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03.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

정준극 2012. 1. 30. 20:17

베툴리아 해방(Betulia liberata)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치오네 사크라(azione sacra)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페스티벌, 라벤나 페스티벌에서 오페라로 공연

 

베툴리아 리베라타를 작곡할 당시로 추정되는 모차르트(15세)

 

'베툴리아 해방'(Betulia liberata)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유일한 오라토리오이다. '베툴리아 해방'은 모차르트가 15세의 소년일 때에 완성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모차르트의 생전에는 한번도 연주되지 못했다. 대본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대본가인 피에트로 메타시타시오의 작품이다. '베톨리아 해방'의 대본은 1734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6세(1685-1740: 마리에 테레자의 아버지)가 메타스타시오에게 의뢰하여 완성된 작품이다. 샤를르6세는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을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게오르그 로이터(Georg Reuter: 1708-1772)에게 부탁하여 음악을 붙인 종교 드라마로 만들 생각이었다. 당시 비엔나에서는 아지오네 사크라(Azione sacra)라는 장르의 종교음악이 유행이었다. 음악을 붙인 성극(聖劇: Sacred drama)이었다. 아지오네 사크라는 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주제로 삼았다. 18세기에는 아지오네 사크라를 오라토리오라고 통일하여 부르게 되었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유디트. 틴토레토 작품

               

메타스타시오가 대본을 만든 '베툴리아 해방'은 게오르그 로이터 이외에도 약 30명의 작곡가들이 오라토리오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1743년에 이탈리아의 니콜로 좀멜리(Niccolo Jommelli: 1714-1774)가, 1752년에 독일의 이그나즈 홀츠바우어(Ignaz Holzbauer: 1711-1782)가, 1780년에 체코의 레오폴드 코첼루크(Leopold Kozeluch: 1747-1818)가, 1787년에 독일의 요셉 슈스터(Joseph Schuster: 1748-1812)가, 그리고 1771년에는 모차르트가 오라토리오로 만들었다. 한편,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1821년에 역시 '베툴리아 해방'을 대본으로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알렉산더 세로프(Alexander Serov: 1820-1871)가  Judith 라는 오페라를 만들었고 지그프리트 마투스(Sigfried Matthus: 1934-)도 Judith 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Giuditta도 유디트의 전설과 무관하지 않다. 비엔나 출신의 체코계 작곡가인 에밀 니콜라우스 레츠니체크(Emil Nikolaus Reznicek: 1860-1945)가 작곡한 Holofernes 도 있다. 이렇듯 많은 '베툴리아 해방' 중에서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베툴리아 해방'을 1771년에 완성하였다. 그가 15세의 소년이었을 때였다. 15세 소년의 작품으로서는 너무도 완벽한 것이었다.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에는 아리아가 16곡이나 나온다. 모두 주옥같이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들이다. 

 

베툴리아 리베라타 음반 커버.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가 이스라엘 귀족여인을, 보리스 크리스토프가 아키오르를 맡았다.

               

모차르트의 '베툴리아의 해방'은 그의 생전에는 공연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후 언제 초연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다. 짐작컨대 스페인의 아라곤, 또는 잘츠부르크에서 공연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리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이 작품을 아라곤의 공자인 주세페 시메네스(Giuseppe Ximenes)가 모차르트에게 작곡해 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차르트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어서 파두아에 머물고 있었으며 아라곤의 공자는 그때 만났다고 한다. 아무튼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은 모차르트가 완성한 후에 수백년 동안 잊혀져 있었다. 세계의 음악계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한편, 음악계의 일각에서는 니콜로 좀멜리의 작품이 다른 모든 작곡가들의 '베툴리아 해방'보다 더 위대하다는 얘기를 한다. 작곡가로서 성숙한 시기에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하다는 좀멜리의 '베툴리아 해방'도 모차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백년동안 잊혀져 있었다. 모차르트의 것이든, 좀멜리의 것이든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의한 '베툴리아의 해방'이 요즘 사람들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잘츠부르크의 부활절 페스티벌(Whitsun Festival: Osterfespiele)에 이어 이탈리아의 라벤나(Revenna) 페스티벌에서 거장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로 연주되고부터였다. 아무튼 모차르트와 좀멜리의 '베툴리아 해방'을 함께 무대에 올린 것은 대단한 시도였다. 두 개의 '베툴리아 해방' 중에서 본 블로그에서 소개코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것이다.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의 음악스타일은 레오나르도 레오(Leonardo Leo: 1694-1744)와 요한 아돌프 하세(Johann Adolph Hasse: 1699-1783)의 스타일을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베툴리아 리베라타는 오라토리오로서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벤나 대성당에서의 연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 있을 때인 1771년, 3월에서 7월 사이에 '베툴리아 해방'을 완성했다. 연주시간 140분의 아지오네 사크라(Azione sacra)였다. 아지오네 사크라는 18세기에 들어서서 오라토리오라고 불렀으므로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은 오라토리오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툴리아 해방'은 모차르트의 유일한 오라토리오이다. 그런데 근자의 음악학자들은 오히려 오페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다. 비록 종교극이지만 연극적인 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서곡은 마치 '마술피리'의 서곡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전체 스토리를 암시하듯 어둡게 시작하하다가 중간 파트에는 감미롭고 선율적이며 끝에서는 폭풍이 치는 듯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곡 하나만 해도 연주회의 레퍼토리로서 충분하다. 또 한가지 궁금스러운 것은 16-17세기 작곡가들은 주로 성서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당시의 헨델이나 하쎄와 같은 거장들이 어찌하여 유디트와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고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장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유디트 스토리를 오히려 당시 15세에 불과했던 모차르트가 오라토리오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그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당신께서 특별히 사랑하여 이 세상에 보낸 신동 모차르트로 하여금 유디트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도록 섭리하셨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다. 모차르트의 '베툴리아 해방'은 스토리가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오라토리오로서 연주되기 보다는 오페라로 연출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이어서 근자에는 오페라처럼 공연된 일도 있다.

