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04. 프란체스카 카치니의 '루지에로 해방'

정준극 2012. 2. 6. 06:12

루지에로의 해방(La liberazione di Ruggiero dall'isola d'Alcina)

오리지널 풀 타이틀: 알치나의 섬으로부터 루지에로의 해방

The Liberation of Ruggiero from the Island of Alcina

여성작곡가에 의한 최초의 오페라: 프란체스카 카치니(Francesca Caccini)

 

프란체스카 카치니(1587-1641)

 

'루지에로의 해방'이라는 오페라가 있다. 풀 네임은 '알치나의 섬으로부터 루지에로의 해방'( La liberazione di Ruggiero dall'isola d'Alcina)이다. 플로렌스 출신의 여류 작곡가인 프란체스카 카치니(Francesca Caccini: 1587-1641)가 작곡한 4장의 코믹 오페라이다. 1625년 2월 3일 플로렌스에 있는 빌라 디 포지오 임페리알레(Villa di Poggio Imperiale)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은 페르다닌도 사라치넬리(Ferdinando Saracinelli)라는 사람이 16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3-1533)의 '올란도 푸리오소'(Orlando Furioso: 올란도의 분노)라는 작품을 바탕으로하여 썼다. '루지에로 해방'은 여성 작곡가가 작곡한 최초의 오페라이다. 물론 어떤 학자들은 여성 작곡가로서 오페라를 처음으로 작곡한 사람이 독일의 힐데가르트 폰 빙겐(Hildegard von Bingen: 1098-1179)이라고 얘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힐데가르트는 오늘날 오라토리오의 모델이라고 할수 있는 음악을 곁들인 성극을 작곡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페라다운 오페라를 처음으로 작곡한 여성 작곡가는 프란체스카 카치니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학자는 카치니의 '루지에로 해방'이 오페라가 아니라 코믹 발레라고 주장하지만 어쨋든 비록 발레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형태는 오페라이다.

 

또한 '루지에로 해방'은 이탈리아가 다른 나라에 수출한 최초의 오페라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플로렌스에서 초연된지 3년 후인 1628년에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리바이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1625년에 플로렌스에서 초연되었던 것은 당시 플로렌스 카니발 기간중에 폴란드의 블라디슬라브 공자가 플로렌스를 방문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블라디슬라브 공자는 '루지에로 해방'을 본 후에 잊지 못하여 바르샤바에 돌아간후 이탈리아 오페라단을 바르샤바로 초청하여 '루지에로 해방'을 다시 공연토록 했다. 아무튼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다른 나라에 가서 원정공연한 것은 '루지에로 해방'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루지에로 해방'은 메디치가의 코시모2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맛달레나(1589-1631)가 카치니에게 의뢰하여 완성된 것이다. 마리아 맛달레나를 오스트리아의 마이라 맛달레나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오스트리아(정확하게는 인너 오스트리아) 대공인 샤를르 2세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마리아 맛달레나는 플로렌스에 시집와서 살고 있었으며 프란체스카 카치니는 마리아 맛달레나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루지에로 해방'은 프란체스카 카치니의 오페라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작품이다.

 

'루지에로 해방'은 스틸레 모데르노(stile moderno) 스타일로서 작곡되었다. 스틸레 모데르노는 세콘다 프라티카(seconda prattica: second practice)라고도 불리는 작곡 스타일로서 예를 들어 작곡할 때에는 불협화음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일종의 규례에서 벗어나서 불협화음도 슬쩍 넣어서 작곡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말한다. 또한 스틸레 모데르노 스타일은 카운터테너의 사용을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부터의 해방도 의미한다. 카치니의 '루지에로 해방'은 스타일에 있어서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작품에 가깝다고 볼수 있으나 실제로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스타일을 추구한 작품이다. '루지에로 해방'은 스틸레 레치타티보(stile recitativo)와 칸쪼네타(canzonetta)들을 콘체르토 델레 돈네(Concerto delle donne)스타일로 작곡한 것이다. 콘체르토 델레 돈네라는 것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하였던 작곡 스타일로서 귀부인들을 예술적인 기교를 최대로 구사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루지에로 해방'의 또 한가지 특징은 당시에 일반화되었던 카스트라토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연진은 높은 소리를 내는 파트에 치중하였다. 즉, 6명의 소프라노, 2명으 알토, 7명의 테너가 나오지만 베이스는 1명뿐이다. 여기에 플륫처럼 생긴 악기인 레코더의 트리오가 등장한다. 작곡에 있어서는 플랫 키를 여성과 관련하여 사용했고(여주인공인 알치나와 시녀들) 샤프 키는 남성(남주인공인 루지에로와 다른 남성 역할)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기법을 채택하였다. 남녀양성의 마법사인 멜리사는 아틀란테라는 남자의 형상으로 등장하지만 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C 장조의 키를 사용했다. 알치나는 사악하고 섹스를 추구하는 마법사이지만 남녀양성의 멜리사는 선한 인물이다. 멜리사는 알치나의 마법으로부터 루지에로를 구출하기 위해 싸운다. 현대의 평론가들은 '루지에로 해방'의 음악이 남녀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멜리사의 경우처럼 여성이 성공하려면 여성적인 면을 과감하게 버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알치나처럼 여성의 매력으로서 남성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카치니의 '알치나의 섬으로부터 루지에로의 해방' 음반 커버

 

여기서 잠시 '루지에로 해방'의 원작인 '올란도 푸리오소'(Oorlando Furioso: The Frenzy of Orlando 그러나 보다 정확히 번역하자면 Mad Orland 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코자 한다. '루지에로 해방'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대서사시인 '올란도 푸리오소'는 훗날 연극, 오페라, 발레, 미술, 조각 등 문화예술의 여러 장르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올란도 푸리오소'는 1516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어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올란도 푸리오소'는 마테오 마리아 보이아르도의 미완성 소설인 '올란도 인나모라토'(Orlando Innamorato: 사랑에 빠진 올란도)의 후편이다. '올란도 인나모라토'는 작가의 사후인 1495년에 완성되어 나왔다.

