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더 알기

로시니의 파스티슈 오페라(Pastiche Opera)

정준극 2011. 11. 22. 20:47

로시니의 파스티슈 오페라(Pastiche Opera)

'아이반호'(Ivanhoé)와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

 

예술작품의 형태로서 파스티슈(Pastiche), 또는 파스티치오(Pasticcio)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서 일부를 가져다가 자기 작품에 넣는 것을 말한다. 비단 다른 사람들의 작품 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전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 중에서 요소들을 가져와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파스티슈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공공연하게 모방한 연극, 문학, 음악 등의 작품을 말하며 간혹 풍자적인 의도가 있다고 되어 있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부연하자면, 파스티슈는 패러디(Parody)와는 다르다. 패러디란 풍자적인 모방을 말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노래 가사를 풍자적으로 다르게 고쳐서 부르면 그것은 패러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패러디에서는 모방을 조소적으로 사용하지만 파스티슈에서의 모방은 오히려 원래 작품을 찬양하는 의미가 강하다. 파스티슈는 표절(플래지아리슴: plagiarism)과도 차이가 있다. 표절은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서 일정 부분을 정당한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다가 마치 자기가 만든 것처럼 속여서 사용하는 것이지만 파스티슈는 대체로 정당하게 허락을 받고 사용한다.

 

그러한 파스티슈는 진작부터 예술형태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태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1069년에 존 파울러(John Fowler)라는 작가가 펴낸 The French Lieutenant's Woman(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요소들을 가져와 엮어서 펴낸 것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옛날 사람들의 작품에서 내용들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허락까지는 받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파슈티슈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를 파스티셔(pasticheur)라고 부른다. 오페라에 있어서 18세기에는 파스티치오가 상당히 유행했었다. 헨델의 무치오 스체볼라(Muzio Scevola: 1721), '지오베 인 아르고'(Giove in Argo: 1739: 아르고의 제이슨) 등은 대표적이다. 글룩이나 바흐도 파스티치오 작품을 상당수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여러 오페라에서 조금씩 가져와서 만든 오페라도 있다. 파스티치오 오페라에는 자기가 만든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의 작곡해 놓은 아리아나 앙상블을 가져와서 붙여 넣는 것이 보통이다. 아리아를 가져와서 사용하더라고 가사를 바꾸거나 또는 멜로디의 일부를 바꾸는 일은 일반적이다.

 

오페라의 귀재 로시니는 평생에 약 4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와는 별도로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서 발췌한 곡으로만 만든 파스티슈가 두 편이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이 편집한 것이지만 이들도 로시니의 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나는 3막의 '아이반호'(Ivanhoé)이며 다른 하나는 역시 3막의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이다. '아이반호'는 잘 아는대로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소설이다. 이를 바탕으로 에밀 드샹(Émile Deschamps: 1791-1871)과 가브리엘 귀스타브 드 와일리(Gabriel Gustave de Wailly: 1804-1878)가 프랑스어 대본을 만들었고 이를 악보출판가인 안토니오 파치니(Antonio Pacini)가 로시니의 '세미라미드'(Semiramide),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 신데렐라), '라 가짜 라드라'(La gazza ladra: 도둑까치), '탄크레디'(Tancredi), '젤미라'(Zelmira)에서 이 음악, 저 음악을 가져와서 조합하여 '아이반호'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안토니오 파치니가 '아이반호'를 만든 목적은 로시니의 오페라를 파리에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오페라 '아이반호'는 1826년 9월 15일 파리의 오데온극장에서 초연되어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오페라 '아이반호'의 등장인물은 보통 흑기사라고 하는 아이반호(T)를 비롯하여 레일라(Léila: S), 브라앙 드 부아길베르(Brian de Boisguilbert: B), 이스마엘(Ismael: Bar). 세드릭(Cédric: Bar), 루카 드 보마누아 후작(Le Marquis Lucas de Beaumanoir: B), 알베르 드 말부아생(Albert de Malvoisin: T) 등이다.

 

아이반호 음반

 

'로버트 브루스'는 1846년에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에 정착한 작곡가 루이 니더마이어(Louis Niedermeyer: 1802-1861)이 로시니의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 '젤미라'(Zelmira), '비안카와 팔리에로'(Bianca e Falliero),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Torvaldo e Dorliska), '아르미다'(Armida)에서 음악을 가져와 자기가 작곡한 음악과 함께 만든 오페라로서 1846년 12월 30일 파리의 왕립음악원극장(Théâtre de l'Académie Impériale de Musique: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로시니는 1843년에 신병 치료차 파리에 와서 머무른 일이 있다. 이때 파리 오페라극장의 감독인 레옹 피예(Leon Pillet)라는 사람이 로시니를 찾아와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시니는 바쁘다면서 거절했다. 그래도 간청하자 로시니는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를 조금 수정해서 프랑스어 대본으로 만들어 공연하면 될것이 아니냐고 제안했다. 그러다가 얼마후 로시니는 다시 볼로냐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레옹 피예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볼로냐로 로시니를 만나러 왔다. 이번에는 아예 대본가인 귀스타브 바에즈(Gustave Vaëz)와 작곡가인 루이 니더마이어를 대동하고 왔다. 그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호수의 여인'의 프랑스어 버전이라고 할수 있는 '로버트 브루스'였다.

 

물론 '로버트 브루스'에는 '호수의 여인'의 음악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로시니의 다른 오페라의 음악도 적당히 사용되었다. 그리고 루이 니더마이어는 주로 레시타티브 파트의 음악을 만들었을 뿐이다. 로시니는 자기의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지만 파리에서의 초연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로버트 브루스'는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비난도 받았다.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비난자 중의 하나였다. 로버트 브루스(Bar)는 스코틀랜드의 왕이며 상대역은 영국왕인 에두워드 2세(T)이다. 여기에 더글라스 경(B)과 그의 딸 마리(MS), 스코틀랜드의 유지인 딕슨(Dickson: B)과 그의 딸인 넬리(Nelly: S) 등이 출연하는 역사극이다.

 

로버트 브루스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