 

밀라노에서의 오라토리오 '베툴리아 리베라타' 연주

                   

'베툴리아 해방'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서곡으로 시작하며 피날레는 유딧의 아리아와 베툴리아의 백성들의 합창으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징슈필에서 볼수 있는 대화체의 대사는 모두 반주를 곁들인 레시타티브로 처리하였다. 메타스타시오의 스토리는 경외서인 유딧서(Book of Judith)에 기본을 둔 것으로 저 유명한 유태 여인 유딧이  아수르(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Holofernes)를 죽여서 베툴리아가 해방이 되도록 했다는 얘기이다. 이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여서 수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겼으며 작곡가들은 음악으로 남겼다. 그림으로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클림트의 '유디트'가 아닐까 싶다. 유디트(유딧)는 누구이며 베툴리아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라벤나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알리사 콜로소바가 유디트를 맡았다.

                     

유디트서에 의하면 유디트는 예루살렘 인근의 베툴리아(Betulia: Bethulia)성에 살았던 여인이라고 되어 있다. 베툴리아성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만일 페툴리아성이 적군에게 함락된다면 그것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 땅이 함락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유디트는 이스라엘 군대의 용맹스런 전사(戰士)인 남편이 전사하자 재혼의 유혹을 물리치며 하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유디트는 아름답고 정숙하며 경건한 여인이었다. 그 때에 앗수르(아시리아)의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이탈리아어로는 나부코) 왕이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장군에게 명하여 페툴리아성을 함락토록 하였다. 페툴리아는 지극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이 적군의 발에  짓밟히게 될 운명이 되었다. 베툴리아의 백성들은 강대하고 횡포한 홀로페르네스 장군에게 대항할수 없으므로 성문을 열고 항복하자고 주장했다. 다만, 제사장만이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려 보자고 주장할 뿐이었다. 이러한 때에 유디트가 자원하여 적진에 들어가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여 그가 술에 취하여 잠든 틈에 그의 목을 잘라 베툴리아 성으로 돌아왔다. 혼란에 빠진 앗수르 군대는 퇴각하였고 이스라엘은 유디트의 헌신적인 행동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라벤나 페스티벌에서의 알리사 콜로소바(Alisa Kosolova: 러시아 메조소프라노)

                    

'베툴리아 해방'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오지아(Ozia: Ozias: T)는 베톨리아의 성주이다. 주디타(Giuditta: Judith: A)는 이스라엘의 용맹한 전사인 마나세(Manasseh)의 미망인이다. 아미탈(Amital: S)은 이스라엘의 귀족여인이다. 아키오르(Achior: B)는 암몬족의 왕자이다. 카브리(Cabri: Cabris: S)와 카르미(Carmi: S)는 베툴리아 백성들을 대표하는 여인들이다. 기본적으로 이 오라토리오/오페라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주역급 4명이 출연한다. 느브갓네살 대왕은 등장하지 않으며 홀로페르네스 장군도 콘서트 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족이지만 베툴리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서 '처녀' 또는 '정숙한 여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유디트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유태교에서는 여인의 정절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으므로 베툴리아는 모든 이스라엘 여인들을 뜻할수도 있다. 그리고 유태인의 사회는 모계중심인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베툴리아는 요즘의 요단강 서안에 있는 시킴(Sichem) 또는 텔발라타(Tell-Balatah)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사누르(Sanur)라는 주장도 있고 기타 다른 여러 지역이 대상으로 되어 있어서 정확하지 않다. 그런가하면 소설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낸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디트와 아키오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파트 1] 아수르(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는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예룰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베툴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포위하였다. 암몬족의 왕자인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 민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얘기해주며 이들을 침공하였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지 말라고 경고한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강력한지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가 베툴리아를 포위한지도 닷새가 지났다. 베툴리아의 백성들은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우므로 항복하는 편이 낫다고 소리친다. 이때 유디트가 나서서 항복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하고 그가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죽이고 오겠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유디트는 농장에서 데리고 있던 하인 한 사람과 함께 적진으로 향한다.

