내고 사이프러스(키프러스)로 유배를 보냈다. 막이 오르면 사이프러스의 해변이다. 톨로메오는 난파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동생 알레산드로를 우연히 만난다. 알레산드로는 어머니의 명령을 받고 키프러스에 가서 형을 죽이려고 배를 타고 오다가 폭풍을 만나 조난을 당한 것이다. 잠시후 형은 동생이 이곳까지 온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형은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여서 자기를 죽이러 온 동생을 죽이고자 하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이프러스의 왕 아라스페는 클레오파트라 3세와 동맹관계에 있다. 톨로메오는 아라스페 왕의 눈에 띠어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 이름도 오스민(Osmin)이라고 바꾸고 해변에서 은둔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아라스페 왕의 여동생인 엘리사(Elisa)가 사랑하고 있다.
해변에 밀려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알레산드로가 깨어난다. 알레산드로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엘리사를 보고 그만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엘리사를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엘리사는 대단히 아름답지만 대신에 대단히 경박하고 진지하지 못한 성격의 여자이다. 그런데 엘리사와 오스민(톨로메오)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오스민(톨로메오)은 엘리사에 대하여 별로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스민(톨로메오)은 부인 셀레우체(Seleuce)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톨로메오는 사이프러스로 유배를 당해 온 후 부인 셀레우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톨로메오는 셀레우체도 왕궁에서 멀리 쫓겨난 것으로 믿고 있다. 얼마후 혼자 있게 된 톨로메오는 이 모든 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다.
실상 셀레우체도 사이프러스에 와 있다. 이름을 델리아(Delia)라고 바꾸고 숨어서 지내고 있다. 델리아(셀레우체)가 낙담과 실망으로 부르는 노래는 참으로 마음을 저미는 것이다. 델리아(셀레우체)는 해변에서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했던 남편 톨로메오의 모습을 보고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가 된다. 그때 해변에 아라스페 왕이 도착하는 바람에 델리아(셀레우체)는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라스페는 얼마 전에 델리아(셀레우체)의 모습을 보고 열정이 솟아올라 델리아(셀레우체)를 찾아 나선 터였다. 한편, 톨로메오는 환상 중에 자기 부인인 셀레우체의 모습을 보고 셀레우체가 어서 속히 나타나 자기의 고통을 씻어 주기를 갈망한다.
클레오파트라 3세의 부조
[제2막] 톨로메오는 엘리사의 적극적인 접근에 그만 마음을 연다. 그래서 자기는 오스민이 아니고 실은 이집트의 파라오라고 밝히고 모함을 받아 사이프러스로 쫓겨 온 신세라는 얘기를 한다. 엘리사는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오스민이 이집트의 파라오인 것을 알고 놀라며 더욱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엘리사는 톨로메오가 아직도 부인 셀레우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톨레미가 셀레우체를 잊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엘리사는 아버지인 아라스페가 열정을 품고 있는 델리아가 셀레우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델리아(셀레우체)를 아라스페 왕에게 억지로 데려온다. 톨로메오는 오매불망하던 부인 셀레우체가 원수나 마찬가지인 아라스페 왕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에 넘친다. 한편, 셀레우체는 아라스페 왕으로부터 톨로메오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페라에서는 자기의 진심도 노래로서 밝힐수 있다. 셀레우체는 톨로메오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렇게도 사랑하는 남편을 부정해야 하는 자기의 신세가 고통스럽다는 노래를 부른다.
셀레우체를 본 톨로메오는 정신을 차리고 엘리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엘리사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한다. 톨로메오가 나가고 알레산드로가 들어온다. 알레산드로는 엘리사를 다시 보자 사랑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엘리사는 자기를 사랑한다면 형인 톨로메오를 죽이라고 말한다. 셀레우체가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르자 멀리서 톨로메오가 사랑으로서 인내하자고 화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라스페 왕은 셀레우체가 홀로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욕정이 치솟아 셀레우체를 능욕하려한다. 우연히 이 장면을 목도한 톨로메오는 참을수 없어서 뛰어 들어와 셀레우체를 보호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의 신분을 밝힌다. 아라스페는 화가 치밀어서 두 사람을 처벌키로 결심한다. 모두 퇴장하고 무대에 남은 톨로메오와 셀레우체는 그제서야 비로소 서로를 부등켜안으며 기쁜 해후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들에게 닥친 비참한 운명을 한탄한다.
