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네(Jone)
Errico Petrella(에리코 페트렐라)의 4막 오페라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의 '폼페이 최후의 날'(L'Ultimo giorno di Pompei)
에리코 페트렐라(1813-1877)
이탈리아 오페라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19세기 후반의 오페라 '조네'(Jone)를 모른다면 곤란한 일이다. 아울러 그 오페라를 작곡한 에리코 페트렐라(Errico Petrella: 1813-1877)가 누군지 모른다면 이 또한 곤란한 일이다. 페트렐라의 오페라 '조네'는 영국의 작가, 시인, 극작가, 정치가인 에드워드 벌워 리튼(Edward Bulwer-Lytton: 1803-1873)이 쓴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The Last Days of Pompei)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조반니 페루찌니(Giovanni Peruzzini)라는 사람이 대본을 쓴 작품이다. 누가 대본을 썼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대체 에리코 페르렐라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왜 알아야 하고 또한 그의 오페라 '조네'를 왜 알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에리코 페트렐라는 19세기 이탈리아에서 베르디 다음으로 유명했던 오페라 작곡가였다.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인 '조네'는 1858년 1월 26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래 거의 50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 나아가 유럽의 각지에서 사랑을 받으며 빈번히 공연되는 작품이었다. 그러다가는 어느틈엔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에리코 페트렐라라는 이름도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조네'라는 오페라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공연되었다는 기록은 1924년 팔레르모로 되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아무튼 그러다가 초연이후 120여년 만에 남미의 카라카스에서 리바이발 되었다. 1981년의 일이었다. 그후 여러 곳에서 간헐적으로 공연이 되었다. 당시에는 베르디 다음으로 대단히 유명한 작곡가로서 찬사를 받았던 그가 갑자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것도 특이하며 그렇게도 인기를 끌었던 그의 오페라 '조네'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 것도 특이하다. 에리코 페르렐라에 대한 이야기는 본 블로그의 이탈리아 작곡가 편에서 다시 검토키로 하자.
에리코 페르렐라의 '조네'가 초연 이후 대인기를 끈 것은 음악이 감미로우면서도 웅장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초연에 등장한 성악가들이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던 것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초연에서 '조네'는 당대의 소프라노 아우구스타 알베르티니(Augusta Albertini)였으며 글라우쿠스는 이탈리아 최고의 테너로서 그 전해에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에서 가브리엘레 오도르노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카를로 네그리니(Carlo Negrini)가 맡았고 아르바체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초연에서 루나백작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바리톤 조반니 구이키아르디(Giovanni Guicciardi)가 맡았다. 한편,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에서는 로마시대의 방탕한 남녀관계가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오페라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서 극장을 찾아온 한량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페라 '조네'는 주후 79년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폼페가 최후의 날을 마지하기 전에 일어났던 폼페이에서 스토리를 다룬 것이다. 그래서 이 오페라의 부제는 L'Ultimo Giorno di Pompei(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조네'(Jone: S)는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이다. 로마의 귀족인 글라우쿠스(Glaucus: Glauco: T)와 이시스 신전의 고승인 아르바체(Arbace: Bar)는 모두 아름다운 여인 조네를 사랑한다. 조네는 아르바체 고승이 돌보고 있는 여인으로 아르바체를 제2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여노예인 니디아(Nidia: MS)도 글라우쿠스를 사랑한다. 아르바체의 충복인 부르보(Burbo: B)는 주인님과 라이발 관계에 있는 글라우쿠스를 처치하고 싶어한다. 부르보는 니디아가 글라우쿠스를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니디아를 통해 글라우쿠스를 처치코자 한다. 부르보는 니디아에게 사랑의 묘약이라고 하면서 독약을 주어 글라우쿠스가 마시도록 한다. 글라우쿠스는 니디아가 마련한 독약을 모르고 마시지만 조금만 마셨기 때문에 죽지는 않고 대신 정신착란에 빠진다. 아르바체는 글라우쿠스가 정신착란에 빠지자 조네에게 글라우쿠스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포기토록 시도한다. 아르바체는 조네에게 이시스의 신전으로 오라고 하고서는 순진한 조네가 신전에 들어오자 강제로 능욕코자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어떤 버전에는 여노예 니디아가 장님으로 설정되어 있다.]
