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니콜로 좀멜리(Niccolò Jommelli )

정준극 2012. 2. 24. 15:34

니콜로 좀멜리(Niccolò Jommelli)

 

니콜로 좀멜리(1714-1774)

 

니콜로 좀멜리(1714-1774)는 오페라에서 이른바 스타 성악가들의 역할을 축소하고 전체적인 음악과 극의 전개를 더욱 강조함으로서 오페라의 변화를 이룩한 사람이다. 당시만 해도 오페라라고 하면 한 두 명의 인기 성악가가 공연을 좌우하였었다. 좀멜리는 당시의 보통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아리아의 숫자를 줄이고 대신 앙상블과 합창을 더 많이 넣었다. 또한 장 필립 라모와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오페라에 발레를 도입하였다. 그는 스토리의 진전을 보여주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특히 목관악기의 사용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암시토록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사지를 작곡하였다. 과거에는 파사지라고 하면 무조건 성악가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요한 아돌프 하쎄로부터 레시타티브를 오케스트라 반주로 처리하는 테크닉을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시타티브는 하프시코드로 반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무튼 니콜로 좀멜리의 개혁은 글룩의 개혁에 버금가는 중요한 것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좀멜리는 나폴리 북쪽 약 20 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베르사(Aversa)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도미니카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었고 나중에 좀멜리의 작곡활동을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좀멜리는 나폴리에 있는 카푸아나의 산토 오노프리오 음악원(Conservatorio di Santo onfofrio a Capuana)에 들어가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하지만 실제로 좀멜리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독일 사람으로서 나폴리에 와서 잠시 활동했던 요한 아돌프 하쎄였다.

 

좀멜리의 첫 오페라인  L'errore amoroso라는 코미디는 1737년, 그가 23세 때에 나폴리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공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는 두번째 코미디인 Odorado를 휘오렌티니 극장에서 공연하여 역시 대인기를 끌었다. 그의 첫번째 opera seria는 Ricimero re de'Goti 라는 작품으로서 1740년 로마의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마침 요크 공작인 헨리 베네딕트의 관심을 끌어 이후로 그의 후원을 받으며 작곡을 할수 있었다. 요크 공작은 추기경의 반열에 들어가서 좀멜리를 바티칸의 음악부서에 임명되도록 해주었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좀멜리는 1740년대에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즉 나폴리와 로마는 물론이고 볼로냐, 베니스, 토리노, 파두아, 페라라, 루카, 파르마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했다.

 

1749년은 로마 가톨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년(聖年)이었다. 성년은 매 50면마다 맞이하는 것으로서 로마 가톨릭은 성년을 마지하면 1년 내내 여러 축하 행사를 했다. 로마에 있으면서 교황청과 관련을 맺고 있는 귀족들은 이 때를 이용하여 자기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요크 공작인 헨리 베네딕트는 좀멜리를 로마로 초청하여 가톨릭 성년 행사에 참여토록 주선했다. 결국 좀멜리를 교황청에 소개하므로서 자기의 위상을 높이자는 의도에서였다. 좀멜리는 교황청의 성년을 위해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으로 오라토리오 La passione di Gesu Cristo(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너무나 훌륭하여서 그로부터 매년 교황청에서 연주할 정도였다.

 

좀멜리는 1753년 스튜트가르트의 카를 오이겐 공작의 궁전에서 음악감독으로 봉사하기 전에 비엔나를 방문한 일이 있다. 좀멜리가 스튜트가르트에서 작곡한 작품들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들이다. 좀멜리가 스튜트가르트에 있을 때인 1763년에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인 레오폴드와 함께 대연주여행을 하는 중에 이곳을 방문했고 좀멜리를 만난 일이 있다. 좀멜리는 모차르트를 보고 장차 위대한 작곡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말은 과연 맞았다. 좀멜리는 1768년에 나폴리로 돌아왔다. 그때에 나폴리에서는 좀멜리의 오페라 세리아보다는 오페라 부파가 더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폴리에 온지 몇년후인 1771년 좀멜리는 심장마비에 걸려 고생을 했고 이후 수족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작곡을 하다가 3년 후인 1774년에 나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해였다.

 

니콜로 좀멜리는 칸타타, 오라토리오, 기타 종교음악을 작곡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약 7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오페라는 그의 작품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트였다.