톨로메오(톨레미 3세). 톨레미 왕조는 그리스 계통이기 때문에 그리스인의 모습을 닮았다.
[제3막] 알레산드로는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 3세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알레산드로는 어머니가 자기의 잔혹함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알레산드로는 아라스페 왕에게 형인 톨로메오와 함께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라스페는 알레산드로의 이 말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형인 톨로메오를 죽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질투심에 불타는 아라스페는 자기야 말로 바로 그 일을 수행할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한편, 엘리사는 셀레우체에게 톨로메오를 자기에게 양보하라고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톨로메오는 또 다시 엘리사를 거부한다. 엘리사는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용감하게 말할수 있다면 여기 있는 독을 마시라고 하면서 독이든 잔을 건네준다. 톨로메오는 셀레우체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엘리사가 주는 독을 마신다. 그리고는 쓰러진다.
한편, 알레산드로는 숲으로 도망간 셀레우체를 만나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모든 수단을 다해서 형인 톨로메오와 셀레우체가 다시 결합하며 나아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아라스페는 톨로메오의 시신을 알레산드로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알레산드로의 희망대로 톨로메오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때 엘리사가 그 독약이라는 것은 실은 잠자는 약이라고 하면서 톨로메오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에 빠져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때에 정말로 톨로메오가 잠에서 깨어난다. 알레산드로는 숲에서 데려온 셀레우체가 톨로메오를 만나도록 한다. 오페라는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될 때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는다’라는 대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사항: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3세는 BC 142-101년간 이집트의 여왕이었다. 클레오파트라 3세는 남편 톨레리 8세 또는 아들 톨레미 10세와 관련하여서는 클레오파트라 유어게티스(Cleopatra Euergetis)라고 부르며 큰아들 톨레미 9세와 관련하여서는 클레오파트라 필로메토르 소테이라(Cleopatra Philometor Soteira)라고 부른다. 남편인 톨레미 8세는 실상 클레오파트 3세의 삼촌으로 BC 170-164년의 6년동안 클레오파트라 3세의 아버지인 톨레미 6세와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2세와 함께 이집트를 통치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클레오파트라 3세의 부모를 몰아내고 혼자서 이집트를 통치하였으나 얼마 후에 강제로 폐위되었으며 쫓겨난 클레오파트라 3세의 부모가 다시 권력을 잡아 BC 145년까지 약 2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그러한 기간에 클레오파트라 3세가 태어났다. 그러다가 아버지 톨레미 6세가 알렉산더 발라스와의 오이노파라스 전투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자 클레오파트라 3세의 삼촌이 톨레미 8세가 다시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다시 권력을 잡은 톨레미 8세는 남편을 전장에서 잃은 클레오파트라 2세와 BC 145년에 재혼하였다. 콜레미 8세는 얼마후 클레오파트라 2세를 쫓아내고 클레오파트라 2세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3세와 결혼하였다. 즉, 클레오파트라 3세는 삼촌과 결혼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2세는 BC 132년 경에 자기를 쫓아낸 시동생 톨레미 8세를 몰아내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클레오파트라 3세는 삼촌 겸 남편인 톨레미 8세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도피하였다. 3년후 클레오파트라 3세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올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3세와 톨레미 8세는 다섯 자녀를 두었다. 첫째는 톨레미 9세이다. 둘째는 트리파에나로서 시리아 왕인 안티오쿠스 8세와 결혼하였다. 셋째는 톨레미 10세로서 톨레미 9세의 딸로서 조카인 베레니체와 결혼하였다. 넷째는 클레오파트라 4세로서 처음에는 오빠인 톨레미 9세와 결혼하였다가 나중에는 시리아 왕인 안티오쿠스 9세와 결혼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클레오페트라 셀레네 1세로서 처음에는 오빠 톨레미 9세와 결혼하였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오빠인 톨레미 10세와 결혼하였다. 그러다가 시리아의 왕인 안티오쿠스 8세, 안티오쿠스 9세, 안티오쿠스 10세와 차례로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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