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위대한 대본가를 기리는 거리 이름들

정준극 2012. 1. 9. 11:29

위대한 대본가를 기리는 거리 이름들

 

오페라에 있어서 대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오페라의 성패는 바로 대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엔나에는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역사상 위대한 대본가들을 기리는 거리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만 소개한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이력과 활동내용은 본 블로그에 별도로 소개되어 있다.

 

-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 1698-1782) - 1구 메타스타시오가쎄(Metastasiogasse).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페라 대본가이다.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1730년부터 비엔나에 정착하여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테, 칸초네테 등의 대본을 썼다. 그는 오페라만 해도 약 30편에 이르는 대본을 완성했다. 이 대본들을 가지고 수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버림받은 디도'(Didone abbandonata)라는 대본만 하더라도 도메니코 사로(Domenico Sarro), 니콜라 포르포라(Nicola Porpora), 레오나르도 빈치(Leonardo Vinci), 발다싸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 니콜로 조멜리(Niccolo Jommelli), 토마소 트라에타(Tommaso Traetta), 주세페 사르티(Giuseppe Sarti), 니콜로 피치니(Niccolo Piccini),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 등 50여명에 이르는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Il Sogno di Scipione 의 대본도 메타스타시오의 작품이다. 그는 1857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엔나 중심가에 있는 미노리텐교회에 안장되었다.

 

위대한 대본가인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

 

-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 - 3구 다폰테가쎄(Dapontegasse).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 비엔나에 와서 오페라 대본가로서 활동하였다. 28개의 오페라 대본을 완성하였으며 이를 11명의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의 대본을 제공했다. 1828년에 뜻한바 있어서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뉴욕에서 살다가 1838년 세상을 떠났다. 뉴욕 멀베리가에 있는 생패트릭교회에서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그는 퀸스의 갈보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의 대본을 쓴 로렌초 다 폰테

 

- 휴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 4구 호프만스탈가쎄(Hofmannsthalgasse). 비엔나의 란트슈트라쎄에서 태어나 현재 리징에 속한 로다운에서 세상을 떠난 위대한 대본가로서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대본을 다수 완성했다.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부인, 이집트의 헬렌, 아라벨라 등이다. 그는 부인이 유태계통이기 때문에 나치의 핍박을 받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대본들을 완성한 휴고 폰 호프만스탈

 

-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 1751-1812) - 4구 쉬카네더가쎄(Schikanedergasse). 독일 바바리아 지방의 슈트라우빙(Straubing)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배우 겸 바리톤 겸 대본가였다. 그는 또한 극장인으로서 세계적인 '빈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그는 약 30편의 오페라 대본을 남겼으며 대표적인 것은 모차르트가 음악을 붙인 '마술 피리'이다. 쉬카네더는 1791년 마술피리의 초연에서 파파게노의 이미지를 창조하기도 했다. 쉬카네더는 모차르트, 하이든과 함께 프리메이슨의 멤버였다고 한다.

 

에마누엘 쉬카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