 

무대의 배경은 기독교를 수호코자 하는 샬레마뉴 대제와 그의 기사들이 유럽을 침공해 온 이슬람의 사라센 왕 아그라만테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작가인 아리오스토는 이같은 역사적인 사항을 서사시로 엮으면서 지리적으로나 사실적인 면에 있어서 가공의 사항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아마도 흥미를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예를 들면 엉뚱하게도 중국(Cathay)이 등장하며 스코틀랜드 북서쪽 대서양의 열도인 헤브리데스도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리고 달에 여행을 갔다 온다든지 여러 환상적인 동물들을 만들어서 등장시킨 것은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이다. 환상의 동물 중에서는 히포그리프라는 거대한 바다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올란도 푸리오소'의 이야기는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키지만 중심되는 스토리는 샬레마뉴 대제의 용감한 기사인 올란도가 우상을 섬기는 안젤리카 공주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라센인 루지에로와 기독교의 여전사인 브라다만테와의 사랑도 비중있는 내용이다.

 

현대적 연출의 '알치나섬으로부터의 루지에로 해방'

                      

사라센왕인 아그라만테는 아버지인 크라이아노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유럽을 침공한다. 아그라만테는 아프리카의 왕으로 설명되어 있다. 아그라만테의 동맹으로는 스페인 왕인 마르실리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샬레마뉴가 있는 파리를 포위하여 공선한 자존심 강한 전사인 로도몬테도 아그라만테의 편에 서서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한편, 샬레마뉴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용감한 기사인 올란도는 이방인인 안젤리카 공주의 유혹을 받아 샬레마뉴 대제를 보호해야 하는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안젤리카와 사랑에 빠진다. 원래 안젤리카 공주는 바바리아의 마노(Mano) 공작의 성에 억류되어 있었다. 안젤리카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탈출한다. 올란도가 안젤리카를 붙들어 오기 위해 명령을 받고 추격한다. 두 사람은 숲에서 만나 여러 모험을 겪으면서 차츰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런데 어느날 안젤리카는 숲에서 부상당한 사라센 기사 메도로를 발견하여 정성으로 치료해 준다. 안젤리카와 메도로는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멀리 중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올란도는 안젤리카로부터 배반을 당한데 대한 분노와 다시는 안젤리카를 볼 수 없다는 절망으로 유럽과 아프리카의 곳곳을 다니면서 보이는 모든 것은 파괴하고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영국의 기사인 아스톨포(Astolfo)가 미쳐 있는 올란도를 고치기 위해 저 멀리 에티오피아까지 히포그리프라는 거대한 바다 괴물을 타고 가서 치료방법을 찾는 모험을 한다.

 

아스톨포가 달세계로 날아 올라가는 장면도 있다. 마치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연상케 한다. 달에는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모두 있다. 심지어는 올란도의 위트(지혜 또는 분별력)도 있다. 아스톨포는 올란도의 위트를 병에 담아 와서 올란도로 하여금 코로 들여마시도록 한다. 그리하여 올란도는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올란도는 안젤리카와의 사랑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이란 것 자체가 정신나간 것의 한 형태라는 설명이다. 이제 정신을 차린 올란도는 동료 기사들과 함께 사라센의 아그라만테 왕과 싸우러 람페두사 섬으로 간다. 람페두사는 시실리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지중해에 있는 섬이다. 이곳에서 올란도는 아그라만테 왕을 죽인다.

 

알치나와 루지에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기독교도 여전사인 브라다만테와 사라센의 기사인 루지에로의 사랑이다. 두 사람도 올란도와 안젤리카의 사랑처럼 무수한 역경을 겪는다. 루지에로는 이방인 마법사인 알치나의 포로가 되어 외딴 섬에서 갇혀 지낸다. 누군가는 루지에로를 구출해야 한다. 루지에로는 그의 의붓아버지인 마법사 아틀란테의 손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아무튼 별별 모험과 에피소드가 다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라센의 기사 루지에로가 이슬람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브라다만테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사라센의 또 다른 기사인 로도몬테가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 뛰어 들어와 루지에로에게 사라센을 배반한 반역자라고 비난한다. 대서사시는 루지에로가 단 칼에 로도몬테를 베어 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로부터 루지에로와 브라만테는 이탈리아의 에스테가문의 선조가 되었다고 한다. 에스테가문은 '올란도 푸리오소'를 쓴 아이로스토의 파트론이다. 대서사시 '올란도 푸리오소'에는 또 다른 중요한 등장인물들이 있다. 올란도의 사촌인 기사 리날도는 그 중의 하나이다. 리날도도 안젤리카를 사랑한다. 비극적인 영웅인 이사벨라도 등장하며 도둑인 브루넬로도 등장한다.

 

사라센의 기사인 루지에로