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79.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모자'

정준극 2011. 11. 14. 07:32

음모자(Die Verschwornen)

The Conspirators - 공모자 또는 Der häusliche Krieg (Domestic Warfare: 집안전쟁: 안방전쟁)

Franz Schubert(프란츠 슈베르트)의 단막 징슈필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우리가 '가곡의 왕'이라고 부르는 슈베르트도 실은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싶어했다. 무대작품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을 보면 알수 있다. 당시에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으려면 오페라를 작곡해야 했다. 모차르트를 보면 알수 있다. 심지어 베토벤도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 들여 오페라 '휘델리오'를 작곡하지 않았던가! 슈베르트는 최소한 18편의 무대작품을 시도했었다. 다만, 여러 사정상 미완성인 작품이 많거나 또는 단막의 징슈필이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참고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슈베르트의 무대작품 18편 중에서 그의 생전에 온전하게 공연된 것은 '마술하프'(Die Zauberharpe)라는 동화오페라 한편 뿐이다. 1820년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공연되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연극 '로자문제'의 극중음악이다. 1823년 역시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공연된 것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미완성이었고 슈베르트의 사후에 비로소 공연되어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가만히 보면 슈베르트만큼 극장기질이 많은 작곡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심지어 슈베르트의 가곡 하나하나를 '미니 오페라'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지극히 드라마틱하며 주인공의 성격과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 것이다. 그의 가곡에는 극적인 요소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힘이 있다. 그의 가곡은 가사와 음악이 중요하게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슈베르트가 정신을 집중하여서 오페라를 만들었다면 모르긴 해도 대단히 성공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상 슈베르트도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음악-드라마의 연결과 조화에 대하여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슈베르트에게는 모차르트에게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라는 기가 막힌 대본가가 있었지만 슈베르트에게는 그런 대본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슈베르트의 모든 무대작품이 완전실패로만 끝났던 것은 아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징슈필중 여섯번째이며 마지막인 '음모자'(Die Verschworenen)는 비록 그의 사후에 환영을 받은 작품이지만 슈베르트의 드라마틱한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징슈필 '음모자'는 1823년에 완성되었다. 슈베르트의 다른 징슈필이아 오페라는 시작만 해 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는 다른 일로 바뻐서 완성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공모자'는 그나마 완성을 해놓았다. 그런데 실상 '음모자'를 완성한 1823년은 슈베르트에게 있어서 대단히 힘든 해였다. 그 즈음에 슈베르트는 어찌하다보니 매독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성병에 대한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어서 매독에 걸렸다고 하면 정신이상이 되어 고생하다가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슈베르트는 매독균이 뼈 속까지 침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문에 슈베르트는 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어 슈베르트는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했지만 왼쪽 팔이 마비되는 바람에 피아노도 연주하지 못했다. 슈베르트는 그해 6월에 한달 이상이나 병원에 입원했었다. 주로 수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대단히 고통스런 치료였다. 슈베르트는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슈베르트는 낙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자기의 방탕하고 문란했던 생활을 후회하며 지냈다. 그런 중에 마지막 징슈필을 작곡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음모자'이다. 참으로 우연인지 모르지만 '음모자'는 남녀간에 금욕을 한다는 것은 참을수 없다는 내용의 코믹한 작품이다. '음모자'의 대본은 고대 아테네의 코믹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46-386)의 희곡인 '리시스트라타'(Lysistrata)를 바탕으로 비엔나의 극작가인 이그나즈 프란츠 카스텔리(Ignaz Franz Castelli: 1780-1862)가 썼다. 카스텔리는 노래의 작사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 오스트리아의 샤를르 대공은 카스텔리에게 병사들을 위한 군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오스트리아 군을 위한 군가'(Kriegslied für die österreichische Armee)였다. 전쟁에 나간 오스트리아군은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용감하게 돌진하였다. 나폴레옹은 그 군가를 작사한 카스텔리를 반역자로 선언하였다. 그래서 카스텔리는 헝가리로 피난가서 지냈다.

