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에리코 페트렐라(Errico Petrella)

정준극 2011. 11. 17. 05:38

에리코 페트렐라(Errico Petrella)

 

 

'조네'(Jone)는 185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이외에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1858년에 초연된 이래 무려 50여년동안 이탈리아 각지는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며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의 와중에서 종적을 감춘 오페라이다. '조네'가 마지막으로 공연된 기록은 1924년 팔레르모에서였다. 그 이후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조네'가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다가 1981년 남미 카라카스에서 비로소 리바이벌 되었다. 카라카스시립극장(Teatro Municipal)에서 리바이벌 된 것은 페트렐라를 존경하여서가 아니라 100년 전에 그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CD로 발매되는 등 관심들을 가지게 되었다. 오페라 '조네'의 작곡자는 에리코 페트렐라(1813-1877)이다. 그가 태어난 1813년은 '오페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베르디, 오페라의 대변혁을 이룬 바그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페트렐라는 베르디, 바그너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참으로 미스테리인 것은 거의 100년동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작곡가가 오늘날 어떻게 그렇게도 완전히 잊혀질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에리코 페트렐라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편의 오페라를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조네'(Jone), '아말피 백작부인'(La Contessa d'Amalfi), '조심'(La precauzioni)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표준 레퍼토리였다. 페트텔라보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파치니나 메르카단테의 작품 들은 비록 초연 이후 상당 기간동안 잊혀져 있었으나 오늘날엔 재발견되어 사랑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인기회복이다. 그런데 페트렐라의 경우에는 인기회복이라는 용어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아마 짐작컨대 오늘날에 리바이벌 되고 있는 작품들은 베르디에게 영향을 준 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베르디라고 하면 무조건 존경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파치니나 메르카단테의 오페라들을 다시 찾아내어 리바이벌하는 것은 베르디에 대한 존경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반면 페트렐라는 어찌하여 잊혀진채 있었는가? 짐작컨대 베르디의 조소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페트렐라는 당시 베르디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베르디는 페트렐라의 오페라에 대하여 작곡기법이나 드라마틱한 면에서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페트렐라의 오페라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위대하신 베르디 선생께서 별로 신통치 않다고 말한 작품에 대하여 계속적인 호감을 표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1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어떤 주장에 의하면 페트렐라의 '조네'가 인기를 끌자 베르디가 이를 더 이상 공연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에리코 페트렐라는 1813년 12월 10일 팔레르모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인 나폴리학파에 속한 작곡가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해에는 베르디와 바그너도 태어났다. 물론 페트렐라는 베르디의 위대함에 비교할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트렐라의 음악은 듣기에 기분이 좋다. 사실 페트렐라는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비극과 코미디 양면에서 그랬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1851년의 '베니스의 사육제'(Il carnevale di Venezia)는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톨로사의 엘레나'(Elena di Tolosa: 1852)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1854년의 '마르코 비스콘티'(Marco Visconti)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오페라계에서 폭풍과 같은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레이다 공성'(L'assedio di Leida: 1858)은 그의 네번째 대성공 작품이다. 그리고 1858년의 '조네'(Jone)는 20세기까지 주요 레퍼토리로 남아 있던 작품이다. '조네'는 멜로드라마적인 요소에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페트렐라는 1850-6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베르디 다음으로 성공을 거둔 작곡가였다. 페트렐라의 멜로디 스타일은 비록 베르디의 것에 비하여 구태의연하다는 평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더라도 사랑스러운 것이다. 에리코 페트렐라는 제노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리코 페트렐라의 오페라 수첩

● 베니스의 사육제(Il carnevale di Venezia 또는 Le precauzioni: 1851) ● 톨로사의 엘레나(Elena di Tolosa: 1852) ● 마르코 비스콘티(Marco Visconti: 1854) ● 레이다 공성(L'assedio di Leida 또는 Elnava: 1856) ● 조네(Jone 또는 L'ultimo giorno di Pompei: 1858) ● 아말피 백작부인(La contessa d'Amalfi: 1864) ● 거짓 약속(I promessi sposi: 1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