 

      ● L'errore amoroso (나폴리, 1737) – 대본 Antonio Palomba  Odoardo (나폴리, 1738) ●  Ricimero re de' Goti (로마, 1740)  Astianatte (로나, 1741) – 대본 Antonio Salvi   Ezio (Bologna, 1741) – 대본 Metastasio   Semiramide riconosciuta (토리노, 1741) – 대본 Metastasio   Merope (베니스, 1741) – 대본 Apostolo Zeno    Don Chichibio (로마, 1742) Eumene (볼로냐, 1742) – 대본 Apostolo Zeno   Semiramide (Venice, 1742) – libretto by Francesco Silvani Tito Manlio (Turin, 1743) – libretto by Gaetano Roccaforte Demofoonte (Padua, 1743) – 대본: Metastasio   Alessandro nell'Indie (Ferrara, 1744) – 대본: Metastasio Ciro riconosciuto (Bologna, 1744) – 대본: Metastasio   Sofonisba (Venice, 1746) –대본: Antonio Zanetti e Girolamo Zanetti Cajo Mario (Rome, 1746) – 대본: Gaetano Roccaforte  Antigono (Lucca, 1746) – 대본: Metastasio Tito Manlio (Venice, 1746) – 대본: Jacopo Antonio Sanvitale    Didone abbandonata (Rome, 1847) 대본: Metastasio  L'amore in maschera (Naples, 1748) – 대본: Antonio Palomba   Achille in Sciro (Vienna, 1749) – 대본: Metastasio Artaserse (Rome, 1749) – 대본: Metastasio Ciro riconosciuto (Venice, 1749) – 대본:  Metastasio Demetrio (Parma, 1749) – 대본: Metastasio La cantata e disfida di Don Trastullo (Rome, 1749) Cesare in Egitto (Rome, 1751) – 대본: Giacomo Francesco Bussani   Ifigenia in Aulide (Rome, 1751) – 대본: Mattia Verazi La villana nobile (Palermo, 1751) – 대본: Antonio Palomba   L'uccellatrice (Venice, 1751) – 대본: Carlo Goldoni   Ipermestra (Spoleto, 1751) – libretto by Metastasio Talestri (Rome, 1751) – 대본: Gaetano Roccaforte   I rivali delusi (Rome, 1752) Attilio Regolo (Rome, 1753) Bajazette (Turin, 1753) – 대본: Agostino Piovene Fetonte (Stuttgart, 1753) – 대본: Leopoldo de Villati   La clemenza di Tito (Stuttgart, 1753) – 대본: Metastasio  Il paratajo (Paris, 1753) – revision of L'uccellatrice Don Falcone (Bologna, 1754)  Catone in Utica (Stuttgart, 1754) – 대본: Metastasio   Lucio Vero (Milan, 1754)  Il giardino incantato (Stuttgart, 1755) Enea nel Lazio (Stuttgart, 1755) – 대본: Mattia Verazi   Penelope (Stuttgart, 1755) – 대본: Mattia Verazi  Il Creso (Rome, 1757) – 대본: Giovacchino Pizzi  Temistocle (Naples, 1757) – 대본: Metastasio  Tito Manlio (Stuttgart, 1758) Ezio (Stuttgart, 1758) L'asilo d'amore (Stuttgart, 1758) Endimione (Stuttgart, 1759) Nitteti (Stuttgart, 1759) – 대본:  Metastasio Alessandro nell'Indie (Stuttgart, 1760) Cajo Fabrizio (Mannheim, 1760) – 대본: Mattia Verazi L'Olimpiade (Stuttgart, 1761) – 대본: Metastasio  L'isola disabitata (Ludwigsburg, 1761) – 대본: Metastasio   Semiramide riconosciuta (Stuttgart, 1762) ● Didone abbandonata (Stuttgart, 1763) Il trionfo d'amore (Ludwigsburg, 1763) – 대본: Giampiero Tagliazucchi Demofoonte (Stuttgart, 1764)   Il re pastore (Ludwigsburg, 1764) – 대본: Giampiero Tagliazucchi  La pastorella illustre (Stuttgart, 1764) – 대본: Giampiero Tagliazucchi Temistocle (Ludwigsburg, 1765)  Imeneo in Atene (Ludwigsburg, 1765)   Il matrimonio per concorso (Ludwigsburg, 1766) – 대본: Gaetano Martinelli La critica (Ludwigsburg, 1766)   Vologeso (Ludwigsburg, 1766) – 대본: Mattia Verazi   Il matrimonio per concorso (Ludwigsburg, 1766) Il cacciatore deluso (Tübingen, 1767) – 대본: Gaetano Martinelli Fetonte (Ludwigsburg, 1768)   L'unione coronata (Solitude, 1768)   La schiava liberata (Ludwigsburg, 1768) – 대본: Gaetano Martinelli     Armida abbandonata (Naples, 1770) – 대본: Francesco Saverio de' Rogati   Demofoonte (Naples, 1770)   Ifigenia in Tauride (Naples, 1771) – 대본: Mattia Verazi L'amante cacciatore (Rome, 1771)   Achille in Sciro (Rome, 1771) Le avventure di Cleomede (1771) – libretto by Gaetano Martinelli   Cerere placata (Naples, 1772)   Il trionfo di Clelia (Naples, 1774) – libretto by Metastasio  Arcadia conservata La Griselda La pellegr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