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소프라노 대분석

디바 이야기

정준극 2011. 12. 13. 07:50

디바가 뭐길래?

 

'노르마'에서 '정결한 여신'(카스타 디바)를 부르고 있는 마리아 칼라스. 오페라에서 노르마는 골족이 신봉하는 드루이드교의 여사제장이다.

 

오페라 팬들로서 '디바'(Diva)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디바'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가져 온 것으로 '여신'(女神)이라는 의미이다. 공연예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고  모습도 거룩하여서 마치 여신과 같다고 하여 '디바'라는 명칭을 붙였다. 구체적으로는 오페라에서 놀랍도록 뛰어난 재능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여자 성악가를 말한다. '디바'라는 호칭은 주로 오페라의 소프라노 주역에게 붙이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 등 다른 성악 파트의 여성들도 '디바'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튼 기본적으로는 소프라노가 대상이다. 신화의 세계에서는 '디바'라는 호칭의 존재들이 신들의 여러 서열 중에서 가장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디바는 원래부터 영생불멸의 신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으로 격상된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비너스, 헤라, 아테나 등의 여신들과는 차이가 나도 한참 난다. 어떤 사람들은 디바가 님프와 비슷한 서열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러나 '디바'는 일반적으로는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는 여성 성악가들을 말하지만 요즘에는 일반 가수 중에서, 또는 연극, 영화 등등의 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재능(탈렌트)을 보여준 여성 주인공을 '디바'라고 더 많이 부른다. '디바'라는 단어는 '프리마 돈나'(Prima donna)라는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디바'의 어원 등에 대하여도 일고해보자. 영어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Diva 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의 Diva 에서 가져온 것이다. 19세기에 비로소 영어사전에 기록되었으니 그 이전에는 오페라 소프라노를 '디바'라고 부른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Diva 의 복수형은 Divas 라고도 하고 Dive(디베이)라고도 한다. Diva 라는 단어는 실상 라틴어의 Divus 라는 단어에서 비롯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여 부를 때에 Divus 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부터 있는 신, 즉 데우스(Deus)라는 단어와는 의미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원래 Divus 라는 단어는 주로 남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여자들도 죽은 후에 신처럼 간주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Divus의 여성형 단어로 Diva 를 개발해 냈다는 것이다.  Divus가 되었든지 Diva 가 되었든지 모두 라틴어의 Deus,  즉 신(神)이라는 단어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하면 학자들은 라틴어의 Divus 또는 Diva 가 고대 힌두어의 Devi(데위)와 뿌리를 같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힌두어의 Devi는 여신이라는 뜻이다. 힌두어의 Devi는 또 따지고 보면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니 오페라에서 '디바'라는 단어도 결국은 동양에 연유를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페라의 뛰어난 여성 주인공을 '디바'라고 한다면 남성은 '디보'(Divo)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별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대단히 뛰어난 테너에게 어쩌다가 사용한다. 예를 들면 엔리코 카루소 또는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에게 디보라는 호칭을 붙인 일이 있다. 디바에서 디비스모(Divismo)라는 말이 나왔다. 마치 베라(Vera: 사실)에서 베리스모(Verismo)라는 말이 나온 것과 같이 말이다. 이탈리아어의 디비스모라는 것은 영화산업에서 스타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비즈니스 시스템을 말한다. 요즘 이탈리아어에서는 Diva 또는 Divo 라는 단어를 대단한 유명인사(셀레브리티), 특히 영화배우를 말할 때에 주로 사용하며 오페라에서는 디바라는 단어 대신에 프리마 돈나(Prima donna)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한다.

                

'디바'라는 말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처음 사용되었을까? 분명치 않다. 일설에는 언젠가 '노르마'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마리아 칼라스가 Casta Diva(정결한 여신)를 부르고 나자 열광한 관중들이 '디바'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마리아 칼라스를 디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가하면 역시 마리아 칼라스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토스카'를 공연하고 나서 수없는 커튼 콜을 받는 중에 관중들이 '디바'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그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다. 다만, 마리아 칼라스에 대하여는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서 '최고의 디바'(Supreme Diva)라고 부르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디바'와 의미가 같은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프리마 돈나'라는 말은 실은 이탈리아에서 16세기부터 사용된 용어이다. 16세기에 이탈리아에는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Comedy of the artists)라는 일종의 순회극단들이 있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간단한 오페라도 공연하고 연극도 공연했다. 이 단체들이 공연하는 연극이나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을 프리마 돈나(Prima donna)라고 불렀고 얼마후에는 좀 더 격을 높혀서 '디바'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페라에서 '디바'라는 표현은 16-17세기부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남자(주로 테너) 주인공은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라고 불렀으니 '주인공 남자'라는 뜻이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서 점쟁이인 울리카(아르빗슨) 역을 맡은 마리안 앤더슨. 그는 콘트랄토이지만 디바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요즘에는 아무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으면 자칭타칭 프리마 돈나라고  부르는 경향이지만 얼마전만 해도 그런 타이틀은 누구나 인정할수 있는 사람에게만 붙였다. 마리아 칼라스가 자기 스스로 디바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여 일반화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한편, 자기들이 신봉하는 디바, 즉 프리마 돈나를 중심으로 팬클럽들이 구성되어 점차 극성을 떨치게 되었으니 그들의 라이발 의식은 대단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마리아 칼라스 팬클럽과 레나타 테발디 팬클럽간의 경쟁은 알아주는 극성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칼라스와 테발디는 서로 친한 사이였다. 그러므로 두 사람간의 라이발 난리는 순전히 팬클럽 멤버들의 소치라고 할수 있다. 프리마 돈나 중에서도 대단히 뛰어난 소프라노는 '프리마 돈나 아쏠루타'(Prima donna assoluta: 절대적 프리마 돈나)라고 불렀다. 마리아 칼라스 팬들은 마리아 칼라스를 프리마 돈나 아쏠루타라고 불렀고 레나타 테발디의 팬들은 레나타 테발디를 그렇게 불렀다. 요즘에 프리마 돈나 아쏠루타라는 호칭을 받으려면 객관적으로 공인된 단체나 기관이 인정하는 소프라노만 해당되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평론가협회가 프리마 돈나 아쏠루타로 선정하면 공신력이 있다는 것이다. 발레리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의 여성은 프리마 발레리나 아쏠루타라고 부른다.