 

징슈필 '공모자'의 음반 커버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잠시 빗나갔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다시 징슈필인 '음모자'로 돌아가면, 아리스토파네스의 원작인 '리시스트라타'는 아테네-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인들의 임무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리스트라타라는 여인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부인네들을 집합시켜서 두 도시국가간의 전쟁을 속히 끝내려면 부인네들이 남편들과의 부부생활을 보류 및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이 부인들과의 성생활을 위해서 전쟁을 그만두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를 위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오히려 '정 그렇다면 우리도 안 할수 있다. 두고보라'고 하며 여자들과의 섹스를 거부하였다. 결국 여자들이 남편을 잃지 않기 위해 섹스 전쟁에서 진다는 내용이다. 대본을 쓴 카스텔리는 고대 아테네의 이야기를 중세 초기로 끌고 올라왔다. 헤르베르트 폰 루덴슈타인(Herbert von Ludenstein) 남작이 이끄는 일단의 십자군이 남작부인이 주도하는 부인네들에게 설득을 당하여 전쟁수행을 포기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오리지널에 담겨 있던 지나치게 외설적인 대사 따위는 상당히 삭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엔나의 검열 당국은 이 징슈필의 내용이 사회도덕에 어긋난다고 하여 문제로 삼았다. 슈베르트는 당국과의 타협으로서 징슈필의 타이틀을 고치기로 했다. 그래서 '음모자'라는 비도덕적이고 어려운 제목 대신에 Der Häusliche Krieg(집안 전쟁: 안방 전쟁)이라는 코믹한 제목으로 고친 것이다.

 

등장인물은 사실상 간단하다. 헤르베르트 남작과 남작부인인 루드밀라(Ludmilla), 이젤라(Isella)와 그를 사랑하는 우돌린(Udolin),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헬레네(Helene)와 남편 아스톨프(Astolf)가 전부이다. 이제 스토리로 들어가보자. 남작의 메신저인 우돌린 전쟁에 나간지 1년여 만에 남작의 심부름으로 예상치도 않게 집으로 돌아올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이젤라가 우돌린을 열렬하게 환영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두 사람이부르는 반가운 마음의 듀엣이 아름답다. 이젤라는 우돌린에게 남작부인이 여자들을 모두 소집하여 특별 대책회의를 갖는다고 얘기해 준다. 우돌린은 여자들이 무슨 화의를 하는지 스파이하기 위해 여자로 변장하여 집회에 참석한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헬레네는 남편이 전쟁에 나가자 슬픔 속에서 지낸다. 헬레네는 '당신이 없으니까 사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내용의 로만체를 부른다. 남작부인은 예정대로 여자들을 소집한 후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물러날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남작부인은 '약간 교활한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모습들이다. 남작부인의 계획이란 것은 남자들이 싸우는 것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남자들에게 안방에서 섹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여자들은 그건 곤란하다고 내세웠지만 남작부인이 강력히 설득하는 바람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다. 여자들은 연대성을 가지고 단결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진다. 얼마후 남자들이 살육의 전쟁에서 이겨서 집으로 개선하여 돌아온다. 남자들의 합창인 '병사들의 삶'(A Soldier's Life for Me)이 힘차다. 미리 와서 있었던 우돌린은 남작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스파이한 내용을 보고한다. 이때 부르는 우돌린의 아리아가 '무슨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이다. 우돌린의 얘기를 전해 들은 남자들은 '좋다. 게임을 하자면 하자'라고 다짐하여 여자들의 음모에 대응키로 한다. 즉, 남자들이 오히려 여자들을 거부키로 한 것이다.