'폼페이 최후의 날'. 칼 브루율로프(Carl Burjullov) 작품
그러는 사이에 글라우쿠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글라우쿠스는 조네를 구하기 위해 신전으로 뛰쳐가지만 오히려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아르바체는 조네에게 만일 글라우쿠스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자기의 말대로 따를 것을 종용한다. 조네는 죽으면 죽었지 아르바체의 소유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군중들이 원형경기장에 모인다. 니디아는 총독에게 아르바체의 추행을 폭로한다. 글라우쿠스가 석방된다. 그때 마침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하고 아르바체는 화산의 폭발에 묻혀 죽는다. 조네와 글라우쿠스는 대혼란의 군중들 틈에서 겨우 만난다. 조네와 글라우쿠스는 니디아에게 자기들과 함께 어서 피신하자고 권유한다. 조네는 글라우쿠스와 조네의 사랑을 축복하며 화산이 폭발한 폼페이로 다시 돌아간다. 조네와 글라우쿠스는 무사히 피신하지만 폼페이로 돌아간 니디아는 화산의 폭발 속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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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의 '폼페이 최후의 날'(L'Ultimo giorno di Pompei)
조반니 파치니(1796-1867)
시실리의 카타니아(Catania) 출신인 조반니 파치니(1796-1867)도 1825년에 '폼페이 최후의 날'(U'ultimo giorno di Pompei)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대봉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Andrea Leone Tottola)라는 사람이 썼다. 1824년 '인도의 알렉산드로'(Alessandro nell'Indie)로 대성공을 거둔 파치니는 순식간에 이름난 작곡가로 알려져 이탈리아의 여러 극장으로부터 오페라 작곡의 의뢰가 쇄도하였다. 그가 '인도의 알렉산드로' 다음으로 생각한 오페라가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파치니가 폼페이 화산 폭발을 내용으로 하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당시 무대장치의 대가로 알려진 안토니오 니콜리니(Antonio Niccolini)의 영향이 컸다. 니콜리니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장치를 창조한 건축가였다. 로시니의 '아르미다'(Armida)의 무대장치를 웅장하고 환상적으로 만든 것은 대표적이다. 또한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에서는 홍해가 갈라지는 장관을 무대에 연출하기도 했다. 파치니의 '폼페이 최후의 날들'의 무대장치도 결국은 니콜리니가 맡았다. 고대 폼페이가 무대이며 막이 오르면서부터 웅장한 개선행진이 시작되는 것은 니콜리니의 화려하고 찬란한 무대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뛰어난 것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오페라의 피날레는 역사적인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하여 불길이 치솟고 화산재가 무대를 뒤덮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아무튼 이러한 장관 때문인지 파치니 자신도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아울러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치니의 '폼페이 최후의 날'은 1825년 11월 19일 나폴리의 산 카를로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마리아 이사벨라 왕비의 명명일(命名日)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오페라는 초연이후 이탈리아의 각지에서 환영을 받으며 공연되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만 연속 43회의 공연을 가진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도 인기절찬리에 공연되었다. 스토리는 복잡한 사랑관계를 다룬 것이다. 호민관인 아프리오(Aprio)는 총독 살루스티오(Sallustio)의 아름다운 부인인 오타비아(Ottavia)를 사랑한다. 그러나 오타비아는 아프리오의 사랑을 무시한다. 아프리오는 오타비아에게 복수키로 한다. 아프리오는 총독에게 오타비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모함한다. 이 말은 들은 총독은 오타비아를 사형에 처하도록 한다. 그때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한다. 총독 살루스티오는 그대로 사랑하는 부인이므로 아들 메네니오(Menenio)와 함께 오타비아를 화산폭발 속에서 구출한다. 오타비아는 죽음으로서 자기의 결백을 입증키로 하여 진실을 밝힌후 화산폭발 속으로 뛰어든다는 내용이다.
파치니는 로시니 숭배자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로시니적인 멜로디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그런 분위기가 배어있다. 특히 1막의 5중창이 그러하다. 다섯 명의 솔리스트 이외에 4부 합창을 병행하였다. 그리고 카발레타 듀엣에 댄스를 병행한 것도 로시니적인 발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하일라이트는 무어라해도 2막의 오프닝에서 부르는 오타비아와 살루스티오의 듀엣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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