 

마리아 칼라스와의 경쟁으로 유명했던 디바 레나타 테발디. 토스카 음반 커버.

 

프리마 돈나(복수형태는 프리메 돈네: Prime donne)라는 호칭은 간혹 무대 뒤의 주역들에게 붙이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선정하여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악단 멤버 중에서도 뛰어난 연주자, 뛰어난 세트 디자이너, 뛰어난 의상 디자이너, 뛰어난 프로듀서를 프리마 돈나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여자라면 그런 호칭이 더 적당하겠지만 남자들에게도 프리마 돈나라는 명칭을 상징적으로 붙인다. 그러다 보니 근간에는 프리마 돈나 라는 말이 성악가이든 배우이든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고집이 세고, 안하무인으로 오만하며 제멋대로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비단 오페라 무대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독선적이고 잘난체 하는 사람을 프리마 돈나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만일 '모델 중의 프리마 돈나야!'라고 말한다면 모델들 중에서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인 사람을 말한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디바를 가장 적당하게 표현한 경우는 2002년 10월 21일자 타임지이다. 타임지는 "디바란 어느 면에서 음성이 좋아서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뿐이며 다른 면에서는 제 정신이라고 볼수 없는 여자'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디바'라는 용어는 엘리트주의(Elitism), 스포일드 브랫(Spoiled brat: 불량소년), 퀸비(Queen bee: 여성 리더 또는 공주병 여자), 밸리 걸(Valley Girl: Val: Val Gal: 독특한 의상과 말투로 10대의 우상이 된 소녀)과 같은 의미로까지 사용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잘 사는 집 여자들로서 사치하고 안하무인의 건방진 아이들을 말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디바'라는 말은 주로 오페라의 여주인공 중에서 뛰어난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오페라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 여러 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의 여성을 일컫는 말이 되었으며 특히 대중가요의 분야에서 뛰어난 가수들에게 붙이는 호칭이 되었다. 한편, 대중가수들에 대한 마켓팅을 하는 기획사 또는 매니저들은 자기들이 후원하는 가수들을 선전목적으로 '디바'라고 치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디바라고 하면 무조건 여성만을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남자에게도 디바라는 호칭을 주어 간접적인 선전을 한다. 이렇듯 대중가수 중에는 선전목적에 의해 디바라는 호칭으로 불린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개중에는 '아하, 이 사람은 진짜 디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구나'라고 할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 디바라고 불리는 가수들은 다음과 같다. 팝가수이면서도 정통 오페라 성악가에 버금하는 오페라적인 재능이 있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성에게도 디바라는 호칭을 줄수 있다. 예를 들면 대중가요 가수로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파페라 가수인 필리파 조르다노(Filippa Giordano)이다.

 

파페라의 디바로 등장한 필리파 조르다노

 

아레타 프랭클린, 다이아나 로스, 셰르, 셀리느 디온, 휘트니 휴스턴, 마돈나, 티나 터너, 머리아어 커레이, 캐롤 킹, 조니 미첼, 조앤 바에즈, 리키 리 존스, 나탈리 콜, 줄리 앤드류스, 라이자 미넬리, 칼리 사이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디 갈란드, 페기 리, 도리스 데이, 레나 혼, 빌리 홀리데이, 엘라 휘츠제랄드, 사라 본, 다이나 워싱턴, 니나 시몬, 패티 라벨르, 에타 제임스, 글레이디스 나이트, 로베르타 플랙, 챠카 칸, 돈나 섬머, 올리비아 뉴턴 존, 린다 론슈타트, 돌리 패트론, 에밀루 해리스, 태미 위네트, 로레타 린, 패치 클라인, 카렌 카펜터, 베트 미들러, 디온 워위크, 재니스 조플린, 애니 르녹스, 패티 스미스, 데보라 해리, 스티비 닉스, 크리씨 하인드, 더스티 스프링필드, 앤 머레이, 카니 프란시스, 브렌다 리, 메릴 스트립 등등이 디바라는 호칭으로 불린 일이 있다. 스포츠맨 중에서는 농구선수인 라이사 레슬리(Lisa Leslie), 축구선수인 브랜디 챠스테인(Brandi Chastain) 등을 디바라고 불렀다. 게이들만의 예술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도 디바라고 부른다. 게이 배우인 캐시 그리핀(Kathy Griffin), 조이 베하르(Joy Behar), 조앤 리버스(Joan Rivers) 등은 영광스럽게도 디바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이상 열거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거의 다 아는 사람이라면 대중문화의 매니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게이 예술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아 디바라고 불리는 배우 겸 코미디언인 캐시 그리핀

 

 

 

 

'디바·디보의 세계 > 소프라노 대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기의 카르멘 리제 스티븐스...99세로 타계  (0) 2013.04.20
디바 음식 5선  (0) 2011.12.15
디바의 자격  (0) 2011.12.15
이 시대의 위대한 디바들  (0) 2011.12.14
소프라노의 세계  (0) 2008.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