 

그런것도 모르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마치 남자들을 처음 유혹하는 것처럼 상냥달콤하게 환영한다. 여자들의 합창이 '당신들을 보게되어 정말 기뻐요'(We're very glad to greet you)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여자들에게 무관심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완전한 계략에 빠져 혼돈 중에 있다. 여자들을 이끌던 남작부인은 더 이상 임루를 수행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우선 화해의 방편으로서 남자들의 대장인 남작을 만나 담판을 짓기로 한다. 이셀라가 남작부인의 메신저로서 남자들의 진영으로 가서 남작을 만나 남작부인의 제안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슬쩍 남자들의 동태가 어떠한지 스파이한다. 한편, 신혼부부인 아스톨프와 헬레네는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두사람의 듀엣인 '더 이상 기다릴수 없네'(I'll wait no longer)는 이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 노래이다. 물론 처음에는 헬레네가 남편 아스톨프를 마다하는 제스추어로 시작하지만 솔직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포옹한다. 아스톨프는 만일 남편을 거부한다면 결혼서약이 파기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은근히 협박도 했다. 물론 헬레네도 보통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은 남편 아스톨프에게 선수를 쳐서 괴롭히기도 했다.

 

부하들과 술을 마시던 남작은 갑자기 남작부인이 찾아와 얘기를 하자고 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한다. 남작부인이 '나는 이번 일에 나의 모든 것을 걸었다'며 아리에트를 부르자 남작도 '당신이 이번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라는 아리에트를 부른다. 재미있는 콤비이다. 남작부인이 뭐라고 하던, 남작이 뭐라고 하던 '우리는 우리다'라는 입장의 이젤라와 우돌린은 사태를 수습하는데 한 몫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젤라는 남작부인을 찾아가 남자들의 고집을 꺾는 유일한 방법은 여자들이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여 수긍을 받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 남자들과의 섹스 대결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여자들이지만 전쟁에 참가키로 결정한 것은 모순이지만 어쩔수 없이 그런 방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튼 남작부인은 갑옷을 챙겨 입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전쟁터로 달려나갈 기세이다. 이 모습을 본 남작이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남작은 모든 남자들에게 여자들에게 싸우라고 할수 없으므로 우리가 다시 전쟁터로 나가자고 말한다. 이에 남자들이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전쟁터로 나갈 차비를 한다. 평화를 위해 집에 돌아온 남자들이 다시 싸우러 나가게 되니 여자들로서는 입장이 난처하게 된다. 남작부인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다. 그러자 남자들도 결국은 자기들도 사랑의 힘에 정복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진짜 '음모자'는 남작부인이나 남작이 아니라 이젤라와 우돌린이다. 두 사람은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된데 대하여 크게 기뻐한다. 남작과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좀 더 온순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전쟁은 남자들에게 맡기라고 강조한다.

 

우돌린과 이젤라

 

슈베르트의 징슈필인 '음모자'는 1823년 약 3주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음모자'는 슈베르트의 생전에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피아노 반주로서 처음 공연되었다. 그후 '음모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슈베르트의 사후 33년 만인 1861년에 제대로된 무대공연이 이루어졌다. 독일 프랑쿠푸르트의 로쓰마르크 코메디언 하우스(Comedien Haus an Rossmarkt)에서였다.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후 비엔나를 비롯한 유럽의 몇 곳에서 이 징슈필이 공연되어 관심을 받았다. 1867년의 비엔나 공연에는 영국의 아서 설리반이 구경하러 왔다. 아서 설리반은 비엔나에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징슈필 및 오페라의 자료들을 상당량 확보하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설리반의 훗날 오페라(뮤지컬)에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멜로디 스타일이 담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음모자'는 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최근에 영국 퀸스칼리지에서 리바이벌하여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음모자'에는 설리반 스타일의 경쾌한 아름다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 스타일의 신중하고도 엄숙한 아름다움도 엿볼수 있다. 헬레네의 아리아가 모차르트 스타일의 클라리넷 오블리가토 반주로 되어 있는 것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아무튼 '음모자'는 누구나 듣기에 편한 아름다운 멜로디, 흥겨운 리듬, 빛나는 하모니로 구성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놀라운 재능이 한껏 스며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