 

오지아(Michael Spyres)와 아키오르(Nahuel Di Pierro).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페스티벌. 2010년

                    

[파트 2] 베툴리아의 성주인 오지아와 암몬족의 왕자인 아키오르가 하나남의 능력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키오르는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시다면 어찌하여 아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지 않느냐고 묻는다. 오지아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으로서 측량하기 어려우므로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편, 적진에 도착한 아름다운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따듯한 영접을 받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을 테스트해 볼 생각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를 위해 훌륭한 잔치를 베푼다. 홀로페르네스가 술에 취하여 잠든다. 이때 유디트는 잠들어 있는 홀로페르네스를 칼로 찔러 죽이고 증거로서 그의 목을 잘라 베툴리아로 돌아온다. 베툴리아의 백성들은 용기를 얻어 아수르 군대에게 반격한다. 장수를 잃은 아수르 군대는 크게 당황하여 퇴각한다. 베툴리아의 백성들은 유디트를 영웅으로 칭송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크게 기뻐한다. 유디트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베툴리아가 해방된 것을 소리 높이 찬양한다.

 

잘츠부르크 2010년 성령강림절 페스티벌 공연.


[베툴리아 해방]의 음악 리스트

(첫째 파트)

1. 서곡

2. 레시타티브(오지아). Popoli di Betulia

3. 아리아 1(오지아). D'ogni colpa la colpa maggiore

4. 레시타티브(카브리와 아미탈). E in che sperar?

5. 아리아 2(카브리). Ma qual virtu non cede

6. 레시타티브(오지아, 카브리, 아미탈). Gia le memorie antiche

7. 아리아 3(아미탈). Non hai cor

8. 레시타티브(오지아, 아미탈, 합창). E qual pace sperate

9. 아리아와 합창 4(오지아, 합창). Pieta, se irato sei

10. 레시타티브(카브리, 아미탈, 오지아, 주디타). Chi e costei che qual sorgente aurora

11. 아리아 5(주디타). Del pari infeconda

12. 레시타티브(오지아, 카브리, 주디타). Oh saggia, oh santa

13. 아리아와 합창 6(오지아, 합창). Pieta, se irato sei

14. 레시타티브(카브리, 아미탈, 카르미, 오지아, 아키오르). Signor, Carmi a te viene

15. 아리아 7(아키오르). Terribile d'aspetto

16. 레시타티브(오지아, 카브리, 아키오르, 주디타). Ti consola, Achior

17. 아리아 8(주디타). Parto inerme, e non pavento

18. 합창 9. Oh prodigio! Oh stupor!

(두번째 파트)

1. 레시타티브(아키오르, 오지아). Troppo mal corrisponde

2. 아리아 10(오지아). Se Dio veder tu vuoi

3. 레시타티브(아키오르, 오지아, 아미탈). Confuso io son

4. 아리아 11(아미탈). Quel nocchier che in gran procella

5. 레시타티브(오지아, 아미탈, 합창, 카브리, 주디타, 아키오르). Lungamente non dura

6. 아리아 12(주디타). Prigionier che fa ritorno

7. 레시타티브(아키오르). Guiditta, Ozia, popoli, amici

8. 아리아 13(아키오르). Te solo adoro

9. 레시타티브(오지아, 아미탈). Di tua vittoria

10. 아리아 14(아미탈). Con troppa rea vilta

11. 레시타티브(카브리, 카르미, 오지아, 아미탈). Quanta cura hai di noi

12. 아리아 15(카르미). Quei moti che senti

13. 레시타티브(오지아, 아미탈, 카브리, 아키오르, 주디타). Seguansi, o Carmi

14. 아리아(주디타)와 합창. Lodi al gran Dio


[참고자료] 유딧서(Book of Judith)

유딧(Judith)이라는 이름에는 '유태여인'이라는 뜻도 있지만 '찬양을 받을지어다'라는 뜻도 있다. 유딧은 유태인들에게서 가장 흔한 이름인 유다(Judah)의 여성형이다. 유딧은 히브리어로 예후디트(Yehudit)라고 부른다.

'유딧서'는 경외서로서 기원전 270년 경에 완성된 가장 오래 된 그리스어 구약인 70인역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70인역 성서를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 한다. '유딧서'는 가톨릭 성경과 동방정교회가 사용하는 구약성서에 포함되어 있지만 유태교 경전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개신교는 '유딧서'를 출처가 분명치 않은 위경(Apocrypha) 또는 경외서로 간주하고 있다. '유딧서'의 스토리는 여러 면에서 역사적인 시기와 맞지 않거나 또는 날짜가 아예 잘못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유딧서'가 비유를 통한 교육적인 목적으로 써졌다고 주장했으며 또 어떤 학자들은 '유딧서'가 최초의 역사소설이라고까지 말했다. 


[참고자료] 베툴리아(Bethulia)는 어디?

'유딧서'에 나오는 베툴리아는 성서에 나오는 도읍의 이름이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도시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일부 학자들은 베툴리아가 실존하는 도읍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지명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유딧서'에 나오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가상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베툴리아가 현재 팔레스타인의 행정국역에 속해 있는 요단강 서안 북쪽에 있는 제닌(Jenin) 인근이라는 것이다. 베툴리아라는 명칭은 히브리어로 번역했을 때 '처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딧서에 나오는 유딧이 정숙한 과부로서 정절을 지키며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