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모차르트

정준극 2013. 5. 23. 16:52

비엔나와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어린 시절부터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그가 발길을 옮겼던 여러 장소에 그를 기념하는 조형물이나 명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발자취를 가장 분명하게 찾아 볼수 있는 곳은 그가 태어나서 청년이 되기까지 살았던 잘츠부르크이다. 그리고 물론 그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엔나에도 많은 발자취가 남아 있다. 실로 비엔나에는 수많은 곳에 모차르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그러나 모두 찾아보는 것은 다른 몫으로 남겨두고 이번에는 그중에서 비엔나의 몇군데만 살펴본다. 자세한 사항은 본 블로그의 '모차르트의 발자취'에 수록되어 있다.

 

비엔나에서 유일한 모차르트기념관은 슈테판성당 뒤편, 돔가쎄 5번지에 있는 '모차르트하우스'이다. 모차르트가 1784-1787년의 3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완성했다. 그래서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피가로하우스'라고 불렀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베토벤을 만났다. 하이든은 이 집에서 마침 비엔나의 모차르트를 만나러 온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를 만나 그에게 '이름으로만 알았던 선생의 아들은 참으로 가장 위대한 작곡가올시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는 기념관이며 지하에는 뵈젠도르프 피아노 회사가 후원하는 작은 연주회장이 있다.

 

슈테판성당 뒷편 골목길인 돔가쎄 5번지에 있는 모차르트 하우스 기념관. 이곳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 그래서 전에는 '피가로하우스'라고 불렀었다.

 

다음으로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모차르트 관련 장소는 무어라해도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상일 것이다. 원래는 1898년에 제작하여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5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의 위치는 호프부르크 궁전의 옆이며 링 슈트라쎄의 대로변이어서 가장 눈에 잘 띤다. 비엔나 사람들이 모차르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의 기념상이 있는 위치만 보더라도 알수 있는 일이다.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상. 링슈트라쎄에 면하여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이 어디인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비엔나 시내의 중심지에 있다. 비엔나의 명동이라고 하는 캐른트너슈트라쎄에 슈테플(Steffl)이라는 백화점이 있는데 바로 그 백화점의 뒷길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슈테플 백화점이 차지하고 있는 건물의 한 구석에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이 있었다. 물론 세월이 지나는 바람에 그 집은 철거되고 현재의 백화점 건물이 들어서 있게 되었다. 주소는 라우엔슈타인가쎄(Rauhensteingasse) 8번지이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장소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모차르트가 세상 떠난 집. 왼쪽 끝에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라우엔슈타인가쎄 8번지. 캐른트너슈트라쎄의 슈테플백화점이 있는 뒷편 길이다.

모차르트가 생애의 마지막을 보냈던 집은 1849년까지 라우엔슈타인가쎄 8번지에 있었으나 그 후에 철거되었고 현재는 슈테플 백화점의 일부로 합병되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언제부터 이 집에서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영화에서는 오페라 '마술피리'를 이 집에서 작곡한 것으로 되어 있느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슈테판성당은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며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결미사가 거행된 곳이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 중에서 몇명은 이곳 슈테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는 슈테판성당 안의 성카타리나카펠레이며 그의 영결미사가 열린 곳은 프린츠 오이겐 공자의 묘지가 있는 성삼위일체카펠레이다. 그러므로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 나오는대로 모차르트와 콘스탄체가 슈테판성당의 중앙제단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은 보기에 좋으라는 영화의 장면일 뿐이다.

 

모차르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영결미사가 열린 슈테판 대성당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라고 하는 '마술피리'의 작곡과 관련한 에피소드 한마디만 하고 마치려한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보면 모차르트가 오페라 '마술피리'를 완성하고 이어 처음 공연을 가진 도중에 과로 등으로 쓰러져 결국 세상을 떠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술피리'가 초연된 것은 1791년 10월이고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2월 초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과연 '마술피리'를 어디서 작곡했느냐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항이다. 아마도 1구 라우엔슈타인가쎄 8번지가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그런데 어떤 기록을 보면 '마술피리'의 대본을 썼고 제작을 맡았으며 거기다가 파파게노의 역할까지 맡은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모차르트에게 '마술피리'의 작곡을 의뢰하고나서 가만히 보니까 도무지 작곡에 진전이 없은 것 같아서 이래가지고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비엔나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작은 오두막집을 하나 빌려 놓고 모차르트를 그곳에 연금하다시피하여 작곡을 마치도록 했다고 한다. 그 오두막집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현재의 4구 뷔덴의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지금 그 오두막집이 어디있는지는 알려져 있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경내로 옮겨다 놓았다. 자세한 내막은 더 조사해 볼 생각이다.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작곡했다고 하는 오두막집. 현재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인근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묘지는 잘 아는대로 비엔나 교외 짐머링이라는 곳에 있는 중앙공동묘지(Zentralfriedhof)의 명예의 묘역에 있다. 그리고 1791년 12월에 그를 매장한 곳이라는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도 모차르트를 기념하여 가묘가 있다. 비엔나에는 모차르트를 생각하게 만드는 많은 장소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을 살펴보기 바란다.


뷔덴의 모차르트 분수. '마술피리'에서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동주의 모습. 인근에 1791년 9월에 '마술피리'가 초연되었던 뷔덴극장이 있었다.


3구 렌베그(Rennweg) 91번지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명판. W.A. Mozart dirigierte in diesem Gotteshaus gelegentlich der Einweihung am 7. XII. 1768 in Anwesenheit der Kaiserin Maria Theresia seine erste Festmesse. Wiener Schubertbund 1931 이라고 적혀 있다. 번역하면 '모차르트가 1768년 12월 7일 이 교회의 봉헌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친히 참석한 가운데 그의 첫 미사곡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3구 렌베그 91번지의 집. 현관 위에 KOMM ZU UNS(우리에게 오라)라는 글이 적혀 있다. 붉은 타원 안에 모차르트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고아들을 위한 시설을 세워주고 아울러 교회도 마련해 주었는데 교회 봉헌 미사를 위해 어린 모차르트에게 미사곡의 작곡을 의뢰했던 것이다. 당시 모차르트는 열두살이었다.

 

1구 봐이보르크가쎄 3번지의 호텔 엘리자베트 현관에 있는 설명문. 이 호텔에 투숙했던 저명인사들을 나열하였는데 첫번째가 모차르트로서 1767년, 그가 11세 때에 투숙했었다는 것이다.

봐이부르크가쎄 3번지의 호텔 카이저린 엘리자베트


3구 란트슈트라쎄 하우프트슈트라쎄(Landstrasse Hauptstrasse) 75번지에는 모차르트가 1787년에 살았었다는 기념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An dieser Stelle stand das Haus in welchem W.A.. MOZART im Jahre 1787 wohnte 라고 적혀 있다.


9구 배링거슈트라세() 26번지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명판. Hier stand das Gartenhaus wo Mozart vom Sommer 1788 bis Herbst 1790 wohnte und Cosi fan tutte sowie Simphonien G moll Es dur und C dur mit der Fuge schrieb. 라고 적혀 있다. 번역하면 '모차르트가 1788년 여름부터 1790년 가을까지 이곳에 있었던 집에 거주하면서 코지 판 투테, 교향곡 g 단조, Es 장조, C 장조와 푸가를 작곡했다'는 내용이다. 현관문 상단에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9구 알저그룬트 배링거슈트라쎄. 붉은 원은 26번지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모차르트 기념명판의 장소이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본 블로그의 모차르트 편을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